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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49화 (49/328)

49화

"내가 들어 주면 됐지. 형들은 보내 드려."

"아, 난 괜찮아. 너네랑 얘기도 오랜만에 한다."

"음, 저는 들어가 있을까요?"

둘과는 인연이 깊은 이유준이었다. 그 옆에서 권혜성이 질문했다. 하지만 우정환이 우리를 놔주지 않았다. 목격한 걸 알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 같았다. 약아 빠졌어…….

"괜찮아요~ 그냥 투정 부리는 건데요. 귀찮은 애구나~ 하고 말아 주세요."

"그래요? 그러죠, 뭐."

…권혜성, 너도 넘어가지 말란 말이야. 피곤함이 몰려왔는데 어차피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칭얼거리는 거나 들어 주다 얌전히 사라지기로 했다.

"그럼 그 둘은 지금 어디 가 있어?"

"병건이 형은 연습실에 있고, 경원이 형은 친한 연습생한테 간 것 같던데?"

그 친한 연습생은 권혜성의 다른 소속사 형일 것이다. 둘 다 싸움을 피할 타입은 못 되는 것 같았다.

초반에도 서먹했는데 반복됐다면 예견된 불화였다. 중간에서 우정환만 터져 나가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한 명은 연습실에 남아 있네? 거긴 좀 잠잠해졌어?"

"병건이 형, 태오 형한테 잡혀 있거든. 그래서 못 도망간 거지. 그 팔뚝을 어떻게 뿌리쳐."

이제 보니 강태오도 같이 고생 중인 모양이었다. 독단적일 줄 알았는데 협력을 잘해 주는 느낌이었다.

모든 광경이 예상됐다. 강태오의 덩치는 독보적이었다. 이병건이란 연습생……. 거기서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경원이 형을 내가 잡아가야 하거든?"

"…혹시 정환아, 너."

"맞아, 형. 얘 지금 못 찾아서 여기 와 있는 거야."

이유준과 문채민의 대화가 이어졌다. 우정환은 가운데서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쟤, 심각한 척하더니 결국은 농땡이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우리 팀에서 이런 것 말할 만한 사람이 나랑 태오 형밖에 없었는걸. 명이 형은 아무리 봐도……."

"휘말려서 시비 걸리겠지."

"그렇지. 거긴 못 보내지. 싸움 키울 일 있어?"

…윤명, 그런 캐릭터였구나. 하긴 따지고 보면 사차원은 화를 부추겼다. 저번의 그 묵묵한 얼굴만 봐도 엮이지 않으면 천운이었다.

강태오 옆에서 입 다물고 있을 그림이 상상됐다. 목줄 잡고 있는 둘이 고행길을 걷는 중이었다.

"찬규 형은……."

"조용해졌지만, 거기도 아직은 불안하잖아."

"맞아, 그리고 조금 전에 해신이 형, 형네 팀에 있는 형이 데려갔어요~ 얘기 좀 한다던데요?"

"아아, 정원이요."

식사를 마치고 바로 자리를 뜬 이정원이었다. 얘기라도 해 보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빠르게 무리에서 김찬규만 빼낸 것 같았다. 안 그러는 척해도 행동력만큼은 대단한 유형이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권혜성이 조용했다. 턱에 손을 댄 채 집중하고 있었는데, 트레픽 삼인방의 수다 삼매경에도 혼자만 계속 딴생각 중이었다. 알던 인물이라 싱숭생숭한가?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진짜 속마음은 어떨지 몰랐다.

"……음, 이경원 형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은데."

"…네?"

"둘은 난처하면 숨는다고 들었거든요. 사람들 잘 안 다니는데 찾아보면 될걸요? 아, 여긴 카메라도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겠구나."

……싱숭생숭이 아닌가 보네. 저건 대놓고 잡아갈 수 있게 알려 주는 모양새였다. 냅다 이르는 게 정말 그 애들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거기라면 내가 알아."

"…네?"

