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쟤는 진짜 잘생겼네……. 비공개 연생 안 삼은 게 기적이다."
친구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분명 이전부터 계속 1위를 지킨 연습생이다.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로, 외모만큼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듯하게 생긴 콧대가 눈에 띄었는데 차분한 얼굴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유달리 포커스가 집중되는 게, 방송국도 저 사람의 외모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강태오였나."
"맞아. 너도 아네?"
"잘생겨서 이름 외웠어."
"하긴 얼굴로는 못 까지. 연생 기간도 짧은 편이랬는데 실력도 괜찮더라."
1위라 가장 마지막 차례이던 강태오가 8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타고난 포스 때문인지 방에는 일순간 긴장감이 맴돈다. 일부 멤버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무는 게 이건 예의 종종 보이곤 했던 악의적인 편집 같았다.
[1위 연습생의 등장에 굳어 버린 8번 방]
[싸늘한 정적만이 방 안을 맴도는데…….]
: 아…….
[인터뷰]
: 1위 하셨잖아요. 어떤 패널도 바로 뺏으실 수 있으니까…….
: 메인 패널 가진 친구들이 많이 긴장되겠죠?
: ……?
: 패널이요? 뺏기면 태오 형이 들고 있는 것으로 해야죠.
"메인 갖고 있는 애들이 제일 여유롭네."
"윤명이랑 우정환?"
"응, 참고로 윤명은 데뷔 후보군, 인기 많아서. 근데 좀 특이해."
"흐음, 그렇구나."
"이런 걸 신경 쓸 성격들이 아니긴 하지."
"그래?"
"응, 쟤넨 원래 좀 느긋하거든. 악편도 잘 안 당하던데, 소스가 없어서인가? 남 사단이 원래 없는 걸 만들기보다는 있는 걸 극대화해서 편집을 하거든. 예시를 들면… 싸운 장면이 나왔잖아, 그걸 자르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는 거지."
"…그것도 살벌한데?"
"다른 곳보다는 낫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서바이벌이니까."
: 서브 보컬보단 메인이 잘 어울리셔서 그쪽으로 가시지 않을까요?
이병건이라는 연습생이 짧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신의 포지션만큼은 지키리라고 확신하는 그림으로 사실 쟤는 들어가자마자 다른 연습생의 패널을 뺏은 전적이 있었다.
먼저 와 있던 김찬규에게서 서브 보컬을 교환해 달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순위로 선점하는 시스템이어서 양보를 해 줘야 했던 상황이었지.
: 서브 보컬 포지션을 택하겠습니다.
: …(당황)
[서브 보컬 포지션을 선택]
[뒤바뀌는 희비]
[1위에게 밀린 34위]
[인터뷰]
: 거기서 서브 보컬을요? 전 저 아니면 명이 형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신기했죠.
: 이거 가져갈 줄 알았는데요……? (어리둥절)
: …하… (한숨)
: 전 서브 댄서라……. (긁적)
: 와, 흥미진진했죠. 래퍼라서 살았네요.
모두가 놀랐다는 뉘앙스를 보인다. 우정환과 윤명은 대놓고 신기해했던 게 제 몫을 빼앗기게 된 이병건은 입을 꾹 다문 채 있었다.
자신은 아닐 거라고 단정 짓기가 무섭게 현실이 되어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이 상황 속에서 제3자나 다름없던 래퍼 포지션이 안도했다는 인터뷰를 했다. 시작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는 포지션 경쟁이었다.
[34위 이병건 연습생은 마지막 자리인 서브 래퍼 포지션으로 옮겨집니다.]
[인터뷰]
: 아, 래퍼요……? 큰일이네요. 제가 보컬이라…….
: 어서오세요! 제가 잘 도와드릴게요! 래퍼 하실 수 있습니다!
: ……? 저는 제가 갖고 싶은 패널을 택했습니다.
더는 이병건에게 선택권이 없어 남은 자리로 가야만 했다. 포지션을 옮기면서도 희게 질려 있는 게 생전 랩을 해 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강태오는 무슨 잘못이냐는 둥 태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어쩐 일이야, 짜깁기를 다 넣고. 강태오 얘가 당했네?"
