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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52화 (52/328)

52화

여유가 없는 주머니는 아닌 것 같다. 정말 힘들었지. 그간의 고생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던 게, 5코인씩 벌어서 용하게도 모았다며 위로했다.

있는 걸 죄다 끌어도 위험한 입장으로 2차 역시 아이템을 쓰기로 작정했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채택하자.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BOX 상점이 나타났다.

[상점이 열렸습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스크롤을 밀었는데 말끔하게 비어 버린 칸들이 보인다. 저번에 썼던 아이템들의 잔해인 모양인데, 여러 번 쓰게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싶다.

역시나 이것도 전부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특이한 구석이 있는 시스템이다. 어쩔 수 없지. 빠르게 체념하며 목표로 삼은 상품들을 찾아봤다.

그런데 한참을 구경해도 이거다 싶은 게 안보인다. 가격 대비하여 좋은 버프를 찾아야 했는데, 쓸 만하면 비싸고, 저렴하면 애매한 효능이 이어진다.

세일은 없는 건가 싶어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다 차체가 덜컹거리며 몸이 크게 흔들렸다. 안전벨트를 너무 헐겁게 차고 있었던 모양인지 허공을 내저으며 앞좌석을 붙잡았다.

순간 넘어가 버린 페이지를 목격했는데, 버둥거린다는 게 그만 시스템을 건드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저건 또 뭐지. 우연찮게 건드린 건지 처음 보는 아이콘이 클릭되어 있었다. 파란 봉투 속에 별이 가득 들어가 있는 그림이다.

[어텐션 스타 파우더 - 일회성 아이템]

버프: 외모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약간의 충동이 섞인 선택으로 조용히 구매 버튼부터 눌렀다. 하늘이 점지해 준 아이템의 등장이라고 핑계 댄 찰나였다.

미션곡과 잘 어울리는 효과를 갖고 있는 게 부드러운 노래에 맞춰 나도 변해야 했다.

금액대도 나름 괜찮은 편이고, 저번에 뽑은 스킬과 같이 쓰기도 훌륭하다. 당장의 나로서는 저것만 버프가 없어 보였다.

두 개나 겹쳤으니 나쁜 이미지는 없겠지 싶었다. 그래도 안 어울리면 할 말이 없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어텐션 스타 파우더'를 구입합니다.]

[아이템 보관함에 '어텐션 스타 파우더'가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쿠폰]

0매

[현재 코인]

1,315 코인

* * *

"준비됐지? 긴장하지 말자."

"네. 다들 열심히 했잖아요. 즐겁게 하고 내려와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의상을 갈아입은 대기실 안, 기운이 넘치는 애들 사이에 홀로 서 있었다. 연한 노란색의 니트가 어색했는데 살면서 이런 옷은 처음인 입장이었다. 품도 널찍한 게 사이즈가 아주 커서 습관처럼 늘어진 소매를 걷어붙였다. 방 안에는 평소 같았으면 못 봤을 법한 차림새의 팀원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 밝은 톤으로 치장한 모습이 아이돌 지망생답게 소화력이 좋았다.

드라이 리허설도 끝낸 참이니, 각자 흩어져 시간을 보냈다. 본촬영 전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얌전한 애들 사이로 유달리 한 명이 시끄러웠다.

평소보다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권혜성이다. 안 그래도 체력이 좋은 인물이 오늘은 거의 최상인 것 같았다.

쟤는 어째 가면 갈수록 힘이 넘치네. 어떻게 돼먹은 신체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호기심이 들었는데 저번의 그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즐거운 기색이 만연한 게 유달리 반짝이는 안색과 기분도 좋아 보인다. 내 시선이 조금 끈덕지긴 했는지 가만히 관찰한다는 게 그만 눈이 마주쳐 버렸다.

"…해신이 형!"

괜히 쳐다본 것 같지? 정적을 깨며 달려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너무 시끄럽게 하지 말란 의미로 손가락을 들어 입에 붙였다.

"어, 혜성아. 왜?"

"오늘 애들 잘 도착했대요."

소곤소곤 아주 조심스러운 어조로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 죽여 말해 온다. 달래는 것도 팀워크에선 중요한 요소이기에 상대해 주자고 생각했다.

"그래? 잘됐네. 오늘 열심히 하자."

어울려 다닌다지만 우린 경쟁자이다. 그 머리 좋은 애가 이런 걸 털어놓다니, 나는 라이벌 축에도 안 들어간다는 건가?

이내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상기했다. 일단 날 같은 편으로 보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어지간히도 잘 따른다 싶어 신기했다. 마냥 잔머리만 굴리는 건 아닌 것 같다.

"저 이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대충 했어?"

"아니죠! 말이 그렇다는 건데 참, 형도 짓궂어요."

나는 진지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단 맞춰 주는 척 장난을 걸었다. 제발 나한테 고해성사 하지 마. 애초에 그런 걸 해 줄 만한 사람도 아니다.

기운 없이 뱉는 말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오늘도 참 활기차다. 해맑게 웃는 얼굴을 지켜보는데 그러다 권혜성의 상태 창이 깜빡거리는 걸 목격했다.

