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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76화 (76/328)

76화

심리적 압박이 적으면 좋은 거겠니 싶었다. 이렇게 된 이상 팀 퀄리티라도 챙겨 가야 했다.

"다들 긴장하진 않을 것 같네요. 슬슬 준비합시다."

검은색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강태오였다. 얼핏 보이는 눈가가 사람을 겁먹게 만든다. 큰 품의 맨투맨이 큰 덩치를 부풀릴 것 같았는데 얘의 옆에 서 있으면 그 누구도 왜소해 보일 체격이었다.

바지 옆구리의 체인이 절그럭거리며 움직인다. 강태오는 이것마저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얼굴로 투박한 운동화를 신은 큰 발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지시가 내려온다.

"팀 썸머트릿, 스탠바이 하실게요!"

"네!"

권혜성과 김지혁의 씩씩한 대답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이템 보관함을 여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소품을 챙겨 들곤, 팔을 뻗어 시스템을 적용한 찰나다. 파이널 전의 마지막 준비 과정이 끝났다.

* * *

"우리만 돼서 미안하네."

"운명이지, 뭐. 그래도 반은 붙었잖아. 사실 이것도 대단한 거야."

"그래?"

"난 아무도 못 될 줄 알았거든. 이거 그 정도로 치열해서."

우격다짐으로 넣은 신청이었다. 며칠 되지 않아 연락이 날아들었는데, 4명 중 2명이 방청에 당첨됐다. 동일한 시간에 했음에도 갈려 버린 희비다. 신해신을 좋아하는 친구는 너무 좌절해서 미안할 지경으로 자기 대신 잘 보고 오라고 말해 줬으니까, 나는 그걸 들어줄 생각이었다.

처음 겪는 열띤 환경이 많이 어색하다. 기나긴 대기 끝에는 정해진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인근의 풍경을 보고서야 현실이 파악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마스터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대표 고우림, 허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은 환호성이다. TV에서만 보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나서 신기하다.

"3차 미션에 대한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바로 뉴 장르 프로듀싱입니다."

미션 중 가장 인기가 높은 단계라고 말했다. 유명 작곡가들이 합류한 모습을 보여 기대치가 컸던 게 원곡자들이 있던 무대와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았다. 어디선가 받아 온 배포 슬로건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부터 각 팀은 선물받은 곡을 메인으로 무대를 연출하게 됩니다. 정해진 것은 단 두 가지, 노래와 안무입니다. 그 외 모든 건 해당 연습생들의 결정에 따라 정해졌으며, 마스터 여러분은 가장 좋았다고 생각되는 팀에게 투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또한, 이번 과정에는 개인 투표도 동시 진행됩니다. 전용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하여 마음을 뒤흔든 연습생을 선택해 주세요. 스폐셜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무대의 서막을 열어 보겠습니다.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 지금 바로 도약합니다."

프로그램의 시그니처 멘트가 나오며 그와 동시에 첫 번째 순서의 연습생들이 올라왔다. 3차까지 온 만큼 인지도가 있는 구성이었는데 주변에는 해당 연습생을 응원하는 팬들이 악을 쓰고 소리 질렀다.

"명아!"

"정환아!"

"민국아! 정민국!"

"찬규야!"

화려한 테크웨어 차림의 팀이다. 보아하니 여기에는 그 유명한 윤명도 섞여 있는 듯하다. 청량한 곡만 하던 이전과 달리 빠른 반주에 자신감 넘치는 가사가 돋보이는 EDM 장르였다.

검정색을 베이스로 붉은 띠와 체인이 얽혀 있는 액세서리를 하고 있었다. 어린 인상이지만 체격이 좋아서 그랬는지 잘 어울린다.

그 옆에는 자주 묶이는 우정환도 목격됐다. 같은 소속의 문채민 보다는 개구진 성격의 타입이다. 꾸준한 상승세가 재밌는 감초 캐릭터였는데 오늘도 긴장으로 굳은 사람들 속에서 여유를 부리며 웃고 있었다. 윤명의 어깨에 팔까지 걸쳐 올리는 게 뭐가 됐든 참 능글맞은 연습생이었다.

