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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85화 (85/328)

85화

그 뒤로도 이어지는 발표식은 굉장했다. 내 앞 순위로 이유준이 불렸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공격적인 성장세의 애들이다. 한곳만 보고 달려가 데뷔권에 입성한 이유준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이곳으로 올라오는 게 휘어진 눈에서는 기쁨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축하해."

"감사해요. 아, 너무 떨렸어요."

"그런 것치고는, 말을 잘하던데?"

"형은 엄청 떨던데요."

"진짜 한마디를 안 져 주네……."

"이래서 형이 재밌다니까요."

속속 올라오는 사람들이 전부 익숙했다. 불리는 연습생은 대부분 낯이 익은 얼굴로 6위는 터줏대감인 문채민이 차지했다.

이정원과 좋은 합을 보여 준 케이스였으니 선곡부터 본인과 아주 잘 어울려 눈에 띄었다. 꾸준한 실력으로 다져진 입지가 눈에 띄었다.

5위로는 같은 무대를 했던 이정원이 호명됐다. 쟤는 진짜 봐도 봐도 대단한 애네. D 등급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으로 고우림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성장의 아이콘이라… 그건 나보다 이정원에게 잘 어울리는 호칭이다. 실력만 따졌을 땐 원래도 잘하는 연습생이었지만 말이다.

팬들은 이정원을 보고 독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아주 잘 알아봤다며 공감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성격답게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데 어쩌면 조금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해신아, 유준아."

"아, 정원아. 축하해. 너 정말 멋있더라."

"정원이 형, 축하드려요."

"고마워. 너희 무대도 좋았어."

멀지 않은 곳에 앉은 이정원으로 쉬지 않고 말을 거는 게 역시 부담스럽다. 같은 팀이던 문채민도 곁에 있는 상황으로 어째 이거, 인연이 있는 사람들만 깔려 있다.

그러기가 무섭게 4위로 권혜성이 호명됐다. 아직까지 불리지 않아서 이상한 것 같았었다. 현장 투표보다 방영 시 반응이 좋은 인물이다. 그래서 베네핏 5등 안에 못 들었음에도 좋은 순위를 선점했다.

저게 그 대중 픽이라는 건가. 활달하고 밝은 기운이 넘치는 타입이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와…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어요……."

"축하해."

"형들, 감사합니다!"

지나가면서조차 절대 입을 다물지 않았다. 위에 앉아 활짝 웃었는데, 어울려 지낸 애들은 전부 강자였다. 가설이었지만 이번 기회로 확신한 사실이다.

얘네한테는 누가 뭐라 해도 타고난 끼와 스타성이 있었다. 거기에 성실함과 노력까지 갖췄으니 지금이 이 정도라면 나중에는 굉장할 것이다. 몇 년후가 더 기대되는 엄청난 성향들이었다.

"대망의 1위는, 축하드립니다, 윤명 연습생."

마지막으론 놀라운 반전이 이어졌다. 강태오의 무패 신화가 깨진 단계였다. 멍한 얼굴에서 경탄이 스쳐 지나갔는데 느린 말투로 소감을 발표하는 윤명이었다.

"우선… 감사드립니다. 어, 같이 무대 해 준 정환이, 선경이, 재호, 민준이 형, 찬규… 정말 고마워. 부족한 사람인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너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스터 여러분께는 좋은 무대로 보답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걸 처음 본다. 연습생들 역시 그게 신기했는지 한곳만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먼저 와 있던 우정환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다.

쟨 진짜 독보적인 캐릭터네. 헛웃음을 지으며 재미있어했다. 큰 덩치를 구겨 가며 깊게 인사하는 인물로 박수를 쳐 주면서 막바지인 발표식을 지켜봤다.

강태오는 밀렸다고 하지만 2위를 차지한 연습생이었다. 표 차이도 아주 근소하게 진 게 언제든지 다시 1위를 탈환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생존자 20위는, 탄탄한 보컬과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김찬규 연습생."

마지막으로 불린 연습생은 바로 저 애였다. 김찬규, 포기하고 있었는지 아주 차분하다. 이름이 호명됨과 동시에 눈물을 터뜨리는데 그에 사방에서 위로해 주는 손길이 이어졌다.

초반을 생각하면 놀라운 성장으로 저건 실력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였다. 사실 얘는 기본기가 좋고, 성실한 측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삐딱하게 나왔을 때도 연습에서만큼은 진지했던 게 거기에 어느 순간 진심이 되어 노력하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저 장면이었다. 팀원으로 보이는 연습생이 김찬규를 안아 주며 같이 울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축하의 말을 건네주는 것 같다. 더 이상 예전처럼 나쁜 인식이 남아 있지 않는 듯하다.

"……."

"엇……."

근처에서 단말마의 외침이 들리는데 돌아보니 권혜성이 난감하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이정원이 앉아 있는 상황으로 고개를 숙인 채 눈가를 훔쳐 낸다.

…쟤, 설마 지금 우는 거야? 당황스러운 기분에 문채민과 이유준도 눈치챈 것 같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부산스레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이정원이 다시 턱을 들어 올렸다. 고집스레 다문 입매에 눈만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사이 눈물은 전부 닦아 낸 기미다. 특이한 인간 관계에, 특이한 성격까지 갖춘 사람이다.

김찬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무언의 결심까지 느껴졌다. 클로징 멘트를 들으며 마음을 다독이니 길고 험난했던 3차 미션이 종지부를 찍는다. 정말 남은 건 파이널뿐이었다.

