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와, 얘네 진짜 뜨긴 했구나. 인기 많아졌네."
좌석에 앉아 있는 연습생들을 뒤로하고 사방의 조명이 암전됐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들 위로는 대형 스크린이 내려온다.
"이거 그거지, 작곡가들이 자체 제작곡 주는 거?"
"어, 띵곡 나올 가능성이 높지. 노래는 또 기가 막히게 잘 뽑아요."
"저번에도 유명한 애들 나오지 않았나? 이번엔 더하겠네."
익히 들어 본 적 있는 멜로디가 나오고 있었다. 이건 해당 작곡가의 커리어를 알려 주는 구성인가 보다. 나는 이쪽 문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내가 알고 있을 정도니 유명세가 엄청날 것 같았다.
녹음실을 배경으로 한 공간에 두 명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이에 맞춰 사방에선 난리가 난 듯하다.
"…헐, 미친 거 아니야? 라인업 왜 이래?"
"와, 22century가 나왔어? 남현욱 작정한 듯……."
- ㅋㅋㅋㅋㅋㅋㅋ ㅅㅣㅂㅏㄹ… 내 구 본진도 얘네 노래 못 받았는데 ㅋㅋㅋㅋㅋ
- 아니 쌤들이 여기서 왜 나와요 ㅜㅠㅜㅠㅜㅠㅠㅠㅜㅜ
- 돈 진짜 많이 썼나 보다 나 지금 입 바닥까지 벌어짐 ㅋㅋㅋㅋㅋ
- NEW REVEAL은 돈 많이 줘도 노래 잘 안 주던데 ㅠㅜ
- 야 이거 역대급이다… 제작진 이간 것 같다더니 내부에 뭔 일 있었냐?
그 정점은 마지막 작곡가가 나왔을 때로 보였다. 수상하게 3초 정도의 미묘한 텀을 배치한 구간으로 뮤직비디오가 하나 재생 됨에 경악이 이어졌다. 컬러풀한 그래피티와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영상이다.
고개를 돌린 남자에 그만 깜짝 놀라서 친구들을 바라봤다. 저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어? 저 사람 멘토 아니었어? 원겸이라고 했나……."
"야, 이 엔넷 미친 새끼들아."
"와~ 진짜 작정했나 보네? 저거 타이틀이잖아. 작곡가 걔네였지?"
"…어?"
영문을 모르겠는 대화의 연속, 그 사이에서 스크린 위로 두 남자가 나타났다. 일반인치곤 지나치게 화려한 인상인 게, 어딘가 연예인 같은 사람들이었다. 설마 쟤네 아이돌이야?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는 인클루의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는 멤버 서은휘, 김가온입니다.]
"…인클루? 그거 분명 아까 뮤비 속 아이돌 그룹……."
"참 나, 쟤네 원겸네 그룹 멤버들이야. 아까 그 노래도 자기네가 작곡한 타이틀이고. 참고로 공중파 1위 했던 노래."
"그럼 지금 멘토네 그룹에서 곡을 준다는 거야?"
"어, 화제성은 미쳤지. 저 곡 가져가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보는 게 맞을걸. 그래서 더 난리인 거고."
유일하게 이성을 챙긴 친구가 이야기를 해주는데 다른 둘은 놀란 마음에 입만 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급하게 채팅 창을 돌아보니 여태까지 중에선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움직인다.
댓글 부대가 흥분했는지 반은 읽을 수 없는 격한 감정으로 보였다. 간신히 나머지를 해독해 보니 분위기가 달궈질 대로 달궈진 상태였다.
- ㅁㅊ거 아니야 ㅁㅊ거 아니야 ㅁㅊ거 아니야
- 대박 걍 웃음 밖에 안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쟤네가 여기서 왜 나와 진짜 ㅋㅋㄱㄱㅋㄲㄱㄱ
- 이 노래 가져가는 애들이 먹고 가네;;
- 은휘야… 가온아… 너네가 왜 여기 있어???
- 클러스터도 있을텐데? 너네 팬 단속하려고 깜짝 등장한거지ㅋㅋㅋㅋ
- 미친 거 아니냐곸ㅋㅋㅋㅋㅋ 인클루 선빈이랑 진재 빼고 다 한번씩 등장한거?????? 원겸 이 개 또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 또라이가 우리 애야… 지원겸 제발 적당히 해… 너 재밌는 거 좋아하는 거 우리 다 알아…
- 아니 대충 들어도 띵곡인데 무슨 일… ㅠㅠ 다음 타이틀로 걸고 나오라고!! ㅠㅠㅠ
- 이걸 연생들한테 주는 거야? 무슨 너네 자원봉사해…? 난 진심이다…?
