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정확한 딕션의 가사가 귀에 꽂히듯 날아들었다. 쉼없이 바뀌는 안무에 비해서 안정적이고 탄탄한 라이브를 구사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 Exceed Mach
이건 음속의 경지
뒤돌아보지 마
- 겁 먹는 순간 E.n.d
내게 한계란 존재하지 않아
일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원리를 깨우쳐
연이어 주고받듯이 쏟아진 래퍼들의 파트로 튀는 듯한 발음의 조승훈과 저음이 안정적인 한여빈이 걸어 나왔다. 뒤에서는 현란한 조명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레이싱을 하는 듯한 긴박하고 뜨거운 공간이다.
- 이게 바로 내 No Limit
Make it to the top
당장의 벽을 부숴
때마침 서브 1이던 신해신의 보컬이 시작됐다. 미묘한 특색이 있어 단박에 캐치 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저음일 때는 거칠게 긁히는 느낌이 들었으나, 높게 치달을수록 맑아지는 스타일이다. 손을 뻗어 주먹을 움켜쥐고 양옆을 미는 듯한 행동을 했다. 마치 눈앞에 보이는 벽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한 동작이다.
제 파트가 끝나자 몸을 앉히고는 뒤에 있던 윤명을 부각시킨다. 다리를 교차해선 허리의 힘으로 상체를 들어 올리니 뒤에서도 같은 동작으로 대형을 꾸리고 있었다.
- 속도를 올려 브레이크는 사치야
이 정도에 겁을 먹기는
아직 너무 아쉬워
그런 윤명의 옆에 있던 오은재와 김재원이 백업을 깔아 주며 손을 겹쳐 왼쪽으로 비켜섰다. 양옆으로 팔을 뻗어 기어를 옮기는 듯한 포인트 안무다.
- 한계 따위는 없어
Stop the move it
이게 바로 내 No Limit
제한은 없어 가능성의 Indicate
메인 보컬인 윤명이 고음을 깔끔하게 뽑아냈다. 해당 파트를 중심으로 모두 둥글게 자리 잡아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손을 들어 올린 센터 이민석에 의해 한 바퀴 돌아 제자리를 찾아 나갔다. 어깨를 터는 일련의 순간까지 완벽한 정박에 맞아떨어진다. 보는 사람조차 숨쉴 틈이 없어 보이는, 고난이도 동작이 연속인 구성이었다.
- No Limit-
No Limit-
윤명과 신해신이 다시 한번 화음을 넣어 더블링을 깔아 냈다. 등 뒤로 쏟아지는 레이저 형식의 핀 조명은 사방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에 맞춰 대형 스크린의 속도계는 터질 것처럼 빠르게 돌아간다.
그것도 이내, 이민석의 마지막 파트로 깜빡거리며 꺼지는 장면으로 전환됐다. 가장 처음의 대형으로 완벽하게 돌아가 있던 팀이다. 센터에 있던 이민석과 양옆의 윤명 그리고 신해신이 격한 숨을 들이마셨다.
셋을 기점으로 앞의 다섯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다. 사이드의 권혜성과 배민형이 마지막 동작을 한 채로 지켜 서고 있었다.
- 내겐 한계란 없어-
N.O.L.I.M.I.T
마침내 골에 진입한 광경이었다. 길게 뻗은 로드 뷰를 보며 환하게 밝혀진 조명 아래 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하늘에서는 레이스를 끝낸 축하의 의미처럼 금빛 꽃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는데 우승을 거머쥔 사람들같이 당당하고 멋진 얼굴이다. 마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하나 본 것 같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그대로 무대가 끝이 나며 참고 있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아… 해신아."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절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터져 나오는 함성 속에서 조용히 숨죽여 말했다. 그동안의 성장을 본 것만으로도 엄청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더는 부정하고 싶지 않아. 나는 저 사람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 * *
친구들과 함께 있던 밤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파이널 방청은 가지 못했던 날이었다. 고3인 게 죄겠지. 한탄하면서도 악착같이 시간을 만들어서 모인 4명이다.
