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06화 (106/328)

106화

[민나연 멘토님, 원겸 멘토님, 베이스 멘토님께]

: 정확한 부분만 피드백을 해 주신 멋진 멘토님이셨습니다. 제가 잘못한 구간을 교정해 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귀 기울여 주셨단 걸 너무 잘 알아요…….

: 가끔 무서우셨지만, 그걸 이겨 내면 정말 칭찬을 아끼시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친숙하게 다가와 장난까지 서슴없이 걸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 기운이 없을 때는 북돋아 주신 게 기억납니다. 연습생들을 위해 말버릇처럼 하시던 그 말… '지금은 성장통이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서계현 멘토님, 백승준 멘토님께]

: 매서운 얼굴만 보여 주시곤 하셨는데… 그건 전부 일부러 그러신 거였습니다. 백스테이지에선 먼저 다가와 하염없이 등을 두들겨 주시곤 했던 멘토님이셨습니다.

: 레슨을 받으면서도 이렇게 하나하나 정성 들여 알려 주신다는 게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던 분입니다.

[공태서 멘토님, 적시 멘토님께]

: 무뚝뚝한 표정 너머로는 항상 저희 걱정이 1순위셨습니다. 밤이건, 새벽이건 저희가 멘토님을 필요로 한다면 주저 없이 달려와 주시곤 하셨던 매일이었습니다.

: 풀이 죽어 있으면 캐치 하시곤 칭찬 감옥에 가둬 주셨던 멘토님이십니다. 저만의 장점이 적지 않다며 위로해 주셨던 그 말씀, 제게는 너무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 멘토님!

: 멘토님~

: 멘토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겠습니다!]

종료가 되어 가던 VCR이다. 커다란 스크린 너머로는 트레이너 멘토단의 얼굴이 비친다. 하긴, 누구보다 고생이 많았던 건 저들이었다. 고쳐 줄 것도 많고 신경 쓸 일도 적지 않은 100명을 케어해 왔지.

내색하진 않았어도 힘들었을 부분이란 걸 여기 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포커페이스를 가장해 왔지만, 마음만큼은 그렇지 못한 성격들이다. 다른 걸 떠나서 나도 받은 게 많았다. 초심자를 여기까지 올라오게 해 준 것에는 멘토들의 몫이 컸다.

때마침 그들이 보인 표정에 연습생들에게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마이크를 들고 있던 나도 놀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어? 백 쌤 우신다."

"진짜?"

"대박, 얘들아, 태서 멘토님 표정 봐. 나 저렇게 웃으시는 거 처음 봤어."

"…원겸 멘토님은 태서 멘토님 놀리는 것 같지?"

"…응. 근데 원래 저런 분이시잖아. 그래도 오늘 표정 좀 좋으시지 않아?"

"진짜 그런 듯, 근데 원겸 멘토님, 너무 즐거워 보이신다."

"계현 쌤은 좀 미묘한 것 같은데?"

"내 경험으로 봐선 저건 감동인데, 참으려고 버티고 있는 얼굴이야."

"멘토님들, 아, 나도 눈물 나~!"

"울지 마, 울지 마."

그대로 화면이 꺼지는가 싶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영상이 이어진다. 아까 전 스태프가 외친 스탠바이까지는 2분가량이 남은 찰나였다.

고우림 차례인가. 저 사람도 장난기 넘치고 어딘가 짓궂은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영원한 대표님, 고우림 배우님께.]

[내색하지 않았지만, 뒤에선 항상 많은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연습생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주신 대표님이셨습니다.]

: 그러니까 다음 순서가 이거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연습생 친구들이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 1번 안은 시간이 부족한 것 같은데요. 제가 스케줄 조정 좀 해 볼게요. 2번으로 가시는 게 어때요?

