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정확하게 나뉜 파트가 각 연습생들의 특기 분야처럼 보이는 연출이었다. 홀로그램과 양옆의 하얀 섬광이 눈을 찌르면서도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동선에 맞춰 손을 뻗는 동작이 한 명처럼 일체화되어 있는 게 얼마나 혹독한 연습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지금쯤 인터넷은 난리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 옆으로 비켜서
최초의 선택 그것에 대한 후회는 하지 마
뒤돌지 말고 가 Go away
- 한 걸음 내디디면 펼쳐진 Area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이곳에 대한 열정
- 그 기분을 잊어선 안 돼 Area of victory
난관을 뚫고 잡아챈 승리
- Field 내가 살아온 이 길 Evidence
후회는 하지 마 이건 전부 운명이었어
Absolute territory
관객석을 둥글게 감싸고 도는 방식의 무대 세트장이다. 동선에 맞춰 움직인 연습생들이 중앙으로 넘어와 안무를 실행했다. 빠르면서 리드미컬한 트랩 장르의 음율에 모두가 매료된 시점이다. 엔딩 포즈를 취하며 스크린 너머로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포착됐다.
강렬하지만 뜨거운 눈으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지켜보던 멘토들과 탈락했던 연습생들의 리액션이 사방에서 잡혀 나왔다. 특히나 안무를 짜 준 백승준은 감격에 사로잡혀 열띤 박수를 보내 줬다.
이게 케이팝이구나……. TV 화면 너머로 봤을 때와는 규모 자체가 다른 지경이다. 헐떡이는 연습생들을 지켜보다 주변의 반응에 탑승하여 소리 질렀다. 옆의 동료가 놀란 듯 나를 쳐다보며 깔깔 웃는 게 부끄러웠지만, 이런 건 다 즐기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팀의 공연에 흥분한 사람들을 고우림이 능숙하게 이끌어 나갔다. 잠깐의 재정비가 끝나면, 기다리던 신해신네 무대가 오픈될 예정이다.
보여 줘, 신해신. 피가 끓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며 다시 한번 여유를 가졌다. 뭐가 됐든 엄청난 터닝 포인트처럼 여겨진 경험이다.
* * *
엔딩 장면에서 격하게 호흡하고 있는 상대 팀을 목격했다. 왁자지껄하던 대기실이 정적으로 물든다. 아까까지만 해도 밝은 분위기였는데, 한순간에 진지한 얼굴로 변모해 있었다.
다들 진심이구나.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무대였다. 무대가 재정비 되는 동안은 기다려야겠지만 긴장을 풀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문가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들어갈 수 있을 리 없는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팀원들이 한곳을 바라본다.
"뭐야? 다들 왜 이렇게 굳어 있어?"
"그러게요? 얼굴들이 하나같이 창백한데? 메이크업 때문인 거야?"
"이래서 제대로 무대 하겠어요? 정신 차려요."
"…멘토님들?"
"계현 쌤!"
"적시 멘토님……!"
"민나연 멘토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트레이너 멘토단 삼인방이었다. 서계현과 적시, 그리고 민나연이었는데, 인원을 나눴는지 반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셋은 저쪽에 가 있나 보네. 연습생들은 강한 지원군이라도 만난 것처럼 소리 높여 그들을 반겼다.
그 모습에 적시가 평소처럼 분위기를 풀면서 장난을 친다. 이 셋의 구성이라면 환기 캐릭터는 단연코 저 사람이다. 래퍼 멘토였는데, 좋은 말을 많이 해 줘서 그랬는지 화면에는 자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카리스마 넘치는 서계현과 민나연 사이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행동을 보여 준다. 착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의상 멋있다. 이거 혜성이랑 민형이 생각이랬나?"
"서계현 멘토님~~~"
"어, 어! 붙지 마. 세팅 망가진다. 너네 곧 무대 올라가는 것 잊지 않았지?"
