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81화 (81/328)

81화

끝을 모르고 줄 서 있는 페이지였다. 진짜 봐도 봐도 신기하네. 어리둥절한 심경으로 제목들을 훑어 읽었는데 뉘앙스만 봐도 응원하는 어조가 많아 보인다. 악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긍정적인 방향이 커보인다.

"…어, 이건."

[(정리글) 유어돌 광고 현황]

제목만으로도 무슨 내용인지 유추가 되는 게시물이었다. 왠지 반드시 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게 고민 끝에 해당 글을 클릭해 보니, 올라온 날짜에 비해 상당한 조회 수와 댓글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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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리글) 유어돌 광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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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년 0월 00일 기준

ㅇㅇ역

- 배민형 / 김민성 / 오진환 / 강태오

ㅇㅇ역

- 구민재 / 황찬민(내려감) / 김찬규

ㅇㅇ역

- 문채민 / 이유준 / 이성결 / 이정원

ㅇㅇ역

- 우정환 / 박 찬(내려감) / 이민석

신촌역

- 강태오 / 이민석 / 윤 명 / 고윤진 / 신해신 / 한명진

ㅇㅇ역

- 권혜성 / 오형원 / 남진형

ㅇㅇ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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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 감사합니다 ㅠㅜㅠ

- 나 ㅇㅇ역 갔는데 왜 못 봤지 ㅠㅠ

- 출퇴근하면서 봤는데 진짜 예쁘게 만들었더라

- 정성이 오졌다 진짜

- ㅇㅇ역 이거 나도 모금한건데 넘 뿌듯해

- 크…

- 쓰니야 고마워! 고생했어!!

- ㅇㅇ역 이건 포잇 붙이던데 나도 가야겠다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가야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주말 투어 확정이다 ㅠㅠㅜㅠㅜㅠㅠㅠ

- ㅇㅇ역 3번 출구 박승경도 추가해주세요! 내일부터 게시된대요! ㅠㅠ

- 헉 윤진이 저기 있는 줄 몰랐는데 ㅠㅠㅠ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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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 중간에는 내 이름도 적힌 게 아무래도 응원 광고판이 걸린 것 같았다. 유동 인구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 역으로 상위 순위는 진즉 선점하듯 자리를 깔고 있는 장소였다.

내가 저기 걸렸다니, 깜짝 놀라 SNS를 서치 했다. 사진이 뜨는 게, 진짜인 모양이다. 다들 빠르게 본인 몫의 광고판을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방문한 연습생들의 목격담도 많이 뜨고 있었다.

특성상 통제하는 성향이 강한 프로그램으로, 소통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가만히 고심을 해봤더니 이유준은 이쪽 방면으로 지식이 있을 듯했다. 팬들의 정성을 확인했는데 무시하는 건 절대로 도의가 아니었다.

"형도 걸렸어요?"

"응, 오늘 알았는데 신촌역에 올라갔대."

"아~ 신촌이었구나. 가 보실 거죠?"

"당연히 가야지."

"메모라면 광고판에 붙이는 포스트잇 얘기예요? 그거는 괜찮아요. 벌써 한 애들도 있던데요."

"역시 통과인가 보네."

투표를 통한 포맷이어서 개인 소통과 자료 유출에 예민한 제작진이었다. 방청 후기 정도는 홍보가 된다는 전제로 풀어 줬지만, 출연자는 단속 대상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예전 기억을 떠올려 봤던 게 스태프들끼리 자주 대화하던 부분이었다. 자필로 쓴 메모를 붙여서 인사한 연습생들이 있다고 했다. 그건 소속사에서도 허락하는 유형이었던 게 일반인이던 우리에겐 신기한 문화였다.

말단인 내 귀에 들어왔을 정도니, 메인 사단은 알고 있을 게 분명하고. 하지만 문제 삼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거라면 적정선으로 해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파에 대한 걱정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대단한 스타도 아니었지만… 주변에 피해만 가지 않도록 수를 쓰는 게 중요하다. 뭐가 됐든 거기는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이었다.

