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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79화 (79/328)

79화

"이번 무대 진짜 재밌었다~"

"네가 좋아하는 동작 많이 있던데? 안 그래도 거기 엄청 어려웠어."

"유준이 형도 은근히 엄살이 심해~"

"…아니, 거긴 나도 어렵더라. 너랑 태오만 즐거우면 다냐."

"…뭐, 난 좋았는데."

활기를 띄며 장소를 옮기던 단계였다. 무대 의상을 탈의하기 위해 백스테이지로 들어가는 길, 멀지 않은 곳엔 앞서 걷고 있는 다른 연습생들이 보였다. 모두 허심탄회하게 후일담을 나누고 있으니 적막 가득한 무대 후미에서 소란이 들렸다. 제작진이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것 같다며 넘겨짚으니 한참 전에 먼저 출발한 우정환과 문채민이 돌아온다.

"형들."

"어? 채민아?"

"유준이 형, 스톱, 스톱."

이상한 기분에 저 앞을 둘러보니 서둘러 들어간 연습생들도 돌아 나오고 있는 광경이었다.

"너네 왜 다시 왔어? 입구 저기 있잖아."

"아, 저기 그게……."

"지금 저기로 못 나가. 다른 데 길 없나."

주변을 살피니 아예 몸을 돌려 빠져나오거나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연습생들이 많다. 사태 파악을 위해 질문했는데 어쩐지 좋지 못한 예감이 드는 것 같았다.

"저기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아, 등불 팀 싸워."

"등불 팀이면, 흑백논리 한 곳……?"

눈을 크게 뜬 권혜성이 되물어 왔다. 등불 팀이라면 분명 거기다. 화려한 연출과 독특한 주제로 강세를 보이던 조합의 무리. 싸움꾼 기질이 있는 사람은 없는 곳으로 파악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분란이 일어났다 하니 나도 놀란 참이다.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고요한 적막이 흐르던 순간 꽤 큰 고함이 다시 들렸다.

"…어!"

"방금 그거 민석이 형 목소리인데."

"뭐야, 가서 말려야 하는 것 아니야?"

모든 연습생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한곳을 바라봤다. 카메라가 돌고 있을 여지가 보여 문채민은 조금 동요한 것 같은 안색이다. 침착하더라도 이런 거랑은 별개지. 괜히 잘못하면 엮일 수도 있는 입장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보이는 게 다 함께 가기도 이상하고, 무시하기도 애매한 시점에 가까웠다.

때마침 고민하던 강태오와 눈이 마주쳤다. 아, 결국 우리 담당이구나. 동의하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나랑 강태오 연습생이 다녀올게. 너네는 여기 있어."

"형들이 가 보려고요?"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그리고 우리라도 말려야지."

"…해신이 형? 괜찮겠어요?"

"내가 그래도 너네보단 연장자야. 이런 일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가 신호 주기 전까진 오지 마."

애들이 거슬러 온 곳을 가리키니 저기는 녹화를 하고 있을 확률이 있었다. 카메라가 없으면 좋을 것 같지만 말이야.

말릴 만한 성정들에 연장자들이 가는 게 나아 보인다. 다른 걸 떠나 일단 나도 사회적인 책임감과 도의는 남아 있었으니까. 사실 별로 가고 싶진 않았는데, 2살만 어렸어도 남에게 떠넘겼을 문제였다. 난 정말 손해 보는 성격인 게 맞다니까.

"저 팀에 지인 있는 사람은 없지?"

물어보기가 무섭게 다른 쪽에서 답변이 나왔다. 그건 문채민 옆에 있던 우정환이었다. 쟤도 어려서 데리고 가기엔 그런데, 잠시 망설이니 손을 들어 가며 자처해 온다.

"에이~ 안 엮이려고 했는데, 형들이 나서니까 나도 가만히 못 있겠네. 해신이 형, 나 있어. 한 명이 같은 팀 했던 친구야. 그리고 난 문채민처럼 쫄지도 않았으니까, 걱정 마."

