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73화 (73/328)

73화

서바이벌 막바지에 도달한 부분으로 우리는 지금 블라인드 평가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반복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긴장감이 돌는 게 주변을 구경하며 다른 팀을 체크하던 중이었다.

"윤명 연습생이랑 정환이는 매번 붙는 것도 신기하다."

"하긴, 저 둘이 계속 같이했죠? 그러게요, 좀 신기하네요. 저번에 정환이도 말하더라고요."

앞 순서인 듯, 문 근처에 위치한 파란 깃발의 팀을 발견했다. 2위의 윤명이 포함된 곳이기도 했는데 조합을 봤을 땐 실력자들이 뭉쳐 있었다. 그 와중에 어벤져스 명칭은 벗어나 이상한 광경이라고 되새겼다. 하여간에 윤명은 운 스탯 효과가 엄청난 연습생이다.

"다 잘하는 사람들뿐이네. 전부 강한데."

"전 저기도 그렇고, 채민이랑 정원이 형네요. 선곡이 파격적인데 기대되지 않아요? 무대 엄청 좋을 것 같아요."

"확실히 둘 모두 실력파지. 게다가 쉽게 볼 수 있는 경연곡은 아니니까."

이건 나도 공감하는 점이었는데,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무리였다. 꾸준하게 상위 자리를 지켜 온 문채민과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이정원네 팀이었다.

당사자들끼리 선보일 묘한 시너지가 궁금해지는 장르를 가져갔다. 이 상황에선 견제해야 할 팀 1순위라고 짐작했던 게 메인 래퍼와 메인 보컬은 정해져 있는 수준이었다. 실력으론 구멍이 없을 것 같지?

"해신이 형?"

"아, 미안. 지금 어디 들어갔어?"

"Yellow 차례입니다. 방금 민석이 형네 들어갔어요."

건너편에선 강태오가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테스트장을 주시하고 있으니, 측면으로 돌린 옆태가 날카롭다.

미남이기는 엄청 미남이네. 눈치껏 떠민 일을 맡아 주는 대인배라고 보던 사람이다. 귀찮다는 기색은 깔려 있었지만, 어딘가 무른 구석이 있는 성격이었다. 이래저래 태생부터 스타감이다 싶어서 경이로워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런 날 눈치챘는지 여기로 강태오가 눈을 돌렸다. 가끔 내게 보여 주는 저 인간은 뭐지, 싶은 뉘앙스이다. 이유준이나 권혜성과 비슷한 단위로 묶인 것 같은데, 난 좀 억울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쟤한테 한 짓이 있긴 했다. 강태오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던 인물이었으니 그냥 봐주자며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이제 평가 준비 들어가죠."

* * *

"어? 여기도 구성원이 좋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묶인 거지?"

"그러게요. 3차 왜 이렇게 재밌죠? 팀 선정할 때 현장 분위기가 엄청났다면서요. 아, 나도 가 볼걸."

이 사람들, 너무 힘들다. 웃음기가 넘쳐 났지만 미묘하게 피곤한 멘토들이었다. 연습생 신분이 아니어서 단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적당히 무마하려고 노력하던 부근이었는데 김지혁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비슷한 심경인 것 같았다. 어색하게 굳은 자세에서 심란함이 느껴진다.

"부담감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사실 제가 계속 얘기했거든요. 작곡가들이 저희 팀 멤버다 보니 즐거워서요. 저랑 공태서 멘토님 가이드는 괜찮았나요? 한번 최선을 다해 봤는데."

"네, 정말 좋았습니다. 멋진 곡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보다 집중한 기색의 원겸이 턱을 괴고 질문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이유준이 모범 답안을 꺼낸다. 그 와중에 강태오는 입이 반쯤 열려 있었다. 쟤도 방어하려다 멈췄나 보네.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여빈도 함께 있다. 눈치 빠른 애들이 사방에 깔려 있어서 안도감이 드는 듯했다. 분위기가 그리 나쁘진 않은 게 한발 물러선 채로 멘토들의 진행을 관람했다.

"아~ 다행이다. 저희 앨범 타이틀 레코딩보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프 더 레코드이긴 한데 은휘랑 가온이가 이 노래 많이 아꼈거든요."

