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03화 (103/328)

103화

"아니, 그러기는 했지만… 둘이 같이 넣어서 나란히 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그럼 다행이네요."

"아~ 정말, 쌤은 케이팝의 신이 도와주는 사람인가 보다. 앞으로도 저랑 많이 협업해 주기예요?"

"그래요."

이게 그 생방송 현장인 건가. 옆에서는 동료가 신이 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저번에 넣은 신청이 깔끔하게 당첨된 상황이다. 확률을 따져 봤을 때는 극악이어서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오게 되니 신기한 마음에 주변을 돌아봤다.

손에는 동료가 쥐여 준 알 수 없는 굿즈와 물통이 들려 있었다. 바빠서 자주 오지도 못한 사람치곤 너무 철저하다며 농담을 나누던 무렵이다.

"저희 둘 다 오늘은 열심히 응원하고 가요. 모처럼 시간도 뺐으니까요. 후회 없는 하루를 보냅시다!"

"네. 그래요. 재밌네요."

"벌써부터요? 이따가 아주 뒤집어지시겠는데요?"

"그럼 기대할게요."

뜨거운 열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위풍당당한 동료의 표정에 조금은 안도하고 있었는데 대기 시간이 긴 것치고는 모두 즐거워 보인다.

분위기에 동화되어 붕뜬 기분을 만끽하던 순간, 화려한 조명과 함께 방송 신호가 떨어졌다. 그에 사방에선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안녕하세요, 마스터 여러분들.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 최종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대표를 맡은 배우 고우림입니다."

"와아아!"

귀를 찌르는 고함을 떠나 선명한 얼굴에 깜짝 놀란 참이었다. 실물은 처음 보는 터라 한껏 집중이 됐는 게 와, 잘생기긴 참 잘생겼네. 그건 동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런 리액션이 없어 이상해하며 돌아보니, 거의 넋을 놓고 있는 얼굴과 마주친다.

"대박… 존잘."

"잘생겼네요."

"…그런 단편적인 말로 끝날 얼굴이 아닌데요? 쌤은 어떻게 그렇게 차분할 수가 있는 거예요?"

"전 여기 보러 온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요."

"아니, 그건 저도 그렇긴 한데."

"연습생 여러분들은 끊임없는 트레이닝과 수많은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많은 응원과 사랑을 보내 주심에 대표 고우림,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그럼 이제, 최후의 경연을 선보일 20인의 연습생을 공개해 보겠습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구호로 시작해 볼까요?"

"네!"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 그 화려한 막을 열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바로, 도약하십시오."

빛나는 조명과 함께 중앙 전광판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방송분을 편집하여 만든 일종의 장치다. 여기저기서 자신이 응원하는 인물들을 불러 대니 그와 동시에 스무 명의 연습생이 걸어 올라온다.

어, 신해신이다. 처음으로 본 실물이었지만, 내가 생각한 그 모습과 동일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침착함을 되찾으려고 애를 쓰면서 다른 이들을 다독이는 친절함이 일치한다. 들릴 리는 만무했지만, 입을 열어 응원에 힘을 실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저 사람의 팬이었다.

"…신해신, 화이팅."

* * *

"다음 무대 준비해 주세요!"

"의상 어딨어!"

"여기 메이크업 수정 들어가야 합니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 눈앞이 빙글 도는 것 같았다. 올라가서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벌벌 떨었던 게 상기된다. 아, 조금 더 능숙하게 말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몇 번이고 올라갔던 무대다. 하지만 오늘은 그 압도감이 남다른 듯하다. 평소보다 많은 관객도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은사님네가 와 있다는 게 한몫하는 것 같았다.

