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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41화 (41/328)

41화

[위기의 코어블 Special boy 팀]

: 승재야, 명후야! 둘 다 조금만 진정하는 게…….

: 나 잠깐만 바람 쐬고 올게.

: …….

: 얘, 얘들아!

와…. 되게 살벌한데. 중재하는 연습생이 리더로 추정됐다. 다른 팀원들도 뒤에서 눈 굴리기 바빠 보였다. 대놓고 말싸움하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험악한 상황이었다.

이내 한 명이 밖으로 나서며 모두가 바짝 굳어 버렸다. 간신히 정신 차린 팀원이 서둘러 그를 쫓아 나갔다. 아무래도 이번 방송의 희생양은 얘네들이 속한 팀 같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연습생들이 한숨을 내뱉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해당 팀원들이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넋이 빠진 게 망했다는 얼굴이었다. 밀려드는 불쌍함에 관심을 갖지 않기로 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싸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약간은 인지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방송에는 나올 수밖에 구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부각할 줄은 몰랐지. 다른 팀들이 어지간히 평화로웠던 모양이었다. 제작진에겐 착즙할 게 이것뿐이라 극대화해서 우려낸 것 같았다.

타이밍도 참 나빴다며 눈을 깜빡였다. 이번 시즌에는 유달리 회피를 잘 하는 애들이 많았다. 그래서 걸리면 바로 이용될 수밖에 없었다. 눈치 싸움으로 간택 당하고 마는 희생양들이었다.

[비상사태! 방을 박차고 나선 신승재 연습생]

[혼돈의 Special boy팀]

자막에 깔린 어그로가 굉장했다. 지금 편집 팀에 누가 있을까 고민했다. 저 정도면 어지간히 독한 사람이 아니었다. 윗선 명령을 배제하고도 아주 매웠는데…….

설마 황 PD인가? 문득 알고 있던 얼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우리끼리도 은어로 독사라고 부르던 사람이었다. 남현욱이 허허실실이라면 이쪽은 그냥 강한 성격을 자랑했다. 방송국 입장에선 프로페셔널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출연자들에겐 반드시 피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컨펌은 남현욱에게 통과 받더라도, 제안은 그쪽에서 했을 확률이 높았다. 황 PD도 방송국 짬이 그리 적지 않은 인간이었다.

시즌 1에는 없었다고 들었는데, 시즌 2라면 사단에 합류했을 시기로 타이밍이 맞았다. 어휴, 하필이면 이때부터 들어왔던 거야……?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다.

그나저나 저 애들은 제대로 물린 게 틀림없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1차가 끝나기 전까진 죽자고 붙을 예정이었다. 심지어 여기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저런 걸 보면서도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상태였다. 더는 간 떨려서 못 보겠다며 뒷통수만 긁적였다. 지금쯤 꽤 속이 쓰릴 이야기였다.

그래도 둘 중 한 명의 흐름으로 편집하진 않았다. 공평하게 모두를 죽이겠단 느낌이었다. 원래 악편 혹은 고의 편집이란 게 전부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를 타깃으로 하나만 노릴 순 없었다. 판은 비슷하게 깔아 주고, 시청자들이 택하는 방향에서 모든 조건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단독 캐릭터는 사전부터 언질을 주고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소속사와의 콘택트였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이런 건 모두 협의가 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여럿을 잡는 게 방송국 입장에서는 훨씬 수월했다. 수위가 분산되니 연락까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성격 나쁜 사람이 잔머리까지 잘 써서 애들만 힘들게 생겼다. 저기에만큼은 절대로 걸리고 싶지 않았다. 남 사단 내에서는 업무적으로 유일하게 까탈스러운 인물이었다. 일하지 않을 때는 느슨한 사람이란 게 제일 당황스러웠지…….

[인터뷰]

: 살벌했죠. 명후 형이 그러는 건 처음 봤어요.

: 와, 한번 화내니까 분위기가 달라지던데요.

: 그래도 이건 좀… 많이 무서웠습니다.

슬슬 이 팀은 끝내버리겠다는 기색이었다. 다른 연습생들도 희게 질려 시청을 이어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권혜성은 떡하니 입을 벌린 상태였다.

