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이젠 좀 괜찮으세요?"
"네… 가볍게 얘기한다는 게, 서로 좀 예민했던 것 같아요. 일단 나중에 대화 나누기로 했어요."
"그래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 민석이 형, 맞으시죠? 종연이도 아까 욱해서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말했어요.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아…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우정환의 사족에 이민석이 한시름 내려놨다는 표정을 지었다. 쟤도 말만 경력직이지, 따지자면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그리 친분 있는 관계는 아니고 서로 얼핏 존재만 아는 정도다. 그래서 침묵과 공백이 난무하는 대화였다.
어색하게 자리를 지키던 강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생긴 거랑 달리 사근사근한 구석이 있었는데 연습할 때도 안 그러는 척 배려해 주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런 사태에 대응해 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점이다.
"이번 무대 고생하셨습니다. 이유준, 너도."
"어, 고마워. 그런데 여긴 팀원이 둘밖에 없어서 나중에 다시 얘기해야겠다."
"그렇지, 뭐. 다음에 같이 모여요."
"예. 그때 얘기 나눕시다."
멀지 않은 입구에서 지나다니던 인파가 우리를 구경했다. 대충 봐도 불편한 기미가 역력해 신기하단 행색이다. 이민석은 살짝 몸을 사리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게 일련의 사건이 소문났을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럼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나중에 봬요~"
등을 돌려 떠나는 사람들을 지켜보니 그래 봤자 멀지 않은 정문이라 몇 걸음 떼지 못했다. 들어가는 걸 구경하다 우리도 다시 한숨을 돌렸다. 어쩐지 뭔가 뻘쭘한 기분이다. 우정환도 머쓱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이유준은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아, 좀 더 쉬어야겠다."
"들어가면 바로 씻으실 거죠?"
"응, 그냥 방 화장실 쓰려고."
"그럼 해신이 형 다음은 나~"
"그러던가……."
벤치를 놔두고 바닥에 쪼그려 앉은 우정환이었다. 이유준은 벽에 기대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잠깐이라도 여유를 즐겨 볼 계획이었다.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미션]
'실전 아이돌 세 번째'
무대 현장 내 팀 1위를 달성하세요.
보상: 500 코인 + 스폐셜 스킬 '?' 획득
알림에 깜짝 놀라니 이제는 빠지면 아쉬운 미션이 나타났다. 나름 성공적으로 잘 끝냈나 보네. 2차 때처럼 저당 금액이 깎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유형의 보상이 나타났다. 스킬은 스킬인데, 물음표로 지칭된 구간이었다. 진짜 특이한 시스템이야. 저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스폐셜 스킬 '?'가 공개됩니다.]
[스킬 오픈!]
[스페셜 스킬]
'가위바위보의 신(B)'
절대 안 져! 가위, 바위, 보!
*스킬 버프: 가위바위보 승률 업그레이드
S: 90 / A: 80 / B: 70 / C: 60 / D: 50 / E: 40 / F: 30
이게 뭐야. 공짜라지만 좀 그런데. 하지만 내 돈 주고 산 게 아니라서 참기로 했다. 코인을 썼으면 속이 엄청 쓰렸을 스킬이다. 가지고 있어서 손해 볼 건 없겠지. 서바이벌 포맷상 사용할 일이 생길 수도 있었는데 미묘하게 이상한 버프를 갖게 된 듯하다. 그나저나 가위바위보 잘해서 뭘 얻을 수 있는 거지. 하여간에 의미 불명이었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가위바위보의 신(B)' - Off
[현재 코인]
1,830 코인
때마침 일회성 아이템도 효력을 다한 것 같았다. 끼 스탯이 다시 정상 복구 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매듭지은 3차였다. 보상도 받았고, 베네핏도 챙겼으니 됐다며 아침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퇴소하면 한동안은 그냥 쉬어 볼 속셈이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 있었다. 일전에 비하면 넉넉한 여유가 생긴 걸로 부족한 스탯에 밑작업에 치여 살던 과거였다. 이제는 안정화되어 그럴 필요가 없어진 듯하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 나를 살린 것 같기도 했다. 몸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아서 천운이야.
이래저래 지금까지의 일들이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몸이 무거운 게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았는데 방송 카메라는 정말 무자비한 존재였다. 관리는 무조건 빼놓을 수 없다.
기지개를 켜며 핸드폰을 주워 드니 뭔가 잔뜩 와 있는 게 보인다. 전부 이유준과 권혜성이겠지. 사전에 지인들에겐 연락을 던져 놓고 깔끔하게 무음으로 돌려놓은 과거였다. 이 무렵은 제작진이 엄청 바쁠 시기로 그쪽 관련 사항은 없을 거란 걸 알았다.
스트레칭하며 밀린 일정을 확인하니 부재중과 쌓여 있는 메시지가 그리 적지 않다. 역시 말을 안 듣는 애들이라니까, 다시 끌려다녀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았다.
"시작인가 보네."
목 뒤를 매만지며 대화방을 읽어 나가니 잡다한 일과만이 가득한 채팅이었다. 이럴 거면 일기를 써.
[권혜성]
- 어? 해신이 형 읽었다~
"……."
때마침 남아 있던 채팅 숫자 '1'이 사라졌다. 눈치챈 권혜성에 의해 바로 들킨 모양이다. 낭패를 봤다며 타이핑을 치는데 아무것도 안 했지만, 왠지 지쳐 있었다. 다시 누울까 고민이 돼 이부자리를 쳐다보니 그것도 계속 울리는 진동에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화면에서도 시끄러운 게 참 대단한 재능이다. 이렇게까지 성향이 다른데 친분이 생긴 게 신기하다.
[신해신]
- 어, 나 읽었어.
[이유준]
- 형, 살아 있어요?