저 조건이라면 해당하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처음 목격했던 자판기 앞이었다. 우리 둘의 이야기에 우정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빠르게 정보를 넘기고 자리를 뜰 계획이었다. 더는 깊이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4층 왼쪽으로 쭉 들어가다 3번째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꺾으세요. 거기서 한 번 더 직진하고 2번째 코너에서 좌측으로 진입하면 막다른 길이 나오거든요. 거기 앞에 자판기가 하나 있어요. 예전에 목격한 적 있으니까 맞을 거예요."

"…와, 야, 채민아. 형들 붙잡기를 잘했지."

"…얼른 감사 인사나 드려. 고맙습니다."

"형들! 감사해요! 야 채민아, 잡으러 가자! 더 있으면 태오 형이 화낸다!"

여차저차 잘 마무리된 기색이었다. 내 일도 아닌데 진이 다 빠졌다. 서둘러 일어나는 우정환과 문채민이었다. 이만 가 보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이제야 우리도 연습실로 갈 수 있었다. 산책 한번 해 보자고 뭔 짓 하는 건지 모르겠다.

* * *

간신히 들어온 연습실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모두 모여 있었다. 김찬규를 데려갔다던 이정원도 여기 있었다. 문제는 없었는지 태연한 얼굴이었다. 지친 기분에 몸을 앉혔다. 등을 기대자 권혜성이 질문했다.

"진짜 스펙터클했다!"

"…전혀 재미없었는데."

"그래도 소화는 잘됐죠?"

"…이걸 소화라고 볼 수 있을까."

배민형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를 구경했다. 아까만 해도 제법 멀쩡했던 몰골이었다. 하지만 20분 사이에 폭삭 늙어 들어왔다.

의아하단 기색이었으나 성신원의 제재하에 가만있었다. 더는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연습이나 하자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어요."

"그러게요. 구상 중인 것 있는 사람!"

"해신이 형, 형은 뭐 없으세요? 1차 무대 엄청나게 좋았잖아요."

"그거 내가 짠 것 아닌데."

여기도 주워 듣고 캐치한 거라……. 문채민에게 넘긴 아이디어였지만, 나도 얻어 걸린 소재였다.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말했을 것이다.

"귀여움이라… 귀여움이라……."

"소년보단 뭔가 더 잘 어울리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다들 키가 크시잖아요."

"이유준, 네가 제일 크지."

"형도 크잖아요."

"…그러게."

순간 반박할 말을 잃었다. 안 그래도 자신이 없었는데, 초를 치는 저 행동에 머리가 아팠다. 너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이거지.

"혜성이랑 민형이는 그래도 고등학생이니까……."

"둘은 원곡도 꽤 잘 어울리죠?"

"엥, 형들도 저희랑 몇 살 차이 안나요!"

배민형과 권혜성이 항의하듯 소리쳤다. 어이없게 다른 곳으로 흐르는 주제였다. 무슨 얘기만 하면 딴 곳으로 새어 버렸다. 얘들아, 우리 이럴 때가 아니야. 자신감은 좋은데, 방향부터 정하면 안 될까…….

그러다 이정원이 손을 들었다. 한참 전부터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인물이었다.

"다들 학생일 나이잖아. 그냥 연령대를 올리면 될 일 아니야?"

"…어?"

"소년을 못 하면, 청년을 하면 되지. 갓 스물 정도면 맞지 않나? 성인이라고 해서 못 귀여울 건 없지."

"…어?"

"그거 좋은데요?"

이정원의 사고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 그런지 우회할 줄을 몰랐다. 그 직선적인 마인드가 해결책을 만들었다. 한 대 맞은 기분으로 머릿속을 정리했다.

"거기에 소재를 더하자."

"해신이 형?"

"스물이라고 하니까, 대학생이랑 캠퍼스."

"…와!"

번뜩 떠오른 컨셉 관련 아이템이었다. 그냥 밀기는 아쉬운 무대였다. 그래서 뭔가 포인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때마침 강구한 게 계절 맞춤이었다.

무대를 할 시기부터 개강할 무렵인 걸 알고 있었다. 봄의 캠퍼스라면 무대 연출로 충분할 것 같았다. 물론 대학을 다녀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접목하기엔 베스트인 느낌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유준이 살을 붙여 왔다.

"하나 더 추가하면요? 풋풋한 연애사요."

"그거다! 완전 딱!"

"그러게, 컨셉 허용선 안에도 들어가죠?"