* * *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탈락자들을 배웅해 줄 시간이었다. 대낮부터 눈물의 작별 인사가 진행됐다. 이번에도 아는 얼굴이 많이 섞여 있다. 20명을 제외하고 반에 가까운 연습생이 떨어지는 게 막바지인 만큼 이게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래도 속은 좀 쓰리다.

"신원이 형……."

"배민형, 왜 울어. 울지 마. 그리고 얘들아, 내 몫까지 힘내 줘."

여기에는 2차에서 함께했던 성신원도 포함됐다. 친분이 있던 배민형은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이유준과 권혜성 그리고 이정원에게 안부를 남긴다. 애써 씁쓸한 마음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파이널, 기대할게."

"…네."

"형… 저 힘낼게요!"

"해신이 형, 정원이 형, 감사했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니 이정원은 성신원과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연습생들이 밖으로 사라졌다.

다음 녹화까지 약간의 텀이 생긴 참이었다. 방을 재배정받은 뒤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됐는데 5명씩 끊어도 4개만이 남아 있었다. 처음과 비교하자면 너무도 적은 숫자다.

"어?"

"아, 안녕하세요."

들어간 곳에선 또 아는 사람을 목격했다. 9위를 받은 이민석으로 먼저 와 있었는지 짐을 풀고 있었다. 눈인사하고는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연달아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하는 게 이번에는 6위였던 문채민과 7위의 이유준이었다. 10위인 연습생을 제외하면 모두 한 번 이상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다. 이것도 신기하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유준이 너랑은 계속 붙네."

"혹시 싫으세요?"

"싫다고 하면 다른 데 갈 거야?"

"아뇨, 여기 있을 건데요."

"역시 절대 안 진다니까."

분위기를 순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에 여기저기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문채민은 대놓고 우리를 구경하는 게 우정환과 달리 신기하단 눈빛이다.

"유준이 형, 뭔가 좀 바뀐 것 같네."

"…내가?"

"응, 이게 더 보기 좋아."

"와~ 채민아, 너 아는 분들 많구나. 나도 좀 소개해 줘."

그때, 유일하게 모르던 한 명이 말을 걸었다. 10위를 받은 연습생인 것 같았는데 이름이 김재원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쟤도 데뷔권에서 하락한 사람이다. 그래도 꽤 덤덤한 편이으로 장난칠 줄 아는 유쾌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문채민에게도 치대며 가까이 다가온 게 저기랑은 먼저 알고 지낸 사이인 듯했다.

"아, 형들, 소개해 드릴게요. 여기는 김재원 형이예요."

"안녕하세요. 김재원입니다. 20살이에요~ 두 분 다 무대 잘 봤어요."

"안녕하세요. 신해신입니다. 22살이에요."

"전 이유준입니다. 20살입니다."

"음, 여긴 동갑, 여기는 형이시네요? 괜찮으시면 말 편하게 하실래요?"

"네? 네. 그러죠."

"형, 반말해 주세요~ 그럼 잘 부탁해요. 유준이 너도~"

"아아, 그래."

이유준과는 시선으로 대화를 나눈 참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다 했더니, 우리가 아는 사람과 비슷하다.

얘, 권혜성 유형이지. 거기에 우정환이 첨가됐다. 머쓱하게 웃으며 동의를 해 줬다. 이 방도 그렇게 조용하진 않을 것 같다.

"아, 저도 인사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이민석입니다. 24살이에요."

조용하던 마지막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소개는 처음인 사람이었다. 데뷔했던 경력이 있어서 알았지만, 과연 나보다 나이가 많다. 여기선 몇 안 되는 연상인 연습생이다.

"해신이 형, 드디어 맏이에서 벗어났네요?"

"그러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저번엔 고마웠어요."

"아니에요.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그럴까?"

누군가와 싸웠거나, 꾸민 듯한 얼굴만 봤는데 거기에 오늘은 우는 것까지 목격했다. 격한 상황만 마주쳐서 그랬던 걸까, 수더분하게 굴어서 놀란 참이었다.

하긴 이민석도 사람이지. 오히려 부담감이 남들보다 컸을 것이다. 이미 데뷔한 현직 아이돌로 그 탓에 욕도 많이 먹었다. 팀 내 대표로 나왔다는 중압감이 있을 터이다.

종합적으로 따져 보니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게 예측된다. 어딘가 동지의 기운이 감지됐다.

"그러면 해신이? 라고 부를게."

"네, 그러세요, 형."

"와… 신기하네요."

"뭐가?"

"형이 형이라고 하는 거요."

"…나도 아직 22살이거든."

"그래도 뭔가 형은 계속 연장자였잖아요."

"아, 그건 저도 좀 공감했어요. 신기해요."

이유준에 이어 문채민이 사족을 붙였다. 얘네가 왜 친했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성향은 달라도 포인트가 비슷한 게 짐이나 정리하자며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다.

캐리어를 풀면서 상태 창을 확인해 보니 마지막인 미션이라고 이것저것 손 좀 봐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정말 생존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최종 준비를 해야겠다. 나름 구색은 갖췄는데 부족해 보이긴 하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가위바위보의 신(B)' - Off

[현재 코인]

1,640 코인

블랙 쿠폰은 전부 써서 없는 상황이었다. 프리미엄 때문에 과다 사용을 해야 했던 과거가 있다. 확실히 효과는 좋았으나, 내 손해가 크다고 느껴진다. 코인도 애매한데 어떡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스탯 자체는 나쁜 편이 아니고 오히려 제법 좋은 축에 속했다. 그래도 저게 전부는 아니다. 얼만큼 다루는지도 중요한 요소로 일단은 좀 더 두고 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올려야 할 게 많아 보이는데 제한적이니 신중하고 싶었다. 뭐가 됐든 일단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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