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60화 (60/328)

60화

"유준아, 부담스럽다."

"아, 죄송해요."

"왜 그래?"

"혹시 또 살 빠졌어요?"

"응?"

"뭔가 느낌이 달라진 것 같은데요?"

공짜 연습실에 득달같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런 걸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취방에서는 가렸지만, 여기는 훤히 드러낸 상황이다.

그때는 핑계 댈 만한 기간을 만들고 싶어서 숨긴 거였지. 이제는 조건이 갖춰진 시점이기도 했으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적당히 응대해 줬다. 음, 내가 우기면 할 말이 없겠지. 어쩐지 예전보다 뻔뻔해진 느낌이다.

"너 눈썰미가 되게 좋네. 조금씩 빠져도 바로 알아보는 것 같아."

"형, 진짜 큰일 나는 것 아니에요?"

"오버하기는… 그 정도는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체중에도 변화가 있을 터였다. 이렇게 움직이는데 안 빠지면 이상하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으니 찔리는 양심은 무시하기로 했다.

이유준의 심각한 표정에 헛웃음을 지었다. 쟤보다는 내가 훨씬 잘 먹는 편이었다. 됐다는 시늉을 하며 손사래를 치곤 적당히 빠져나갔다.

"너는 그거 먹고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내가 네 2배는 먹는 것 같은데."

"저야 계속 이렇게 살았으니까요. 원래 입이 짧기도 하고요. 형도 많이 먹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표준이야. 혜성이 때문에 적어 보이는 거지."

한참 때의 학생답게 2공기 정도는 거뜬히 먹는 애가 떠올랐다. 자리에 없는 인물로 이득을 본 듯하다. 물론 진심으로 믿어 주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영부영이라도 해결하면 그만인 단계였다.

시간을 흘려보내며 자세를 되짚으니 말도 안 되게 바뀐 느낌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조금씩 변화한 이목구비였다. 여분 기간을 많이 두고 적용한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성형 논란이 나오지 않아서 다행으로 당분간은 다시 공백을 두자고 마음먹었다. 솔직히 이것도 괜찮은 얼굴이다.

아는 노래를 틀고 러프하게 춤을 추니 초창기보다는 능숙해졌지만, 압도적인 성장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춤을 안 올리기는 했지. 확실히 댄스 스탯은 등한시했던 과거였다.

익숙해진 분위기는 감돌았지만, 실력 자체는 고정된 수준으로 보인다. 다른 건 다 성장하는데 얘만 가만히 있는 것도 수상했다. 도태는 절대 안 될 일이라며 잔여 코인부터 확인했다.

[현재 코인]

2,025 코인

그간 모은 금액도 그리 적지 않은 게 환경이 갖춰졌다며 다짐했다. 이럴 때만큼은 스탯에 의지하는 게 정답이다.

이유준도 연습에 몰입한 것 같으니 여기에 관심을 줄 여유는 없어 보였다. 눈치를 보다가 나직하게 속으로 읊어 보니 오랜만에 올리는 해금법이었다.

['스타 코인 스탯 해금' 댄스에 1,000 코인을 지불합니다.]

[현재 코인]

1,025 코인

[댄스 스탯 해금 방법]

스탯 난이도 이상의 안무를 30번 추세요.

[변화 가능 스탯]

댄스: B → B+

오늘의 목표는 정해진 찰나로 핸드폰 내 플레이리스트를 뒤적거리며 곡을 선택했다. B는 이걸 추면 되려나? 눈대중으로 커트라인의 안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축적된 자료이기도 하다.

슬슬 내 이름도 알리고 싶어진 무렵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 보고 싶었다.

* * *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B+

댄스: B+

운: C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현재 코인]

1,375 코인

[블랙 쿠폰]

1매

씻고 나오니 변화한 수치의 스탯이 보인다. 2차 순위 발표식을 앞두고 착실하게 준비해왔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던 게 공백이 긴 휴가 덕분에 할 수 있던 일들이었다.

