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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54화 (54/328)

54화

성신원과 이정원은 무대 피드백부터 주고받는 듯했다. 실력들도 좋은데 꼼꼼해서 더 믿음직스럽다.

성공적인 연출이었다며 이마의 땀을 훔쳐 내니 안도감에 밀려와 긴장이 풀렸다. 한쪽 벽에 등을 기대기가 무섭게 뿌듯한 심경이 이어진다. 아, 이번에도 해냈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지만, 진이 빠졌는지 탈력감에 눈을 감았다.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귀를 기울인 찰나다.

권혜성, 배민형, 성신원, 이정원… 한 명이 부족하단 걸 눈치챈 순간이었다. 왜 4명이 전부지? 깜짝 놀라선 두 눈이 번쩍 떠진다.

"…이유준?"

"…네?"

서둘러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유준이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슨 문제라도 발생한 줄 알았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으니 바라본 이유준은 어딘가 멍한 얼굴이었다.

고된 무대로 땀을 흘렸으면서도 닦아 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깔끔하던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인데 곰곰이 아까 전의 공연을 떠올려 봤다.

실수라도 했나 싶어 되짚어 본 거였지만 딱히 그런 기색은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연습 때보다 훨씬 잘해 냈다고 자신했으니 쟤는 또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알기 힘든 애였다.

"얼굴이 왜 그래? 너 무슨 일 있었어?"

"…아뇨.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곱씹고 있던 거예요."

확실히 랩을 할 때의 이유준은 즐거워 보였다. 평소의 은은하던 미소가 아닌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단정하지만 무대 할 때와는 갭이 큰 연습생 중 한 명으로 세상 시름을 다 잊은 것 같은 태도가 눈에 띄었다. 결과적으로는 얘도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사랑하는 애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형도 조용하네요?"

"나도 비슷하지, 뭐."

이 프로그램은 특이한 구석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의 감정선을 지나치게 건드리는 듯했다. 팀원들 속에선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쩐지 휩쓸리는 느낌이 든다.

저번과 같은 루틴이라면 호명되어 올라갈 차례로 주변을 구경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얼마 되지 않아 스탠바이 명이 내려오는 게 다시 한번 인사를 위해서 관객들을 마주해야 했다.

"팀 첫사랑! 무대 인사 들어가실게요!"

"네!"

손짓에 맞춰 계단을 밟으니 옆에는 모두가 함께인 현장이었다. 얼핏 보이는 옆태들은 즐거워 보이는 게 고생했지만, 그건 전부 잊은 듯한 안색이었다. 참 탈도 많고 일도 많았던 것에 반해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정신력이 좋은 건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미소 지었다.

아, 모르겠다. 당장은 잔머리를 쓰거나, 사건을 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눈앞에 상황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형, 저희 인사하러 가요."

"해신아, 얼른 와."

"저희 늦어요!"

"그래. 지금 갈게."

* * *

고우림의 진행하에 소개를 완료했으니 아주 간단한 내용이라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이름과 어필용 한마디를 뱉으며 손을 흔드니 나름 익숙해진 것인지 관중들의 반응도 편안하다. 허리를 숙이며 대기실로 입성하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찰나였다.

이번 투표는 전체 무대가 끝나야 할 수 있던 게 모든 경연을 봐야만 되는 시스템으로 전개됐다. 덕분에 당분간은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일정이었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마음도 차분해진다. 아까는 감성에 젖어 있었다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흐름에 휩쓸리면 위험한 입장으로 의자에 앉아 구체적인 사항들을 점검해 나갔다.

"형은 모니터링 안 하세요?"

"너도 여기로 올래?"

"아니야, 난 괜찮아. 여기서 보고 있을게."

"그래? 알겠어."

"다시 마저 봅시다. 다음이 E 피켓이었죠?"

팀원들은 모니터링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인다. 벽면에 달린 모니터 앞에 모여 관람을 하는 게 누가 불러도 모를 집중력들이다. 한동안은 계속 저러고 있을 것 같아서 지금 알고 있는 걸 정리하기로 했다.

순서대로 습득한 사실들을 떠올려 보니 가장 첫 번째는 순위 발표식의 위치였다. 나는 지금 22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남들이 보기에도 훌륭한 성적 같았다.

실제로 일반인이던 내겐 과분한 자리로 하지만 이건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시킨 건 데뷔권인 7위 안이어서 이번 무대에 10위 초반에는 들어가야 안정적이었다. 생존을 떠나 가능성은 그것밖에 없었는데 사실 그게 안 될 것 같아도 파이널까지는 해 볼 재량이었다. 중도 하차는 애매하게 늦어진 시점에 힘들긴 하지만 나름 재미도 있는 편이었다.

저당이 안 잡혔다면 좀 더 편했을 것이다. 그저 이번 경연이 좋은 반응으로 이어지길 기도했다. 본무대가 끝났다는 것은 발표식이 멀지 않았단 소리로 또 탈락자가 나올 게 떠올랐다.

"결과 발표 스탠바이 하실게요."

다짐하기가 무섭게 노크 소리가 들리며 열린 문틈 사이로 스태프가 나타났다. 고민에 빠진 사이 모든 무대가 끝난 모양인데 뒤에도 잘하는 애들이 많았던 것에 반해 타격이 없어 보이는 팀원들이었다.

여간 튼튼한 게 아니라니까. 안도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탁월하지 못했으니 잔여 구성이라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가능한 보상을 챙기고 싶어진 게 욕심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약간의 희망 사항인 수준이었다.