"원겸 멘토님, 평가 들어가기 전부터 너무 편애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랬나요? 그래도 어쩔 수 없죠. 팔은 원래 안으로 굽는 법이라고요. 그럼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이만 들어 볼까요?"

"네!"

드디어 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강태오가 조용히 손을 들어 대형을 지시해 오니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던 찰나였다. 들리는 인트로에 안무를 시작했다. 이건 경쟁을 떠나서 힘을 합쳐야만 통과할 수 있는 단계다.

그렇게 짧지만 강렬하던 평가를 마친 참이다. 열기에 후끈거려 땀이 흐르는 게 칼칼한 목에, 마른침이 넘어간다. 다른 팀원들도 매무새를 정리하는 중으로 멘토들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이거 초반 평가 맞죠? 뭐야, 너희 진짜 열심히 준비했구나."

"감사합니다……!"

서계현이 꽤 만족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겨 온다. 매 단계 거르지 않고 지적을 하던 사람으로 처음 겪는 일에 뿌듯한 마음이 든다. 적어도 기대치는 충족한 것 같지.

"이 팀은 AR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라이브 퀄리티가 안정적이네요. 메인 파트 맡아 준 친구들은 신해신 연습생이랑 김지혁 연습생? 둘 다 제가 혼냈던 사람들인데, 그때보다 많은 성장을 해냈어요. 칭찬해 드릴게요. 음색 합도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무드를 잘 살렸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날 혼내기만 했던 민나연이었다. 성장했다는 말 한마디에 안도의 한숨을 삼켜 냈다. 그건 김지혁도 마찬가지였는지 얼핏 돌아본 그곳엔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아무래도 김지혁 역시 나만큼이나 다사다난한 매일을 보냈나 보다.

"그럼 원겸 멘토님이랑 공태서 멘토님 의견이 빠질 수 없겠죠? 두 분은 어떻게 보셨어요?"

가장 중요한 안건이 튀어나왔는데 저 둘은 가이드 녹음까지 자처해서 맡아 준 사람들이었다. 푸시를 해 준 장본인들로, 작곡자의 스타일을 잘 아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부디 우리의 해석이 마음에 들기를 기도한 게 강태오도 나와 비슷한 견해였나 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멘토들을 바라보는 게 미묘한 긴장감이 스쳐지나갔다.

"…음, 태서야, 너도 마음에 들지."

"응. 난 만족해."

"이게 대답이 됐을까요?"

지켜보던 원겸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팔짱을 끼며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도 이내 슬쩍 미소 짓는다.

웃음끼가 있는 얼굴로 공태서에게 동의를 구하는 모습에서 능글맞거나 독설을 내뱉던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분위기였다. 장난기가 넘쳤지만 제법 진지한 게 상당한 극찬이 쏟아진 편이었다.

"와~ 원겸 멘토님이 엄청 좋아하는데요."

"그러게요. 그런데 저 같았어도 이렇게 잘해 낸 걸 보면 기뻤을 거예요. 애정이 남다른 무대잖아요."

"솔직히 이 정도론 기대 안 했거든요. 그래서 틀을 잡아 드릴 겸 가이드를 자처한 거였는데, 그럴 필요 없었네요. 제가 해석한 것보다 나아요. 이건 공태서 멘토도 동의하는 사실일 거예요."

"맞습니다. 역시 이런 건 저희보다 연습생분들이 탁월하시네요. 핵심을 잘 캐치 했어요."

"…감사합니다!"

"아~ 여러분이 너무 잘해서 작곡가들한테 잔소리 듣겠는데요. 방향 제시는 무슨, 저희가 말렸어요. 은휘랑 가온이가 엄청 좋아할 거예요."

한여빈과 김지혁은 상기된 모습을 보였다. 모두 기뻐하는 그림이 이어진다. 큰 고비는 돌파했다는 생각에 진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부담감 속에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 * *

방문한 적 있는 친구네 집이었는데 오늘은 다른 애들도 함께 있었다. 이번에는 실시간 반응 체크라는 걸 해 볼 생각이다. 스트리밍처럼 댓글이 달리는 걸 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요즘 유어돌 대유잼이던데."

"맞아, 아주 난리더라. 편집 왜 이렇게 잘해? 아, 물론 열받는 쪽으로……."

"그게 뭐야, 근데 인정한다."

