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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71화 (71/328)

71화

어떻게 될지 모르겠던 찰나에 아슬아슬하게 업데이트된 실력으로 해결이 됐다. 이렇게 잘 풀릴 일인가 싶어 인근을 돌아보니 힘 있는 사람이 주도한 탓에 다른 인물들이 쫓는 형국이었다. 어부지리로 얻은 자리였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파트 주셨으니 열심히 할게요."

"그럼 마저 다음 파트 분배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의도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사람의 등장이다. 얘를 파악하기까진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줬으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 * *

순탄하면서도 어색한 흐름의 시작으로 그 속에서 계속 나머지 파트가 분배됐다. 힘 있는 목소리를 지닌 김지혁이 두 번째 보컬로 낙점 됐다. 1절 싸비보다 브릿지를 원하는 것 같은 게 실력으로 차지한 거라 넘겨줄 수 있었다. 코드 사용이 많은 구간에 스킬 자체도 괜찮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모두가 동의해 줬다.

이유준과 한여빈은 랩 라인을 나눠 가졌다. 이성적인 연습생들의 조합으로 순탄한 진행이 이어진다.

댄서들도 큰 기 싸움 없이 브레이크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긋하지만 단호한 어조의 강태오와 본인 장점을 잘 알고 있는 권혜성이었다. 성향상 대놓고 싸울 만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지켜봤다.

이어지는 논리적인 토론에 가만히 눈을 굴려보니 걱정하던 것에 비해선 팀워크가 아주 좋다.

그나저나 슬슬 강태오 쪽이 걱정된다. 핵심 파트들을 넘겨 애매한 포지션으로 밀린 게, 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큰일이 나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욕을 듣게 될 가능성을 고려해서 최선을 다해 센터로 밀어주기로 했다.

다른 걸 떠나 연출을 염두에 둬도 강태오가 가져가는 게 정답처럼 느껴진다. 존재감을 극대화해 퀄리티를 올릴 계획으로 인지도라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쟤가 입을 열면 긍정적인 멘트를 꺼내댄 순간이었다. 모두를 다독여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그럴 때마다 당사자는 내쪽을 쳐다봤다. 이유준과 권혜성도 그런 내 태도가 조금은 신기한 모양이다.

눈치도 빠른 애들이 방관만 해서 나만 괴로운 부근이라고 생각했다. 한여빈도 알아챈 점이었는지 말을 얹어 가며 지원군을 자처해온다. 이게 모두 공생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인데 너희도 얼른 도우라며 눈짓을 보냈다.

"그럼, 센터는 강태오 연습생으로 확정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나머지는 각자 생각해 본 뒤 다시 정합시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 뵐게요."

시계를 보지 않아도 밤이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순위 발표식이 끝나고 연달아 이어진 녹화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강태오와 한여빈이 가장 먼저 강당을 벗어났는데 그 뒤로는 김지혁이 제 지인을 만나 함께 떠났다.

"아, 지쳤다."

"형, 오늘 파이팅 넘치던데요?"

"그래서 지금 녹다운 직전이야."

"오늘도 재밌었어요. 이번 무대, 엄청 멋질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네. 우리도 슬슬 가자."

* * *

숙소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 드러누웠다. 침대에 몸을 파묻으니 우정환이 맞춰 들어온다. 비슷한 타이밍에 마주친 사람으로 다른 연습생들은 좀 더 늦게 오려나 보다. 씻으러 간 이유준을 제외하고 단둘만이 남아 있는 환경이었다.

쟤도 힘들긴 한가 보네. 우정환은 안 그러는 척했지만 제법 피곤한 모양새이다. 바닥에 주저앉는 게 탈력감이 느껴져 이상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우와, 지쳤다."

"고생했어."

"어, 땡큐. 그나저나 형이랑 유준이 형은 또 같은 팀이네?"

그래도 입은 살아 있었는지 조잘거림은 쉬지 않는 애다. 제 팀 사정을 설명하는 뉘앙스로 2차에서 고생했던 터라 나름 만족스러워 보인다.

"근데 그런 인연으로는 네가 최고 아니야?"

"아~ 명이 형? 그러니까. 무슨 운명인가."

쟤는 벌써 윤명과 세 번 연속으로 같은 팀을 하고 있었다. 호명된 자리에서 깜짝 놀라 구경을 했던 게 기억났다.

게다가 2차에서 겹친 적 있는 김찬규도 포함된 곳이었다. 적절하게 중상위 위주로 배치되며 구성이 괜찮았던 팀이었다.

거기다 트러블 메이커 기질의 연습생도 보이지 않은 게 여유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따지고 보면 이번 미션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겠다.

"너희 팀은 선곡이 뭐였지. 아까 정신없어서 못 봤어."

"아, 형들이 달리기였지? 다른 데 신경 못 쓸 만하네. 우리 '노이즈'야."

"그 곡이야?"

'노이즈'라면 힙한 비트의 EDM 장르로 특색이 강한 미션곡이었다. 트렌디 하고 빠른 게, 퍼포먼스를 보이기 좋은 노래로 느껴졌는데 관계를 감안하고 짚어 봐도 우정환네는 순탄한 듯했다.

"…힘내 보자. 파이팅."

"형, 이렇게 기운 없는 응원은 처음 들어 봤어."

"지쳐서 그래, 지쳐서……."

우리 쪽의 담당 작곡가는 현역 아이돌이다. 불만만큼은 절대로 표출해선 안 될 노릇이니 구석에 설치된 카메라를 신경 쓰며 적당히 무마해 버렸다.