나와 동일한 포지션의 사람들을 유추하니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연습생이 몇 명 떠오른다. 확신은 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가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묵묵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다짐했다.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 보고 싶은 입장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멈추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 * *

"이렇게 2차 무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연습생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관객이 모두 빠진 뒤의 무대 위, 60명의 연습생이 모여 들었다. 후반부의 속도는 빠른 전개를 자랑했는데 애플리케이션으로 집계되는 투표답다. 어떤 결과일지 도무지 유추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주변을 돌아보다 깨달은 점이었다.

이정원이 메보로 간 건 천운인 그림으로 타 팀에는 한두 명씩 강자가 섞여 있는 듯했다. 스탯이 높은 사람은 어디에든 들어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경쟁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구역으로 저런 연습생들은 메인 보컬일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서브 보컬이 나은 형편처럼 느껴지는 게 저기보단 조금 하향인 연습생들의 모임이었다. 상대할 수 있을까, 기왕이면 승산이 없는 전투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슬아슬하고 치열한 경쟁이 될 것 같았다. 인지도의 차이란 게 전부 이렇다.

서브 보컬 포지션에 좋은 스탯을 가진 인물이 없기를 바랐다. 상위 등급이 많이 쏠린 팀이 있어 걱정되던 찰나였다. 저런 곳은 실력 좋은 사람 다음 자리도 실력이 좋을테니 동일 포지션도 위험하다.

급하게 찾아본 데뷔권 순위의 연습생들이었는데 유일하게 두 명이 들어간 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건이 쏟아져서 모를 수 없는 강태오네로 1위와 3위가 같이 있는 모습이다.

둘 중 하나는 댄스 파트로 넘어갔기를 기도한 게 랩 하는 건 본 적이 없어 깔끔하게 포기했다.

강태오는 보컬보단 댄스 능력치가 높은 유형이라 윤명이 메인일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인지도와 순위가 반대여서 헷갈리는 게 이 뒤로는 고우림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보상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각 포지션별 1위 연습생들에겐 베네핏 1만 표씩이 부여됩니다."

"헉!"

"이번에도 1만 표야?"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내용으로 베네핏 1만 표는 기본으로 까는 베이스였다. 이것만큼 만만하게 주기 쉬운 아이템이 없지. 다른 보상에 비해 품도 덜 드는 편이다. 그래서 룰을 교체해도 자주 돌려썼는데 사실 1차 발표식보단 의미 자체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팬덤이 형성됐을 시기에 화력이 강해진 만큼 1만 표는 상위 싸움이었다.

나처럼 중상위는 조금 애매한 느낌으로 그래도 안 받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거기에 다른 게 더 있었죠? 포지션별로 받은 표를 정산하여 가장 많은 응원을 받은 팀에게 주어질 스페셜 보상입니다."

"1위 팀에게는 본방 2차 무대 전 팀 PR 및 다수의 홍보 영상 단독 5분 분량을 제공해 드립니다. 그때만큼은 본인에 대해 어필을 하셔도 좋습니다. 끊지 않고 집중 포커스 해 드리겠습니다."

"2시간 방송에서 5분을 통으로 준다고?"

"와, 이거 엄청나다."

진짜 보상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1만 표도 적지 않았으나, 이것에 비하면 많이 약소했다. 저건 대놓고 방송에서 시간을 주겠다는 이야기다. 동시 시청 할 팬들을 한 번에 끌어안을 기회가 찾아왔다. 최적이자 최고의 홍보 시스템이라고 끄덕였다.

무대 직전에 푼다고 했지? 이건 그 편에서 작정하고 푸시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전전긍긍 캐릭터로 걱정할 필요가 사라진 게 악편은 자동으로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 나와 같은 의견인지 수군거리느라 바빠 보인다. 사전에 알려 주지 않은 이유가 너무 투명했다. 포지션만 강조해서 개인의 경쟁을 부추긴 플레이였다.

팀 무대란 게 보통 적정선의 퀄리티만 나오면 된다는 인식이니까 말이다. 이러면 토탈 평균 등수는 등한시하기 마련이지.

개인을 주력으로 내밀어 놓고, 실상은 더 큰 걸 감춰 둔 연계였다. 자주 쓰는 루틴이었지만 머리를 참 잘 굴리는 사람들이다. 예측을 할 수 없는 변칙적인 사단이었다. 역시 저 위치를 공짜로 차지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해신아, 이거 엄청 큰 보상이지."

"응, 그런 것 같은데."

이정원이 고개를 숙여 조용히 물어 왔다. 얘도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던 인물이었다. 이것만 타 내면 거의 단박에 올라갈 일로 눈치가 빠른 인물답게 조용히 불타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혼자 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평균으로 톱을 가져가야 하는 조건이다. 개개인의 역량이 팀 전체를 좌지우지했다.

5분을 6인만 주목받게 할 권한인데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여기에 베네핏 1만 표까지 얹으면 바로 안정권에 진입한다. 부담이 꽤 큰 상황으로 보였다.

다른 애들이 우수하단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 중 일부는 직접 모으기까지 한 연습생이었다. 우스갯소리로도 못 한다는 건 절대 말이 되지 않는다.

현장 투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인기 있는 연습생들에게 유리한 부분이긴 하다. 견제 표가 난무한 걸 위험 구역이란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실력으론 다른 이야기다. 나는 팀원들을 아주 고평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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