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56화 (56/328)

56화

어찌 됐든 문채민이 하드 캐리 한 팀이었다고 되새겼다. 그런 처지에 우정환의 지원군까지 자처했다. 부탁만 잘 들어주는 줄 알았더니 어딘가 미련한 구석을 갖고 있다. 나도 그 수혜자 중 하나였기에 조금은 얘가 안쓰러웠다.

"고생했어."

"감사해요."

"해신아, 우리 평균 꽤 높지?"

"그런 것 같은데."

얼이 빠진 얼굴의 이유준이다. 쟤가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네? 일단 뒤로 넘겨 두고 남은 발표를 지켜봤다.

서브 래퍼 1위는 타 팀의 연습생으로 저긴 랩이 반절 이상인 노래를 불렀다. 이기기엔 약간 버거운 조건이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사실 메인에서 안 나온 게 용한 지경이라고 평가한다.

새삼 문채민과 이유준이 대단하단 걸 알 수 있었다. 실력은 실력이라 이건가. 신기하게도 팀 보상이 유력해진 여건이다. 성신원이 중간만 받아도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긴장된 낯으로 화면이 송출되기만을 기다렸다.

"마저 발표해 보겠습니다. 서브 래퍼 포지션 전체 순위 보여 주세요."

"…어어!"

"신원이 형! 3위! 3위!"

"하… 다행이다."

성신원이 붙은 건 1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놀랍게도 정말 3위를 받는 쾌거를 보였다. 더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이정원과 이유준이 어깨를 짚어 온다.

서로 눈짓하는 게, 나와 같은 계산을 하는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여기에 성신원 쟤도 껴 있을 예정이었지만, 결과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팀원들을 뒤로한 채 고우림을 주시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평균 순위론 3위 안에 들어갔다. 1위를 받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2위만 없으면 될 일이다. 이건 상당히 가능성 있는 가설로 확률이 점점 높게 치솟고 있었다.

"각 포지션별 순위 발표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마지막 순서 팀 보상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소란스럽던 주위가 침묵으로 물든다. 포지션 베네핏이 전부가 아니란 걸 상기한 것 같았다. 경계 어린 표정들에 주변이 삼엄해졌다. 서로를 붙잡은 권혜성과 배민형이 심호흡한다. 태연한 척했지만 긴장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축하드립니다. 전체 득표수 1위를 차지한 팀은 윤&안의 '안아 줘(Pit a Pat)'을 한 팀, 첫사랑입니다."

"우아악!"

"형 1위! 우리 팀 1위!"

호명됨과 동시에 괴성이 울려 퍼진 게 체력이 남아 있는 권혜성과 배민형이었다. 등 뒤로 달려들어 몸이 휘청거린다. 너무 빨라서 대처조차 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다행히도 평균 순위가 표로 직결된 것 같았다. 은근한 강자들의 모임인 팀으로 그게 좋은 결과를 불러들였다며 이마를 매만졌다. 힘겹게 이어 가던 작전이 성공을 거두었다.

미지수가 커서 도전하는 경향이었는데, 무사히 끝마쳐서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이번만큼은 이 애들에게 제대로 버스를 탔다.

"축하드립니다. 팀 첫사랑에게는 2차 무대 전 팀 PR 및 다수의 홍보 영상과 단독 5분 분량이 주어집니다."

"해신아, 우리 1위래."

"어, 그러게. 엄청 기쁘다."

"재밌었어."

이정원과 대화하며 다른 연습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건 괜찮은 터닝 포인트처럼 느껴진다. 내 이름을 알릴 기회가 주어진 상황으로 부디 이 찬스가 오래 이어지길 바랐다.

* * *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새벽이 다 된 시간에 들어온 숙소로 본무대 특성상 귀가가 늦은 편이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나 본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음 날 퇴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캐리어를 펼쳐선 짐을 정리하던 중이다. 노리던 걸 얻진 못했지만, 그보다 큰 걸 획득했다. 운도 좋았고 배경도 잘 따른 미션에 턱을 괴고 가만히 고민해봤다.

여태까지 중에 가장 편안한 심정으로 천천히 옷가지를 꾸려 나갔다. 모처럼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 지은 듯하다. 그때, 귓가에 낯선 알림음이 들려왔다.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바짝 굳었다.

[미션에 실패하셨습니다.]

[미션]

'실전 아이돌 두 번째'

무대 현장 내 포지션 1위를 달성하세요.

보상: 500 코인 + 블랙 쿠폰 2매

[보상이 제거되었습니다.]

[미션 실패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뭐? 이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사전에 공지해 주는 친절한 시스템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페널티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버그 한정으로 제한하는 게 아니었어? 성공하면 보상이 주어지고, 실패는 제재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다.

처음 보는 방식에 사지가 얼어붙었는데 또 코인 캐기에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워졌다. 지금도 간신히 입에 풀칠하는 입장이다. 여기서 더 줄어든다면 모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불길함에 말을 잃은 채로 정면만 응시했다. 하여간에 방심하면 뒤통수를 때리는 시스템이다. 현재 상태로는 눈만 감으면 기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페널티]

저당 금액 손실

-1,000,000원

[저당 금액]

22억 4,267만 2,486원

[-1,000,000원]

[저당 금액]

22억 4,167만 2,486원

사이렌 소리와 같은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저당 금액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든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옷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비도 있었지만 건들지 않던 당첨금이었다. 그런데 백만 단위가 낮아진 숫자에 가만히 눈만 깜빡거렸다. 스스로가 교환한 적은 있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

"해신이 형, 뭐 하는 거야?"

