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내가 이 가족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염려됐다. 그래서 결국은 거절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 괜히 이 관계마저 망쳐 버릴까 봐 도망친 일이다.
최주형은 그게 앙금처럼 남은 것 같았다. 어릴 땐 잘만 형이라고 부르더니, 그날을 기점으로 반말을 해 댔다. 그게 어지간히도 서운했나 보다.
"그래, 해신아. 우리가 가도 괜찮을까?"
"저는, 와 주신다고 하시면 너무 감사드리죠. 사실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하고… 방송에 얼굴이 나올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그거 나가면 나 대박 인기 스타 되는 거네? 우리 반 또라이들에게 내 위상을 보일 수 있겠어."
"……."
"지현이랑 최 서방도 연락했단다. 너보고 대단하다던데? 그날은 우리 둘뿐이겠지만 꼭 참석할게."
어쩐지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이건 메마른 사회인답지 않잖아. 이마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순한 이유로 출연했던 프로그램 같지 않다. 목적했던 걸 떠나 가슴이 울렁거렸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었다.
* * *
11화의 방영일이었다. 이게 종료되면 최종 생방송만이 남아 있다. 매번 경쟁과 견제 그리고 주변 환경에 많은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렇게 여유를 가진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생소한 기분에 턱을 괸 채 TV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온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너무 조용하니까 적응이 안 되네."
평소와 달리 혼자인 상황으로 이유준과 권혜성이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는 듯했다.
'형, 오늘 같이 보고 싶었는데… 파이널은 팀전이라서 이쪽이랑 봐야 할 것 같아요.'
이유준은 현재 팀의 호출에 불려 나갔다. 퇴소 이후에도 연습으로 자주 모이는 게 모든 건 리더가 이정원이라 이해되는 그림이다.
마지막으로 숙소에서 봤던 우정환의 모습을 떠올리니, 스파르타로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다. 절대군주제니, 장군감이니 무서운 소리를 연발해서 걱정했으나 말만 그랬지, 다들 잘 단결된 것 같았다.
'아~ 해신이 형, 저 완전 잡혔어요… 아니,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그 전까지는 자유롭게 놔두더니 달라진 것 있죠? 우리 회사 사람들이지만 너무하다. 진짜…….'
권혜성은 오늘도 소속사에 붙잡혀 있었다. 2차 이후로 반응을 끌기 시작해 본격적인 관리 대상이 된 모양이다. 오늘 방송도 엔터 사람들과 함께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형들이란 애들은 권혜성이 상승하는 경계에서 탈락했다. 대우를 떠나 주력 멤버가 뒤바뀐 순간이었다.
핸드폰 너머의 불퉁한 어조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좋지 못한 취급으로 시작해선,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인물이다.
익숙하다 못해 질리게 본 프로그램 로고가 나타났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어 화면을 응시했다.
"이유준한테 배운 걸 이렇게 쓰네."
화면 옆으로 뜬 댓글을 읽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순위 발표식이 끝나고 울음바다인 장면이 클로즈업됐다. 탈락 연습생들과 생존 연습생들이 얼싸안으며 서로를 다독였다.
- ㅠㅠㅠㅠㅠㅠㅠ 아가명! 1위 축하해 ㅠㅠㅠㅠㅠㅠ
- 와 1위 불변의 법칙 시작됐구나 강태오가 밀렸네 대박사건
- 앞에서 1위는 마지막에 밀린다… 이거 찐이었네…
- 미친 거 아니야? 오늘 반전 오졌다 ㅠㅜㅠㅜㅜㅜㅜㅜ
- 태오야 괜찮아 2위도 너무 잘했어ㅠㅠㅜ 파이널까지 힘내자
- 얘들아 ㅠㅠㅠㅠㅠ 진짜 수고했어 ㅜㅜㅠㅜ 내 새끼 더 날아오르자!! 고세민 화이팅!
- 윤명 1위 미쳤다 이걸 뒤집었어
- 헐… 초반 데뷔조랑 완전 바뀐거 봐…
- 정환이퓨ㅠㅜㅜㅠㅜㅜㅜ 13위까지 올라갔어 너무 대견해 너무 장해 너무 사랑해
- 유준아아ㅏㅏ 7위 입성 축하해 ㅠㅜㅠㅜㅠㅜㅠㅠㅠ 우리 한번 더 힘내자
- 아 마음 아프다 ㅠㅠㅠㅜㅠㅠㅠ 선호야 잘했어 ㅠㅠㅜㅠㅠㅠㅠ 사랑해
- 은재오늘얼굴미쳤다아가말랑솜사탕한입에와악
- #먼스원! 수고했어!! 김대헌/박성균/한시준 너희가 데뷔하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 솔라미디어즈 누가 뭐래도 난 너희를 사랑해 ㅠㅜㅠ 김찬규! 이정원! 파이널도힘내기!