속도를 쫓아간 방송으로 최근 흐름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앞서 고생했더니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 기분이다. 이름도 알려지고, 캐릭터도 생성된 게 부족하긴 하나 초보자는 벗어난 경지까지 도달해 있었다.

가만히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머릿속에 스치는 건 주변 인간관계로 버스 타겠다고 모은 인원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슬슬 이 작전은 완전히 소각해볼까. 이제는 독립적인 존재감을 떨쳐 보일 타이밍이다.

3차 무대에 대한 점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는데 2차 때까지는 어떻게 자료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전적으로 과거를 떠올리다 얻어걸린 힌트로 천천히 눈을 감고 회귀 전을 돌이켜 봤다. 선배처럼 기억 속에 다른 정보가 남아 있을 수 있다.

"프로그램 제작곡은 분명한데……."

보통 이 시기에는 정해진 포맷이 따로 있었다. 자체적으로 의뢰한 특별곡이다. 프로그램의 이름을 넣어 저작권 등록을 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는데 시즌 3와 4 때도 이어진 관례였다. 거기서 추가적인 요소만 찾으면 될 것 같은 게 이 시즌을 겪었던 동료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선가는 소재라도 들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먼지 쌓인 일화들을 신중하게 되짚어 나갔다. 잠깐만, 먼지라고?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과거에 있었던 입사 동기와의 일화였다.

"아."

나와는 같은 외주 소속의 인물로 비슷한 연령대라 자주 묶여 업무를 배정받았다. 팀과 소속도 같은 곳이어서 이래저래 많은 일을 나눠 하곤 했던 게 떠오른다. 얘를 왜 잊고 있었더라. 사유는 분명했다.

"시즌 3 끝나고 튀었으니까."

개인 사정으로 인해 깜빡했던 사람이었다. 헛웃음 지으며 소품실에서 겪은 일을 떠올리니, 사용했던 소도구를 대량으로 반납했던 날이었다.

원래도 잡일 담당이라 손이 가는 건 전부 우리 몫이었다. 그날도 일찍 가기는 글렀다며 체념한 채 정리하고 있었지. 먼지 쌓이고 어두컴컴한 창고 안이었는데 선반 위로 물건을 올리던 찰나였다.

'와~ 진짜 너무하다. 이걸 둘이 다 치우라니…….'

'어쩔 수 없지. 얼른 하고 들어가자.'

'그래, 이걸 올리는 것 맞지?'

'어. 그거 혼자 들 수 있겠어?'

'들어 봐야지, 뭐. 나 올라간다? 그럼 이거부터… 으악!'

입사 동기가 뭔가를 잘못 건드렸던 모양이다. 위에서 다른 소품들이 쏟아져 내려 다급하게 팔을 들어 머리부터 가렸다.

뭐가 떨어질지 몰라 보호하는 차원으로 다행히도 타격감은 없는 무게였다. 툭 하고 가벼운 소재가 부딪치며 어깨를 스쳐 바닥으로 쌓여 갔다.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신해신! 괜찮아? 진짜 미안해! 어디 안 다쳤어?'

'괜찮아.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었어.'

동기가 선반 위에서 뛰어내리며 질문했다. 옷을 털며 매무새를 정리하니 그제서야 안심하는 얼굴을 보였다. 먼지가 가라앉고 주변의 시야가 서서히 확보되자 바닥에는 널린 플라스틱 대가 눈에 띄었다. 색색의 원단이 나부끼는 게 지저분한 모양을 봐선 오래된 깃발 같았다.

'아, 십년감수했네. 진짜 미안해.'

'괜찮다니까. 일단 이것부터 치우자. 그리고 박스는 같이 올리는 게 낫겠다. 사고 나겠어.'

'그래.'

그 상태로 동기와 바닥을 정리했다.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아 서두르던 찰나로 하나둘 주워 바구니에 옮겨 담는데,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뭐 문제 있어?'

'어? 그건 아니고… 왠지 낯이 익은데, 이거.'

'난 처음 봤는데.'

'…아! 이게 그거였나 보다. 지수 누나가 말해 준 것.'

'…뭐가?'

