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08화 (108/328)

108화

"트레픽, 문채민 연습생입니다!"

"와아아!"

"채민아!"

"문채민!"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 있던 방향을 쳐다보자 주저앉은 문채민이 목격된다. 옆에는 같은 소속사의 우정환이 함께 있었는데, 축하한다는 듯이 어깨를 끌어안으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에 다른 연습생들도 다가가선 잘됐다는 안부를 남겨 준다. 나와 권혜성도 같은 팀을 하며 정이 든 인물이었다. 팔을 뻗어 등을 토닥이곤 진심 어린 축하인사를 해 줬다.

"채민아, 너무 축하해."

"잘됐다! 진짜 잘됐다!"

"아~ 역시 문채민은 못 이기겠다니까. 자랑스럽다, 내 친구!"

"아, 아… 너무 감사합니다. 형들 고마워요……."

자신도 놀랐는지 멍한 얼굴로 고우림의 손짓에 따라 무리를 빠져나간다. 쟤가 저러니까 어딘가 신선하네? 항상 똑부러지다 못해 신기할 정도로 어른스럽던 인물이었다.

그런 문채민이 제정신을 못 차리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박수를 쳐 주면서 마이크를 든 채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할 말을 잃었는지 입만 축이며 고민하던 문채민이다.

"트레픽 문채민 연습생은, 타고난 실력과 더불어 특유의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자세로 많은 팬분의 사랑을 받아 오셨습니다. 뛰어난 리더십과 정돈된 분위기로 문맏내라 불리며, 매 미션마다 큰 활약을 펼친 일화가 존재합니다. 이번 최종 파이널에서 6위로 선정되어 데뷔조 멤버에 합류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럼, 소감 발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트레픽 엔터테인먼트 소속 문채민이라고 합니다. 어, 우선 너무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몇 개월 동안의 이 과정은 제겐 잊지 못할 추억이자,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희 소속사 분들과 그리고… 우정환 연습생, 항상 고맙고 또 미안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전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 봅니다. 여기 와 계신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누나들이랑 형은 제발 그만 좀 싸우고… 훈민정음 4남매 화이팅! 외쳐 달라는 멘트랑 약속 난 다 지켰어. 항상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변치 않고 최선을 다하는 문채민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듬더듬 이어 나가는 소감에 우정환은 제 얼굴을 비벼 댄다. 자신의 이름이 섞여 나오자 더는 참지 못하겠단 표정이다.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보이면서도 문채민을 향해 힘껏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견하네.

이에 다른 연습생들도 입술을 꽉 물며 버텨 내는 게 보인다. 진짜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사람 마음 약해지게 하는 데는 재능이 있는 애들 같았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다음 발표로 넘어간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응원해 줄 생각이었다.

"다음은 5위를 발표해 보겠습니다. 5위는……."

"인레코드, 권혜성 연습생입니다!"

"…어?"

고우림의 호명과 동시에 권혜성을 바라봤다.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어리둥절하단 낯이다. 정말 끝까지 본인다워서 팔을 들어 목과 어깨를 감싸안았다. 권혜성, 장하다.

"혜성아, 축하해."

"…네? 네? 저예요?"

"권혜성!"

"야, 혜성아! 네가 해냈구나!"

내 말을 기점으로 다른 연습생들이 달려오듯 권혜성에게 매달렸다. 크게 확장된 이목구비에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다. 커다래진 덩어리에 조용히 빠져나오니,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은 애가 울먹거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이유준도 다가와 권혜성에게 축하의 말을 남겼다. 울음이 터진 것처럼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한껏 크게 끄덕인 동작이었다. 손을 뻗어 앞으로 나가라며 등을 떠밀어 줬다. 그러자 여기를 쳐다보며 눈가를 비벼 온다. 얘는 안 그렇게 생겨서 참 울보야.

"인레코드 권혜성 연습생은, 밝은 기운과 더불어 지치지 않는 쾌활함으로 모두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드는 열정이 많은 팬분들의 마음을 움직인 힘이었습니다. 댄스강쥐, 혜너자이저 등 별명에서부터 느껴지는 권혜성 연습생만의 긍정적인 기운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 보겠습니다. 최종 순위는 5위로 선정되며 데뷔조 멤버에 합류하게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후, 저 긍정적이라고 했으니까, 울면 안 되겠죠?"

"권혜성 쟤 진짜……!"

"…마지막까지 이상한 애였어."

"명이 형, 혜성이 형이 마음에 들었나 봐?"

"뭐, 나름."

팔을 들어 제 눈가를 벅벅 비벼 보이는 권혜성이었다. 목소리부터 완벽하게 갈라졌는데, 이제 와서 무마하려는 게 재밌는 광경이다. 연습생들과 관객들도 그에 따라 웃으며 권혜성을 한껏 호명해 줬다.

"…그런데 오늘은 눈물이 너무 나서… 딱 오늘까지만 울면 안 될까요?"

"하하,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우선…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많은 분의 응원 덕분입니다. 항상 웃으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신 팬분들, 칭찬을 아껴 주시지 않았던 저희 멘토님들! 집에 가면 평소처럼 장난치고 놀아 준 우리 가족들. 엄마, 아빠, 서호야, 지호야……! 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해신이 형, 유준이 형. 제게 형들은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어요.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멋진 무대로 보답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왠지 아까 전 우정환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머쓱함이 밀려와 코밑을 훑는데 내 자식은 아니지만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유준도 비슷하려나. 시선을 돌리니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마주친 눈이었다. 저기도 아주 기분 좋다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입가의 점이 도드라질 정도로 깊게 올라가 있는 입매다.