그리고 그런 뒤로 낯익은 인물이 하나 더 있었다. 신해신과는 1차 평가 때 같은 팀을 했던 김찬규였다. 말수가 없는 걸로 보고 있었지만, 열심히 하는 편이어서 색다른 연습생이었다. 특유의 우직한 인상이 강해, 이런 컨셉에는 특화되어 보인다. 호명도 제법 되는 게, 인지도가 오르긴 했나 보다.

"우정환 쟤도 참 머리 잘 써."

"2차 때 팀 조율하면서 인기 끌었지? 트러블도 안 일으키고, 기본적으로 착하니까. 또 저런 애들은 수요가 있잖아."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 팀 조합 난 괜찮다고 보거든."

"내가 봐도 그래."

간단한 자기소개를 끝으로 본공연이 시작됐다. 암전된 무대에 불이 들어온다. 록 사운드를 베이스로 한 인트로가 나오고 예의 그 멍한 표정의 윤명이 센터로 나섰다.

얘는 무대만 올라가면 사람이 달라지는 게, 특유의 긴 팔다리가 격한 동작을 잘 소화해 낸다. 흔들리는 장식의 의상이 시선을 사로잡는 게 도무지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 Make a noise (Make some noise)

이건 우리만의 Sound This is my answer!

Ddu… Ddu… Ddu…

꺼져 가는 기계 소리를 마지막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등 뒤에는 엉망으로 스크래치가 난 화면이 정지해 있었다. 너른 어깨가 빠른 템포의 안무로 헐떡거렸다. 뽀얗고 말간 이목구비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야, 첫 무대부터 세다."

"얘네 역시 잘한다. 노래도 좋았는데, 컨셉을 잘 짰네."

좌중이 흥분으로 물들어 혼이 쏙 빠질 것 같았다. 이 팀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분량에 비해 끊임없이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번 기회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다.

처음부터 윤명을 선두로 한 팀이 나와 좋은 호응을 이쓸어 냈다. 타고난 인기 멤버에 실력파 구성원이 남은 연습생들은 그걸 보며 긴장한 낯을 지었다. 바로 다음 순서에게 압박감으로 다가간 모양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뒷 차례인 Red 팀에서 제법 눈에 띄는 실수가 나왔다. 둘 다 본 적 있는 얼굴의 사람들로 안타까움에 탄식하며 나머지를 지켜봤다.

"방금 김호원이랑 백현성 부딪쳤지."

"응, 동선 꼬인 것 같은데."

좋은 소스를 받은 것에 비해 애매한 결과물이었다. 컨셉과 소화력이 뭔가 아쉽게 느껴졌는데 그걸로 모자라 본공연 내 충돌까지 발생했다.

벌스였다면 무마가 됐을 텐데, 절정에 가까운 2절 싸비다. 당사자들도 조금은 당황한 눈치로 뒤에서 안무를 추던 연습생은 고개까지 돌려버렸다.

"와, 근데 나 같아도 표정 관리 안 될 것 같더라."

"어, 좀 불쌍해……. 투표 시스템이라 신경 쓰이겠지."

멘탈이 나간 게 틀림없어 보인다. 디스코풍의 밝은 러브 송이었는데 엔딩은 꽤 어색한 편이었다. 안타까움에 혀를 차며 남은 경연을 지켜보니 세 번째 타자는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곳이었다. 문채민과 이정원이 화려한 차림으로 걸어 올라온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팀 캡쳐입니다."

차분한 인상의 무리라고 유추되는 조합이었다. 성격들이 비슷해서 그런지 유달리 어른스러웠다. 초반부터 상위권을 고수하고 있던 문채민으로 그에 따른 환호성이 멈추지 않는다.

그 옆으론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이정원이 서 있었다. 이런 게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소화를 잘 해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몸을 물리는 다른 팀원들과 함께 준비에 돌입한다.

"얘네 강하겠다."