컴퓨터와 연결된 TV 뒤로 길게 늘어진 선이 끌린다. 무릎 위로 키보드를 올린 친구와 다른 애들이 모여 앉았다.

화면 옆에는 저번엔 볼 수 없었던 댓글 창이 떠오르니 광고 중이었지만 관심도가 높은 편이었는지 빠르게 올라가는 멘트였다.

- 해신아 ㅈㅂㅈㅂ 데뷔하자

"얼씨구."

"좋다잖아. 내비둬~"

다른 친구의 태클과 동시에 본방송이 시작됐다. 3차 미션의 서막으로 지난 화의 전개 일부가 클립처럼 방영된다. 급상승한 연습생들을 강조해 주는 모양새로 그 안에는 단연 신해신이 섞여 있었다.

무지했던 일반인에서 11위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데뷔권은 아니었지만, 반응이 좋아 성장의 아이콘으로 커진 걸 알고 있다.

- 야 난 신해신이 제일 웃김 ㅋㅋㅋㅋㅋ

- 이 정도면 악마한테 영혼 판 거 아니냐 성장 속도 존나 무서워

- 초반엔 피디픽 아니어서 많이 잘리더니… 이제 좀 나오네 ㅠㅠ

- 캐릭터만 있었으면 못 떴지 실력이 되니까 유입하는 듯

- 난 다른 것보다 유한 성격이 너무 좋아 ㅠㅠㅠㅠ 내 새끼 ㅠㅜㅠㅠㅠ 내가 낳을 걸

- 그러기엔 너무 크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 그런고로 내 남편해줘

흡족한 얼굴로 댓글들을 읽어 나갔다. 눈살 찌푸려지는 악의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다.

- 난 김호원 밀린 거 노이해 ;

- 이번 시즌 성장 서사가 오진 것 같지?

- 유준아 힘내자 ㅠㅠㅠ 더 올라갈 수 있다!!!

- 민석이 다시 2위 올려 시부럴 랜드 너네 다 뭐하냐 안 일어나?

- 황준성 응원 부탁드립니다 ㅠㅠㅠㅠ 정말 열심히 하는 멋진 친구예요 ㅠㅠㅠ

팬들의 의견으로 온통 난리가 난 무렵, 단상 위로는 고우림이 천천히 등장했다. 큐 시트를 고쳐 잡으며 침착하게 진행하는데 높아진 단계만큼 줄어든 통과의 문이었다.

: 이번 3차 미션 주제는 뉴 장르 프로듀싱입니다.

- 와 나왔다!

- 이번엔 무슨 띵곡이냐 나 존버하고 있었잖아 ㅋㅋㅋㅋㅋ

- 논코어가 곡 줬다는 소문도 있던데 당장 스밍해~~~

- 논코어? 미친 거 아니야? ㅋㅋㅋㅋㅋ 엔넷 돈 개 많은가 보다

- 저거 다 우리 돈이야 ㅎ…. ㅋㅋㅋ 내가 저기에 얼마를 썼는데…

- 플리 대기 타고 있을게 ㅠㅠㅜㅠㅠㅠ

연습생들 사이로는 신해신이 비쳐 온다. 집중했는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 옆에는 이유준과 권혜성이 붙어 있어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구성처럼 보였다.

셋 모두 순위 발표식에서 급등한 연습생들이었다. 2차 무대로 나름 큰폭의 인지도 상승 루트를 탄 모양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기를 구가했던 게 그 증거가 바로 댓글 창이었다.

- 혜성아 이모다! 아이고 내 댄스강쥐 ㅠㅠㅠㅠ

- ㅅㅂ ㅋㅋㅋㅋ 댄스강쥨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잘 추긴 하더라 2차 때 날아다니던데 ㅠㅜㅠ 몸 진짜 잘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 권혜성 신해신 존나 좋아해 ㅋㅋㅋㅋ 유사아들같아 귀여워 한입에와악

- 이유준 사단은 평생 이유준만 할 것 미친 존잘 용안…

- 나 저런 얼굴 좋아했네 단정한 미남? 응 가슴이 웅장해진다~~~

- ㅜㅠㅜㅠㅜㅠㅠㅠㅠㅠ 저 얼굴에 이너준 덩치가 발림 포인트잖아 ㅠ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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