- 경민아 널 알게 돼서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어. 너의 빛나는 앞날을 응원할게 우리 꼭 다시 만나.
저 애들, 잘 지내고 있겠지. 문득 궁금해졌다. 문제도 많았지만, 동고동락하며 든 정이 적지 않다. 언젠가는 방송국에서 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물론 나는 다른 입장으로 만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떨어진다면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할 일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내가 돌아갈 곳은 방송국 스태프 자리였다. 그렇게 마주쳐도 재밌는 일화가 될 거라며 위안 삼았다.
- 해신아 ㅠㅠㅠㅠ 8위 축하해! 파이널 부담 갖지 말고 즐길 수 있는 무대 만들자!
- 신해신!! 데뷔할 수 있다!!!
- #신해신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투표 꼭 부탁드려요!! ㅠㅜ!!
- 멈추지 않고 발전하는 친구입니다! ㅠㅠㅠ #개인신해신!! 응원 부탁드려요!!
"…아니야. 아직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중간에는 나에 대한 응원 댓글들이 올라왔다. 언제 봐도 생소하고 이상한 기분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배울 수 있던 기회였다.
나는 받은 만큼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이니까. 뭐가 됐든 주어진 책임감과 은혜에는 보답하고 싶었다. 저당금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묘한 정이 들어 있었다.
- 와 이번 파이널 곡 미쳤다 ㅈㄴ 쟁쟁하네;;
- ???? 웬만한 타이틀 감 아님????? 어디서 이런 노래 구해온거야 ㅠㅠㅜㅜ
- 스밍각 플리각 새로 들을 띵곡 두개 주웠네 ㅋㅋㅋㅋㅋㅋㅋ
- 갓댄 갓보민 퀄리티 대박이다
- 강태오 절대 필드해!! 섹시태오 한번 가보자!
- 이가든 미성 + 갓보민의 필드 = 개꿀조합
- 히트곡 냄새 풀풀 나는데 거기에 안무가가 계현쌤이랑 백쌤??? 걍 얼척없음 ㅋㅋㅋㅋ 엔넷 머리 개 잘써 ㅋㅋㅋㅋㅋㅋㅋ 생방 꼭 본다
- 민아 ㅠㅠㅠㅠㅠㅠ 노 리밋 ㅠㅜㅠ 진짜 내가 너 이런 노래 한번 하길 맨날 기도했어 ㅠㅜㅠ
- 왜 다 필드만 얘기하지? 난 노리밋 미쳤다고 보는데 저기 신해신 있는 거 그냥 찰떡 아니야???
- 와… 벌써 영화 한 편 뚝딱이다 응 존맛 서사킹 미친 놈 하나 나옴
- 혜성이와랄라땐스강쥐 노리밋으로 갔어??? 민형+해신이랑 도라방스 조합 나오겠네 ㅠㅜㅠㅠ 팀 첫사랑 난 아직 너네 못놨다 ㅠㅜㅠㅠㅠㅠ
- 찹명떡 그래 넌 노리밋이다!!! 명아 난 네가 섹시를 해도 좋아 하지만 노리밋이다!!! 절대 노리밋해 ㅠㅜㅠㅠㅠ
- 솔라즈 둘 다 필드 갔네 ㅋㅋㅋㅋㅋㄱㅋㅋㅋ 저기 보컬은 그냥 깔고 들어갈 듯 ㅋㅋㅋㅋ 찬규 받쳐 주는 노래 잘하잖아 거기에 이가든? 응 조합 끝 완성형 화음이네
- 신해신 우리 격한 거 한번만 더 가자 ㅠㅠㅠㅠㅠ 내가 이렇게 빌게 나 데버럽 못 놔 진짜 ㅠㅠ
- 데버럽하면 또 우리 챔니니지 아기상어문채민 전설의 갓전드 팀피에스타ㅏㅏㅏ
- 여빈아 드디어 너의 특기 분야가 나왔다 한여빈 출격!!! ㅠㅠㅜㅠㅜㅠㅠㅠ
- ㅋㅋㄱㅋㄱㅋㅋㅋ 곡에서 돈 냄새 엄청 나네 그리고 내 기대가 엄청 나네 파이널 곡 진짜 좋다
파이널곡 공개와 동시에 팀이 정해졌다. 프로그램 내에서는 처음 보는 10인조에 흥분한 팬들이었다. 이게 이렇게 나왔구나. 편집된 건 나도 처음 본다.