평소에도 애교가 많던 배민형이 서계현에게 들러붙었다. 권혜성도 손을 번쩍 들고는 기쁘다는 듯이 휘휘 내젓고 있다.
민나연은 그런 방 안을 훑어보며 일부 연습생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해 줬다. 까칠하고, 냉정한 면모를 보였지만 실질적으론 영웅 같은 사람들이다. 나도 저들에게 배운 게 적지 않은 편이지. 시스템만으론 힘들었을 걸 잘 알고 있었다.
마른 입술을 축이며 시선을 내리깔려던 찰나, 민나연에게서 내 이름이 불린다.
"신해신 연습생."
"네?"
"신해신 연습생도 나한테 조언 하나 듣고 가야죠?"
…나 말인가? 먼저 이야기를 들었던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서 줬다. 민나연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가볍게 웃는다.
"솔직히 말해선 조언이라고 할 것도 없죠. 리더로 중간에서 많은 일들을 해 줬다고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멘토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얌전하다곤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니까 진짜 그렇네요. 센터 추천은 내가 했는데, 그래도 서브 보컬 1이라니 아주 장해요."
"…아."
센터 후보군에 내 이름이 들어갔던 이유는 민나연의 추천 때문인 듯했다. 너무 예상외의 인물이 호명해 줘서 놀란 심경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내가 어지간히도 웃겼는지 떨어져 있던 서계현이 말을 얹는다.
"신해신, 너 그렇게 유약해서 리더 어떻게 했냐?"
"해신이 형은 유약한 리더로는 짱이거든요~!"
"맞아요!"
"…그게 뭐야."
권혜성의 실드 아닌 실드로 사방에선 웃음이 터졌다.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멘토단의 마지막 독려를 들었다.
"지금까지 너무 고생했어. 우리가 엄하긴 했지? 그래도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니까 자랑스럽다. 팀 제로백, 긴장하지 말고 그대로 출격하는 거야. 알았어?"
"네!"
"멘토님, 저 눈물 나요……."
"어허, 벌써 울지 마. 너희 아직 본경연도 안 들어갔어. 상대 팀은 아주 독기가 넘친다던데, 여긴 왜 이래?"
"하하, 계현 멘토님 이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뒤에선 칭찬만 하시잖아요. 얘들아, 난 다 알려 줬다?"
"팀 제로백! 본경연 스탠바이 들어가겠습니다!"
등 뒤로 이어 마이크를 찬 스태프가 들어와 외친다. 일순간 다시 경건해진 분위기에 팀원들과 둥글게 모여 섰다. 그러고는 손을 모아 마지막 다짐을 했다.
"지금까지 부족한 리더 쫓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렸습니다. 긴장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즐겁고 멋진 무대 만들어 봐요. 그럼, 구호 외치겠습니다. 우리에게 한계란 없어!"
"No Limit!"
외침과 동시에 손을 뻗어 아이템을 장착했다. 지금을 위해 준비해 놓은 스탯 보강용으로 반짝, 작은 빛을 발하며 새로운 스탯 창이 오픈된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A-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1,015 코인
일시적이지만 'A'를 줄지어 세운 능력이다. 가 보자. 결의를 다지며 고개를 드니 이제는 저 문 밖으로 나서야 할 차례다.
* * *
방청을 가지 못한 날이었다. 최종장이어서 간절했는데, 엄청난 경쟁률에 밀린 것 같다. 친구네 집에 앉아 조바심을 느끼던 찰나로 윤명과 신해신이 한 팀에 들어가 같은 순서를 대기하고 있었다. 앞선 경연에서 엄청난 퀄리티가 나와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던 순간이다. 보고 있는 사람도 이런데, 연습생들은 얼마나 떨릴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명아, 제발 제발……."
"잘하겠지. 너무 걱정하진 말자."
"나,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나도 마찬가지야."