- 지원겸 너지 서은휘 압박해서 노래 내놓으라고 한 거 투리구슬이야 쟤 말고 그럴 짬바도 없어
- 태서도 어이 털렸겠다 ㅋㅋㅋㅋ머리채 잡힌 거 딱 보이는데 ㅋㅋㅋㅋ
- 공태서 성격상 포기했을 가능성 100000%
- 우리 막태둥이 ㅠㅠㅠㅠㅠ 공격적인 엉아 때문에 고생하는 것 봐 ㅠㅠㅠㅠ 겸아 정신 차려!!!
- 진재가 같이 나와서 지원겸 목줄 잡았어야 했는데 하필 끌려 나온 게 태서라……
- 내가 보기엔 진재영이 제일 먼저 발 뺀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
- 아 쓰바 그럼 박선빈 너라도 말렸어야지!!!
- 숙소에 있을 선빈이 : ?
- 겸이 너 유어돌에 존나 진심인 건 알고 있었지만… 과몰입 그만해 ㅅㅂ
- 나보다 더 하네 ㅋㅋㅋㅋㅋㅋㅋ 졌다 진짜 ㅋㅋㅋㅋㅋ
- 제발 이런 노래는 너네가 컴백할 때 쓰라고ㅜ 대충 들어도 타이틀감인데
- 와 여름이다 내가 맨날 해달라고 노래 부르던거다… 근데 왜 너넨 안하고 남들 줘!!
- 노래 진짜 좋은데? ㅠㅠㅠㅠㅜㅠㅠㅠ 여름 청량 뚝딱이잖아 ㅠㅠㅠㅠㅠ
"근데 저 노래도 좀 위험한 것 아니야?"
문득 그런 가설이 떠올랐다. 멘토의 의견으로 노래를 선물했는데 팬들 입장에선 아쉬울 정도의 명곡이다. 지금만 해도 타이틀로 걸고 나와 달란 댓글이 한가득으로 보이는 게 이런 지점에서 해당 그룹 이상으로 잘해 내지 못한다면?
왠지 전제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것 같아 혀를 내둘렀다. 기존에 들을 욕 이상으로 항의를 받을 예정이라고 느꼈다. 실패했을 시의 리스크가 엄청나리란 생각이 든다.
안전주의자들은 식겁할 선곡이었는데, 뭐… 관심과 멋을 추구하는 연습생들은 좋아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해신은 전자 아니었나.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 못하면 많이 위험하지. 근데 지금 단계에 남은 애들은 다 평균 이상이잖아. 괜찮지 않을까? 일단 화제성은 깔고 가니까."
"대신 빡세잖아."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응원하는 연습생은 기본적으로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위험한 것보다는 안전한 걸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티를 내진 않아도 오랜 시간 관찰해 온 사람으로서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다시 한번 걱정이 밀려온다.
"근데 해신이 선곡 운 엄청 널뛰지 않았나. 노래 자체는 명곡이었지만, 난이도 자체는 높은 걸 많이 했잖아."
"어, 공감해."
: 이렇게 모든 영상의 공개가 완료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해당 곡들을 셀프 프로듀싱 하여 무대를 꾸리셔야 합니다. 정해진 것은 단 한 가지, 작곡가분들께 선물받은 미션곡뿐입니다. 연출부터 컨셉과 안무, 모든 영역을 여러분의 손으로 완성해 주세요.
연습생들이 클로즈업되는 게 기대로 들뜬 인물이 있는가 하면, 생각에 잠긴 사람들도 있었다. 신해신은 단연 후자에 속해 있는 게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음에도 바로 알아봤다. 머리 굴리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분위기로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그대로 색색의 깃발 옆에 선 장면이 이어졌다.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방송답게 사전에는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생긋 웃은 고우림이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를 가리키는 게 대망의 팀 선정 구간이 나온 듯하다.
: 강태오 연습생, 뽑아 주세요.
- 다시 봐도 얼굴 극락
- 야 진짜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야 진짜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야 진짜 감탄 밖에 안 나온다
- 위에 얼마나 놀란 거야 ㅋㅋㅋㅋㅋㅋ
- 저 키로 뚝딱이 아니란 게 미쳤지 케이팝 긴장해라
- 케이팝 아니어도 긴장하겠다
: 아차, 제가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뽑은 쪽지는 연습생 여러분들끼리 자체 교환이 가능합니다. 대신 펼쳐 보시면 안 됩니다. 정체를 알기 전까지만 가능한 부분입니다.
