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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51화 (51/328)

51화

다시 찾아오게 된 친구의 자취방이었다. 주말을 목전에 앞두고 있었다. 마침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안 그러는 척 신해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얘… 아직 모르는 것 같지? 포장해 온 떡볶이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익숙한 키패드를 눌러 문을 열었다. 그 앞에서는 친구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왔어! 내 떡볶이!"

"…날 반기는 게 아니었네?"

"너도 반기지~ 두 번째로?"

"다시 간다."

"농담입니다! 어디 가세요!"

외투를 벗으며 음식을 받아 간 친구였다. 작은 상 위로 부지런히 세팅하는 과정이었다. 오늘은 본방을 하는 날이었다.

분위기가 이래선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나중에 집에 가서 결제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궁금한 곳만 보면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너 윤명 응원하잖아. 오늘 유어돌 방영일 아니야?"

"어떻게 알았어?"

너무 잘 아는 기색을 보였나 보다. 깜짝 놀라 질문해 왔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핑계 대자. 뭐가 됐든 나도 케이팝을 판 경력이 있었다.

"…뭐라는 거야. 나도 돌 팠거든? 앞 시즌도 봤는데 알지. 동일 시간대 아니야?"

"아, 맞다. 너 시즌 1 봤지."

"어."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했다. 물론 속으로는 한숨을 쉬는 중이었다. 바쁜 척하고 집에나 있을걸……. 귀찮은 일에 엮여 피곤한 것 같았다.

떡볶이나 먹자며 젓가락질을 하던 찰나였다. TV는 켜지 않아 조용한 방 안이었다. 얘… 진짜 안 보는 것 같네? 신기한 마음이 들어 친구를 관찰했다. 나야 그렇게까지 열성적인게 아니라 상관없는 일이었다.

"…야, 있잖아."

"왜?"

"…우리 유어돌 보면 안 될까?"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친구였다. 눈을 깜빡거리며 질문을 했다. 왜 불렀나 했더니 같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자기 딴에는 미안해서 지금까지 참은 것 같았다. 나야 굳이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방어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나랑 싸우자고?"

"…가만있겠습니다. 아니… 내일 쉬니까 집에서 놀자고 불렀지……. 근데 하필 방영일이 겹쳐서……."

미안하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가락을 매만지는데, 이러면 내가 난처했다. 나도 숨기는 게 있는데……? 몰아붙이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쌤쌤인 상황을 보며, 얘랑 내가 왜 친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 틀어라."

"넵, 다시는 보자고 안 하겠… 응?"

"틀라고. 안 볼 거야?"

"어? 진짜?"

"집주인이 넌데… 내가 뭐라고."

"헐, 대박. 사랑해, 친구야."

"징그러워……."

"너무해."

친구가 서둘러 리모컨을 들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는데 다급해 보였다. 타이밍을 봐서는 광고가 끝나 있을 무렵이었다. 그 좋아하는 떡볶이를 제쳐 둔 모습이었다. 조용히 1차 방청 날을 떠올려 봤다. 현장감이 엄청났던 날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타이밍 맞췄네."

"너 그럼 2차 방청도 갈 거야?"

"가고는 싶지……. 근데 될까? 요즘 인기가 너무 많아서."

"한번 잘해 봐."

애써 말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친구가 응원하는 연습생은 인기 멤버 중 한명이었다. 직관적으로 이야기 하면 대메이저란 뜻이었다. 먹을 건 넘쳐 나지만 파기에는 팍팍해 보였다.

신해신은 그에 비하면 얌전한 경로를 타고 있었다. 순위를 따져 봐선 나쁘진 않았다. 일반인으로는 높은 등급에 위치했다. 톱은 아니더라도 대단하단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번에 본 4화의 장면이 스쳐 지났다. 신해신네 팀이 윤명네를 이긴 일이었다. 그거 보다가 깜짝 놀랐지. 따지고 보면 잘하긴 했다. 왠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인물 같았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것 같다고 확신했다.

[대망의 첫 번째 순위 발표식 현장!]

프로그램에서 주된 테마로 밀고 있는 소재였다. 피라미드의 좌석이 화면 한가득 송출됐다. 하단에는 특유의 특징이 담겨 있었다.

방송사에서 밀고 있는 스타일의 자막이었다. 본격적인 진행 전에 켠 것 같았다. 예고 겸 클립을 보는데, 편집점을 잘 아는 제작진다웠다.

친구는 벌써 짜증이 난 듯했다. 열이 받은 얼굴이었다. 사실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며 구성을 파악하기로 했다.

[긴장된 모습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연습생들]

: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후…….

: 파이팅!

: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 오늘도 힘내 보겠습니다!

[생존의 갈림길이 결정되는 중요한 이 순간]

[잠시 뒤,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아… 벌써 빡치는데."

"그럼 안 보면 되지."

"안 돼… 스포당해……."

"거기 들어가질 말든가."

"어떻게 안 들어가. 난 하루라도 안 하면 손에 가시가 돋아."

"그냥 끊으면 되는데?"

"너 진짜 독하다… 계정 폭파할 때부터 알아봤어."

오랜만에 들은 SNS 이야기에 탈퇴한 계정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걸 한다면 실시간 트렌드로 모든 걸 알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본방송보단 결제를 통해 보는 걸 더 좋아했다. 필요 없는 구간은 과감하게 넘기는 스타일이었다. 관심 정도만 있어서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앞서 지난 화의 줄거리가 나오며 짧은 전개가 등장했다. 임팩트 있는 부분만 잘라 냈는지, 무대의 클로즈업이 가득 나왔다. 제작진 픽으로 판명이 난 연습생들 같았다. 팬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할 인물들이었다. 지지율도 높고, 편집에서도 우호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들 대부분이 상위 순위를 받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 명이다!"