"저희가 잘 키우긴 했죠?"

"키웠다고 하기에는 혜성이네 부모님이 너무 근처에 계시는데?"

"하하, 그런가요?"

역시 공식 강심장인 인물답다. 이 와중에 농담을 하는 게, 담력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다음 순서로 불린 이름 때문이다.

"4위는… 개인 이유준 연습생입니다!"

"……."

"…뭐야, 유준이 너, 아까 전까지 담담하던 사람 같지 않잖아."

헛숨을 들이켜며 고장 난 것처럼 멈춰 있는 이유준이다. 나는 오늘 얘가 불리겠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으니 태연한 모습을 유지한 채 말을 걸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일종의 기회다. 팔을 뻗어 헤드록을 걸듯 이유준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힘은 주지 않았지만, 내 움직임에 따라 허리를 숙인 모습이다. 언제 얘를 이렇게 놀려보겠어.

"진짜 축하해, 네가 불릴 줄 알고 있었어."

"…아, 형……. 저는……."

"유준이 형! 축하해!"

"이유준! 4위 멋있다!"

"…어, 어어……!"

침착함도 잠시 몰려드는 연습생들에 의해 마구 휘청거리는 이유준이었다. 어안이 벙벙하단 얼굴로 흔들리는데 이런 건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한 걸음 물러서선 팔짱을 낀 채 지켜봤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들어 단상 위로 올라가란 제스처를 취했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는지 작게 끄덕이고는 서서히 걸음을 옮긴다.

"개인 이유준 연습생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분위기와 진지하지만, 위트 넘치는 행동으로 많은 팬분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유죄인간, 바얼배분 일명, 바른 얼굴 배덕한 분위기, 여기까지만 들어도 그 매력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겠죠? 이번 파이널의 최종 순위는 4위로, 데뷔조 멤버에 합류하게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유준 연습생."

"…어, 우선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팬분들의 깊은 지지와 사랑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 당신의 아이돌을 하며 정말 잊지 못할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는 겪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감정과 기분… 그리고 영원히 안고 가고 싶은 인연들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집에서 보고 계실 할머니, 손주 오늘은 활짝 웃을게요. 어머니, 아버지, 아낌없이 응원해 주셔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이 사랑에 보답드릴 수 있는 그런 이유준이 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얼핏 처음 만났을 때의 이유준이 생각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쓰게 웃었던 얼굴이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박수를 쳐 주면서도 울렁이는 가슴이었다. 이유준, 이젠 예전처럼 씁쓸하단 표정 짓지 마라.

장성한 아들 둘을 좋은 대학에 보낸 어머니의 기분이랄까. 뭐지. 여기에는 오류가 아주 많이 깔려 있었다. 일단 난 남자고, 쟤네는 내 자식이 아니다. 대학을 보낸 적도 없으며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이상한 일이다.

헛웃음을 지으며 나머지 순서를 지켜보는데 남은 자리는 4개, 하지만 후보에는 쟁쟁한 인물이 많이 있었다. 다음은 누구려나. 예상은 갔지만, 이름을 듣기 전까진 확신하지 못할 듯했다.

"3위는… 솔라 미디어의 이정원 연습생입니다!"

"…정원이 형!"

"…나야?"

"정원이 형~~ 축하해요~"

"우와! 이 리더 대박!"

"이 조교님, 축하드립니다!"

"하하, 그게 뭐야!"

독하던 평소와 달리 주변을 돌아보며 확인하는 이정원이었다. 그런 이정원의 옆으로 가장 큰 반응을 한 건 다름 아닌 김찬규였다. 한달음에 달려가 이정원의 품에 안기는데, 아니지, 덩치를 봐선 안은 게 정답이다. 모두가 사방을 둘러싸며 좋은 말을 남겨 줬다.

나도 멀지 않은 곳에서 양손의 엄지를 치켜세웠다. 입 모양으로나마 축하한다고 전달해주니 눈을 굴리며 씨익 웃는 표정을 짓는다. 뭐야, 얘 시원하게 웃을 줄 알았네. 왜 지금까진 저렇게 안 웃었대.

바람 빠지듯이 피식거리니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단상으로 걸어 나갔다. 남겨진 연습생 사이로는 김찬규가 울고 있다. 얘넨 진짜 신기한 관계야. 알면 알수록 특이한 애들이 널려 있었다.

"솔라 미디어 이정원 연습생은, 성장형 인물의 대표 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엄청난 폭의 상승세를 보여 줬습니다. 아름다운 미성과 안정적인 보컬 실력,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끈기와 노력에 많은 팬분의 지지를 받으신 분입니다. 유연한 사고방식과 더불어, 카리스마 넘치는 반전미가 이 조교, 숨은 보스 등의 별명으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이번 파이널에선 3위를 받으며, 데뷔조 멤버에 합류하게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솔라 미디어의 이정원이라고 합니다. 응원해 주신 팬분들께는 정말 말로 다 드릴 수 없는 깊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당신의 아이돌은 연습생 이정원이 아닌, 인간 이정원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조금 더 용기를 내 볼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친구이자 동생과 같은 찬규, 꿋꿋하게 등 뒤를 지켜 주신 저희 부모님, 그리고 오빠보다 다른 연습생을 더 열심히 응원한 내 동생 초원이, 올바른 방향을 잡아 주신 멘토님들과 많은 관계자분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존재, 저희 팬분들께 감사 인사 드리겠습니다.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그런 이정원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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