저게 뭐야, 정체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하여간에 무대 직전까지 날 힘들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확률 성장 트리]

미개화: ??? ???(??) (진행률: 50%)

[50… 70… 85… 99… 100%]

[확률 성장 트리 개화]

[확률 성장 트리]

개화: 스마일 어게인(기본)

웃으면 힘이 나요! 체력 +50%

물음표가 흔들리며 스르륵, 형태를 바꿔 버린다. 새로 떠오른 문구가 특이하다 못해 생소한 지경이다. 스마일 어게인……?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이런 건 제발 미리 말 좀 해 줬으면 좋을 것 같다.

"……."

"…응? 왜 그렇게 쳐다봐요, 형?"

"…아니야. 넌 좋겠다."

"네?"

곧 해결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런 식의 전개일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체력 +50%라니 도대체 뭐 하는 애지? 안 그래도 요즘 권혜성의 연습을 쫓아가기 힘들었다. 남들은 지쳐 있어도 혼자만 쌩쌩한 컨디션을 자랑했는데, 왜 그런가 했더니 이게 나오고 있었나 보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얘의 기운을 좀 나눠 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 내 것도 아닌데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최고였다.

[개화에 성공하셨습니다.]

[플레이어님께 업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업적 코인 '1,000'코인 + 블랙 쿠폰 1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B+

댄스: B

운: C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현재 코인]

2,315 코인

[블랙 쿠폰]

1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회피하려던 찰나, 시스템에게 뭔가를 전달받았다. 업적 보상이라니? 자세히 읽어 보니 플레이어에 대한 특권 같기도 하다.

이런 건 처음 받아봤다, 거저먹은 코인이 그리 적은 액수는 아니다. 200번은 족히 연습해야 할 금액으로 쉽게 받긴 힘든 수준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저 얼떨떨하기만한 게 진짜 말 그대로 가만히 있다 얻은 거였다. 권혜성 본인이 생각을 고쳐먹은 일로 이게 내 업적으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속물 같아도 보상이 있다면 다른 말이지.

그러고 보니까 이유준도 이게 있었던 게 떠올랐다. 받을 수 있는 건 전부 받는 게 현명하니 나중에 그것도 알아보기로 작정했다.

대충 돌아가는 루틴도 같이 파악해보자.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나였다. 제발 나도 버그 좀 풀어 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 환경이다.

"고마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네?"

"아니야. 그냥 힘내자고."

"네!"

자세한 건 천천히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적당히 얼버무리며 딴청을 부렸다. 이제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하니 아이템 보관함을 열어 어텐션 스타 파우더를 장착했다. 익숙한 알림이 귓가에 들리고, 동시에 가볍게 심호흡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본경연이 코앞에 다가왔다.

* * *

2차 무대 경연일이었다. 다른 연습생의 팬들로 붐비는 풍경으로 지금 이 상황이 그저 웃기기만 하다. 여기에 다시 와 있는 게 너무 어이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이제 자신을 끌어들이지 않기로 약속했던 친구였다. 그래서 2차는 혼자 다녀오겠다며 방청 신청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바로 광탈을 당한 것 같았다.

떨어졌다며 머리 싸맨 걸 지켜본 전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나도 몰래 넣어 본 상태로 쟤가 못 간다면 나도 안 될 것 같다며 포기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놀다가 집으로 귀가한 찰나에 핸드폰을 도착해 있던 문자 한 통을 발견했다. 그건 내가 한 신청이 성공했다는 연락으로 친구에게 말을 해 줘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물론 난 입덕한 게 아니고 한 번만 더 보고 올까 싶어서 넣은 게 전부였다. 그래, 얘한테는 들키면 난리가 날 사건이지. 최대한 조용히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신해신은 꽤 재밌는 캐릭터로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사람이었다. 얼굴과 상반된 허당미가 눈길도 끌며 헛웃음 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랜 케이팝 생활에 일부러 꾸며 내는 애들도 많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감흥 없이 지켜보려고 노력했지. 그것도 3화가 넘어가니 확신할 수 있었다. 쟤는 진짜 바보구나. 감정이 눈에서 훤히 드러나는 투명한 성격 같았다. 천성이 유해서 팬들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참 부럽네… 잠깐 스친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이 판을 뜨고자 다짐한 사람이었는데 진짜 마지막으로 보고 그만둘 계획이었다. 여기저기 배부된 슬로건을 둘러보곤 길게 늘어진 줄을 따라 이동했다. 굿즈에, 개인 물품까지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게 그런 장면은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적당히 구경하고 귀가하기로 다짐한 상태니까, 복장도 저번과 다를 바 없이 편안한 걸 입고 왔다. 들고 있던 물을 꽉 움켜쥐었는데 오늘은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둘 예정이었다.

장내에 앉아 기다리길 한참, 이 짓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좀이 쑤셔서 집에 가고 싶어졌을 무렵에 문득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어 현타가 찾아왔다. 그냥 오지 말 걸 그랬나…….

한 번 봤던 연습생 때문에 별 고생을 다 한다며 어처구니 없어 하던 시점이었다. 때마침, 조명이 꺼지며 고우림이 걸어 나오니 나름 적응한 미모여서 시큰둥하게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마스터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리겠습니다. 대표 고우림입니다."

옆자리 사람들이 슬로건을 펼쳐 들었다. 가슴팍에 소중히 껴안은 자세로 주변이 난리이니 도리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다소 슬픈 소감이었지만 물만 벌컥 들이켜며 귀를 기울였다. 부디 신해신의 무대가 앞 순서이길 기원한 게 기나긴 2차 경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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