"응. 통과될 것 같네. 게다가 원곡 자체보다 우리한테 더 잘 맞는 느낌이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봄을 맞이한 청춘들의 고백 같은 거네? 좋다. 개성도 살릴 수 있고, 안무도 잘 어울려. 게다가 꽃 필 시기지? 응용할 수 있는 톤도 있어."

이정원이 좋은 포인트만 짚어 냈다. 얘도 센스 하나는 끝내주는 유형이었다. 척하면 착이라고, 순식간에 전개가 됐다. ……뭐지? 갑자기 잘 풀리는 기색이었다.

"그럼, 편곡 방향은 리듬감 있는 댄스 팝 어때. 원곡의 특징은 살리고, 팝 라인을 강조하는데, 휘파람 소리같이 통통 튀는 포인트 사운드를 입히는 거야. 도입부는 잔잔하게 시작해서 후반부는 명랑하게."

"정원이 형, 얘기 엄청 좋은데요? 전 만족스러워요."

손을 들어 얘기하는 게 똑 부러졌다. 기승전결이라, 그건 아주 괜찮은 구성이었다. 다른 걸 넘겨도 경연에 특화된 편성이었다.

보컬 스탯이 높아서 그런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이번엔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술술 의견이 쏟아졌다. 나 버스 탈 수 있는 거야? 갑자기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저도 다 좋은 것 같아요! 곡이랑도 잘 어울리고, 그런 감성 예쁘잖아요~."

"맞아요.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네요. 정원이 형, 혹시 악기에 대해 잘 아세요? 우리 얘기 좀 해 봐요."

"많이는 아닌데, 약간은 아는 편이야. 중간에 이런 구성은 어떨까."

이정원이 성신원과 진지하게 대화했다. 둘 다 그쪽으로 지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견해를 나누는 게 꽤 믿음직했다. 평가 전에 잘 풀려서 신기했다.

"오… 완전 대박."

"뭐지, 이 팀……."

"합이 잘 맞는 것 같죠? 어벤ㅈ……."

"그거 말하지 마."

서둘러 손을 들어 권혜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요소는 굳이 줄 필요가 없었다. 방송국 사람들만 좋을 일이야…….

다급한 내 행동에 배민형이 폭소했다. 큰 고비는 없는 단계였다……. 좋아, 이제 할 만했다.

* * *

자정이 넘어가기까지 고된 연습이 이어졌다. 다들 녹초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권혜성만 팔팔하게 날뛰는 중이었다.

희한하게 저번보다 잘 버티는 느낌이었다. 테마곡 녹화에선 지친 모습도 보였었는데… 얼굴이 오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혜성이 형, 안 힘들어……? 난 기절할 것 같은데."

"나?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좀 버틸 만하지 않나? 뭐지, 나 요즘 체력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머리는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물기에 곱슬거림이 평소보다 강해져 있었다.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곤 기지개를 켜며 다시 한번 준비했다.

아무리 봐도 쉬지 않고 연습에 들어가려는 모습이었다. 거울을 보며 동작을 가다듬는 게 새삼 진지해서 무서워졌다.

주변에선 죽은 눈으로 권혜성을 쳐다봤다. 흔하지 않은 스파르타에 쓰러질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눈짓했다. 제발 누구든 좀 말려 보라는 뜻이었다.

그러다 이정원이 나섰는데, 기운이 살벌한 게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는 얼굴이었다.

"몇 시간은 더 연습할 것 같지? 난 배고파서 안 되겠는데, 매점 갈 사람?"

"어, 저 갈래요!"

"저도요. 유준이 넌?"

카메라가 있어서 대놓고 막을 순 없고, 주제를 돌려 밖으로 탈출하려는 심산이었다. 머리를 잘 썼는데 모두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배민형과 성신원이 빠르게 손을 들어 합류했다. 이유준도 눈치를 보는 게 쉬고 싶은 느낌이었다. 하긴, 이유준은 우리 셋 중에서 제일 체력이 약했다.

체격은 좋은데, 지구력이 영 아닌 것 같았다. 가장 먼저 희게 질려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성신원의 물음에 잽싸게 답을 했다. 입가를 틀어막는 게 속이 쏠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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