: 음, 밥은 무조건 잘 나와야죠. 안 그래도 하루 종일 춤추고 노래하는 친구들인데, 먹을 것 좀 잘 챙겨 주세요. 아니면 제가 사비로 좀 보태도 돼요? 날도 더워졌는데 보양식 이런 것 좀 먹입시다. 대신 제가 산 건 비밀로 하기입니다. 저 지금까지 선 긋는 MC로 활동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맡은 배역엔 충실할 것, 이게 제 모토거든요. 끝까지 이 이미지 갖고 가고 싶으니까 제작진 여러분이 준비해 주신 걸로 해 주세요.

"헐, 뭐야. 혹시 그때 그거, 대표님이 해 주신 거였나?"

"뭐야, 대표님 왜 앞에선 말씀도 안 해 주시고……."

"난 조금 무서운 분인 줄 알았는데."

제작진과의 미팅 장면이었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던 부분들이 드러났다. 저 사람, 앞에서는 능글거리고 우리를 놀리기나 좋아하는 인물처럼 비쳤는데. 알고 보니 뒤에서는 꽤 많은 조율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특히나 마지막 저 부분, 연습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제작진에게서부터 고생한다며 호화로운 식단을 선물받은 날이 존재했다. 평소에도 나쁜 메뉴는 아니었으나 인당 지출 비용이 적지 않을 게 확실해 신기하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하게 하고 있던 PPL 쪽이 잘 진행된 걸로 예상했지.

근데 그게 고우림이 한 짓이라니, 애매모호하게 굴면서 선을 그었지만, 실상은 무척이나 물렁한 성격 같았다. 여기에는 좋은 사람이면서 그렇지 않은 척하는 타입이 너무 많았다.

"아, 저 이거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제작진분들 정말 너무하십니다. 저도 눈물 나려고 하잖습니까. 마지막까지 진지하고 싶었는데 망했네요."

어딘가 멋쩍다는 얼굴로 웃어 보인 고우림이다. 항상 그린 듯한 표정만 지었는데, 오늘은 왠지 인간미가 넘치는 것 같았다. 민망하다는 듯 큐 카드로 입가를 가리며 말하니 그 와중에도 다음 진행을 신경 쓴다.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한 프로다.

"대표님……!"

"늘 미묘하게 웃고 다니셔서 몰랐는데, 진짜 좋은 분이었구나."

"무대 스탠바이 들어가겠습니다!"

* * *

어둠으로 물든 무대 위, 연습생들의 실루엣이 아득하게 비쳤다. 자리 잡고 대형에 맞춰 인트로가 흘러나온다. 모두와 함께 화음을 내던 무렵, 작은 조명들이 모여 큰 빛이 쏟아졌다. 시선을 내리깔고서는 수도 없이 연습했던 곡을 불렀다. '찬란한 너를, 그리고 우리를.' 프로그램의 엔딩을 고하는 새로운 테마곡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 길을 잃은 게 아닐까 두려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다 울었어

- 이게 맞을까 잘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 내게 정답을 알려 주길 바랬어

흰 셔츠와 흰 바지를 입은 차림으로 작은 단상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던 중이었다. 고요하고 잔잔한 공간 주위로는 반짝거리는 먼지가 주변을 맴돈다. 이상한 기분이야. 어딘가 홀릴 것 같은 상황이라고 되새겼다.

- 바람결에 실려 오는 공기

두런거리는 소란스러움

소원을 담아 기도해 볼게

- 가만히 귀를 기울여

눈을 감고 집중해

- 늦은 건 없어

출발선은 모두 제각기야

전부는 달라서

더 아름다웠다고 말해 줘

마지막 조명까지 모두 켜지고 난 뒤였다. 인근의 스크린에서 영상이 흐르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는데 저건 지금까지 연습생들의 추억이 담긴 나날이다. 주변은 그걸 보며 눈물짓고 있는 듯하다. 피아노 멜로디와 바이올린 소리가 목소리와 합쳐지며 화음을 만든다.

- 나만의 길을

그리고 너만의 길을

한 걸음 두 걸음

작은 보폭을 늘려

그 세계를 넓혀

모든 연습생들이 진심을 담아 노래 부르고 있었다. 스크린 위로는 멘토들과 대표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뿌듯하면서도 장하다는 응원의 기운을 뿜어냈다. 클라이막스를 넘어가고 나서부턴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빈 곳에 음색을 채워 나갔다. 이것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듯하다.

