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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48화 (48/328)

48화

저녁 식사 시간의 일이었다. 예전과 달리 밥은 제법 들어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게 사실이었다. 그러다 다른 곳에 있던 연습생들의 대화가 듣게 됐다.

평소라면 넘겼을 텐데 주제가 심상치 않은 듯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근데 주변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전원이 젓가락을 든 채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고 있었다. 우리 팀을 제외하고도 다른 곳도 똑같았다.

"야, 야. 강태오네 싸움 났대."

"…응? 강태오네? 거기 윤명 있잖아. 그 둘이 싸운 거야?"

……이게 무슨 일이야. 입에 있던 걸 뱉을 뻔했다. 맞은 편의 이정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거기에는 쟤가 지켜보는 상대, 김찬규도 들어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이정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서워……. 냉랭한 기운에 고개를 떨궜다. 그러곤 다시 귀를 기울였다. ……설마 아니겠지. 찬규야, 너 또 휘말린 거니.

"아니, 걔네는 아닌데 다른 애들 둘이 붙었나 봐."

"혹시 걔? 그 최초 평가할 때 있잖아……."

"아냐, 이경원이랑 이병건이랬나……?"

후, 다행이다… 1차 때 걔라는 게 김찬규라고 확신했다. 아직은 그리 인식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거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이정원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번엔 권혜성 쪽에서 난리가 났다.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이 터졌다.

"푸흡! 큽, 쿨럭!"

"어, 혜성아. 물, 물 마셔."

"형, 여기 휴지!"

"켈룩! 아~ 죽을 뻔했네."

배민형이 건네준 휴지로 입가를 닦아 냈다. 그러곤 서둘러 물을 마시며 가슴팍을 내려쳤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깜짝 놀라 쳐다봤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 이상한 광경이었다.

"둘이 포지션 선정 때부터 계속 부딪쳤대. 그러다 한마디 했나 봐. 분위기 대박 살벌해……."

"난리네."

"한 명 연습실 박차고 나갔단다. 강태오 표정도 안 좋던데? 다른 애들 구경한다고 난리야. 저기 4동 연습실이거든. 저번 방송처럼 그대로 나갈 것 같지……."

"헐, 그러겠네. 나도 가 볼래."

아무래도 1차 때 그 팀과 비슷한 상황 같았다. 감정이 격해져 와해가 발생한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무리에 말이 없던 두 명이 있었다.

잠깐… 다시 생각해 보니 한 명의 낯이 익었다. 고개를 돌려 권혜성을 바라봤다. 얘도 당황한 듯 눈만 굴리고 있었다. 쟤가 저러는 것도 신기할 일이었다. 그 와중에 이유준이 앞뒤 사정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혜성아."

"네?"

"…걔, 걔지."

"…그런 것 같은데요."

이경원, 권혜성의 소속사 형 중 한 명이었다. 어째 저기도 썩 멀쩡한 애들은 아닌 것 같았다. 얌전히 밥 먹다 날벼락을 맞았다.

아까의 사태가 이해 가는 그림이었다. 이유준은 미미하게 미소를 그린 채 굳어 있었다. 하루를 평화롭게 넘어가지 못했다.

"살벌하다……."

"냉정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안 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성신원의 평가에 눈치를 봤다. 잘못해서 카메라에 잡히면 손해일 뿐이었다. 어딘지 어색해진 무리 속이었다.

가장 먼저 긍정한 건 바로 권혜성이었다. 당황한 것 같았는데 회복이 빨랐다. 생각해 보면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자기랑은 연관이 없다고 판단 내린 것 같았다.

독한 인간다운 선택이네. 그래도 그게 정답이지……. 권혜성이 저렇다면 나도 그냥 넘길 일이었다. 멈춘 젓가락질을 다시 시작했다. 문득 우정환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방심하고 있다가 다른 곳이 터져 버렸다. 걔 멘탈이 제일 심하게 나갔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강태오에 윤명까지 들어와서 부담스러웠을 텐데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불편하네."