가끔 초 치는 김지혁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괜찮을 느낌이다. 조용히 다음 단계에 대해 대비해 두자고 다짐했다. 오늘도 모두가 잠든 새벽을 노릴 계획이다.

* * *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현재 코인]

155 코인

[블랙 쿠폰]

1매

상태 창을 보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본무대에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단순 습득용 연습이라 많이 벌지는 못한 하루인데 내일부턴 쉬지 않고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시스템을 훑어보다 특성 부근에서 걸리는 점을 발견해버렸다. 그건 바로 2차 미션 당시 사용한 '저세상 귀염둥이(D)' 였다. 한 번 더 쓸 만할 것 같은데, 흐름이나 분위기를 봐선 사용해도 될 것 같은 사양이라고 판단했다.

질색한 것에 비해서는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게 뭐가 됐든 있는 것에 의지해 볼 속셈이었다.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루틴은 이제 대강 알 것 같기도 하다. 아직 3개밖에 없어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잘하면 꾸준히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것저것 구상한 것치곤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은데, 어쩔 수 없이 며칠 더 두고 보기로 변경했다. 지갑 사정이 너무 궁핍했는데 저게 모든 길을 방해하고 느낌이다.

일어나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야겠지. 눈을 굴려 방안을 훑어보니 모두 잠이 든 탓에 고요한 광경이 나타난다.

"음?"

그때 맞은편 침대 위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주시하니 이유준의 자리로 추정이 된다. 어둠에 적응된 눈이 형태를 감지하니 잠들지 못했는지 뒤척거리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별말은 없었지만 쟤도 지금 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사실 정답은 무시한 채 잠드는 건데.

"……."

아, 이유준이 저러니까 신경 쓰이잖아. 라이벌인 상황에서 첨언해 주기도 이상하단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수 없이 머리를 긁적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그대로 바닥의 슬리퍼를 주워 신었는데 침대 밖으로 나선 뒤까지 미약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잠든 척하고 있었지만, 밖으로 나서는 나를 눈치챈 모양이다. 넌 그냥 있어라.

방문을 열고 숙소 건물에 설치된 자판기를 찾았다.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불이 켜진 방이 여럿 보인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넣고 캔을 뽑으니 이건 무난하게 마시기 좋은 차 종류였다. 늦봄답지 않게 미적지근한 기운이 느껴져 연습 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지켜봤다. 다들 참 열심히 하네. 그걸 끝으로 다시 발을 옮겨 내 방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어 이유준의 침대에 다가가니 꿋꿋하게 자는 척하는 애다. 안쓰럽다 싶다가도 뭔 상관인가 싶어서 조용히 캔만 밀어 넣어줬다. 얘한테 문제가 생기면 팀 연습에 지장이 생기니 따듯한 거나 마시고 얼른 잠들란 의미였다.

하여간에 똑똑하면서, 그렇지 못한 구석이 있다니까. 목적했던 걸 끝낸 이후로는 별말 없이 침대로 돌아갔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다며 이불을 들어 뒤집어 쓴 상태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현실과 수면의 경계 속에서 움직이는 형체를 본 것 같았다. 아득해지는 정신 너머로 캔 뚜껑을 따는 소리가 들리곤 그대로 잠에 빠졌다.

* * *

귓가에서 연달아 알림음이 울리던 아침이었다. 이게 뭐지… 잠에서 깨지도 못한 상태로 눈만 비비고 있다.

[확률 성장 트리]

미개화: ???? ????(??) (진행률: 40%)

[47… 59… 72… 85… 94… 100%]

[확률 성장 트리 개화]

[확률 성장 트리]

개화: 리드미컬 스테이지(기본)

자신의 플로우를 유지합니다. 박자감 +35%

정신없이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허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이고 눈만 깜빡이니 궁금했는지 우정환이 질문해 온다.

"해신이 형, 정신 차려요~"

"어……."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이유준의 표정을 확인해 봤다. 이게 꿈은 아닌 것 같은데 저 멀리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중이다. 새벽까진 이런 상황이 아니지 않았나. 설마 이유준 쟤, 지금 개화한 건가.

"뭐지……."

이유준의 개화 방해 요소는 문채민과 우정환으로 추측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사자들과 해결돼야 처리되는 걸로 봤는데 내가 알고 있던 방식과 다른 점을 발견해서 머리가 복잡하다.

"형, 왜 그러세요?"

"…유준아, 너 마침 잘 왔다. 혹시 뭐 좋은 꿈이라도 꿨어?"

"네?"

아무것도 모른다는 낯으로 인사해 오는 이유준이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새로운 가설이 하나 떠오른다.

혹시 그건가, 관계 개선은 진즉 완료된 시점으로 마지막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부근이라고 봤다. 거기서 어제 내 행동이 무언가 작용을 하며 열렸다고 추정하니 전부 맞아 떨어진다.

이거 진짜야? 왠지 다른 인물들에겐 유한 면이 있는 시스템이었다.

"와, 너무하다……."

"네? 뭐가요?"

"아니야. 그나저나 넌 오늘 얼굴이 좋아 보인다."

"네. 뭐, 오늘 되게 기분이 좋네요. 형은 일찍 주무세요. 눈 밑이 새까매요."

괜히 꺼낸 주제인 것 같은 게 평소처럼 웃으며 나를 놀리던 이유준이었다. 얘랑 대화해선 말리지 않은 날이 드물었는데 즐거워하는 이유준을 내쫓던 과정이었다.

"그걸 지금 위로라고. 나도 준비할 거니까 이제 가라."

"하하, 네."

이마를 싸맨 채 고민에 빠져드니 머리맡으로 이유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고마워요."

"……"

정면을 응시했을 때는 이미 멀어져 있는 게 그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인물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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