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98화 (98/328)

98화

"…어?"

"선생님! 신해신! 8위!"

"…와, 진짜 올라가네."

불리는 이름에 일순간 동작이 멈췄다. 화면 위로는 동그랗게 뜬 눈의 연습생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런 얼굴을 해도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 타입이다.

얘, 진짜 일관적이네. 아이덴티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인정해 줬다.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쳐 주는 동료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위태롭게 움직이면서도 넘어지진 않는 유형이다. 아, 이러면 더 재밌잖아. 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이건 연구원으로의 지적 관심을 떠나, 인간적인 흥미였다.

그렇게 한참을 더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다. 동료의 최애라던 권혜성도 불려 나가고 있었다. 상당히 높은 순위를 받은 모양이었다. 기뻐 날뛰는 동료에게 축하의 의미로 박수를 쳐 줬다. 상부상조, 받은 게 있으니 갚는 과정이었다.

"…쌤, 혹시 좀 더 직접적인 케이팝에 관심 있어요?"

"직접적인 게 뭔데요?"

그런 나를 한참 바라보던 동료였다. 턱 밑으로 손을 올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에 보이는 화면에는 단상 위로 올라간 권혜성이 나오고 있었다. 왠지 이것도 내 관심이 가는 주제일 것 같았다.

"…실물 한번 보러 갈래요?"

"그거 방청 말하는 거죠?"

"아~ 정말, 사람이 낭만이 없어요. 내가 이렇게 멋지게 말하면, 어? 쌤도 좀 은근하게 받아 줘야지. 방청이 뭐예요, 방청이."

"…방청을 방청이라고 하죠."

"아니, 맞긴 한데, 그래도."

"근데 그거 확률이 엄청 극악이라던데요. 대충 지원하는 사람을 N 명으로 따졌을 때……."

"여기서까지 공식 꺼내지 말고요~ 이런 건 마음으로 하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뭐, 안 넣으면 확률은 0%니까."

"넣는 거죠?"

"네."

* * *

파이널 직전 임시 퇴소를 앞둔 시점이었다. 스태프들에 의해 마이크도 제거되고, 방의 카메라도 전부 수거됐다. 이젠 완전한 자유의 몸이다.

드디어 눈치 안 보고 대화할 수 있게 됐다. 그것마저 길지 않다는 게 내가 알던 제작진다웠다. 평소 과정과 달리 파이널은 본경연 전까지 잠깐의 공백이 주어졌다. 대목을 끌기 위한 라스트 스퍼트였다.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이때, 거한 세트장을 마련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준비 기간을 더불어 며칠의 여유가 생긴 참이었다. 이것도 쉰다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존재했다. 내게는 나가자마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해당 내용을 정리하며 짐을 쌌다.

여기도 끝이네, 지겹다고 해야 할지,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숙소였다. 결론적으론 당분간은 올 일이 없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저당금은 솔직히 뒷전인 상황이다.

대신 무대만큼은 최선을 다하자. 이건 응원해 준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한 팀원들을 대한 예의였다.

"형! 놀러왔어요~"

"어, 안녕. 근데 혜성이 넌 짐 안 싸? 그리고 곧 나갈 건데."

"에이, 아쉽게 왜 그래요~ 아, 명이도 같이 왔어요! 오고 싶다고 해서요."

"…안녕."

"어, 그래. 안녕."

떨떠름하게 손을 들어 인사해 줬다. 이민석과 김재원은 다른 방에 가 있던 찰나였다. 방에 있던 인원은 나와 문채민, 우정환 그리고 이유준으로 거기에 권혜성과 윤명이 합류한 그림이었다. 어째 심상치 않은 애들만 있는 것 같다.

"스파르타 장난 없다……. 아… 죽겠어……."

"정환아, 넌 오늘도 좀 특이하다?"

"혜성이 형, 관심 주지 말아요. 더 설쳐요."

"내 친구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구나……."

"…나 지금까지 잘 참다가 마지막에 욕하고 싶지 않거든."

"…정환아, 너 이상해."

"명이 형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뭔가 인생을 돌아보게 됐어."

조용하던 무리 사이로 우정환의 외계어가 들렸다. 쟤는 며칠 전부터 계속 핼쑥한 얼굴이었다. 평소에도 특이했으나, 오늘은 유달리 심한 것 같다.

연습이 많이 힘들었나. 퇴소하는 사람답지 않게 기운이 없어 보인다. 고개를 돌리다 그만 이유준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뭔가 더 소란스러워질 것 같았다.

"정환이 넌 오늘도 밥 안 먹었지."

"밥 먹을 힘도 없어… 지금 먹으면 집 갈 때 토할걸."

"너네는 많이 타이트했나 보네? 그래도 잘하고 있지 않았어?"

"진행은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지었어요. 파트도 분배했고, 센터 평가도 끝났고, 디테일도 무리 없이 맞췄으니까요."

"…잘 끝난 것 맞아? 유준이 형, 쟤 왜 저래? 평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데?"

떨떠름한 표정으로 치대는 우정환을 떼고 있던 문채민이었다. 평소에도 문어 빨판처럼 잘 붙는 인물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흐느적거려 질색하는 얼굴이다. 이에 권혜성과 윤명도 사정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모두의 눈길은 이유준에게 쏠려 있다.

"아, 별건 아니야. 그냥 절대군주제를 겪은 것에 대한 후유증이랄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맞다. 해신이 형, 정원이 형이랑 친하지."

"어? 내가?"