"그러니까, 이거 완전 먹히는 컨셉."

대충 봐도 좋은 합을 가진 무리로 보인다. 훌륭한 기세의 강자 둘이 중심을 잡아 지탱해 줬다. 심지어 흥행은 따다 놓은 작곡가 페어의 곡을 했다

"채민아! 누나 왔다!"

"아! 이정원! 오늘 얼굴 미쳤냐고!"

고개를 기울여 그들을 관찰해 봤다. 평소의 단정한 성향들과 달리 무채색의 핏되는 의상을 입고 있었다. 가죽 바지가 꽤 파격적인 선택임을 알 수 있었지만 무조건 먹히는 흰 셔츠와의 조합이다.

"그럼 팀 캡쳐의 무대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22centuty 작곡의 'Snare'입니다."

큐 카드를 흔들며 사라지는 고우림이었다. 대형이 갖춰지자 노래가 시작되고 검은 배경에 안개가 흘러나왔다. 특수 효과부터 어두운 무드로 눈길을 사로잡는 게 살벌한 기운이다.

- 옭아매 Tied up

이건 바로 너의 Snare

Predator n prey

내가 널 사냥해

늦었어 It's over

- 알잖아 게임의 끝 Capture

이제 그만 포기해 Goof up

a rat in a trap

You lost already

1차 때보다 훨씬 격한 반주의 노래인데 문채민은 본인과 잘 어울리는 미션지를 갖고 나왔다. 나이는 어렸지만 스타일이 자신 있어 하는 분야같았다. 이번으로 쐐기를 박은 느낌이다.

파트가 바뀌며 인 이어를 매만진 이정원이 걸어 나왔다. 트랩 비트에 맞춰 능숙한 보컬을 보여 주는 게 미성이라고 느꼈는데, 힘이 있어 놀라웠다. 쟤는 그냥 타고난 메인 보컬감인가 보다. 래퍼와 보컬이 전체 무대의 밸런스를 잡아 주고 나머지 팀원들이 받쳐 주는 역할을 하며 독보적인 퀄리티가 나온 듯하다.

"미친, 얘네 진짜 잘한다……."

"엄청 눈에 띄지."

뒤를 돌아 고개를 꺽은 마지막 자세였다. 응원과 비명으로 얼룩진 객석에 헐떡이는 이정원이 클로즈업되며 막이 내렸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 색다르네.

곧이어 남은 전개를 위해 고우림이 투입됐다. 멤버들은 아까 전과 달리 흐트러진 몰골이었다.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강력한 다크호스임이 틀림없었다. 그저 느슨하게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지만, 한순간에 모두를 흥분으로 이끌어 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걸 마지막으로 다음 타자가 등장했다. 앞과 대비되는 컬러풀한 향연이었다. 그 속에는 익숙한 사람이 들어가 있어 순간 깜짝 놀랐다. 신해신……?

"안녕하세요! 저희는 팀 썸머트릿입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주된 원인이다. 계속 기다리고 있던 신해신네 팀이 나온 시점이었다. 침을 삼키며 당장에 집중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컨셉추얼 하던 앞 팀과 달리 밝고 힙한 분위기를 풍긴다. 시원하게 넘긴 앞머리와 반다나가 경쾌하다. 품이 큰 차림으로 스트릿 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얘네? 완전 힙이네."

"그러게."

"안 그래도 큰 애들 많은데, 옷도 크게 입으니까 더 커 보인다."

"강태오 포스가 장난 없어. 저 모자… 원래 저런 느낌 나던가?"

"아니, 내가 쓰면 그냥 부랑자던데."

동행해 준 친구 역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 와중에도 감탄하는 기색이 사라지지 않는다. 눈가만 얼핏 보이는 강태오인데 얼굴을 훤히 드러낸 신해신과 반대됐다. 거기에 특이한 조합이 둘이나 끼어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대화도 내 견해와 동일했다.

"뭐지? 김지혁이랑 권혜성? 저 둘만 교복이네?"

"그러게? 얘네 되게 특이하다. 그냥 스트릿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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