- 제작진 너어네는 진짜…
- 사탄 : 이건 좀…
- ㅋㅋ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엉망진창이다 뒷통수갑 ㅋㅋㅋㅋ
- 남현욱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꼬인거야? 혹시 전생이 꽈배기세요…?
- 전생이 꽈배기인 건 또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속 연습생들이 쪽지를 뽑아 나갔다. 선택을 완료한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고개를 돌리는 게, 얼핏 봐도 난리통이라고 분석했다. 친분이 있는 걸 떠나 말을 걸며 뒤바꾸는 현장이 비친다.
40위였던 인물이 마지막으로 쪽지를 받았는데 교환할 의사가 있었는지 다급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호루라기가 울린다.
: 이 깃발은 사전에 공개된 미션곡의 선택지입니다. 방금 뽑은 쪽지 안에 적혀 있는 컬러와 동일한 색상의 후보군 6가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연습생 여러분은 한 명씩 공개되는 색상에 맞춰 이 깃발 뒤로 서 주시면 되시겠습니다. 그걸로 3차 미션의 팀원과 미션곡이 모두 정해집니다. 더 이상의 정정 기회는 없습니다.
[패닉으로 물든 연습생들]
[과연 그들의 미래는?]
- 종이쪼가리 하나로 팀이랑 곡이랑 같이? 리얼 사탄들이네 너네 존나 나빠
- 뒷통수 개 잘 쳐 누가 생각했냐 ㅋㅋㅋㅋㅋㅋㅋㅋ
- 바꿨는데 갈리면 퍽도 즐겁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또 악편 할 거 아니지?
- 안 할 리가 없잖아… ㅠ
- 다른 건 모르겠고 비교는 많이 할 듯 완전 각 잡았는데 ㅋㅋㅋㅋㅋ;;
1위부터 차례대로 공개되는 시간이 이어졌다. 유명세가 높은 인물들이라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강태오를 기점으로 윤명이 등장했던 게 다행히도 최상위권 두 명은 갈린 분위기였다. 데뷔조 멤버가 겹쳐 들어가면 견제당한다고 들었다. 픽이 있는 팬으로서 반갑지 않은 일이다.
"야, 저게 뭐야."
"쟤네 왜 저렇게 붙었어?"
"미쳤다……."
"제작진 이런 것도 짜나?"
"얘네 이런 건 안 건드는데?"
안도하기도 잠시, 연달아 불린 안정권 멤버들이 같은 팀으로 분배되기 시작했다. 이민석과 박승경을 시작으로, 문채민과 이정원이 한곳으로 배정받았다.
이건 혀를 내두를 만한 실력파 팀의 구성이다. 그러다 신해신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는데 생각해 보니 쟤는 박승경과 쪽지를 맞바꾼 전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쪽지 하나로 뒤바뀐 운명!]
- 신해신 웬일로 운이 좋다? ㅋㅋㅋㅋㅋㄱㄱ 시발… 왜 내가 다 슬프냐…
- 승경아 ㅠㅠㅠㅠ 너 왜 바꿨어 ㅠㅠㅠㅠㅠㅜㅜㅠㅜ 미친 다시 돌려!!!
- ㅋㅋㅋㅋㅋㅋㅋ 존버는 승리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소리질러!!!!
- ㅎㅎ 바꿔달라고 해서 교환해준거잖아
- 아니까 제발 그만해… 승경픽 지금 대가리 빠개진다…
- ㅋㅋㅋㄱㅋㄱ 이번엔 잘 빠져나갔어 좋아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ㄲㅋㄱ
여기저기서 어벤져스에 대한 드립이 튀어나온다. 현재로서 유력 후보는 Green과 Yellow였다. 좌불안석으로 다음 순서를 지켜보던 과정이었다.
10위를 넘어가며 신해신의 차례가 다가오니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으로 3차 미션의 향방이 정해졌다. 마른침을 삼키다 나오는 자막에 그만 눈앞이 깜깜하게 흐려졌다. 옆에 앉은 친구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는데 불길하다 싶었더니 그게 맞아떨어졌다.
[다시 한번 뒤바뀐 운명!]
[강력한 다크호스의 등장, 팀 Purple!]
"…장난해?"
"넌 좀 앉아. 정신없어."
"아! 존나 웃기네! 쟤 뭐야?"
"이번 시즌 공식 똥손 신해신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