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저건 스탯 해금과 스킬을 한 번씩 뽑을 수 있는 비용이었다. 거의 모든 잔액을 터는 수준으로 스탯 해금은 오픈해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두 개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바로 들어가면 본경연 전에는 맞출 수 있겠지. 아이템은 연습 기간 내 버는 코인으로 구매할 생각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다짐했다.
['스타 코인 스탯 해금' 보컬에 1,000 코인을 지불합니다.]
[현재 코인]
640 코인
[보컬 스탯 해금 방법]
스탯 난이도 이상의 노래를 40번 부르세요.
[변화 가능 스탯]
보컬: A- → A
역시 당장은 올릴 수 없는 전제 조건이다. 내 판단이 현명했다며 고개를 끄덕인 게 저건 최대한 단기간 내에 해야 한다. 다음으로 스폐셜 스킬의 룰렛을 불러냈다. 기회는 오직 한 번으로, 단타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버프를 쟁취하고 싶었다.
[현재 코인]
640 코인
[스페셜 스킬 트리에 500 코인을 지불합니다.]
[스페셜 스킬 트리 룰렛 오픈!]
익숙한 배경음과 함께 원판의 룰렛이 등장했다. 망설임 없이 두 개의 버튼을 연달아 터치하는데 이건 전부 즉흥이었다. 고민이 길어지는 건 소용없다는 걸 잘 알지.
부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나오길 기도했다. 매번 힘든 일만 겪게 했으니 마지막으로 좀 도와줘.
이내 회전이 멈추더니 불이 밝혀진 곳에서 글자가 떠오른다.
[스페셜 스킬 '폼生폼死(B)'를 획득하셨습니다.]
[스페셜 스킬]
'폼生폼死(B)'
멋만큼은 내가 최고야! 이 구역의 스타 플레이어!
*스킬 버프: 끼 스탯 A 고정 지정
어? 진짜? 지금까지 받은 스킬 중에 단연 최고인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현재 내 끼 스탯은 B+였는데 A라면 해금에만 2,000 코인을 써야 하는 수준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들여야 하는 정성과 시간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걸 스킬 하나로 해결해 줬다.
드디어 내 간절함이 시스템에게 닿은 걸까, 아무래도 날 많이 괴롭혔단 걸 인정해준 듯했다.
하단부에 떠오른 걸 확인하자 스위치부터 적용했다. 이제 정말 경쟁할 만한 환경이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n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140 코인
남은 건 내가 점찍어 놓은 파트를 쟁취하는 일인데, 악보를 보며 결심했다. 이번만큼은 누가 뭐래도 욕심을 부려 볼 계획이다.
* * *
"자, 이제 파트 분배를 해 볼까요?"
"넵."
다시 모여 앉은 자리였다. 생글생글 웃고 있었으나, 묘한 긴장감이 나돈다. 10명이라 전원을 체크하는 게 힘들었는데 제작진에게 부탁해 칠판을 빌려 왔다.
우선 원하는 파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러곤 경쟁을 통해 투표를 받아 최종 낙점 짓기로 했다.
센터와 리더는 별개로 진행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동시에 하는 건 너무 혼란스럽다는 내용으로 일단 내가 노리는 건 메인이 아닌 서브 보컬 1이었다. 저건 2차 미션에서 맡아 본 적 있는 파트이기도 하다.
"어? 해신이 형, 서브 노려요?"
"응."
"…형이요? 대박… 전 이 곡 메인 노리실 줄 알았는데?"
"저 파트가 더 잘 맞을 것 같아서."
권혜성과 배민형이 놀랐다는 얼굴을 한다. 그에 주목하는 인물이 몇 명 있었다. 나는 사실 이번 미션의 센터를 노려 볼 속셈이었다. 생전 탐내지 않던 역할을 목표로 삼고 있었는데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전에 밑밥을 깔아 둬야 했다.
메인 보컬 포지션이 해당 곡의 센터까지 차지한다? 솔직히 조금 힘들 것 같았다. 다른 걸 떠나 이 팀에는 윤명이 존재했던 게 쟤가 뭐든 한 부분은 가져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론을 제외하고, 팀의 밸런스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사실 노래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임팩트가 있긴 했다. 그래서 서브를 노려도 지장이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매칭 포인트만 살리면 거기도 좋은 구간이다. 양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름 머리를 굴린 일이었다.
"그럼 지금 겹친 포지션이 메인 보컬에 윤명, 김재원 연습생 두 분이죠? 서브 1의 저랑 이민석 연습생도 다음 차례로 진행할게요."
"메인 래퍼의 문채민, 조승훈 연습생도 대기해 주세요."
"어! 서브 4번도 겹쳤어요! 오은재 연습생이랑 저요~"
예상대로 경쟁이 치열한 구간으로 임시지만 내가 흐름을 이끌었다. 옆에서는 문채민이 어시스트 해 주는 형식으로 다행히도 윤명이 메인 보컬을 지망해 줬다.
쟤가 여기서 물러서면 어떡할까 걱정했지. 주력 파트만 차지해 줘도 센터 경쟁 난이도가 많이 약해질 것이다. 기왕이면 반드시 저 애가 이걸 가져가야 한다.
"한계 따위는 없어 Stop the Move it 이게 바로 내 No Limit 제한은 없어 가능성의 Indicate!"
상대방인 김재원은 꽤 힘 있는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순위가 하락하긴 했지만 저기도 상당한 실력자다.
하지만 스탯으로 윤명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어울리는 걸 떠나, 능숙함에서 차이가 날 문제로 그래서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다른 연습생들도 바로 알아챘을 지점인데 호흡을 다루는 것부터 수준이 달랐다.