"너흰 좋겠다~ 응원하는 애들 남아 있잖아."
"권태윤 때문에 그래?"
"…조용히 해. 태윤이 소속사에서 데뷔하는 거 기다릴 거니까."
"어? 야, 그러면 오늘은 재원이 응원해 줘라. 쟤넨 둘이 힘 합쳐서 신해신 파니까 나만 혼자잖아."
"와~ 치사해. 그런 게 어딨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지……! 그런고로 우리 해신이 어때? 우리 애 대단한 거 인정해 줬잖아."
"다 됐어. 전부 떨어져."
신해신을 응원하는 나와 다른 친구를 제외하고도, 김재원이란 연습생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다른 한 명만 선호하던 사람이 떨어져 골머리가 아프단 듯 미간을 찌푸린다. 투닥거리는 것 같아도 일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오랜 시간 함께 이 프로그램 하나로 의기투합해 왔지.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인 거네. 이상한 회한으로 감성에 젖어 있었다. 이내 떠오른 로고에 집중해야 하는 타이밍이 찾아왔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시간이 이어졌다. 생방송답게 어딘가 투박하고 적나라한 영상이다. 날것인 만큼 동시간대란 사실이 느껴지는 게 테마곡에서 높은 층에 올라가 있는 신해신을 보곤 친구는 눈물을 보였다.
"…너 울어?"
"해신이, 처음엔 1층에서 노래했는데… 벌써 저렇게 성장해서……."
"야, 야. 왜 그래…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도 비슷한 심경이다. 신해신은 초반부에 관심을 받지 못한 인물로 분량도 많지 않고, 무난한 일반인으로 다뤄졌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예전과는 달리 능숙해진 모션에 가슴이 벅차다.
후련하단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엔딩을 지켜보는데 감동이 치사량에 가깝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이었던가. 턱을 괸 채 TV 화면에 몰입하니 매 장면마다 여러가지 사건이 스쳐 지나간다.
상대 팀이 무대를 했을 땐 불안함도 느꼈지. 파격적인 선곡에 이어 누가 봐도 뛰어난 실력들을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이유준을 센터로 두고 능숙한 보컬들이 완벽한 라이브를 했다.
칼로 잰 듯한 군무와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의 조합이다. 다들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데, 마지막답게 치열하단 걸 알게 된 구간이었다.
"…이유준, 쟤 장난 없네."
"쟤도 쟨데 저 팀 다 강하지 않아? 난 강태오 보고 미친 줄 알았잖아."
"이정원 쟨 무슨 고음을 저렇게 편하게 내?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잘도 올린다. 폐가 4개야?"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애들 보기 힘들다는 거? 거의 육각형 연생들만 남은 것 같은데."
"누가 데뷔할진 모르겠는데, 얘네 나오면 이 판 좀 크게 흔들릴 듯."
"이미 난리인데, 뭘. 나 유어돌 본방 때마다 라방 켠 현역 몇 명이나 있는지 이름 댈 수 있어."
"아, 나도 그거 봤는데. 와이튜브에 클립으로 돌아다니더라. 보러 가는 거 상관없다고 하면서 그 시간에 맞춰서 찾아오는 건 뭐야. 다들 그만큼 위기감을 느꼈단 거겠지?"
잡담 속에도 높은 기대치와 관심이 깔려 있었다. 그만큼 잘하고 멋있는 무대가 이어지고 있단 소리다. 약간의 텀을 넘겨 신해신이 나왔을 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평소에도 좋다고 생각했던 외형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달리 빛이 나는 것 같다. 민소매를 입어 잔근육이 붙은 팔뚝을 노출했는데 그걸 본 친구는 냅다 비명부터 질러 댔다.
"악! 미쳤다! 해신아… 너, 너……! 팔뚝……!"
"어우 씨, 깜짝이야. 아, 귀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신해신 상남자였네. 나도 재원이가 민소매 입고 나왔으면 똑같았을 듯. 이해한다, 친구야."