"뭐가?"
"이건 고의 편집이야. 장면 붙여 넣은 것 같은데? 강태오가 무뚝뚝해도 눈치 없는 밈은 아니잖아. 2차는 여기가 타깃인가 보다. 남현욱 간 큰 것 봐… 무슨 1위랑 3위가 있는 방을 건드려. 미쳤다."
"잘하는 애들 많이 모였다며."
"근데 사실 이런 곳은 뭘 해도 본전이거든. 기대치가 높아서 부담스럽기만 할걸?"
따지고 보면 전부 맞는 말 같아서 끄덕거렸다. 불편할 정도로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던 방이다.
시큰둥한 강태오의 뒤로 우정환이 가볍게 지나갔다. 입술을 말아 물고 눈알을 굴리니 그게 무언의 SOS 신호처럼 느껴진다.
"쟤 지금 눈으로 얘기한다."
"어… 나도 그렇게 보여."
"아~ 좃됐어요! 하고 외치는 중인데? 개웃기네."
"진짜 감당 안 되나 봐."
"문제가 좀 있겠지. 강한 애들도 많은데, 순탄한 분위기가 아니니까. 그리고 쟤 정도면 다 눈치챘을걸? 편집에서 난리가 나겠구나~ 하고. 우정환도 똑똑하거든."
[1위와 3위의 동맹! 어벤져스의 탄생, 8번 방!]
[인터뷰]
: 어벤져스라니, 힘내 보겠습니다. 파이팅!
: 1위와 3위라니, 이거 엄청나지 않아요?
: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꾸벅)
: …팀원이 참 좋네요……. 어벤져스라니… 하핫, 기뻐요…….
"우정환, 개불쌍해. 근데 왜 이렇게 웃기냐."
우정환이 마지막 인터뷰이로 나서는 게 내용만 봐도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강태오 역시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조금 피곤해 보이는 안색이다. 돌아가는 정황상 여긴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모든 단계가 고비로 삼아질 것 같았다.
"파투 각이다. 잘될 리가 없지……. 심지어 서브 래퍼는 초심자야."
"와… 이거 원래 이런 프로그램이야?"
"이런 걸로 유명해."
메인 타깃이 끝난 탓일까 다른 팀으로 바뀐 화면이었다. 언제 나오나 싶었던 신해신네 방이 등장했는데 순위 발표식에 22위를 받아 그랬는지 제법 널널한 분량이었다.
깔끔하게 내보내 주니까 무슨 일인가 싶어 신기하다. 나쁜 흐름도 없어 보여서 일단은 기뻐하기로 했다. 부디 별다른 사건만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22위 신해신 연습생의 선택은 1번 방]
: 어? 신해신 형이다!
: 안녕하세요. 성신원이라고 합니다. 21살이에요. 신해신 형 맞으시죠?
: 아, 네. 안녕하세요. 신해신입니다. 22살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 해신아.
: 정원아? 너도 여기야?
[자리가 차기 시작한 1번 방]
: 안녕하세요! 권혜성입니다!
: 정원이 형? 형도 여기였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평균 키 대략 180cm 장신 팀의 완성!]
평균으로는 웃도는 키의 시야가 높은 팀이었다. 그래도 더 큰 연습생들이 존재하는데 칭찬을 해 줘서 수상해 보인다. 친구도 그게 의문이었는지 아무런 말 없이 TV만 바라봤다.
"친한 애들이 많이 붙었네? 그나저나 자막은 뭘 원하는 거지."
"나도 이상한데… 뭔지는 모르겠어."
"아니, 얘네가 크긴 하거든. 그래도 강태오나 윤명이 있는 방에선 이런 말 안 했잖아. 거기 김찬규도 꽤 큰 편이고……."
[인터뷰]
: 저는 일단 민형이 말고 초면인데, 그래도 건너 아시는 분이 많았어요.
: 저 친해지고 싶은 분이 있었거든요! 같은 팀 돼서 엄청 신나요!
: 유준이랑은 같은 팀이었고, 해신이는 동갑이어서 알고 지냈죠.