최종장이라는 이름답게 화려하게 막을 연 오프닝이었다. 탈락했었던 연습생들과 모두 모여 테마곡의 무대로 시작했다. 몇백 번도 더 들은 노래였지만 오늘만큼은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엔딩 포즈 이후에는 환호성을 들으며 터질 듯한 가슴을 가라앉혔다. 당장의 내 표정을 알지도 못한 채 숨을 헐떡거리던 과정이 떠오른다. 스크린 너머로 비친 얼굴을 보고서야 내가 한껏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땀도 나고 전신이 열기로 후끈거렸지만 기묘한 벅차오름에 압도되어 있었다. 백스테이지에 내려와서는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마른세수만 반복한 게 생생하다. 물론 그것도 오래가지 못해, 팀원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입장이었다.

"으악, 심장 터지겠네."

"그럴 시간도 없어요! 얼른 환복해요!"

밖에서는 고우림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켜져 있던 작은 모니터로 타이밍을 재며 준비에 들어간 무렵이다. 이것 모두 겪은 적은 있던 일이었는데 그때는 온전하게 스태프의 시점이었다. 출연자가 되어 여기저기 불려 다니니,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음, 상대 팀부터네."

"명이 형, 벌써 환복 다 했어?"

"…응, 난 구성이 많지 않아서. 채민이 너도 빠르네."

"여빈이 형이 탈의실 양보해 줘서 금방 갈아입었지."

벽에 붙은 타임 테이블을 보던 윤명과 문채민이다. 느릿한 어조와 달리 행동만큼은 빠르기 그지없다. 테마곡 무대 이후로는 고우림이 진행을 통해 시간을 끌고 있던 시점인데 뽑기로 선발된 순서에선 우리가 아닌 상대 팀 'Field'가 선공개된다고 전달받았다. 저기도 어지간히 떨리겠다며 의상부터 체인지 했다.

"해신이 형, 뭐야 뭐야! 역시 이 의상 찰떡일 줄 알았어요."

"오, 신 리더~ 카리스마! 물론 성격은 논외."

"재원아, 나 뒷말도 다 들었어."

탈의실의 간이 커튼을 걷고 한 걸음 내디딘 찰나였다. 권혜성의 오버스러운 멘트에 시선이 집중된다. 민망함에 눈을 피하기가 무섭게 개구진 장난이 날아들었다.

그마저도 웃겼는지 타이트한 공기의 대기실이 유하게 풀어졌다. 다음 순서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거울에 비친 나를 관찰하니 평소와 달리 거의 넘기다시피 해 놓은 머리가 어색하다. 일부만 자연스럽게 흐트러트려 놓아 날카로운 눈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른 것보다는."

팔이 너무 휑해서 어색한 기분이다. 몸에 딱 붙는 반넥의 민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카레이서 컨셉과 각자의 개성에 맞춰 조금씩 리뉴얼한 의상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상의를 이너의 느낌으로 배치한 결과물을 받았다. 영문으로 적힌 로고가 스포츠 계열이란 분위기를 풍겨 준다. 왼쪽 팔뚝으론 질끈 묶인 체커 보드 형식의 스카프가 눈에 띄니, 바지는 전형적인 레이싱 슈트용 팬츠다. 발목까지 오는 워커가 꽉 지탱해 주고 있는 차림으로 정말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평생 입어 볼 일이 없었을 구성이었다.

"형도 오늘 자신이 아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죠?"

"나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에이, 오늘 대박 멋있는데. 겸손 떨 필요 없어요~"

그새 탈의를 완료했는지 바뀐 복장의 권혜성이 다가왔다. 나와는 달리 스폰서 로고가 잔뜩 달린 봄버 형태의 재킷을 걸치고 있다. 둔탁해 보이는 워커에 평소에도 잘 하고 다니던 헤어밴드가 일관성 있는 외형이다. 가볍게 웃으며 등을 쳐 주니 팔에 매달리는 행동을 해 보인다. 얜 또 왜 이래.

"…형."

"왜?"

"…여기서 이렇게 말하긴 민망하지만, 형한테 고마워하고 있어요."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런 게 있어요. 아 정말, 무드를 모른다니까. 이런 것까지 겸손할 필요는 없다고요."