'왜, 저번에 밥 먹다 나온 얘기 있잖아. 컬러 깃발로 노래 정했다는 것. 몇 차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아아, 그거…….'

'우리 사이에 있는 불문율, 지수 누나가 맡는 건 제일 빡센 선택지. 그때도 그랬대. 하여간에 대단하다니까. 아무튼 무슨 색을 담당했다고 했더라…….'

박지수라고 하면 연출 팀의 써드 직급 부원이었다. 시즌 2부터 일한 걸로 알고 있는 사람으로, 선임이었지만 꽤 덜렁거린 걸로 유명했다.

운이 나쁜 경향이 강해서 담당 파트는 대개 최고 난이도라고 하소연했었지. 과거의 일이지만 얼핏 떠오르는 것 같은 게 그때 흩어져 있던 깃발들이 미션곡을 정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앞선 단계에서는 깃발을 사용한 적이 없으니 아마도 이건 3차 무대의 룰일 예정이다. 파이널은 단 두 팀으로 갈리니까 제외한 구간이기도 했다.

목격한 소품은 두 개는 훌쩍 넘겼었지. 추론을 해 보니 앞뒤 전제가 맞아떨어졌다. 튀어 버린 입사 동기 덕분에 자료를 획득한 찰나였다.

"요점은 그 사람이 무슨 색을 맡았었냐는 건데……."

여기는 나도 듣지 못한 구석으로 소품실에 들어온 타 스태프에 의해 대화가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부분에서 커트 쳐져서 아쉬웠으나 박지수는 아직 방송국에 남아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신입일 거라고 추정되니 촬영할 때 세트장을 눈여겨보기로 했다.

* * *

친구들이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주제라 더 그런 것 같았다. 웬일이냐며 질문하는 애들에겐 궁금해서 봤다며 핑계를 둘러댔다.

사실 나도 응원하는 입장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팬심이었다.

"그래서 오늘 본방 볼 거야? 6화!"

"우리 중에 제일 고3 같은 애는 꼬시지 말자. 그래도 쟤 덕분에 수험생 기분 내고 있는데."

친구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게 계속 숨기기도 뭐해서 말하기로 했다. 아이돌 덕질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으니 나도 도움을 좀 받아 보고 싶었다.

"응. 나도 볼 거야."

"진짜? 너 입덕 함?"

"신해신이란 사람, 무대 잘하던데."

"미쳤다."

"보다 보니까 재밌더라고."

"…혹시 권태윤은 관심 없어?"

"아, 조용히 해. 영업하지 마라. 얘는 해신이 픽이야. 오늘 부모님 안 계시는데 같이 볼래?"

그렇게 어쩌다 보니 놀러 오게 된 친구네 집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생경한 광경의 방을 둘러봤다. 벽 여기저기에는 신기한 아이돌 관련 물품이 많이 있었다. 평소에도 케이팝에 관심이 많던 친구여서 그런 건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저런 건 어디서 나는 거야?"

"저거? 배포받은 도안으로 뽑았지. 너도 하나 줄까?"

"그럼 고맙고."

"와, 근데 진짜 신기하다. 연예인 얘기 하는 건 못 본 것 같은데. 너 이런 거에 흥미 없었다며."

"응, 근데 재밌더라. 방송 보면서 너희가 얘기해 준 게 떠올랐어."

그렇게 한참을 시시덕거리던 찰나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익숙한 프로그램의 로고가 떠오른다. 이전 편의 클립으로 시작됐는데 2차 무대에 대한 자료가 언급되는 모양이었다. 순

위 발표식을 거쳐 줄어든 인원 속으로 기다리고 있던 신해신이 나타났다. 고우림의 지시를 얌전히 따르는 모습이다.

[연습생들이 사라진 곳에선 무슨 일이?]

: 와, 이게 뭔가 싶었죠.

[왜 그 방에 들어가셨어요?]

: 행운의 숫자가 7이잖아요.

: 제 생일이 3월 3일이거든요. 더해서 6!

: 어… 원하는 포지션이 남은 곳은 4번 방이었어요.

: 직감으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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