침묵하고 있던 이정원이 혼잣말했다. 그건 나도 동감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휩쓸리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간신히 마음먹은 대상에겐 혹독한 환경이었다.

김찬규도 참 운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도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못 들은 척했다.

"밥이 안 들어갈 것 같은데."

"나도 그만 먹을래."

"…저도요."

"다음부터는 귀마개를 끼고 먹든가 해야겠어요."

이유준의 서슬 퍼런 농담에 모두 어색하게 웃었다. 잠을 잘만 하면, 밥을 못 먹게 되는 살벌함이었다. 권혜성이 수저를 내려놨다. 나도 비슷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 * *

식사를 끝낸 이후였다. 이정원이 다른 곳을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아무래도 김찬규가 걱정되는 것 같았다.

저렇게 사이가 좋으면서 참 거하게도 싸웠었다. 대강의 사정을 알던 나였다. 고개를 끄덕여 주니 고맙다며 달려 나갔다.

권혜성은 잠시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팀 자체가 흔들렸다. 그래서 염려하고 있었는데,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씩씩하게 눈을 떴다.

"…괜찮아?"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좀 그랬는데, 따지고 보면 그럴 사이도 아니잖아요?"

"……다행이네, 신경 쓰이는 줄 알았지."

"안 그러려고요. 알아서 하겠죠. 어차피 어울려 다니지도 않았는걸요?"

대화를 들으며 안도감을 느꼈다. 과연 쟤는 강철 멘탈을 지닌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친분을 유지하지도 않은 연습생이었다.

얽혀서 사건으로 묶일 건더기도 없어 보였다. 위기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별것 아니었다.

이정원만 적당히 회수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자체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분위기도 애매하고, 정해진 것도 크게 없었다.

머리나 식히자며 모두의 동의를 받았다. 그러곤 소화를 하기 위해 산책하러 나갔다. 많이 먹지도 못했는데 속이 더부룩했다. 이 프로그램에 계속 출연했다간 위장병 생기겠어…….

"형, 어디 가요?"

"바람 쐬게. 너네도 갈래?"

"네, 갈래요~"

"저도요."

"엇, 그럼 저랑 신원이 형은 연습실 지키고 있을게요."

"내 의사는 없는 거야?"

"랩 메이킹 다 못 했다면서, 나랑 들어가 있자."

성신원의 팔을 잡아 끈 배민형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끌려가 주는 성신원이었다. 정리도 됐겠다 싶어 편하게 발을 옮겼다.

우리는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불안한 듯 제대로 가고 있는 길이었다. 한적한 복도를 따라 거닐었다. 아예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만 찾아 다녔다. 카메라가 없는 위치를 알아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시시콜콜한 수다는 곁들임처럼 따라왔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내 뒤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친구들이 와 준댔어?"

"네! 저 대박 기대하고 있잖아요. 1차 때는 신청 기간을 놓쳤었대요. 바보 같죠?"

"엄청 친한가 보네."

"한 명이 저랑 오래 알고 지낸 친구거든요."

예전에 들었던 연습생들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안 듣는 척,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저 둘에겐 확률 성장 트리라는 게 존재했다.

의식적으로 피한 주제라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지금도 뒤돌아보면 상태 창 아래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무시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저게 열리면 남만 좋은 일이었다. 다 같이 고생하자 싶어 동지 의식을 부추겼다.

우리 알아서 하되, 힘든 것만 나누자. 원래도 스탯에는 지장이 없는 애들이었다. 실력이 뛰어난 게, 저건 없어도 될 것 같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나만 정확하게 페널티를 받고 있었다.

"와, 환장하겠네."

"너도 참 고생이다."

"아니, 걱정하던 곳은 조용한데 왜 이번엔 다른 데가 터지냐?"

코너를 돌자마자 들린 목소리였다. 어쩐지 급하게 발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정지에 뒤의 애들이 등에 부딪혔다.

체격이 좋은 이유준에 의해 한 걸음 앞으로 떠밀려 버렸다. 툭, 의미 불명의 타격음이 울렸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튀어 나간 몸이었다.