막바지라 그런지 매운맛은 많이 빼 준 것 같았다. 하긴 방금 전에 감동 서사를 밀어붙였던 참이었다. 이제와서 태세 전환 하는 건 이상해 보일 것이다.
- 오늘도 얼레벌레의 의인화가 한몫 했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신해신 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간지허위매물 누가 별명 지었어? 진짜 작명소 하나 차려 내가 추천할게
- 갓해 의문의 1패 오늘도 몰이를 당했습니다….
- ㅋㅋㅋㄱㅋㅋㅋ 권혜성 문채민 ㅋㅋㅋㅋㅋㅋ 둘이 배신 때린 거 봐 ㅋㅋㅋㅋㅋㅋ
- 신해신 : (이 배신자들아 내가 너네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러쿵 저러쿵)
- 그래도 난 잘 뽑은 거 같은데??? 메보 윤명으로 실력 받쳐주고 댄서즈 댄브 강하게 들어가서 파트 조율하고 래퍼가 많으니까 정확하게 분배 나누고 거기에 온건파 리더까지 여기 개꿀팀 아니야? 이렇게 되면 센터는 이민석인가?
- 와 완전 추리 조졋네 셜록이니?? 민석아 혹시 너가 센터하는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진짜 공평하네 서바이벌에서 이렇게 나눌 수가 있다???????
- 애들이 착한 것도 있고 안 그러는 척 조율하는 멤들이 따로 있음 봐봐 챔니랑 갓해 둘이서 계속 눈빛 주고 받음 ㅋㅋㅋㅋㅋㄱㅋㄱㅋㅋㅋ
- 문채민 과연 교육자 집안의 자라나는 새싹 ㅠ 미래가 밝다 1차 때부터 리드하는 거 장난 아니었어
- 챔니 교육자 집안이었ㅇ어????? 어쩐지 존나 학생회 냄새남ㅋㅋㅋㄱㅋㄱㅋㅋㅋㄱㅋㄱㅋㅋ
- 해신이 너 지략캐였니….? 나 너무 낯설다…..? 하지만 이런 너도 조아 ㅎ…
- 이 와중에 자기가 지정한 건 실력으로 쟁취하는 거 존멋 순딩이로만 볼 게 아니었던 듯
- 성장캐 하면 솔직히 신해신이지 거의 이정원이랑 투 톱이잖아 ㅠㅜ 나 쟤 볼때마다 매번 놀라 앞 부분이랑 비교가 불가능하다 ㅠ
물론 오늘도 조금 어설퍼 보이긴 했다. 문채민에게 뒤통수를 맞아 리더를 떠맡게 된 구간이었다. 당시에는 당황했으나, 지금 보면 잘된 일이었다. 너무 쟤한테 부담을 줬다고 생각을 한 무렵이다.
이럴 땐 어느 정도 나서 주기도 해야겠지. 센터 선정은 상대 팀 이후로 나올 것 같았다. 이민석이 좀 더 도드라질 시점이었다.
- 야… 여긴 뭐야….
- 내가 말했지 이정원 독기레전드라고 왜 안믿었어 ㅋㅋㅋㅋㄱㅋㅋ
- 혹시 극과 극인가요? 비교 체험이 오지는데요
- 근데 여기도 다른 방향으론 잘되고 있지 않아?
- ㅁㅈ 의견은 전부 합치고 있잖아 진행하는 사람이 기존세라 그렇지
- 개웃긴게 보통 저런 성격이면 독단적으로 보여야 하거든 ㅋ 근데 쟨 그 조절을 잘하네 ㅋㅋ
- 천상보컬이가든 머리까지 똑똑해 밀당하는데 말빨이 좋아서 애들 다 설득하고 있어 ㅋㅋㅋㅋㅋ
- 유치원 vs 극기훈련
- 시바류ㅜㅜㅜㅜㅜㅜ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터졌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극기훈련이면 이가든이 조교야?? 군머가면 조교할 상이긴 하다 ㅎ
- 야 너 이가든픽 아니지
- 누가 여기서 군머 얘기를 꺼내 ㅠ
- 안돼!!! 벌써 그 얘기하지마!!! 금지어야 멘탈 박살난다 군머의 군자도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