"…너."

"이런 건 딱딱한 너보다 내가 낫지. 안 그래?"

"진짜 괜찮겠어?"

"응, 괜찮아. 설마 별일 있겠어? 채민아, 넌 여기 있어라."

"그래. 알았어. 조심하고."

"오케이."

"그럼 너흰 여기서 기다려. 우리가 부르기 전까지 얌전히 있어야 해."

"네!"

서둘러 달려가 본 싸움 현장이었다. 다른 팀 연습생들도 개입된 모양인지 제법 큰 무리가 형성된 게 눈에 띄었다.

인근에는 연습생들이 나뉘어 서 파가 갈렸나 보다. 지켜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와, 가까이서 말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직 제작진 귀엔 들어가지 않았나 본대. 세트장 정리 소음이 커서 신경 쓰지 못한 건가. 그나마 카메라가 오기 전이라 다행인 것 같았다. 한껏 차려 입은 의상에 반해 표정들이 좋지 못하다. 개중 일부는 마른세수를 반복하고 있는게 대충 봐도 폭풍이 휩쓸고 간 장면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무대 때문에, 민석이 형이랑 종연이가 다퉜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까 발생한 실수로 트러블이 생긴 것 같았다. 이민석의 맞은편에서 울고 있는 연습생이 바로 그 종연이란 사람인가 보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가라앉은 것 같은데. 큰 소리가 난 것에 비해 차분한 광경이었다.

이민석이 희게 질려 자신의 이마를 짚고 있었다.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 애써 참는 뉘앙스가 자세히 살펴보니 당사자도 많이 당황한 것 같다. 앞으로 끼칠 영향 정도는 전부 알 법한 인물이니까. 저긴 순전히 상대방한테 휘말린 듯하다.

아마도 시작은 저기 있는 종연이란 연습생이겠지. 데뷔까지 했던 인물이 이렇게 일을 키웠을 리는 없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얘기는 해 봤어요?"

"네, 말렸는데 종연이 쪽이 좀 북받친 것 같더라고요."

옆에 있던 강태오가 단말마의 한숨을 뱉어 냈다. 함부로 끼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이민석은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던 게 주변을 돌아보는 게 어지간히 불안하단 얼굴이었다. 자신의 상황 정도는 캐치 했을 성격이지.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것도 보였지만 문제가 생겨 베네핏을 받지 못했다.

현장 반응을 유추하면 인터넷을 통해 새어 나갈 위험도 있었다. 단속을 하더라도 소문은 금방 퍼지니까, 그게 이민석에겐 꽤 큰 압박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남에게 화풀이할 인간상은 아니었다. 대기실로 들어가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 생긴 사건으로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다 고민에 빠졌다. 저기 낄 마음은 들지 않았으나, 마무리 짓는 게 우선으로 보인다.

"한 번 더 달래 보지, 뭐. 형, 내가 종연이 데리고 들어갈게."

"정환아, 저쪽 알아?"

"…응. 알고 있던 지인이 당사자였네."

우정환이 반대편을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하필이면 예의 그 팀원 중에서도 바로 쟤였나 보다. 상황을 살피더니 자기가 나서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능청스럽기만 한 줄 알았더니, 희생적인 면모도 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문채민이랑 친구였던 건가, 그 앞의 강태오도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이내 똑같이 말해 왔다.

"민석이 형 쪽은, 제가 데리고 갈게요."

"그럼 일단 저도 같이 말립시다."

조기 진압이 가능하다면 빨리 끝내는 게 정답이었다. 카메라가 오기 전에 무조건 처리해야 한다. 엮이고 싶진 않았는데, 슬슬 제작진 귀에도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오길 바라며 발을 움직였다.

"일단 진정해 종연아, 울지 마."

"…이종연, 그만 울어. 분위기 험악해진 것 안 보여?"

"민석이 형, 형도 그만하고 들어가자."

애들에게 다가가니 해당 팀원들이 그 둘을 달래고 있었다.