"팬분들이 메모지 붙여 두셨으면 답변도 달아 주세요. 많이 좋아하실 거예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고마워, 팁이 됐어."

가장 궁금했던 사항은 해소되고, 괜찮은 피드백까지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이런 건 얘네들에게 물어야 한다니까. 아는 게 많아서 여러가지로 도움받고 있다.

"그럼 언제 가실 거예요?"

"그건 왜."

평화로운 공기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옆자리에 앉아 눈을 빛내고 있는 인물 때문이었다. 어쩐지 고개를 돌리기가 무서워졌다. 왜 이 뒤에 나올 대화들이 예상되는거지. 시선을 내리깐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도움을 준 것과 이건 별개의 일이다.

"……."

"저도 응원 광고판 보러 가려고 했거든요!"

"…아, 그래……?

"제 거는 합정역에 있대요!"

"그렇구나."

"형, 다 아시잖아요."

"……"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굳이 같이 가야 해?"

여유롭던 이유준이 팩트로 공격해 온다. 구경하던 방금 전과 달리 아주 적극적인 모습에 또 시작이었다.

"같이 가면 좋죠."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혼자 다니면 쓸쓸하잖아요~"

장난기 넘치다 못해 능청스러운 대답으로 내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누웠단 걸 알았다. 올라오는 한숨은 간신히 참아 냈는데 그냥 권혜성이 원하던 말을 꺼내 줘야 할 것 같았다. 쟤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얻고 마는 성격이었으니까.

"…마음대로 해."

"와~ 좋아요! 형은 신촌이니까~ 저는 합정역~ 바로 옆이네요?"

"아, 그렇게 되면 저도 함께인 건 알고 계시죠? 마침 저는 홍대예요."

"셋 다 붙어 있네요. 이건 같이 보러 가라는 운명 아닐까요?"

얘네는 선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듯한데 차라리 라이벌이라고 견제받는 게 나을 심정이다. 마른세수를 하며 오늘도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조용히 다녀올 수 있을까……. 벌써부터 염려스럽다.

* * *

날이 풀리기는 한 것 같았다. 이른 편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밝아진 하늘이다. 현재 시간 아침 6시, 우리는 2호선 지하철 합정역 출구 앞이었다.

동행자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 하고 있기 바쁘다. 마스크와 모자로 중무장한 차림이었는데, 비척거리는 몸에서 잠이 덜 깬 걸 눈치챘다. 바로 오늘은 응원 광고판을 투어 하기로 한 날이었다.

말실수로 인해 생긴 업보인데, 옆에는 혼자만 멀끔한 얼굴의 이유준이 서 있었다. 눈에 띄게 입지 말라니까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 하긴, 쟤 정도면 아무거나 입어도 티가 나겠지.

"형, 너무 이른 것 아니에요?"

"맞아요… 저 졸려요……."

"너네가 우겨서 같이 가 주는 거잖아. 싫으면 집에 가도 괜찮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얼른 돌아가 줬으면 좋겠다. 먼저 귀가하는 건 대환영이었지만 졸면서도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권혜성이었다. 어르고 달래서라도 각자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 이상한 데서 고집이 강해 두 손 두 발 다 든 참이다.

"…아니다. 내가 문제지."

"…에? 저 안 잤어요……!"

"혜성이, 넌 정신부터 차려."

하여간에 얘네랑 얽히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돌이키기에도 많이 늦었으니까, 그냥 받아들이자고 체념했다.

"다른 걸 떠나서 오늘 주말이잖아. 일찍 움직이는 게 나아."

"평일은요……?"

"여기 회사가 몇 개인데, 평일도 인파는 많아. 팬들 만나는 건 나도 좋지. 그런데 대중교통이잖아. 모두에게 피해가 가면 어떡해. 잘못하면 사고 날 수도 있고. 자의식 과잉 같기는 하지만… 이런 건 미연에 방지해야지."

대낮에 움직이기는 무리라고 보고 있었다. 그래서 강구한 게 아침 일찍 이동하는 거였다. 스스로 말하기엔 조금은 민망했으나 그래도 셋 다 괜찮은 순위를 받은 연습생이었다. 논란이 안 되는 선에서 다녀가고 싶었는데 그런 이유로 이 둘에게는 일찍 만나자는 조건을 걸었다.