"몰라? 눈 뜨고 자나?"

"형~"

근처의 연습생들이 내 주변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적당히 무마하려고 입꼬리를 끌어 올리니 그 끝은 벌벌 떨리고 있는 게 느껴진다.

"…어, 아니야. 쥐가 나서 그래."

"그래요? 코끝에 침이라도 발라 줄까요?"

"아, 더러워. 그럴 땐 야옹이거든. 야옹~"

"아, 너가 더 더러워! 징그럽게 뭐라는 거야."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허탈로 다른 애들의 만담을 들으며 머릿속을 비웠다. 제발 그만해……. 그대로 침대에 몸을 파묻으니 아직 씻지 못했단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간파하지 못한 부분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긴 당첨금도 저당 잡은 시스템인데, 저걸 건드리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안일하게 대처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미리 대비를 했어야 하는 부분이었어. 뒤늦은 후회로 탄식만 내뱉었다. 그래도 이미 잃은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숫자는 줄어든 상태였다. 단 몇 초 만에 사라지다니,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미션에 실패하면 페널티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 또 그 페널티로는 저당 금액을 건드릴 수 있었다. 손실을 입는 걸 보니 슬슬 다른 제재가 우려된다.

차근차근 내게 닥친 일들을 정리해 나갔다. 첫 번째 실패, 수십억을 강탈해 간 것치곤 소소한 돈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음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래서야 돌려받을 게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 어떤 미션이 찾아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페널티조차 유추할 수 없다니, 이 시스템은 맨몸으로 부딪치게 만드는 걸 너무 좋아했다.

어쩐지 업적 보상 같은 걸 주더라. 이래서 공짜 좋아하면 안 될 일이다. 천장의 백열등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잃어버린 돈, 더 화내 봤자 내 머리만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잊기로 결정했다. 시스템을 이해해주거나 그런 건 아니고, 전적으로 내 정신 건강을 염려한 선택이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별의별 능력이 다 있는 시스템이다. 그러면 내 몸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지. 소소한 감기나 앓아눕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 정체불명의 통증이 발생하면 큰일이었다. 연습에도 지장이 생길뿐더러…….

"…병원."

병원비가 감당이 안 된다. 원인을 찾아야 하니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MRI나 CT는 몇 번 찍으면 백만 원이 우습게 사라졌다. 차라리 지금이 나을 수도 있었다.

이상한 방향으로 긍정적인 회로를 돌리곤 상체를 세워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들었다. 구깃구깃하게 접힌 셔츠가 마치 내 인생 같다.

뭐가 됐든 다 깎이기 전에는 끝날 프로그램이니까,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 * *

2차 경연이 끝나고, 퇴소한 지 이틀 차였다. 돌아오자마자 한 건 전체적인 상황 판단이다. 순서대로 습득한 사실을 정리해 나가보니,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버그의 존재였다.

그건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요소로 업데이트를 핑계 삼더니 코인에 제한이 걸렸다. 이것도 페널티라면 페널티라고 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까 내 버그의 이름은 뭐지.

다른 것과 달리 공지해 주지 않은 구간이었는데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한 시스템 같았다. 진짜 불친절하네.

"…뭐야?"

이건 연습하다 걸린 날벼락이었다. 파고들기도 애매한 부분이어서 난처해진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내게는 참 팍팍한 편 같았다. 다른 건 다 됐으니 코인 캐기라도 풀어 줘.

티끌은 모아 봤자 정말 티끌이라고 어째 있는 시스템도 전부 쓰기 힘들었다. 마치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다.

"그냥 다른 것부터 생각하자."

하는 수 없이 순위 발표식부터 떠올렸다. 그때 살아남을 걸 전제로 삼으니 이제는 강한 연습생들과 어울리지 말아야 했다.

더 이상의 팀전은 없을 분위기니까, 3차부터는 파이널이 목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조건 튀어야 올라가는 단계라고 계산했다.

실력자들과는 같이 있으면 묻힐 확률이 아주 높다. 적당히 분량을 챙길 수 있는 연습생이 좋았다. 그래서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인물들을 고르기로 다짐했다.

내 목적은 완연한 당첨금의 회수다. 그 애들은 뭐가 됐든 계속 올라갈 실력자였으니 나와는 어쩔 수 없이 격차가 발생할 일이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냉정하지만 친하던 애들과는 갈라서야 할 것 같았다.

강태오 같은 연습생들과의 투 샷은 피할 수 없을 과정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했지만, 잘생겨져야 할 타이밍이다.

커트라인 수준의 대비책이었는데 입소 기간에는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다. 짧은 기간에 변화하고 편법까지 쓰기로 했다. 일종의 목격담을 만드는 거였는데 스탯을 올린 뒤 카메라빨을 못 받는 연습생이 되고자 한다. 나는 화력은 있되, 인지도가 엄청난 건 아니었으니, 조건이 갖춰져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스타 코인 스탯 해금' 외모에 1,000 코인을 지불합니다.]

[현재 코인]

1,315 코인

[외모 스탯 해금 방법]

200명 이상과 마주치세요.

[변화 가능 스탯]

외모: A-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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