위기가 없어서일까, 금방 넘어가 버린 팀으로 앞에서 다룬 곳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등장 자체는 유하게 풀어 줬다. 긍정적인 기운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불길해진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방들을 보며 마음을 다독거렸다. 대충 비슷한 흐름이 반복되는 기분이다. 사이가 좋은 팀들도 있었으나, 빼앗긴 패널로 불편해진 상황이 많다.
순위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나온 일이었다. 어쩐지 팬덤끼리 싸우기 좋은 조건처럼 다가온다.
[인터뷰]
: 11위 연습생이 있으니까요~
: 잘하는 친구가 하나 있더라고요?
: 처음 뵙는 분이 많은데, 힘내 보겠습니다.
"…살벌하다."
"리얼한데? 이건 찐 견제일 듯."
"싸움 붙이는 수준 아니야?"
"원래 이래. 시청 마음먹었으면 흐린 눈 하고 넘겨야 해."
어색함 속에서 끝나 버린 팀 배정이었다. 조마조마한 연습생들을 보니 왠지 신해신네가 천국같이 느껴졌다.
이내 장소가 바뀌며 모두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는데 대표들만 앞에 나서 있는 세트장이었다. 랜덤 컨셉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 예상하지 못해 난감했다. 내가 출연자였어도 당황스러웠을 법한 규칙 같았다.
"이번 시즌 독하다~ 랜덤이 포지션에만 붙은 게 아니네. 컨셉까지 들어간 거였어."
"머리 잘 썼다. 헷갈리게 만든 것 같아."
"원래 제작진이 이런 거로 유명해. 허니 트랩이라고."
"그나저나 C가 뭘까. 순서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의 약자? COOL?"
"아, 그거 일리 있다. 설마 CUTE는 아니겠지. 그런 게 걸릴 리가."
[1번 방 'C'의 정체는 바로 CUTE!]
"대박!"
"이렇게 끌고 가는 거구나."
일반적이었다면 제 픽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겠다며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경연이었다. 쟤는 괜찮은 건가?
[윤&안 - '안아 줘(Pit a Pat)']
"해신이 어떡하냐. 근데 좀 좋기도 하고. 우리 애가? 저 노래를? 저 깜찍 보이 노래를?"
"어?"
"저거 원곡자들이 17살 때 낸 곡이거든."
"와… 진짜 대박이다. 신해신 귀여운 거 하는 거야?"
"미친, 걱정도 되지만 존나 기대된다."
아까의 자막이 오버랩되는 것 같은 게 분위기부터 차분하고 우직한 느낌들이 많았다. 왜 그걸 깔았는지 드디어 알 것 같다. 머리를 잘 쓰는 제작진이 대비 효과를 제대로 써먹었나 보다.
그런 걸 떠나 팬인 친구는 즐거워 보이는 게 하긴, 걱정이 되더라도 기대되는 부분이 클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무대를 보여 줄까 궁금한 심정이다. 음, 무대라…….
"…우리 방청 신청 해 볼래?"
"어?"
"2차는 늦었겠지만, 3차라도 직접 보고 싶어서."
고민 끝에 꺼낸 결론으로 매번 방송상에선 유쾌하게 풀렸다. 하지만 실제는 어떨지 예측하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커뮤니티에 도는 후기 글만 보고 있었으니 나도 한 번쯤은 현장을 가 보고 싶어졌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신청하는 건 자유다. 떨어지면 그냥 집에 있으면 될 일이지.
"3차는 신청 기간이 언제야? 한번 해 봐야겠다."
"어, 아직이긴 한데… 그거 진짜 운빨이라. 그리고 요즘 반응만 봐도 경쟁 심할걸? 괜찮겠어?"
"뭐, 넣어 보는 것 정도야."
"진짜? 너 진짜 갈 거야?"
"응, 안 될 수도 있겠지만 해 보려고. 너도 같이 할래? 애들한테도 물어볼까?"
"헐, 뭐야. 좋아, 난 할래. 지금 단체 방에 물어볼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친구가 노트북을 끌어왔다. 종종 들어가 본 적 있는 사이트가 나타났는데, 거기 위로 내 이름을 적어 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운명이라면 저기를 갈 수 있을 일이었다. 기왕이면 한 번쯤은 실물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