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설치된 모니터로 남은 공연을 지켜봤다. 데뷔조 멤버가 없는 Orange 팀이다. 이러다 할 특색이 없는 곳이기도 했는데 그게 문제여서 멘토들에게 혼났다고 들었었다. 인지도가 있는 작곡가 크루의 미션곡을 택했지만 그만큼의 호응은 얻지 못한 듯하다.
애매하게 끝난 게 느껴져서 아쉬워하니, 당사자들은 나보다 더할 심정같았다.
그다음은 마지막 팀으로 보이는 곳으로, 올라온 연습생들의 구성에 조용히 집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현장의 반응이 느껴지는 게 여기까지 들리는 걸 보면 인기가 많은 애들이었다. 3차의 마무리는 Yellow 팀이 가져갔다.
이민석과 박승경의 합류로 주목받은 곳이기도 하다. 하락세를 타긴 했지만, 여기 역시 상위권의 콜라보였다. 기대와 긴장으로 가만히 지켜보니 이에 다른 팀원들도 주시하는 기분이었다.
"여기 잘하겠죠?"
"응. 강할 것 같은데. 노래도 그거였지."
"네, 흑백논리요."
"처음 보는 컨셉이 나오겠네."
"솔직히 저건 지금까지 안 나온 게 이상했죠."
우리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강태오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박승경이 메인 보컬일 거예요."
"…어떻게 알았어요?"
"태오, 저 둘이랑 같은 방이잖아."
김지혁의 물음에 한여빈이 대답해 줬다. 정답이었는지 강태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거 아니어도 알 방법이 있긴 합니다. 민석이 형은 댄서라서, 후렴에서는 빠졌을 것 같았거든요."
확실히 저게 맞는 이론이지. 파이널이라는 고지를 앞둔 시점이었으니, 가장 잘하는 파트를 노려야 했다. 이민석은 원래부터 댄서 포지션이었는데 2차에서 보컬을 노렸다가 손해를 본 전적이 있었다. 그때를 교훈 삼았다면 주력 분야로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애들을 제쳐 두고 저 둘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분 남짓한 공연으로도 많은 변동이 생기곤 했으니 이거 원, 방심을 할 수 없다.
"고전풍 좋지."
"와, 의상이 멋있네요."
고즈넉한 감성이 있는 댄스곡에 메인 무드를 맞춰서 전원 한복을 입은 것 같았다. 확실히 저 노래에는 이만한 옷이 없는 편이다. 팬덤도 좋아하는 정취의 차림새네.
역시 경력직 신입은 강한 점이 있다니까. 현명한 아이디어였다며 연습생들의 공감을 사는 중이었다. 뭐가 됐든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스들이 이어져선 눈여겨봐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한번 세트장이 암전됐다. 핀 조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민석이 등장한다. 머리띠를 동여맨 채 단독 센터로 세운 구성으로 귀에 익은 전통 악기의 곡조가 울려 퍼졌다.
"…잘 춘다. 이민석 형은 비트 킬링이 좋은데요?"
혜성아, 비트 킬링이 뭐야. 또 나만 알 수 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이래서 비전문가가 힘든 법이라고 하는 거였다. 어쩔 수 없지, 적당히 아는 척하며 무대로 눈을 돌렸다.
"…그래?"
"네, 코레오 말고 크럼프를 추실 줄 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힘이 좋으시네요."
날쌘 몸놀림이 카메라에 잡혀 온다. 권혜성은 침착하게 분석하는 모습으로 같은 포지션을 지닌 사람답게 긴장이 됐는지 굳어 있다.
나오는 방향상 앞으로의 전개를 알 것 같은 게 때마침 스크린 위로 거대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전통 가옥을 내려다보는 장면이었는데 옛 정취의 사운드가 가미된 현대풍 댄스곡이다. 흥미롭게 관람하며 앞으로에 대해서도 걱정해 봤다.