: 그럼 이제부터, 두 번째 팀 무대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응원의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팀 제로백의 'No Li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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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Limit'
작곡: 댄(D.A.N)
작사: 댄(D.A.N) & 유선아
안무: 서계현
- 노래
센터, 서브 보컬 3: 이민석
리더, 서브 보컬 1: 신해신
메인 보컬: 윤명
서브 보컬 2: 김재원
서브 보컬 4: 권혜성
서브 보컬 5: 오은재
서브 보컬 6: 배민형
래퍼 1: 문채민
래퍼 2: 조승훈
래퍼 3: 한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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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시작한다!"
고우림의 안내 멘트와 함께 대형을 잡고 있던 연습생들이 나타났다. 앞의 팀과는 반대되는 무드였는데, 자유로운 분위기의 의상이 돋보인다.
10명이나 서 있는 데도 불구하고 실루엣만으로 찾아낸 신해신이었다. 평소와 달리 민소매로 팔뚝을 훤히 드러냈다. 그에 깜짝 놀라 입이 벌어진다.
완전히 넘긴 머리 스타일로 날카로운 눈매가 도드라졌다. 평소에도 굉장하다곤 생각했지만, 유달리 빛나는 것 같은 포스를 풍긴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생생한 게 현장에 가지 못했음에도 그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친구 역시 윤명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울먹거리고 있다. 어쩐지 감정이 동화된 듯한 기분이었다. 해신아.
서 있던 대형 뒤로 번쩍이는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중앙에 있던 스크린 위로는 자동차의 속도계가 속력을 표시하고 있었다. 좌우로 움직이는 바늘에 맞춰 사이드 스크린 위의 체커 보드 깃발이 휘날리는데 그와 동시에 배기음으로 들리는 소리가 켜진다. 시동이 걸리면서 엔진이 움직이고 인트로가 흘러나오는 장면이었다.
Vroom-
Three Two One
Zero
N.o L.i.m.i.t
속도계가 올라가 있던 스크린 위로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가운데 있던 이민석을 기점으로 대형이 퍼져 나간다. 가로지르는 팔과 뻗어 나간 다리가 액셀을 밟은 동작처럼 느껴진다.
- 전부를 걸어
진심이 아니라면
나를 이길 수 없어
도입부를 연 센터 뒤로 칼군무 같은 안무가 진행됐다. 신해신이 윤명과 합을 맞춰 백업하는 부분에서 프로그램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이 눈에 띈다. 능숙해진 시선 처리와 딱 맞는 호흡이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 긴장은 풀지 마
자신을 이겨 내
둥둥거리는 드럼 비트에 맞춰 강렬한 신디사이저 소리가 겹쳐 울린다. 길게 뻗은 체형을 이용해 춤을 추는데 이상하리만치 잘 소화한 장면이다. 깔끔하게 드러난 측면 얼굴을 따라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보였다.
- 벼랑 끝에 매달려도
멈출 수 없어
(넘어지지 마 다시 일어나)
고지가 보여 그 끝을 향해
(Run and run and run)
이민석의 등장에 맞춰 더블링 겸 화음을 깔아 주는 신해신이었다. 묵직한 음성을 가진 목소리에 허스키한 미성이 섞여 조화롭게 이루어진다. 김재원의 뒤로 개구진 표정이었지만, 춤선이 튀는 권혜성과 배민형이 나타났다.
탄력 넘치는 텐션의 배민형과, 파워풀 하면서도 섬세한 동작이 장점인 권혜성이다. 유려한 라인의 페어가 곡의 무드를 한껏 이끌어 내는 게 사이드로 교차하는 화려한 발재간에 맞춰 골반과 상의가 같은 각도로 꺽이고 있었다.
- 한숨 크게 들이쉬고
Three Two One Zero
저 멀리를 향해 몸을 내던져
고비만 넘기면 돼
얼마 되지 않아 래퍼들이 등장했다. 저 사람은 빠르고 격한 게 주특기였던 문채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