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90화 (90/328)

90화

문득 반대 팀에 들어간 연습생들이 떠올랐다. 강태오에, 우정환, 거기에 이정원까지. 머리 잘 쓰고, 조율에 능한 사람 과반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무던하게 받아 주는 강태오와, 능글맞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끄는 우정환이었다. 게다가 단호한 걸로는 빠지지 않는 이정원이 섞여 있다.

셋이 합심하면 어지간한 유형은 컨트롤이 가능한 상태로 거의 조장 어벤져스의 탄생이다.

지금까지는 발도 담그려 들지 않던 자리였는데 대놓고는 아니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개입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이번 단계를 문채민과 함께 끌어가 볼 속셈이다.

물론 당사자는 모르고 있을 일이겠지만, 채민아, 싫어도 협력 좀 하자. 평화롭게 가는 길을 개척해 보기로 했다.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지.

"저, 의견이 하나 있는데요."

"…해신이 형?"

"파트를 정해야 하잖아요. 처음으로 공개된 곡인 만큼, 습득 시간을 갖고 다시 모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저도 동의해요. 일정 시간 후에 다시 모여서 투표 시스템으로 정하는 게 공평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게 정석이긴 하죠."

"으흠, 맞는 말씀~"

"반대 의견 없으시면 30분 정도 후에 다시 모일까요? 어떠세요?"

"넵!"

"확인했습니다."

"그래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표정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여니 정석이면서 뒷말이 나올 수 없는 방법으로 회유했다.

내 신호를 알아챈 문채민이 합류해 준다. 잠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모습으로 진짜 얘가 있어서 도전해 볼 수 있던 멘트였다. 당장 끌고 화장실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각자 위치로 흩어졌다. 친분이 있는 애들은 두셋이 뭉쳐 있기도 하다. 대충 보기에는 포지션이 골고루 있었다. 메인 자리로만 박이 터질 예정이군. 곰곰이 생각하다가 권혜성을 바라봤다.

"난 화장실 좀 다녀올게. 네 파트 연습하고 있어."

"네~ 민형아? 너 나랑 같이할래?"

"좋아. 혜성이 형, 파트 어디 노릴 거야?"

간곡한 눈빛을 알아챈 권혜성이었다. 고분고분하게 배민형을 이끌고 사라졌는데 그러면 이번엔 문채민이다. 고개를 틀어 목표물부터 찾아냈다.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데려가야 한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별짓을 다 하는 중이다.

"…해신이 형, 화장실 가신댔죠. 저도 같이 가요."

"그래."

과연 문채민은 몇 수 앞를 내다보고 있는 애였다.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의사를 표현하는 게 그만큼 많이 안심하던 과정이었다.

상주 스태프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게 화장실을 간다고 하는 경우에는 마이크를 제거해 주곤 했다. 이래서 민망한 장소지만, 거기만 한 곳이 없다는 거다. 제한 시간은 5분 내지 10분. 그 안에 모든 의견을 나누고 돌아와야 한다.

"…채민아, 화장실 가?"

"…어?"

"…해신이 형이죠?"

"네? 네……."

"나 목말라서 나갈 건데, 같이 가요."

"…우린 화장실 가는 건데?"

"…그 옆에 자판기 있잖아."

아, 망했다. 윤명이 따라붙으려고 하고 있었다. 문채민과 시선을 마주했는데, 얘를 어떡하냐는 의미였다. 나는 윤명과 대화해 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러니까 네가 좀 어떻게 해 봐.

문채민이 내 간곡한 눈빛을 알아챈 것 같았다. 빠르게 눈을 굴려 상주 스태프에게 다가갔다. 옆으로는 윤명을 질질 끌고 가고 있는 게 역시 만능 해결사는 바로 쟤였다.

"저기, 죄송합니다. 명이 형도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요."

"…난 아ㄴ……."

"명아! 채민아! 얼른 와!"

당장 윤명의 입을 막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왠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할 것 같아서 냅다 소리 질러 윤명의 눈길을 끌었다. 마이크를 떼 주는 스태프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쟤의 시선은 내게 집중된 상황이었다.

뒤에 서 있던 문채민은 식은땀을 흘리느라 바빠 보인다. 평온한 남들과 달리 여기만 전쟁이다. 한 명은 귀신같이 행동했고, 다른 한 명은 과하게 태평한 게 이거 잘한 선택일까, 그냥 파국으로 치닫게 놔 둘 걸 그랬다. 괜히 감투를 써서 사서 고생이다.

* * *

"…갑자기 반말해서 죄송했습니다."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상대 팀은 연습하고 있었는지 고요한 장소였다. 나는 카메라의 설치 여부를 체크하느라 바빴다.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아까 일부터 수습해야 할 듯하다. 결과적으로 얘는 1위인 연습생이었으니까 말이다. 보는 눈이 많아 너무 힘들어.

"…네?"

"그, 제가 화장실이 좀 급해서……."

오늘도 내 인권이 바닥에 처박히는 현장이다. 어쩐지 거한 현타가 몰려오는 듯한데, 가운데 서 있던 윤명, 얘만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내 말에 침묵을 유지하던 인물로 자판기를 앞에 두니 그제서야 입을 열어 온다.

"…괜찮아요.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네, 그러세요."

"…반말해 주세요. 아까 그게 더 좋았어요."

"…그래, 명아."

"응, 형."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는 게 나을 거란 걸 체감해선 넋이 빠진 상태로 음료수를 뽑는 윤명을 쳐다봤다. 셋 다 마이크도 빼고, 카메라도 없는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윤명에겐 여기 있으라 말하며 문채민과 화장실로 들어간 상황이다.