이를 간 게 느껴지는 기획이어서 무서웠다. 의상부터 아주 화려한 편으로 강태오의 예상대로 싸비는 박승경이 도맡았다. 발성이 좋아서 그랬는지 가사가 잘 들리는 게 이거 잘못하면 위험할 것 같았다.
일단 독보적인 스타일의 테마다. 규모가 큰 스케일로 시선까지 끌어모았다. 우리도 구성이 복잡한 편이었지만, 저기를 보니 더 해도 됐을 것 같다.
"…어?"
"아, 떨어트렸다!"
"어떡해."
사방이 탄식에 잠겨 안타깝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깐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모양이다. 눈치를 보다 이유준에게 질문해보니 얼핏 본 영상 속에선 당황한 인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왜 그래? 나 못 봤는데 무슨 일이야."
"댄스 브레이크에서 뒤에 있던 연습생이 부채를 놓쳤어요. 센터한테 건네주는 모션이었는데, 바닥에 있으면 걸리니까 일단 발로 민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민석이 빈손이었다. 회심의 구간이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했나 보다. 원 테이크 생방송이 아니어서 다시 녹화하면 될 일이긴 했다. 하지만 현장 투표를 떠올리면 저건 낭패다.
뒤늦게 상황이 파악됐는지 안색들이 좋지 못했다. 누가 봐도 동요하는 낯이 둘셋은 족히 있어 보인다. 정성을 들였단 걸 알고 있었지만, 나 같아도 심장이 철렁했을 사건이었다. 라이벌을 떠나 내 실수라고 가정해 보니 숨이 절로 막히는 아찔함이었다.
* * *
관객이 빠진 무대 위, 이전보다 많이 준 인원이 단박에 실감 났다. 긴장된 표정으로 고우림을 마주한 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능숙하게 말을 이어 간다.
"우선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 주신 연습생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매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뿌듯한 대표입니다."
적당히 호응에 맞춰 박수를 쳐 줬다. 경계 대상 넘버 원은 문채민네 팀이다. 그 전까진 아군이라며 동조해 온 인물이었는데 이렇게 한순간 강한 존재로 변모했다. 이정원이 껴 있어 더욱 난처한 것 같았다. 비교 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하던 과정으로 강한 애와 붙어 보니 묶이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아니지. 붙는 것도 상대하는 것도 전부 힘들다.
"우선 보상에 대해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가장 많은 득표수의 팀 1위는 해당 팀원 전원에게 1만 표의 베네핏이 부여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마스터분들의 개인 투표가 남아 있습니다. 단독으로 진행되는 만큼 1위부터 5위까지 책정되었습니다. 보상으론 추가 베네핏이 차등 지급될 예정입니다."
"이거 더블이에요?"
"…둘 다 해당되면 얼마나 많이 받는 거야?"
모두 놀랐다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투표수로 유리한 그림을 만드는 건 익숙했는데 추가로 주겠다는 건 처음이다. 보통 앞보다 뒤의 내용이 파격적이니까 팀 1위를 거론한 후 개인에 대한 부분을 전달했다. 후자가 무조건 더 크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현장 투표 5위에겐 5천 표, 4위에겐 1만 표, 3위에겐 1만 5천 표, 2위에겐 2만 표, 1위에겐 2만 5천 표가 가산됩니다."
"……!"
크다 못해 획기적인 혜택들이 이어진다. 실력자들이 남아 있는 만큼 팬덤이 견제됐는데 이 무렵에서 몇만 표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한 끗 차이로 변동하는 게 서바이벌이었으니 팀이든, 개인이든 하나라도 받아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럼, 팀 1위부터 발표해 보겠습니다."
사실 여기에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기도 했다. 개인 투표는 인지도가 센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나마 가망이 있는 걸 꼽아 보자면 여기일텐데 뭐가 됐든 우리 팀엔 만년 1등 강태오가 있었다. 내 시선이 제법 집요하게 다가갔는지 강태오의 눈이 흔들리는 걸 목격했다.