이제 내가 1화를 보고 다행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이다. 우리 정도면 천사라고 봐도 지장 없었다. 좀 모자라서 그렇지, 대놓고 잡는 건 없는 편이었다.

방송이란 게 결국은 돈을 위한 길이었다. 자극적인 걸 만들어야 시청률을 끌 수 있었다. 모두가 욕해도 찾아보는 건 이런 부분이 많았다.

악순환의 연속이라며 숨을 들이쉬었다. 등 뒤에선 미약하지만, 이동하는 무리의 발소리가 들렸다. 예의 팀원들 몇이 장소를 뜨는 것 같았다.

이미 망했다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잘못됐지만, 감정적으로는 이해됐다. 쟤네도 난처하겠지…. 없는 사실을 만든 게 아니라 더 힘겨울 일이다. 남 PD 사단의 고의 편집이란 건 전부 이런 거였다. 보통이라면 자를 만한 사실들을 극대화시키는 것.

그러다 이제는 다른 팀으로 화면이 전환됐다. 익숙한 얼굴에 집중해 보니, 저건 이유준과 이정원이었다. 같은 팀인 게 무척이나 어색한 장면이었다.

나와 대화한 시간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태도만 보여줬다. 하긴, 저때는 김찬규랑 화해하기 전이었다.

본인도 은연중에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실력이 좋은데도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모두를 따랐는데, 파트도 욕심내지 않는 게 희한한 성향이었다. 왜 이제까지 눈에 띄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부러 자기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중이었다. 전부터 느꼈지만 진짜 독한 성격이었다.

싸운 건 둘째 치고, 반성으로 자신을 옥죄었다. 내가 아는 연습생 중 얘가 제일 센 것 같았다. 괜히 안면을 텄다며 후회했다.

그래도 실력은 실력이라고, 숨기고 싶어도 가려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본 후기가 떠올랐는데 이 팀의 무대는 좋은 평가를 듣고 있었다. 타고난 성향이란 결국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내가 보기엔 얘도 천재형 실력파 연습생이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무대를 잘하긴 했나 보다. 문채민의 주도하에 편곡이 진행됐는데, 여기선 얘를 치켜세우려는 것 같았다.

주연으로 확정 지어진 인물의 등장으로 팬덤이 있어서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다. 다른 팀원들의 리액션도 이어져 나왔다. 저렇게 되면 옆에 있던 내가 이득을 봤다.

잘하는 애한테 붙어 다닌다는 여론이 나올 순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인터넷 접속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똑똑한 걸 알아서 의지했던 건 맞는 말이니까…….

그렇게 얼마 안 가 본무대의 서막이 올라갔다. 앞에서 흐물흐물하던 사람과는 과하게 달라 보였다. 열심히 웃고 다닌 보람이 있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매서운 얼굴이었는데, 나 자신도 어색한 수준이었다.

"무대 들어가니까 완전 다른데요?"

"…그래? 괜찮았어?"

"네, 무대도 좋았고, 팀원분들이랑 사이좋은 게 보여서 즐거웠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고마워."

역시 잘 웃는 게 인상에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특출나게 착한 얼굴은 아니었는데, 비웃는 느낌만 안 들도록 헤실거렸던 과거였다.

저렇게 순하게 다니면 짜집기인 걸 모를 수 없겠지. 사실 내 성격 자체가 지나치게 무른 감이 있었다. 연기라고 보기엔 리얼리티가 높긴 했다.

억지로 웃지 않았어도 모두 눈치챘을 점이었다. 나는 손해 보고 사는 사람인 게 맞는 말이었다. 싸우는 것보단 당해 주고 얻는 평화가 마음 편하다.

본 무대 전부터 팀원들과 장난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티격태격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해피엔딩이었다. 그래, 이것도 괜찮아. 분량이 없는 것보단 이런 식으로라도 얼굴을 비치는 게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유한 캐릭터는 악인으로 대상화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고의적인 편집 구간에서는 제외될 가능성이 보였다.