가장 안쪽에 도달해서야 바닥에 풀썩 쪼그려 앉았다. 오늘 하루 치 체력이 몽땅 소진된 기분으로 그건 문채민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얘는 세면대에 기대다시피 서 있는 게 빨리 정리해야 함에도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거 괜찮은 거야? 기절하고 싶었다.

"…너도 눈치챘지."

"…네."

"우리 어떡하지?"

"일단 오늘처럼 계속 해 볼까요?"

"이게 잘될까? 나 너무 걱정되는데."

"그래도 혜성이 형이나 몇 명 형들 쪽은 괜찮잖아요. 어떻게 해 보죠."

"파트 분배부터가 문제네. 센터는 또 어떡해. 모르겠다."

"일단 형이랑 저도 주력 파트는 챙겨야 하잖아요. 계속 상황 체크해 봐요. 별일 없을 거예요."

"그래, 연습하러 가자. 너도, 나도 살아야지. ……너, 거기 언제부터 있었어……?"

"…형?"

문채민이 뒤를 돌아보니 쟤는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어서 모르고 있던 일이었다. 어느 덧 화장실 입구에는 멍한 표정의 윤명이 서 있었다. 새로 뽑았는지 음료수 캔 3개를 품 안에 안고 있는 게 쟤는 또 뭐야……. 가만히 있으라니까 말도 안 들었다.

하물며 약지도 못해서 대놓고 등장한다. 이럴 거면 몰래 듣기라도 하든가, 진짜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걱정된다'부터요."

"…그거 무슨 뜻인지 알아?"

"음, 앞으로 진행될 걸 말하는 것 아니에요? 그리고 둘이 같은 편이라는 것……?"

"채민아, 얘 다 아는데?"

"명이 형, 흐름 파악 잘해요."

"근데 아깐 왜 그런 거야."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타입이거든요. 아, 참고로 이건 제 생각이 아니고, 명이 형이 말해 준 거예요. 그렇지, 형?"

"…응. 맞아."

"그게 뭐야……."

문채민의 말에 따르면 머리는 이성적이나 행동은 본능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야생동물 아니야? 진짜 이상한 애였는데 타고난 실력이 있어서 살아남은 듯하다.

문득 얘랑 비슷한 위치에 있던 강태오가 떠올랐다. 걔는 적어도 이런저런 역경이 많았지, 성격부터 남에게 져 주는 스타일이라 피곤한 편이었다. 정말 순탄한 길은 거기가 아니라 여기였다고 확신했다. 나도 한번 저렇게 살아 보고 싶은데.

하여간에 여전히 의도를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눈만 깜빡거리는 게 무슨 반응이라도 보여 주면 좋을 것 같다. 이건 모두 팀을 위해 하는 짓이었는데 마치 우리가 삼류 악당처럼 느껴진다. 이걸 어떻게 넘어가지, 머리를 팽팽 굴리는 게 웃겨서 그렇지, 난감한 상황이란 건 변하지 않았다.

"…나도 끼워 줘."

"어?"

"나도 여기 끼워 줘."

"그래요. 해신이 형, 차라리 같은 편으로 만들어 버리죠."

"…채민아, 너."

너까지 이러면 어떡해. 잊고 있었는데 문채민도 그다지 정상은 아니었다. 너무 똑똑해서 부작용으로 맛이 갔다고 정의 내린 적이 있었다.

우리가 얘기한 건 지켜보자는 게 전부였잖아. 별것도 아닌 걸로 심각한 분위기를 생성하지마. 얘까지 이러니까 우리가 진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 산으로 간다는 게 이런 걸 뜻하는 거구나.

"어쩔 수 없잖아요."

"…나 끼워 줄 거야?"

둘이서 쌍으로 사람을 힘들게 한다. 차라리 권혜성과 이유준이 나은 것 같은데.

"그래, 너네 마음대로 해."

"…좋아. 아, 음료수 마셔. 3개 샀으니까……."

주섬주섬 음료수를 건네주는 윤명이었다. 정말 괜찮을까……? 문채민과는 둘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하긴, 이것 말고는 딱히 방법도 없다. 오늘도 제 발에 걸려 넘어진 형편으로 어쩐지 기묘한 협력 관계의 무리가 만들어졌다.

이걸 협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 와중에 한 가지는 확실한 게 여기서 고통받는 담당이 나로 정해졌다는 사실이었다.

* * *

다시 돌아온 연습실이었다. 쟤네들이 걱정 되는 것 같긴 했지만 일단 나도 급한 일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원하는 파트를 연습해야 했다. 파이널은 내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설 기회였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저당금도 끝이다.

사실 많은 일을 겪으며, 최선을 다해 보자고 다짐했었다. 결과를 떠나, 충분한 퀄리티를 내자는 게 큰 목표였다. 떨어지면 돈은 못 받는 거니, 뭐 땡깡 부리기도 애매한 처지잖아.

침착하게 악보를 분석하니 그리 낮은 스탯은 아니라 그런지 부르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전부가 아니고 최대한 '잘'하는 게 중요했다.

팀원 구성으로는 보컬이 제일 많았는데 래퍼가 3명이어서 부담은 덜었지만, 여전히 실력자가 잔뜩 있었다. 눈에 띄는 곳은 무조건 수요가 높을 일이다. 걔네들을 이기고 사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팀 내 최고 실력자로 꼽히는 인물을 떠올렸다. 역시 윤명이지. A-의 보컬 스탯을 가지고 있던 게 수치로는 나와 동일한 값이었지만 타고난 인지도깔려 있었다. 정면 승부 하자면 내가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차피 막바지인 것, 주머니를 몽땅 털기로 결정했다. 편법을 떠나 뭐든 가릴 처지가 아니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가위바위보의 신(B)' -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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