"…그럼 제 차례죠? 저도 해 볼게요."
"한계 따위는 없어 Stop the Move it 이게 바로 내 No Limit 제한은 없어 가능성의 Indicate!"
말랑하게 생겼지만 목소리만큼은 중간 톤이다. 그래서 이질감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3차에서 했던 곡만 해도 이번과 비슷한 결인데 제법 잘 어울렸던 게 떠오른다. 이뤄진 투표에선 윤명의 몰표로 자연스럽게 메인 보컬이 확정됐다. 김재원이 머쓱하다는 듯 웃으며 물러선 게 다음으로는 서브 1의 나와 이민석이었다.
댄서여서 어느 정도 빠질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두 개 다 챙겨 볼 속셈인 것 같았다. 쟤도 결국은 경력직 신입이다. 뭐가 이득인지 잘 아는 사람이구나.
나도 꿍꿍이가 있었으니 재밌는 경쟁이 만들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지레 겁먹고 떨었겠지만, 오늘은 이판사판이었다.
사실 보컬로는 이민석보다 내 스탯이 더 높아서 안정적인거였다. 게다가 사전 분석 했던 바로는 이 곡에서 베스트 합인 목소리가 바로 나였다.
이민석이 먼저 구절을 불렀는데 미성이 강하고 부드러운 하이 톤의 음색이다. 타고난 여유가 있어 그런지 떠는 일은 없다. 그래도 저 사람은 내가 이겨야 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곤 연습했던 파트를 불렀다. 계속 상상해 봤던 곡의 무드였다. 격하고, 빠르되 혈기 어린 분위기가 감돈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며 반복해서 되새겼다. 나는 도전자이며, 저 높은 곳의 톱을 노리는 사람이야. 높게 치솟는 고음에 미간이 찡그려졌다. 표정 관리 그런 것보단 보컬에 집중하기로 했던 게 지금으로선 인상과 이미지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게 바로 내 No Limit Make it to the top 당장의 벽을 부숴!"
"하… 하하……."
"우와……."
"…해신아, 살살 좀 해라."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문채민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서는 건 처음 봐서 그런 것 같다. 이민석에게서 깊은 한숨이 쏟아졌는데 본능적으로 자기가 물러서야 한다고 깨달은 것 같았다. 조용히 투표 현장을 지켜보니 다행히도 많은 표가 나를 향해 있었다. 일단 됐어.
"형, 오늘 왜 이렇게 살벌해요?"
"아니에요. 해신이 형, 1차 미션 때도 파트 선정에선 안 봐줬어요."
"진짜? 난 몰랐는데……."
권혜성의 질문에 문채민이 질렸다는 듯한 기색으로 답해 준다. 따지고 보면 쟤의 말이 전부 정답으로 2차와 3차는 특수한 상황으로 포기한 경향이 강했다. 나 자신보다 팀 퀄리티를 올리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파이널은 전혀 다르다. 여기는 양보라고 할 게 없는 구간이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나머지를 진행했는데 앞으로도 경쟁할 파트는 많이 남아 있었다.
* * *
[No Limit 파트 분배 표]
메인 보컬 – 윤명
서브 보컬 1 – 신해신
서브 보컬 2 – 김재원
서브 보컬 3 – 이민석
서브 보컬 4 – 권혜성
서브 보컬 5 – 오은재
서브 보컬 6 – 배민형
래퍼 1 - 문채민
래퍼 2 - 조승훈
래퍼 3 – 한여빈
오랜 시간 이어진 경합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며 파트 배분을 했다. 중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나와 윤명에게 밀린 김재원과 이민석이 서브 보컬 2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결국은 미성인 경향이 강했던 이민석이 밀려 버렸다.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한 인물이다.
댄서들은 브레이크 파트를 주목도 있게 다뤄 주는 걸 전제로 물러서 줬다. 곡의 비트가 빠른 만큼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강한 게 좋다는 의견이다. 모든 연습생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게도 나쁜 방향이 아니었다.
래퍼 중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구간은 문채민이 차지했다. 힘 있는 목소리와 공격적인 플로우가 곡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반대편으로 가지 않고, 이리로 온 것은 전부 머리를 쓴 결과다.
따지고 보면 이유준도 나와 권혜성을 두고 'Field'로 향했으니까. 친한 건 친한 거고, 경쟁은 경쟁이라고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장점을 찾아간 모양새였다.
지금은 보컬 말고 점수를 매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센터는 안무 습득 후에나 정비하자며 넘겼다.
"마지막으로 리더를 정해 보죠."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서두를 꺼내기가 무섭게 시선이 집중됐는데 앞으로의 미션에 있어 큰 몫을 차지할 포지션이었다.
물론 나는 여기서 문채민을 밀어 볼 요량이었다. 직접 겪어 본바 문채민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 인재였다.
나이를 배제하고, 공감을 사서 감투를 씌울 계산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리더의 자리에 서려고 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스무스 하게 도움만 주고 빠질 생각이다. 부디 연습생들이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일단 지원하시는 분 계세요?"
내 물음에 모두가 묵묵부답을 유지했다. 이럴 줄 알았지… 얘네 성향은 초반부터 파악해 놓은 점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려 본 그림과 완벽하게 일치하니 너무 웃기다.
얘들아, 그래도 좀 나서 봐라.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어려운 자리라는 걸 알아 회피하는 거겠지. 잘하면 분량과 서사가 되겠지만, 못하면 완벽한 덤터기의 포지션이다.
책임지려 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더 현실적이었다. 괜히 여기까지 살아남은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