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72화 (72/328)

72화

튀어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천장을 바라봤다. 내 앞길도 불투명한데, 남까지 도와준 게 돼 버렸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오지랖을 부리지 말아야지. 천성이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는 게 난 너무 정에 약한 것 같았다.

[개화에 성공하셨습니다.]

[플레이어님께 업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업적 코인 '1,000'코인 + 블랙 쿠폰 1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현재 코인]

1,155 코인

[블랙 쿠폰]

2매

필요하긴 했는데, 보상을 받았음에도 그저 얼떨떨하기만 하다. 고개를 가로젓다가 그냥 몸을 일으켰다. 복잡한 문제는 둘째 치고, 나는 연습을 하러 가야 하는 입장이다.

뭔가 되게 지치는 기분인데. 이제는 시스템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부 내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 * *

단계가 단계여서 그랬는지 예상보단 순탄한 연습이 이어진다. 팀원들의 실력이 받쳐 주는데다가, 방송 각을 아는 애들이 살아남아서 편했다.

김지혁도 선방하며 버텨 줘서 안도하고 있던 찰나였다. 조용히 지켜봐 보니 강태오가 조절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치가 바닥이어도 생존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은 살아 있는 애라고 떠올렸다. 모자란 부분을 다른 쪽에서 메꿔 줘서 어떻게 평균이 나오는 듯하다.

"다들 습득 속도나, 실력에선 전혀 막힘이 없으시네요. 와, 역시 어벤져……."

그래도 한 번씩 나사가 풀리는 건 제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듣자마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모두가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흐, 흐흠."

이건 제발 입조심을 해 달라는 뜻으로 느껴진다. 집요한 시선들 덕분이었을까, 이 이상은 내뱉지 않는 편이었다.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닦아 내며 정의 내린 부분이다.

컨셉 레퍼런스가 나오지 않아 안무 연습부터 돌입했다. 과묵한 성향들이 대다수를 차지해서 휴식이 잘 찾아오지 않는 극한이었다. 이젠 정말 쉬어야 할 타이밍이라며 지친 마음에 손을 들어 의견을 제시해 본다.

"저희 잠깐 휴식 좀 가지면 안 될까요? 프로듀싱 파트도 얘기해야 하잖아요."

"네. 그럽시다."

"좋아요!"

강태오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그와 동시에 한여빈이 벽을 타고 주저 앉았다. 티를 안 내서 몰랐지 모두 지쳐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연습실에 붙은 거울로 몰골을 확인하니, 어디를 봐도 그리 멀끔하진 못하다. 여기도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이건 절대 안 될 일이다.

"쉬는 김에 각자 컨셉에 대한 아이디어 좀 짭시다. 넉넉하게 30분쯤 여유를 두고 집합하는 건 어떠세요?"

"좋습니다. 슬슬 정해 봐야 하니까요."

"저도요~"

여기저기서 지친 목소리의 동의가 따라 붙었다. 이제는 괜찮겠다 싶어서 몸을 일으킨 찰나, 권혜성과 이유준이 뒤로 바짝 따라붙어 온다. 지긋이 주시하자 평소처럼 능청을 부려 댄다.

"형이랑 같이 있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잘 나오더라고요. 이번에도 도움 좀 받을게요."

"저도 같이 가요~"

나는 그저 화장실에 매무새를 정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쫓아오든 말든 아이디어가 나올 리는 만무했다. 착각은 자유니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한 번쯤은 당해 보란 속셈이기도 하다.

* * *

"뭐 좀 나오는 건 있어?"

"아뇨, 같이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형도 화장실밖에 안 다녀오셨잖아요."

"애초에 그거 때문에 나온 거였는데, 네가 착각한 거잖아."

"으음, 컨셉이라… 으음… 프로듀싱이라……."