- 작은 위로의 매일

웃자 힘들다면 울어도 좋아

걱정 마 잃었다곤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 언제나 새로운 세상을 응원할게

끝이 아니야

발걸음은 곧 발자취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앞으로도

- 너를, 그리고 우리를

찬란한 너를, 빛나는 우리를

영원히 꿈꾸자

잔잔해진 반주가 끝이 나며 다시금 찾아온 어둠이다. 그 속에서 작은 핀 조명 하나만을 의지한 채 연습생들과 함께 숨죽여 미소 지었다.

저 멀리 보이는 탈락 연습생들은 여기를 향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시원한 걸 떠나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조용히 얼굴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데 회한의 감정이 밀려든다. 아, 끝이구나.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 그 최종장, 드디어 결과 발표의 시간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엄숙해진 목소리의 고우림 곁으로 모두와 함께 서 있는 장면이었다. 눈앞에는 수백 명의 관객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우리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해 준다. 아직까지도 얼떨떨하면서, 이게 무슨 일인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엄마, 아빠……?"

옆에 있던 권혜성이 작게 입을 열어 웅얼거린다. 귓가에 들어오는 이야기에 돌아보니 스크린 위로는 관객석이 비춰지고 있던 상태였다. 부모님인가, 그 안에는 권혜성의 가족으로 보이는 부부가 남매와 함께 앉아 있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아버지와 판박이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매는 권혜성의 동생들로 추정되는 게 손에 들고 있는 도화지에서 똑같은 성격이 유추됐다. '권혜성 Let's go!' 수제 플래카드까지 정말 유쾌한 가족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문채민과 우정환이 대화하는 것도 들리는 듯하다. 우정환은 평소와 달리 많이 가라앉은 텐션인 게 아직 애들이긴 했구나. 그러고 보니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저당금에 대해선 잊고 있었다. 불순한 의도로 출연한 사람답지 않은데 나도 참, 잊을 게 따로 있지. 하여간에 정말 특이한 프로그램이다. 그때, 돌아가는 화면 너머로 은사님과 최주형이 비쳐왔다.

"…주형아."

내가 들어도 어딘가 낯선 목소리다. 진짜 왜 이러는 거야. 나잇값 못 하는 것 같다며 눈가를 가렸다.

"해신이 형?"

그런 나를 권혜성이 돌아본다. 뭔가 아주 놀랐다는 얼굴이다. 혹시 오해했나? 참고로 난 안 울었다. 그저 고마움과 미안함에 얼굴을 가렸을 뿐이지. 말끔한 표정을 지으며 걱정하는 인형을 향해 미소 지었다.

내가 얼마나 험난한 사회생활을 했는데, 이런 일로 쉽게 눈물을 보이진 않는다. 머쓱함에 코밑을 훑자 최주형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단호한 표정과 달리 힘이 넘치는 행동으로 그것 때문에 괜히 웃음이 터질 것 같다. 남들이 보면 조금 희한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뭐, 어때. 지금만큼은 그냥 내 감정에 솔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들의 시간 그리고 멈추지 않는 도전]

…그나저나 너희, 감동 서사 그만하면 안 될까. 커다란 스크린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가족석을 비추던 아까와 달리 사전 편집 된 영상이다. 제작진이 이렇게 나오니 미약한 감동마저 쏙 들어가 버렸다. 은사님과 주형이를 봤을 때완 전혀 달라진 심경이다.

: 처음엔 두려웠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새벽녘, 쉬지 않고 땀방울을 흘리는 연습생들이 나타났다. 몇 명은 지쳤는지 턱을 들고 헐떡이고 있는 게 끊이지 않는 발소리가 고되게 이어진다. 멘토들에게 혼나는 부분이 매섭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 매일같이 변화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한번 해보자……! 여기 와서 가장 많이 바뀐 건 저 자신에 대한 믿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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