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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42화 (42/328)

42화

이제 와 다시 보니 멘토도 둘뿐이었다. 아… 친구들이 말한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어그로를 끄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불편한 기색으로 이를 지켜봤는데 칭찬받은 이는 손에 꼽았다. 그러다 우연찮게도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사나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얘, 대들지는 않겠지? 처음은 묘한 불안감으로 한 성격 할 것 같은 날카로운 스타일이었다. 다른 의미에서 눈길이 가는 게 그리 좋은 방면은 아니었다.

근데 이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뒤늦게 깨달은 부분이었는데, 자막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신해신? 설마 쟤야? 친구 한 명이 자주 언급하던 사람이었다.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와 너무 달라 어이가 없는 지경이었다.

'해신이 완전 물이지?'

'뭐, 성격은 그렇지.'

'난 권태윤파라서 패스. 영업하지 마라.'

'둘 다 너무하다. 성격은? 은은 뭔데. 그리고 여기서 권태윤 얘기가 왜 나와.'

'양심에 손 얹고 얘기해라. 성격은 물인데, 얼굴은 아니지 않냐?'

'어… 좀 살벌하지. 입 다물고 있으면 애들 쫄겠던데. 나는 좀 유한 게 좋아~ 그래서 재원이 픽.'

'야! 우리 애만큼 유한 애가 없거든!'

물이라며……. 어디가? 주제 속에서도 날카롭게 생겼단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덩치는 다른 애들처럼 호리호리할 줄 알았다.

내 예상을 상회하는 키를 갖고 있었는데, 어깨도 벌어진 게 결코 작은 체형이 아니었다. 마르긴 했지만 상상한 유형과는 전혀 달랐다.

그냥 남들처럼 아이돌 같은 슬랜더에 뾰족한 인상일 줄 알았다. 너무 의외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은 길 가다가 시비도 안 걸릴 스타일이었다.

쟤를 감싸다니, 친구의 취향이 미심쩍었다. 아무튼 마저 방송에 집중했는데, 태도를 보아하니 팀 내 연장자같았다.

첫인상과 달리 얌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을 떠나 어지간한 건 과묵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외견과 반전인 게 어색해서 아주 재밌었다.

자리로 돌아가고서도 남을 챙기는 게 처져 있는 팀원 하나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얘 좀 물렁물렁한 기질이 있는 것 같지?

그날 들은 성격이 뭔지 바로 알 것 같았다. 화면은 전환됐지만 신해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구석 귀퉁이로 흐린 픽셀이 보였는데 어깨가 슬쩍 올라갔다 내려왔다. 다른 연습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맏이라서 그런가, 의외로 인간적인 냄새가 났다. 그래서 친구의 취향을 이해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다정한 편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진척이 없었던 위기의 연습생들.]

[모두 만회에 성공할 것인가!]

"그렇게 침울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아까부터 자막 엄청 거슬리네……."

둥글게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주로 주도하는 건 문채민이란 연습생이었다. 저 이름도 자주 들어 본 적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도 어리다고 그랬다.

연령대를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좋아 인기가 많았다. 어른스러운 성격으로 연상들도 많이 선호하는 듯했다. 그런 문채민은 신해신을 제법 잘 따르는 것 같았다. 도움은 자기가 주면서 은근히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나이 자체는 끝과 끝으로 벌어진 편이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케미가 좋아 보였다. 대처하는 문채민과 지탱해 주는 신해신의 조합이 이 팀의 주된 원동력이라고 느꼈다.

"그나저나 되게 잘 웃는다……."

입가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는 인물이었다. 혼날 때만 차분히 내려가 있던 입꼬리였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유한 편인 듯했다. 생긴 걸로 판단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팀원들도 안 사실인지 모두 그런 신해신을 잘 따랐다. 안 그러는 척 놀리며 장난치길 즐겨했다.

[관절에서 묻어나는 연습의 고통]

: (우드득-)

: 형, 부러진 건 아니죠?

: …아마 아닐걸요?