"민석이 형, 일단 빨리 들어가요."

"태오야."

옆에 있던 박승경은 강태오를 확인한 후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무래도 이민석을 달래느라 많이 지쳐 있었나 보다. 같은 방을 써서 더욱 나서야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쟤도 여기에 휘말린 사람 중 하나겠지.

"그래요. 카메라 오기 전이니까, 지금도 괜찮아요. 얼른 들어가세요."

"아……."

이건 위험한 타이밍이니 빨리 도망치란 얘기였다. 내 얘기에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인지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들었다. 어느 덧 상대방 쪽에는 우정환이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계속 울고 애다.

"이종연, 일단 들어가자. 너 지금 아슬아슬한 건 알지. 형들이 막아 줄 때 피해."

"……."

"그래, 우리 가자."

"형들, 종연이는 저희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어, 그래."

우정환의 인도에 다른 연습생들이 달라붙었다. 팀원 절반이 몰려 가리듯이 대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우정환에게는 눈짓으로 의사를 표현했는데 끝나면 눈치껏 빠져나오란 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이곤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 게 간신히 조금은 정리된 상황이었다.

"이민석 연습생, 일단 세트 내에 카메라 많으니까 진정하세요. 대기실에서도 별말 하지 마시고요. 여기 있던 연습생들은… 모두 비밀로 해 줄 거예요. 그렇죠……?"

제발 그렇다고 말해. 주변을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빠른 눈빛 교환 덕분이었는지 어색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여준다.

"…네? 네… 무, 물론이죠. 민석이 형, 저희도 다 비밀로 할게요. 걱정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미안하다, 얘들아."

박승경과 일부가 이민석을 달랬다. 그러고는 지친 표정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이민석은 처음부터 줄곧 난처하단 얼굴이었다. 자기도 싸움의 당사자가 됐지만, 이럴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강태오와 함께 그런 애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인근 무리들도 정리가 되자 서둘러 피하는 기색이다.

"…어떻게 된 것 같죠?"

"다행이네요. 저희도 애들 데리러 가죠. 여긴 빨리 지나가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일단 숙소로 돌아갑시다."

얼추 수습이 된 것 같은 환경이었다. 강태오와는 몸을 돌려 원래 있던 곳으로 이동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애들부터 데려와야 한다. 뭐가 됐든 여기는 빨리 뜨는 게 나아 보였다.

* * *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숙소로 어떤 정신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바람이라도 쐬고 들어갈까 싶어 근처 벤치에 앉아 있는 중이다.

우정환, 이유준, 그리고 나로 이루어진 세 명이었다.

"아, 너무 피곤해, 들어가면 바로 잠들 것 같은데."

"형, 지금 자면 안 돼요."

"아는데 힘들다……."

몸도 찝찝하고 사지도 무거운 게 가물거리는 시야 속에서 잠을 깨려고 눈을 비볐다. 그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니 우리와 비슷한 생각이라도 한 연습생들 같았다.

"어……?"

"왜 그래?"

"형들……."

우리를 돌아보는 우정환의 뒤로 낯선 인물이 서 있었다. 그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니 쟤네는 여기 있는 게 이상한 사람들이다. 머리를 긁적이다 눈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한다.

"강태오 연습생이랑 …이민석 연습생?"

갑작스러운 만남의 주인공은 바로 강태오와 이민석이었다. 전자야 같은 팀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후자가 생소해서 당황스럽다. 그 일이 일어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어딘가 지친 기색이 만연하다. 그래도 대충 진정은 한 것 같아서 안심했다. 어색하지 않게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아…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네요."

"…네? 저희를요?"

"민석이 형이 감사 인사 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안녕하세요. 아까 제대로 인사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아니에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뭘……."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많이 난처했는데, 개입해 주셔서 어떻게 정리가 됐어요."

우정환과 이유준이 눈치를 보듯 우리를 구경했다. 나도 난감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인사를 받을 정도는 아니잖아. 도리어 우정환과 강태오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 해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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