"형? 왜 멈췄어요?"

"…아."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고개를 내민 권혜성이 질문했다. 저 광경을 못 봐서 그런 게 분명했다. 어색함에 침묵을 유지했다.

…나 혼자 나올걸. 이유준은 진작부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장 죄질이 큰 건 바로 쟤였다. 이유준이 밀지만 않았어도 발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면 들키지 않게 뒤돌아서 피해 나갔을 길이었다.

머쓱함에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하하… 어색하게 웃으니 반대편의 인물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해신이 형? 어? 유준이 형도 있네."

"…어, 문채민 연습생, 우정환 연습생. 안녕하세요."

"채민아, 정환아."

의도치 않게 엿들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인적이 드문 장소라지만 방송국인 곳이었다.

대놓고 이야기하는 쟤네 탓이었다. 일단은 카메라가 없는지 둘러봤다. 꽤 돌아 나온 곳이라 설치된 건 안 보였다.

하긴, 애초부터 그걸 알았으니까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거겠지. 곧바로 이유준과 권혜성의 옷깃을 살펴봤다. 마이크를 차고 있는 연습생은 아무도 없었다.

"아, 됐다."

"네?"

"미안해요.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저희는 갈게요. 마저 얘기하세요."

절대로 저기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애들을 이끌었다. 반대편으로 향하던 몸이었다. 뒤에서 부르는 이름에 그만 굳어 버렸다.

"유준이 형!"

"…어?"

"얘기 좀 들어 주면 안 될까?"

"…나?"

"응. 우리 이렇게 모인 것도 오랜만이잖아."

"…그러지, 뭐. 형, 혜성아, 먼저 들어가 있을래?"

"그래. 혜성아, 우린 가자."

빠르게 도망갈 기회가 찾아왔다. 반가움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권혜성의 옷자락을 움켜쥔 채 황급히 발을 틀려던 찰나였다.

"해신이 형~ 형도 같이 있다 가세요~"

"…네?"

"머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잖아요? 혹시 저 싫으세요?"

"……."

"야, 네 일에 왜 형들을 끼워 넣어."

문채민이 우정환의 등을 때리며 말렸다. 이유준도 시선을 마주하더니 봐주자는 듯 웃어 보였다. 권혜성은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아, 그래도~ 형, 얘기만 할 거예요~ 옆에서 듣기만 하셔도 되는데~."

"…그래요. 뭔지 들어나 봅시다."

다음부터는 숙소와 식당 그리고 연습실 밖으로 안 나갈 생각이었다. 아는 곳이라며 방황하다 매일 사건에 꼬였다. 맞아, 전부 내 잘못이지…….

우정환과 문채민에게 가는 길이 지옥 입구처럼 느껴졌다.

* * *

"1차 배틀 팀원들이 천사 같다 싶었지. 와, 이렇게 뒤에 와서 고생하는구나. 이게 업보구나……."

"…그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귀만 기울이고 있었다. 어차피 목표는 이유준이었던 게 분명했다. 절대로 이야기에 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들리는 대화로 인해 대충 전후 사정이 파악됐다. 식당에서 알게 됐던 싸움 관련 이야기 같았다. 팀원 중 둘이 대판 붙었다더니 그게 문제인 것 같았다. 관계가 좋지 못한 두 명 때문에 나머지 연습생들이 고생하는 중이었다.

대략적인 상황으론 컨트롤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성향을 몰랐지만 한 고집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한계선이란 건 한번 넘으면 그다음이 제어되지 않았다. 모두에게 알려져 대놓고 다투는 행동이었다.

"…너 때문에 몇 명이 잡혀 있는 거야."

"문채민 이 냉혈한아, 친구가 괴로워하는데 얘기도 못 들어 줘?"

문채민은 우정환의 투정 받아 주기 담당인 것 같았다. 티격태격해도 이럴 때는 협력해 주는 사이였다. 제 일이 아님에도 나름 묵묵하게 들어 줬다. 전부터 알고 있던 문채민의 성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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