"다들 엄청 빨리 보네."
한마디 답하기가 무서운 순간이었다. 바로 이유준도 나타나 말을 건다. 얘네는 핸드폰만 보고 사나. 이쯤 되면 그냥 업보라며 장단을 맞춰 줘야 했다. 회피가 안 될 걸 알고 있어 택한 방면이기도 하다.
[신해신]
- 일단은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유준]
- 형, 연락이 전혀 안 됐잖아요.
[권혜성]
- 맞아요! 핸드폰은 켜져 있던데… 무슨 일 있었어요?
[신해신]
- 그건 아니고, 그냥 한동안 좀 바빴어. 연락 남겨 놨잖아.
[권혜성]
- 그랬나요?
온갖 이모티콘이 가득한 곳이었다. 물음표를 띄운 강아지 캐릭터가 웃어 보였는데 하여간에 꼭 저 같은 것만 사용하는 애였다. 기껏 해 준 사전 고지가 소용없었네.
[신해신]
- 어, 일단은?
[이유준]
- 오늘 시간 되시면 만날래요?
[신해신]
- 또?
[권혜성]
- 에이~ 또라니요~~ 형은 안 나왔잖아요!
[신해신]
- 아니, 저기…….
[권혜성]
- 전 물론 좋습니다!
[이유준]
- 밖은 좀 그렇고, 집이나 연습실 어떠세요?
[권혜성]
- 좋아요!
[신해신]
- 얘들아 내 의견도 좀 들어줄래.
[이유준]
- 7일 꽉 채워서 잠수 탔잖아요. 오늘 별일 없으시면 나와 주세요.
[권혜성]
- 맞아요! ㅠㅠ
그럼 그렇지. 내 처지에 얌전한 휴일은 무리였다. 정세 파악이나 해 볼까. 결론은 그냥 움직이자는 거다. 긍정하는 답을 던져 주곤 터덜터덜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해를 본 게 제법 오래전이다. 하얗게 질린 팔을 보다 고개를 내저었는데 가만히 안주해 있기에는 불안정한 위치였다. 아직 순위 발표식과 파이널이 남아 있다.
* * *
하도 많이 와서 익숙해진 동네였다. 자연스럽게 건물의 패스워드를 누르고 있었다. 우리 집도 아닌데 내가 왜 이걸 알고 있지. 호출하는 게 귀찮을 것 같다며 암호를 알려 준 집주인이 떠오른다.
전부터 느낀 점으로 이유준은 간이 참 큰 대인배였다. 물론 내가 수상한 일을 할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함부로 믿기는 힘들었다. 현관 키도 주지 그러냐며, 농담을 하려다 그대로 멈췄다. 이유준이라면 진짜로 줄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애초에 꺼내지 말아야 할 주제야. 한숨을 참으며 계단을 올라가 노크했다. 그와 엇비슷한 타이밍에 현관문이 열리니 거의 대기를 탄 것 같은 빠른 속도다.
"형!"
"아, 깜짝이야."
"오랜만이에요~"
"어, 그래. 기다리고 있었니."
"네!"
가로막은 몸을 피해 입성한 집 안이었다. 권혜성은 편한 복장이 하루 이틀 있던 게 아닌 듯했다. 어째 여기 사는 사람 같네. 본가 거리상 나보다 훨씬 멀리 살고 있는 애인데 아까부터 먼저 온 게 이상하다 싶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와 있던 거지. 조용히 잠수 타기를 잘했다고 되새긴 찰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매일을 여기에 불려 다녔을 것 같았다.
"오셨어요?"
"오랜만이네."
큰 소란에 방 안에 있던 집주인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안경을 끼고 머그잔을 든 상태로 평상복도 성격처럼 깔끔한 인물이었다. 시력도 좋은 애가 저건 왜 쓰고 있는 거지.
작게 대꾸해 주며 모자와 재킷을 벗어 걸곤 단골 좌석인 소파에 앉았다. 갑자기 현타가 몰려오는데, 나도 여기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지니 거의 살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일주일이나 잠수 타고 너무해요~"
"그건 사전에 연락했잖아."
등받이에 기대자 투덜거리며 다가온 권혜성이었다. 오늘은 또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어 의문이다. 사실 나는 얻고 싶은 정보가 있어 나온 외출이기도 했다. 목적이 없었다면 집에만 있을 예정으로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다 이유준에게 질문했다. 줄곧 확인해 보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그나저나 유준아, 나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떤 거요?"
"응원 광고에 메모로 소통하는 건 제재 안 하지."
"응원 광고요?"
"응."
지하철을 타고 오던 길이었다. 나온 김에 핸드폰을 통해 커뮤니티를 한번 훑어봤다. 팀에 대한 품평은 넘겨 버렸다. 그건 곧 만날 이유준이 더 잘 알 부분이었다. 나에 대한 여론만 파악하자며 뒤져본 인터넷이다. 본방송은 기간이 있었지만, 파이널이 고지인 순간으로 이제는 초장과 다른 평가들이 있을 것 같았다. 3차에 투표로 개인 보상을 받은 게 신경 쓰인다.
모자와 마스크 틈새로 핸드폰을 쳐다보니 휴식을 취하는 사이 게시물 수가 급등해 있었다. 완벽한 케이팝의 화젯거리로 소비됐는데 여기에 출연하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돋보기 버튼을 눌러 내 이름을 검색해보니 예전보다 훨씬 많은 글이 나타난다. 뭐지?
[유어돌 3차 미션 엄청 빡셌던 게]
[은근히 메보 가능성 있지 않아?]
[여기서 못해도 데뷔 기다릴 듯]
[탈일반인한 연생으로 얘 꼽는다]
[재평가 시급한 인물 1위!]
[인클루 노래 미쳤다고 난리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