원래도 해맑고 개구진 타입이긴 했다. 눈치가 비상한 것에 반해 순진한 구석도 존재했지. 계산을 잘하는 척해도 인망이 깊어 완전히 등을 돌리지 못하는 무딘 성격이다. 그래서 저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 것 같아 뭉클한 감정에 휩싸였다.

…아니지, 아직 완전히 끝난 상황이 아니다. 애써 권혜성을 다독이며 모니터 근처에 모여든 팀원을 구경하는데 마침 상대 팀이 무대로 올라간 타이밍 같았다. 빠른 순서라 부담스러웠을 텐데 완벽하게 꾸민 착장으로 소개해 온다.

"우와… 저기 장난 아니네."

"유준이 형 무슨 일이야? 해신이 형, 유준이 형 좀 봐요."

"어, 나도 보고 있어. 쟤, 무섭다……."

테마곡이 완료된 이후 전동 릴이 내려오며 1단으로 꾸려진 세트장이었다.

'Field' 팀은 노래의 무드에 맞췄는지 세련된 외형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평소 취향이던 스탠더드와 달리 조금은 어레인지를 한 듯한 복장이다. 검정색 가죽 팬츠 위로 종아리까지 올라온 부츠가 화려하다. 속에 받쳐 입은 목 폴라와 심플한 흰색의 단추가 풀린 제복 재킷이 현대풍으로 갖춰져 있었다.

이건 작정하고 곡을 소화해 보겠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그걸 안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팀원들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특히나 센터라던 이유준이 파격적인 변신을 자행했다. 테마곡 무대까지만 해도 얌전하던 애의 머리가 완벽하게 세팅되어 넘어가 있는 것이다.

하얀 얼굴에, 입가의 점이 눈에 띄는 미형이다. 지금까지 쟤랑 붙어 다니면서 욕을 먹은 게 이 정도면 적은 것 같다. 다행인건가?

가슴팍 위로 손을 올리며 거세게 뛰는 심장을 내리눌렀다. 대형을 갖춘 연습생들 사이로는 본격적인 노래의 인트로가 흘러나온다.

이거, 끝까지 긴장 풀면 안 되겠는데. 헛웃음을 지으며 각오를 다지니 본격적인 파이널의 시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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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

작곡: 보민

작사: 보민 & Hayley

안무: 백승준

- 노래

센터, 래퍼 1: 이유준

리더, 메인 보컬: 이정원

서브 보컬 1: 박승경

서브 보컬 2: 강태오

서브 보컬 3: 김찬규

서브 보컬 4: 우정환

서브 보컬 5: 김호원

서브 보컬 6: 김지혁

서브 보컬 7: 권대화

래퍼 2: 안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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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스크린 위로 파란색의 격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빛을 발하는 사이버틱한 광경에 모두가 눈길을 빼앗긴다. 푸른 조명이 켜지고, 센터에 서 있던 이유준을 기점으로 대형이 크게 돌았다. 마치 자신의 영역에 대한 강한 엄포 같다.

- 시선을 놓치 마, Look at my eyes

숨 막히는 Tension

이건 멈출 수 없는 승부

그 몸을 일으켜 Move

- Don't stop 멈추면 안 돼

가드를 올려 This is my territory

늦었어 이거 봐 이미 내 Field

동일한 것 같으면서도 디테일적인 면에서 다른 제복 차림의 10인이었다. 화려한 이펙트를 뒤로한 채 완벽한 군무와 보컬들이 합을 이룬다.

포인트 동작을 하며 메인 댄서로 보이는 강태오가 댄스 브레이크를 자행한다. 팔다리가 길어서인지 유달리 눈에 띄어 주변에선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귓가를 울리는 베이스에 함께 요동치고 있는 심장이다. 격한 감정에 파묻혀 옆을 돌아보니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료를 마주했다.

"…미친 거 아니야?"

"…선생님, 여기 원래 이렇게 살벌했어요?"

"아뇨, 이유준 무슨 일이야. 아니, 쟤를 떠나서 강태오… 이정원… 우정환… 김찬규… 권대화… 김호원… 거의 어벤져스인데요? 다 너무 잘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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