"축하드립니다. '달리기'를 한 팀, 썸머트릿입니다."
"와!"
"형들, 저희예요!"
김지혁이 냅다 비명을 지르니 권혜성은 이유준부터 찾아 얼싸안았다. 한여빈과 강태오도 안도하는 기색으로 나 역시 입가를 쓸어 만지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2차에 이어 이번에도 팀 1등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쫓아오는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 같았다. 나직하게 한숨을 쉬니까 한여빈이 말을 걸었다. 바로 옆에 있어 대화하는 형식이었는데 이젠 제법 편안한 사이다.
"형, 저희 1위래요."
"그러게. 다행이네."
내색하진 않았지만 모두 기뻐하는 행색이었다. 바로 인근에서 권혜성이 활짝 웃는 게 눈에 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유준 역시 즐거운 모양이었다.
"많이 기쁘셨나 보네요. 팀 썸머트릿 전원에게는 각 1만 표의 베네핏이 부여됩니다. 축하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적당히 감사하다며 몸을 물렸지만 이게 끝이 아닌 단계였다. 다음을 기다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는데 확률적으로 내가 호명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박수를 쳐 줘야 하는 입장으로 누가 불려도 크게 놀라진 않을 기분이었다.
"그럼 개인 득표율이 가장 높은 5인의 연습생을 공개하겠습니다. 스크린 오픈."
나직한 신호와 함께 등 뒤가 밝혀졌다.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인근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굴리니 확인한 내막에 그만 굳어 버렸다. 안 놀라겠다고 한 지 30초 만에 거짓말을 한 게 되어 버렸다.
1위: 강태오
2위: 윤명
3위: 문채민
4위: 이정원
5위: 신해신
어, 저기 왜 내 이름이 있는 거지?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몇 번을 재차 읽어 봐도 바뀌지 않는 화면이다. 어안이 벙벙해 입을 벌리고 서 있으니 멀지 않은 위치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저기 두 명은 팀, 개인 다 받아 간 거야?"
"와, 대박, 진짜 대박……."
퍼뜩 정신이 차리기도 전에 안내 사항이 들려 왔다다. 귀가 벙벙하게 울리는 감각으로 머리가 멍한 느낌이다. 다양한 수는 많이 사용했다지만 이 정도의 시너지는 예상하지 못한 구간이었다.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넘긴다 치고, 과한 행운에 얼떨떨하다.
"최종 결과를 바탕으로 도출된 베네핏 지급 내역을 발표하겠습니다."
- 10,000표
[김지혁] [한여빈] [권혜성] [이유준] [이정원]
- 15,000표
[신해신] [문채민]
- 20,000표
[윤명]
- 35,000표
[강태오]
"축하드립니다. 그럼 이상으로 3차 미션 '뉴 장르 프로듀싱'을 끝내 보겠습니다. 연습생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으로 대표 고우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슬레이트의 타격음을 끝으로 녹화가 종료됐다. 매너 있게 미소로 퇴장하는 고우림을 지켜봤다.
"우와, 베네핏이다!"
"만 표나 받았네."
"너무 얼떨떨한데…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태오야, 3만 5천 표는 어떤 느낌이야?"
"…그냥 너무 감사드리는데."
권혜성은 제자리에서 폴짝거리느라 바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녹화가 정리되며 연습생들에게서 여러 대화가 오갔다. 여기를 보는 눈이 많은 듯한 게 하긴 중복으로 나온 사람이 몰려 있었다.
일부 보상이 한쪽에 쏠린 결과 같은 게 문채민과 이정원네도 이야기를 나눴다. 저 팀도 상당한 실력자들의 무리였다. 그 안에서 단 둘만 베네핏을 받아 간 상황이 신기했다. 주목을 쏠리니 서둘러 여기를 뜨고 싶어졌다. 일단은 숙소로 돌아갈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