화장실에서 땀으로 엉망인 얼굴을 정돈했다. 차림새를 다듬어 나오긴 했지만 바로 들어가기엔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근 휴게실로 발걸음을 돌린 무렵이었다. 물론 옆에는 익숙한 연습생 둘이 붙어 있었다.

1차 미션에서 힌트를 얻었던 장소라 재방문을 해 본 요량이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조용한 게, 요행을 바라긴 힘들 것 같다. 역시 뺀질거리는 애들은 다 탈락했구나. 인근 소파에 주저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고민하길 한참, 권혜성이 머리를 긁적이다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거다 싶은 게 안 떠오르네요."

"그래도 노래 방향은 딱 나와 있잖아요. 지금 생각나는 건 학교뿐인데……."

"학교면 교복 말하는 거야? 곡이랑 잘 어울리긴 하지."

여름 노래다운 청량함을 민 분위기로 현직 학생답게 풋풋한 생각을 말한다. 교복이라면 확실히 권혜성과도 잘 어울리는 의상이다.

"일단 그건 대다수가 염두에 두고 있을 것 같은데."

"강력한 후보군 중 하나니까요."

"달리기라, 달리기……."

"안에도 저희랑 비슷한 상황이겠죠?"

"그러겠지. 프로듀싱이 곧 무대 연출이랑 이어지잖아. 중요한 부분이니까."

"편곡 없이 가는 단계라서 무드를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메인은 유지하는 게 규칙이었는데 이건 스태프 일을 하면서도 확인한 사항이었다.

서바이벌 과정을 지켜보면 다양한 유형의 실수를 볼 수 있었다. 그중 압도적으로 나쁜 게 원곡을 반대로 뒤집는 거다. 팬들은 말도 안 되는 매칭 요소를 싫어했으니 기존 궤도에서 잘 어울리는 소스를 합치는 게 최선이었다.

풍성하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되, 특유의 방향성과는 맞추는 게 옳은 관점이다. 원곡의 정취를 건드리는 순간 엄청난 욕을 먹겠지. 3년간 겪은 경험이라 자신할 수 있었던 게 비교되지 않기 위한 시도에는 마지노선이 존재했다.

천천히 머릿속으로 가사를 떠올리며 배경을 맞춰 나가니 계절도 큰 몫을 차지한다. 초여름다운 분위기를 최고로 살리자.

"음, 달렸고, 땀이 났고, 힘들면 드러눕고?"

"그게 뭐야."

"가사를 축약해서요~"

권혜성이 신나게 종알거리고 있었는데 이게 뭔가 싶었지만, 직관적으로는 정답이다. 청년들의 인생을 달리기란 단어로 표현한 가사가 뛰어도 괜찮고, 지치면 쉬어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힘들면 그 자리에 드러누우라는 내용도 있었다.

여기서 나는 밝은 스포츠맨들의 마인드가 느껴지는 듯 했다. 스포츠맨이라고 하니까 그것도 좋네? 하긴 달리기란 제목부터가 청춘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너희, 한강 가 봤어?"

"…네? 한강이요?"

"아니, 뭔가 자유로운 느낌이 나서… 내가 아는 공원 중에서 제일 큰 곳은 거기거든."

"저 가 봤어요! 농구 코트 엄청 큰 게 있거든요. 가끔 애들이랑 공 하나 들고 가서 뛰어다녀요."

"농구 코트? 혜성아, 그거 좋은데."

운동하기 좋은 장소로 떠올린 게 한강이었다. 사실 나는 단순해서 이런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얘네의 경험을 들을 심산으로 묻자마자 권혜성에게서 좋은 의견이 쏟아졌다.

활동적인 걸 즐기는 성향답게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기색이었다. 학생도 좋았지만 좀 더 역동적인 게 어울리는 분위기였지. 그거라면 나와 강태오도 괜찮게 매칭되지 않을까.

"오, 진짜요? 스트릿 한 스포츠? 이런 걸 말하는 거죠? 잘 어울린다~"

"의상을 좀 더 다양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장소가 장소인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겠지."