프로그램의 몇 안 되는 환기용 이미지인데, 큰일에 휘말리지 않는 이상 안전할 확률이 높을 듯했다. 제작진을 잘 알기에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져주는 성격이라 지칠 때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방향이었다.

멘탈에 입는 타격도 이쪽이 적은 편이었다. 실력만 받쳐 준다면 소소하게나마 인지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생각한 것보다 무대가 훨씬 잘 나왔다. 팀원들과 전체 그림을 살리려던 우리의 계획이 통한 것 같았다. 각 주요 컷마다 포커스가 당겨졌는데, 문채민의 등장부터 연습생들이 진지해졌다. 아무래도 위기감을 느낀 것 같았다.

쟤는 데뷔조의 강력한 후보였다. 랩 파트가 살아났다는 뜻은, 내 싸비도 괜찮았다는 얘기였다. 이어지는 보컬의 존재감이 강해졌다.

덕분에 실력으로 욕먹을 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2차에선 저거보다 더 잘해야 한단 소리겠지…….

"와, 해신이 형. 발전하는 게 눈에 보여요."

"…응, 진짜 열심히 했어."

저건 모두 진심이었다. 정말 연습하다 죽을 뻔했다는 게 팩트였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힌 시간이었는데, 간신히 버텨 내 소화했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잠이라도 좀 자볼 생각이었다. 조명 아래, 헐떡이는 엔딩을 마지막으로 우리 무대가 끝이 났다.

음, 만족스럽네. 1화보단 분량도 많았고, 그리 나쁘지 않은 실력도 보여 줬다. 끝에는 승리까지 거머쥐며, 과대 해석 하면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었다.

문채민의 소리 없는 기쁨이 비쳤는데, 팀원들의 공격적인 포옹도 지나갔다. 몇 초 안 됐지만 내 얼굴이 얼핏 나온 구간이었다. …저때 내가 저런 얼굴이었구나. 딴청을 부리면서도 무척이나 쑥스러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 * *

씻고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학교에서 들은 프로그램이었다. 고3이 되어 입시 중이었는데, 친한 친구들은 노는 걸 좋아했다.

모두 새로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다고 말했다. 꽤 심취했는지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과열된 학군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런 건 친구들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학년, 내지 모르는 애들도 열심히 보고 있는 듯했다.

그 증거로 급식실을 가는 길에도 벽에 붙어 있는 쪽지를 목격한 적이 많았다. 내용은 모두 자신의 픽에 대한 응원을 부탁하는 메시지였다.

"도대체 유어돌이 뭐길래."

나는 케이팝에 관심이 없었던 데다, 타고난 성향인지 즐기지도 않는 편이었다. 이런 내게는 조금은 힘든 주제여서 대화가 시작되면 고개만 끄덕거렸다.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은 한계가 있었는데, 그게 어딘지 불편했던 시간이었다. 더는 혼자 정승같이 앉아 있고 싶지 않고……. 그래서 대충 이야기에 끼어들 정도로 알아볼 예정이었다.

인터넷을 켜 최신 화를 결제했다. 이럴 때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머리와 달리 손은 분주했다. 매일 하는 자율 학습마저 뒤로 미룬 채, 영상을 먼저 보자고 결정했다.

"근래 나온 게 4화? 마침 무대 하네."

낯익은 로고가 눈에 띄었다. 안 찾아봐서 그렇지, 연령상 접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BGM같았다.

그와 동시에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3화의 스토리부터 짧게 흘러나왔는데, 서바이벌 특성상 편집이 살벌하다고 말했다. 들은 바와 비슷하게 진행되던 과정으로 멘토의 화난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위기! 멘토 서계현의 분노!]

[과연 연습생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된통 깨지는 장면부터 이어졌다. 아,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전원이 모여 있었는지 배경 가득 빼곡한 인파였다. 100명이라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파악하기로는 원곡 평가라고 말했다. 근데 어차피 편곡할 것 아닌가……?

무의미한 시스템에 앞의 차례부터 계속해서 욕을 먹었다. 한 팀이 혼나면 다음 팀이 혼났는데, 하도 혼을 내니 내가 다 뻘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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