그게 싫으면 각자 가면 될 일이지. 처음으로 단호하게 굴어서 일까 손쉽게 동의는 받아 낼 수 있었다. 평소 행실이 이런 데에서 반전 효과를 준다.

평일이 아닌 주말 아침의 역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적어 나름대로 한적했다. 호기롭게 외친 것치고는 권혜성이 비실거리는 게 쟤는 안 그래도 잠이 많은 애다.

나는 내가 목표한 것만 하면 됐으니 이유준에게 일괄 위임하며 발걸음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사진으로 본 광고판의 실물이 궁금했던 찰나였다.

"그 몰골로 사진 찍을 거야? 여긴 혜성이 네 광고잖아."

"아, 맞다. 유준이 형, 저 상태 괜찮아요?"

"음… 긍정적으로 말해 줄까, 아니면 솔직하게 얘기해 줄까."

"…그냥 안 들을게요."

사전에 알아 둔 출구로 이동했는데 많이 붓는 체질이라 그런지 깔끔하다고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누가 쫓아오랬나. 목격담 같은 건 노리지도 않았다. 다녀갔다는 흔적과 감사 인사만 남길 생각으로 계단을 내려가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핸드폰을 비롯해 메모지와 셀로판테이프가 잡혔다. 펜도 함께 들어 있던 게 오늘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어? 저거다! 와~ 사진에서 본 것 보다 훨씬 큰데요."

권혜성은 그사이에 잠이 전부 달아났나 보다. 무대에서 본 반짝거리는 눈빛이 나오며 폴짝거리는 걸음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공공장소여서 큰 소리는 내면 안 됐는데 적당히 조절하는 게 역시 안 그런 척 눈치가 빨랐다.

"진짜 응원 멘트 많이 써 주셨네. 혜성아, 답변 달려면 오래 걸리겠다. 이것부터 해."

"앗, 맞다. 펜이……."

챙겨 온 볼펜을 꺼내 든 권혜성이다. 광고판 위에 몸을 대니 여기저기 메모지가 한가득 붙어 있었다. 지하철 이용객은 적을 시간으로 덕분에 팬이 있다고 하기도 힘들 환경이다. 첫차가 다닐 무렵이라 느긋한 심경이었는데, 이유준과 함께 권혜성을 지켜봤다.

"이거 엄청 귀엽다. 형들, 이거 봐요!"

권혜성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메모지를 찍기 시작했다. 사실 장소마다 정해 놓은 시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어지간히도 좋은 것 같은데, 첫 타자이기도 하고, 기뻐하니까 봐주자며 넘겼다.

그렇게 본인이 써 온 쪽지도 붙이고 모든 걸 끝내서야 우리를 돌아본다.

"저 다 했어요~ 이제 인증 샷만 찍으면 끝나요!'

"혜성아, 핸드폰 줘. 내가 찍어 줄게."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 든 권혜성이었다. 곱슬머리가 난리통이었지만, 그마저도 참 본인답다. 일단 한 명은 끝났다 싶었는데 다음 차례는 옆에 있는 이유준이었다.

* * *

"죄송해요. 저도 좀 늦어졌죠."

"됐어. 뭐 이런 것 가지고 그래."

이동 경로상 붙어 있던 홍대입구역의 광고판이었다. 상업 거리의 중심지여서 조금은 긴장했다. 시간이 흐르자 오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앞의 권혜성만큼은 여유를 부리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굳이 재촉은 할 수 없었던 게 주변만 확인하며 끝마치길 기다려 줬다. 간혹 쳐다보는 시선들이 존재하는 게 이제는 슬슬 눈치를 봐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이유준에겐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는 시늉을 했다.

"애초부터 알아보는 분들 없이 다녀 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 그리고 뭐, 팬분들 만나면 나도 좋지. 그냥 소란스러워질까 봐 일찍 가자고 했던 거야. 신경 쓰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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