"팔뚝 돌았다… 아, 고3이고 뭐고 방청 갔어야 했어. 저걸 현장에서 못 보다니 내 천추의 한이다!"
"뭐라는 거야. 우리 오늘 주말 자습 있었거든? 생방 시간 맞춰서 튀어나온 거 기억 안 나냐?"
"아 쓰바, 1년만 빨리 태어나거나 늦게 태어날걸."
"진짜 헛소리도 가지가지……."
입으론 떠들면서도 눈은 고정된 모두다. 인트로가 흘러나오며 해당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무대는 보면 볼수록 입이 벌어지는 퀄리티였다. 구성도 다채로운 게 특유의 컨셉이 마음에 불을 지른다.
서브 보컬이면서도 제 파트 이상의 역량을 발휘한 신해신으로 받쳐 주는 것과 자신이 돋보이는 것, 두 가지를 전부 완벽하게 해냈다. 엔딩 장면에선 팀원 전원을 보여 주는데 상쾌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설렜다. 입꼬리를 길게 끌어당기며 눈을 빛내는 얼굴이다.
"아, 아… 미친아… 아… 해신아……."
"…잘하긴 했네."
"우리 재원이 어때! 잘하지! 신해신 바로 뒤에서 서브 보컬 2 조졌지!"
"아오, 양쪽에서 시끄러워 죽겠네. 자리 잘못 잡았어."
"그래도 해신이 잘하지 않았어?"
"너까지 그러기냐. 그래, 김재원도 신해신도 둘 다 더럽게 잘하더라. 왜 여기까지 남았는지 알 것 같아."
다음 진행을 위해 넘어간 구간이었지만, 아까의 임팩트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걸로 다시 한번 확신을 한 계기가 됐다. 신해신의 앞날을 쭉 응원하고 싶어. 여기서 데뷔하지 못하더라도, 저 사람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팬이 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제야 제대로 깨달은 듯하다.
* * *
본경연이 막을 내리고 다급하게 내려간 백스테이지였다.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달려가 정해진 의상으로 체인지 하니 아까와는 달리 차분한 흰 셔츠와 바지가 단조로운 구성이었다. 분장 팀과 의상실에서 모든 인력이 붙어 우리 팀의 환복을 돕고 있다.
"스탠바이 7분 남았습니다!"
"여기, 메이크업 좀 손봐 주세요!"
"음향 팀, 사운드 체크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돌아와 보는데, 먼저 대기하고 있던 상대 팀이 눈에 띄었다. 우리보단 여유가 있었는지 땀을 식히면서 세팅된 모니터로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하나같이 진지한 얼굴들로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는 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프로그램의 VCR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과연 감동 서사도 빼먹지 않겠다 이건가. 하여간에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제작진이라며 웃었다.
[To. 트레이너 멘토님들께]
: 너희, 정신 차려야지… 이러면 큰일 나, 얘들아.
: 명석아, 거기 틀렸다? 나 다 보고 있어?
: 센터에겐 센터로서의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걸 잊는 순간 여러분은 상대 팀 못 이겨요.
: 진심으로 지금이 괜찮다고 생각한 거야? 여기서 안주할 생각은 하면 안 돼.
[멘토님들의 충고는 저희 연습생들에게 큰 지표가 되었습니다.]
: 뭐야, 하니까 되잖아. 많이 좋아졌는데? 장하다. 최성환!
: 원, 투, 쓰리 앤 포- 할 때 같이 내디뎌요. 그렇죠! 잘 맞았어요!
: 소리 깨끗하게, 두성, 두성! 올려서요……! 좀 더… 그렇지!
: 할 수 있어요. 다시 한번 해 봅시다. 될 때까지 봐줄게요.
: 밤? 까짓것 같이 좀 새워 보죠. 저 밤샘 익숙하거든요. 대신 따라오려면 고생 좀 해야 해요?
[모두 저희를 위한 일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