: 아직 20대 초반이잖아요! 운동 좀 해요!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모습이었는데, 그럼에도 입으로는 반박을 내뱉었다. 솔직히 외관으론 맹수에게 덤비는 소동물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당해 주기만 하는 바보였다. 진짜 이 사람 특이하네? 나보다 연상이었지만 어딘가 귀여운 것 같았다. 어른한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 알고 보면 허당이라니까… 내 첫인상 돌려줘요.

: …그걸 왜 저한테 찾으세요.

[아무것도 몰라요. 묻지 마세요.]

친구들 중에도 간혹 저런 타입이 있었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유형이었다. 대개 성격이 좋아 받아 주는 거였는데, 겉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될 일이었다.

저건 단순한 물도 아니었다. 심하게 맹탕 기질을 보이고 있었다. 겉과 달리 촉촉한 내용물이 느껴졌다.

"…음,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은데."

어느덧 나도 친구와 비슷한 감상 평을 내뱉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와 상이한 반응이는데, 초반엔 친구의 시력이 못 미더웠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도 그를 유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실제로 보면 머리 한두 개는 훌쩍 더 클 키였다. 덩치도 있어서 포스가 남다른데 그러나 여기선 마냥 하찮았다. 이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것 같았다.

원래의 목적은 까맣게 잊은 채 방송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분명 대화에만 낄 정도로 볼 생각이었는데….

"…대박. 미친 거 아니야?"

…이게 아까 그 사람이라고? 후반부에 접어들자 무대가 전개됐다. 나도 모르게 그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루한 부분은 스킵 하며 찾아낸 구간이었다. 목적한 지점에 도달해선 깜짝 놀라 시청했다.

재생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집중했는데, 자동으로 감탄사가 터지는 공연이었다. 조용하고 바보 같던 면모가 사라져선 입을 다무니 진중한 분위기를 풍겼다. 거기 눈빛이 아주 강렬하고 실수가 없는 능숙한 모션을 보여줬다.

"어떻게 저렇게 변하지?"

카메라를 노려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절로 물러서고 싶어졌다. 격한 동작에도 파트가 안정적인 게 보는 내가 더 힘들 지경이었다.

일반인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나처럼 평범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아이돌 지망생이란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새삼 존경심이 드는 것 같았다. 새까만 가면을 들고 있는 게 본인과 너무 잘 어울렸다.

조명을 받은 채 땀을 흘리는 모습에서 신해신이 압도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었음을 알았다. 몰입도가 넘치는 멋진 연출이었다. 이런 건 잘 몰랐지만 그냥 박수가 나왔다. 멋있다…….

저도 모르게 혼잣말하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긴 상태였다. 알 수 없는 위기감이 차올랐는데, 고3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찾아본 방송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왠지 다음 화에서도 이 사람을 찾을 것 같았다. 오늘 밤은 무척 길 듯한 기분이었다. 케이팝에 관심이 생겼다.

* * *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B+

댄스: B

운: C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현재 코인]

2,325 코인

적막에 잠긴 새벽, 순위 발표식을 앞두고 상태 창을 정비했다. 퇴소 후 쌓아 놓은 코인이 2,000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휴식과 맞바꾼 노동의 증거물이었다. 피하더라도 쉬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해 보였다.

사실 효율 자체로는 아이템이 더 탁월했다. 내가 원하는 걸 고를 수 있었다는 장점으로, 이런저런 활용도가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걸 상회하는 단점이 있었다.

바로 일회성 소모품이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는 거였다. 지금만 해도 쿠폰을 내고 구매했던 일부가 사라져 있었다. 직접 구매하기엔 엄두도 나지 않는 금액대였는데, 마치 100만 원을 땅에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스킬을 뽑기로 다짐했다. 뭐가 됐든 언젠가는 써먹을 능력이었다. 스탯 해금을 하기엔 거치는 과정이 길고, 상황을 만드는 것에도 품이 들었다.

스케줄상 2차 무대는 바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걸 대비하자면 이것 하나밖에 안 남았다.