"잘해서 내보내 준 듯. 윤명, 실력도 좋은데 소속사도 괜찮지?"

"그래도 6위 분량치고는 많이 짜. 제작진 픽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윤명은 위치에 비해선 소탈한 캐릭터였다. 타고난 매력으로 팬을 끌어모아 살아남은 케이스였다. 메이저지만 참 특이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

친구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나야 시큰둥했으니 대꾸만 해 줬다. 지난 부분을 훑어보던 찰나였다. 때마침 신해신이 짧게 지나가고 있었다.

"어, 신해신도 나왔네? 하긴 안 쓰기엔 너무 잘했지. 저 팀 반응이 괜찮더라? 게다가 의외의 캐릭터? 좀 있어."

"그래?"

"저번엔 관심 갖더니, 지금은 또 아니야?"

"그때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는데."

현장에서 본 적 있던 팀 피에스타의 무대였다. 물론 금방 다른 장면으로 전환이 됐다. 흐름에 맞춰 흘리듯 넘긴 질문이었다.

나온 건 이미 다 봐서 알고 있던 지점이었다. 특출난 건 아니었지만, 악편도 잘 당하지 않았다. 사정없이 굴려진 연습생들에 비하면 양반인 인물이었다. 그럭저럭 빠져나갔지만 행보가 아슬아슬했다. 여러모로 지켜보는 게 힘든 편이었다.

"한다. 제발, 윤명 6위 안으로만 들어가자."

"데뷔권이긴 하잖아. 지금은 좀 위험한가?"

"응. 3위 정도만 유지해도 좋을 텐데."

"윤명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

"우리 애가 눈길을 끌긴 하지?"

[첫 번째 순위 발표식 1위의 자리를 차지할 오늘의 주인공은?]

파랗게 빛나는 좌석이 클로즈업됐다. 세팅부터 유별나네……. 그 뒤로 연습생들의 발걸음 이어졌다. 최초 평가 때처럼 소속사 묶음으로 등장을 끊은 것 같았다. 개인은 어떻게 나오려나……. 호기심이 생겨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 B조]

신해신(22) 이유준(20)

민망하다는 듯이 웃는 얼굴의 신해신이었다. 바로 앞의 차례와 달리 능숙하진 않은 모습이었다. 옆에 있던 이유준이 신호를 주자 팔을 뻗었다.

엄지만 치켜세운 자세였는데 이유준과 같은 포즈였다. 쟤는 사나운 얼굴로 참 소심한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애가 너무 태연해서 반대되는 케이스였다.

덕분에 프로그램 내에서는 유쾌한 캐릭터로 소비되는 것 같았다. 다른이들도 재밌다는 리액션을 보냈다. 그게 이어져 4화를 기점으로 분량을 주기 시작한 것 같았다.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었다.

"쟤는 진짜 겉이랑 내용물이 다른 것 같아."

"…그런가."

"이유준이 10배는 멘탈 강한 듯. 골 때리네."

대답하기엔 이상해 보였다. 묵묵부답으로 넘기니 때마침 고우림이 등장했다. 발표식을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첫 차례는 예상대로 59위인 모양이었다. 마지막 생존권은 나중에 다뤄지곤 했다. 얘네가 그렇지 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순위가 높아지며 점차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 28위는, 감미로운 보컬로 극강의 무대 케미를 보여 주신 분이죠? 축하드립니다, 이정원 연습생.

"얘, 그때 그 좃소지."

"이정원? 응. 희한하게 주목을 못 받았어. 그래도 메보감으로 미는 애들이 꽤 있대."

"확실히 노래는 잘 불렀어."

"흐름 봐선 더 올라갈 것 같은데? 앞에서 왜 이렇게 조용했나 몰라. 분량에 욕심이 없었나. 아니면 제작진 쪽에서 커트를 쳤나?"

첫 인상과는 갭이 큰, 강단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초반에는 말도 없고 조용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가끔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서 특이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얌전한 태도에 반해 눈빛 자체는 또렷했다.

긴장도 안 되는지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왠지 쟤는 뭐가 돼도 해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시동 걸기 전 같네…….

그렇게 한참을 더 집중했다. 시청 시간이 길어지며 후반부에 접어든 상태였다.

: 22위는, 반전 매력으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신해신 연습생.

아, 불렸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신해신이 호명됐다. 22위면 아주 높은 순위는 아니었지만, 나름 선방한 느낌이었다. 요란하진 않더라도 차근차근 잘해 내는 성향 같았다.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은 더듬거리면서도 묵묵하게 제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었다.

뒤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그게 많이 어색했나 보다. 주변을 돌아보는 행동을 보였다. 눈물을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는데, 표정 자체가 미묘했다. 보면 볼수록 참 특이한 인간상이었다.

턱을 괸 채 빤히 지켜보고 있자, 그런 날 본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야, 너."

"왜."

"…흠, 아니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니야~ 나중에 얘기해 줄게."

"…싱겁기는. 그러든지."

데뷔권에 들어가기는 힘들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착실한 태도가 돋보여서 궁금했다. 어디까지 올라갈까 호기심이 들었다. 기왕이면 좀 더 작아진 숫자로 불린 걸 구경하고 싶었다.

* * *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B+

댄스: B

운: C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현재 코인]

2,130 코인

마지막 연습도 끝이 났다. 이제는 정말로 본무대만이 남아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상태 창을 바라보며 코인을 계산했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코인이 2,000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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