"학생들도 있을 거고, 길거리 스포츠맨도 많겠죠. 나들이객도 방문이 잦은 곳이니까요."

"그거 진짜 완전 찬성이에요!"

"그럼, 여기서 스토리를 좀 깔아 볼까?"

"스토리요?"

멜로디는 도입부부터 모든 구간이 풍성한 편이었다. 여러 소스가 합쳐져 통통 튀는 사운드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그걸 효과적으로 표현할 방안을 강구했다.

"원래 그 나이 때는 부딪치면서 친해지고, 경험하면서 깨닫는 거잖아. 지금 연습생들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애들과는 작당 모의 하듯 여러 의견을 주고받는데 권혜성이 스타트를 끊어 술술 나오고 있었다. 막바지로 정리하며 결과를 내자 슬슬 합류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연습실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니 남은 건 성공적인 피력뿐인 듯하다.

"어? 오셨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뒤에 있던 이유준과 권혜성이 능청을 부린다. 걱정거리가 사라지면서 한결 편해 보이는 얼굴들이다. 다른 사람들을 훑어보다 팀원 무리에 섞여 들었는데 한여빈이 이유준과 덤덤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잘됐어요?"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여기는요?"

"여기도 이것저것 나왔어요.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네요."

여기도 그리 큰 탈은 없던 모양이다. 강태오가 있어서 그랬는지 평온한 광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간에서 조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안도한 구성으로 모두의 착석을 확인한 강태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방향성부터 정해 볼까요? 저희 셋도 생각한 게 있긴 하거든요. 먼저 하실래요?"

"네, 그래요."

쟤는 암묵적이나마 확정된 우리 팀의 리더였다. 그에 맞춰 김지혁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게 적극적인 행동만 봐도 기운이 참 넘쳐 나는 연습생이었다.

"전 학생이요! 교복!"

"저희 쪽에서도 그거 나왔어요."

"역시 이런 건 교복인가요?"

"여름이잖아요! 청춘, 하복, 학교, 이런 느낌이요!"

"결과적으로는 추구하는 거랑 결 자체가 흡사하네요."

"와, 진짜요?"

김지혁의 표정이 밝아졌는데 과연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었다. 쟤도 스토리 해석에 능력이 있는 타입인가 보다. 분란 없이 수평적으로 엮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네, 저희 쪽 생각은 혜성이가 말할 거예요."

"엇, 저요?"

"네가 생각했잖아."

"뭐, 그럼 제가 얘기할게요~"

편한 자세를 취한 권혜성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모두의 아이디어라지만 큰 틀은 쟤가 꺼낸 것과 다름없었다.

내 몫이 아닌데 욕심내는 건 잘못된 일이지. 난 준법 시민이라 이런 거에 많이 약하다. 게다가 설득하기도 저쪽이 더 잘 맞을 것 같았던 게 외관이 어울리는 게 컨셉에 대한 신뢰를 덧붙여 준다.

"일단 저희도 청춘을 말하는 건 비슷해요~ 그런데 거기서 좀 더 다양한 인간상? 같은 걸 표현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다양한 거요?"

"넵. 한강 농구 코트요! 거기 가면 학생도 있고, 길거리 스포츠맨도 많잖아요. 스트릿과 청춘을 좀 더 엮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다양한 차림새를 해 보자는 거죠? 학생도 그 구성 중 하나고? 확실히 무대 연출은 좀 더 화려하겠네요."

"청량함을 강조하는 분위기 같아요."

"네~"

한여빈이 호응을 해 주는 장면에서 이 의견을 좋은 뉘앙스로 바라보는 듯했다. 이유준은 그렇다 치고, 강태오도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김지혁은 자신의 의견이 베이스로 들어가 있어 그랬는지 제법 관심이 있어 보인다. 3차 미션에선 좀 더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게 그게 괜찮게 수용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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