설마 지금 이상한 게 걸릴까 싶었다. 해프닝 실드가 도움을 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결국은 리스크를 감수하기로 한 채 과감한 투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셜 스킬 트리에 500 코인을 지불합니다.]

[현재 코인]

1,825 코인

[스페셜 스킬 트리 룰렛 오픈!]

익숙한 원판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뱅글뱅글 돌던 상태에서 멈춘 칸에 불이 들어왔다. 반짝거리는 위치를 보며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도와주라.

이제는 나도 랭크가 좀 높은 걸 받아 보고 싶었다. 설명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는데, 너무 말도 안 되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었다.

[스페셜 스킬 '저세상 귀염둥이(D)'를 획득하셨습니다.]

[스페셜 스킬]

'저세상 귀염둥이(D)'

세상아, 내가 귀엽지 않니?

*스킬 버프: 사랑스러움 지수 20% 업그레이드

"……."

하하…. 이래서 사람은 말조심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것만 아니면 된다고 했더니 바로 그게 나왔다. …귀염둥이라니, 내가? 조용히 못 본 걸로 하자고 다짐했다.

상태 창을 치우며 몸을 돌린 상태였다. 벽을 보고선 한탄했는데 500 코인이 공중으로 분해된 사건이었다.

100번은 연습해야 모을 돈을 자만으로 깔끔하게 낭비해 버렸다.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자며 스스로를 원망했다. 어쩐지 자기 전부터 좋지 못한 걸 본 기분이었다. 악몽을 꿀 것 같았다. 잊어야지.

* * *

교복을 입은 채 세트장에 앉아 있었다. 순위 발표식을 위해 와 있는 곳이었다. 밀렸던 스케줄이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타이트하게 들어갈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 컨디션은 영 별로였다.

"안색이 안 좋아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 그건 아니고. 잠을 좀 설쳤어."

"형은 여기만 오면 못 자는 것 같은걸요."

"그러게 말이야……."

이유준이 나를 보고 질문했는데, 권혜성도 잠을 못 자는 것 같다며 갸웃거렸다. 이건 전부 취침 전 뽑은 스킬 때문이었다. 수면 시간은 채웠는데, 꿈자리가 너무 사나웠다.

뒤숭숭한 게 기분이 찜찜하고 오늘 하루가 험난하리라는 힌트처럼 느껴졌다.

…이런 건 필요 없었는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은 프로그램 내에서도 중요한 부근이었다. 피라미드 좌석 중 40개가 사라진 광경이 보였다.

어딘지 압박감을 주는 세팅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특단의 조치라며 시도한 게 도리어 마이너스 효과를 보이는 것 같았다.

좀 더 나중에 뽑을걸 하는 후회만 밀려왔다. 그다지 좋지 못한 버프의 스킬이었다. 손해만 왕창 봐서 마음이 허했다. …내 코인, 환불해 주면 안 될까.

"후! 긴장된다."

"…혜성이 너, 그런 것치곤 밝아 보이는데."

"그래요? 잘 모르겠어요!"

다른 애들에 비해 활기찬 권혜성이었다. 역시 강하다니까… 초반에는 페어별로 등장 신을 촬영했다. 나야 개인이라 이유준과 함께였는데, 권혜성은 기존 소속사 연습생들과 같이 나와야 했다.

거기서 처음으로 그 애들을 마주쳤다. 화면으로만 본 대상들이 낯이 익어서 이상하다 싶었다. 여기에는 아주 특이한 우연이 겹쳐 있었다.

등급 평가 전 자판기 앞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정원과 김찬규에 대한 차가운 비난이었다.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기억해 둔 사람들이었다. 그때 걔들이 권혜성의 소속사 형들이었다. 세상 너무 좁은 거 아닌가…….

"걔네가 걔네고… 얘네가 얘네고……."

"…네?"

"아무것도 아니야."

같이 있어서 좋을 타입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경계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 할 말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제는 정말 본녹화에 들어갈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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