문채민의 어깨에 고개를 박고 있던 우정환이었다. 이유준의 영문 모를 말이 끝나자 나를 바라봤다. 내가 이정원이랑 친하다고?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같이 무대를 한 것도 2차가 전부였던 게, 대화를 나눠도 간단한 게 끝이었다.

일단 보는 눈이 있어 대충 긍정하는 뉘앙스를 보였다. 그에 우정환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파묻었다. 바로 옆의 문채민이 질린다는 기색을 내보인다. 평화롭다고 해야 하나. 바닥에 놓여 있는 캐리어 부대가 웃기게 느껴졌다.

"와, 나 진짜 이런 소리 안 하는데, 오늘 퇴소해서 말하는 거야. 그 형 뭐야……? 혹시 전생에 장군 이런 거였나?"

"이정원이?"

"기가 너무 세! 이길 수가 없었잖아!"

"정환아, 그래도 덕분에 무사히 넘어간 게 많잖아. 정원이 형 아니었으면 우리 난리였어."

"아, 물론 그건 엄청 고맙지. 솔직히 우리 팀 탈 안 나고 여기까지 진행한 건 전적으로 리더 효과 인정! 근데, 근데 제발 조금만 풀어 달라고요……."

"…거기, 매일 연습이 엄청 길다 싶었는데… 그래서구나."

윤명이 우정환의 연설에 사족을 붙였다. 안 그러는 척 얘도 머리가 비상한 타입이었다. 들리는 걸 봐선 이정원이 가감 없이 자신의 성격을 내보인 것 같다.

원래도 강하고, 직설적이며, 앞만 보는 성향이었지. 그래도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았던 게 누가 봐도 정답만 찾아 골라 가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뭐… 그 과정에서 고난을 겪는 건 이해했다. 나도 그런 전적이 많이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하는 내내 조금 버거웠다.

"우정환, 그렇게 설명하니까 하나도 모르겠잖아."

"하하, 저렇게 거창한 건 아닌데… 해신이 형이랑 혜성이는 알지? 정원이 형, 백스텝 안 치는 것? 그래서 그래. 연습이 엄하긴 했어."

"네가 말한 절대군주제가 혹시 이정원이야?"

"네. 그래도 나쁜 분위기는 아니에요. 초반에 싸움 날 뻔한 팀원들이 있었는데, 정원이 형이 다 눌러 버렸거든요. 팩트로 잡는다는 게 어떤 건지 한 수 배웠어요."

"유준아,"

이유준이 낮은 목소리로 작게 웃는다. 안 그래도 음습한 기운이 있는데, 이정원에게서 좋지 못한 걸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동류라고 했지만, 이럴 필요까지는 없어. 상대 팀이 어떻게 굴러갔을지 전부 예상됐다.

"그래도 형네 팀은 평화로운 것 같네요?"

"우리? 뭐… 우리도 이런저런 일은 많았는데. 알잖아,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에이, 칭얼거리다가 배만 아파서 나가네……. 아니지, 우리 팀도 퀄리티는 장난 아니야!"

"거기 잘할 수밖에 없지 않나? 팀원 조합 엄청 강하잖아."

"해신이 형, 역시 뭔가를 좀 아네. 태오 형과 정원이 형을 기반으로 한 완전체지!"

"아, 맞다. 너네 팀에 강태오 연습생도 있었지."

우정환의 개성이 강해서 잊고 있던 사람이었다. 실력이나 캐릭터론 얘도 어디 가서 안 빠졌다. 안 그런 척 남에게 잘 져 주고, 무심한 척 세심하게 배려하는 성격이다. 당사자야 이렇게 얘기하면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절대 봐주지 않는 이정원과, 안 그런 척 봐주는 강태오의 조합이라……. 실력부터 이미 상위를 못 박은 둘이었다.

거기에 우정환과 이유준을 비롯해 여타 강자들이 받쳐 주고 있었다. 역시 쉽지 않을 것 같다.

"연습, 더 해야겠다."

"형, 형은 또 왜 그래요. 정환아, 너 얼른 조용히 해. 해신이 형 독기 모드 들어간다."

"…독기 모드?"

이상한 명칭을 내뱉는 권혜성이었다. 그에 우정환이 의문을 품었다. 사실 나도 처음 들은 단어다. 이유준만이 뭔지 알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랑 혜성이가 부르는 단어야. 해신이 형, 안 그런 척 엄청 독한데 저러면 더 안 쉰다. "

"너네 뒤에서 나를 그런 취급 하고 있었던 거야?"

"음, 들켰네요."

"들킨 게 아니잖아. 그냥 이실직고한 거잖아."

권혜성의 능청에 주변에서 작게 미소 지었다. 물론 다 죽어 가는 우정환을 제외해야 한다. 그래도 끝이 보이니 후련한 마음이었다. 물론 무대는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일단 제작진의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만 해 주면 당장 달려 나갈 예정이다.

"퇴소 진행하겠습니다. 연습생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외침이었다. 그에 모두가 복도를 돌아보니 바닥에 내려놓은 캐리어를 들어 올렸다. 파이널 때 마지막 무대로 막을 내리는 일정이었다. 어딘지 담담해진 심정이다.

* * *

퇴소한 지 이틀 차인 아침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다음 단계를 대비하느라 정신없었을 일정이었다. 지금은 수중에 아이템 하나 살 수 있는 코인만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간단한 복기와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한 연습만 하고 있었다. 때마침 오늘은 선약이 존재한 날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움직인 이유이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니 복잡하던 도심과 달리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가 나타난다.

여긴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단독주택 단지였다. 도심 형성은 되지 않아 고층 건물은 조금 나가야 볼 수 있는 그런 장소다.

"어, 그러니까 분명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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