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정원이 형."
김찬규가 이정원의 소감을 듣고 고개를 푹 내렸다. 아마 앞에 말한 인간 이정원이란 구절은 전부 김찬규에게 바치는 멘트일 것이다. 당사자도 눈치챘는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표현하는 방법마저 본인 성격이 드러나서 웃지도 못할 해프닝이었다.
"이제 최종 2위와 1위 발표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두 자리는 후보군을 통해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마스터 여러분들의 지지와 투표로 결정된 1, 2위 후보는 바로 이 두 분입니다. 스크린 오픈!"
우렁차게 외치는 고우림의 뒤로 스크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프로그램의 로고가 떠 있던 아까와 달리 연습생 어딘가를 비추는 장면이다. 2분할로 나뉜 화면 속에는 멍한 얼굴의 윤명과 강태오가 나타났다. 그에 따라 객석에선 엄청난 비명과 환호성이 멈추지 않는다.
"최종 1위 그리고 2위 후보는 디더랩 강태오 연습생과 RD보이스 윤명 연습생입니다."
"와아아!"
"명이 형!"
"태오야……!"
"후."
"…응."
긴장이 된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 강태오였다. 옆에서는 친분이 있던 이민석이나 한여빈이 응원의 멘트를 남겨 주고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의 윤명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느릿하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고 있단 걸 알려 준다. 희게 질린 얼굴들에 쟤네도 사람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하긴 그래 봤자 갓 스물과 열아홉이었지.
"우선 디더랩의 강태오 연습생은, 매 순간 최상위권을 차지하며 무서운 강세를 보여 준 인물입니다. 조각 같은 외형을 비롯하여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많은 분의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안정적인 보컬과 선이 크고 파워풀 한 댄스 실력으로 멘토 여러분께 인정받은 연습생입니다."
"RD보이스의 윤명 연습생은, 6위라는 순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높은 자리를 차지한 성장세의 인물입니다. 고유의 천진난만한 분위기와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실력, 거기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엄청난 시너지를 보여 줬습니다."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 대망의 최종 1위를 발표해 보겠습니다. 수개월의 여정 끝에서 1위를 차지하신 연습생은 바로……."
"축하드립니다, 윤명 연습생!"
스크린 위로 윤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방에서 몰려든 연습생들이 윤명과 강태오를 기점으로 둥글게 뭉친다. 어디로 가야 하지. 커다란 무리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이 드는 것 같았다.
"명이 형!"
"명아! 진짜 대단하다!! 너무 축하해!!"
"윤명! 너 이 자식, 해낼 줄 알았다!"
"아, 아, 아파요……."
"태오야, 2위 축하해."
"형, 2위도 진~짜 대단해요."
"와, 강태오 2위 했어!"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지. 때마침 턱을 든 강태오에겐 눈짓으로나마 축하의 인사를 던졌다. 박수를 쳐 주며 웃어 보이자 고맙다는 듯이 끄덕인다. 그러곤 천천히 발을 옮겨 모두에게 눌리고 있는 윤명을 찾았다. 나보다 큰 인물이기에 손을 들어 머리를 헤집었다. 처음과 달리 너덜너덜한 몰골이었는데, 그럼에도 묘하게 기쁜 인상을 보인다.
"명아, 축하해. 1위라니 대단하다."
"형, 정말 고맙습니다. 저 진짜 너무 좋아요."
"와, 명이 형이 진짜란 단어랑 너무란 단어를 같이 쓸 때도 있네?"
"감탄 포인트가 이상하잖아."
"해신이 형은 아직 모르나 본데, 명이 형한테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우정환의 너스레에 작게 웃은 윤명이 단상을 향해 걸었다. 그 앞에는 먼저 빠져나간 강태오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팬들의 응원에 화답하듯이 1위인 윤명부터 소감을 발표한다.
쟤가 저렇게 또랑또랑한 눈빛을 지을 수도 있는 애였구나. 신기한 마음에 정면을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윤명입니다. 우선, 제가 말재간도 없고, 말수도 적은 데다가 느린 탓에 많이들 답답해하셨을 텐데…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공감과 응원를 멈추지 않아 준 우리 형… 그리고 누나… 너무 고마워. 이걸 보고 계실 아버지, 어머니…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게 된 형들… 그리고 친구랑 동생들 모두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멘토님들, 대표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 줄 아는 그런 윤명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2위인 강태오 연습생의 소감도 들어 보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강태오입니다. 감정 표현이 확실하지 못하여 답답하고 불편해하셨을 분들이 많았을 텐데, 언제나 뒤에서 묵묵하게 응원을 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딱딱하다… 어딘가 굳은 것 같다… 이런 느낌 많이 받으셨죠. 앞으론 받은 사랑에 보답드리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뒤에서 좋은 말씀 아끼지 않아 주신 멘토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모든 관계자분들께도 인사드립니다. 제겐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고, 새로운 세계를 배울 수 있었던 세상이며, 앞으로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길로 느껴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반드시 웃으며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멋진 모습으로 보답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수줍다는 듯이 웃고 있는 윤명과 처음 보는 풋풋한 미소의 강태오였다. 아… 눈부셔. 다른 스타일로 잘생긴 애들이 둘이나 스크린에 둥둥 띄워져 있었다. 그에 팬들은 엄청난 반응을 보여 준다.
멘토들과 고우림도 한없이 상냥한 얼굴이었는데 하여간에 감화하는 능력이 장난 아니다. 박수를 치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이제는 7위인 한 자리만을 남겨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연습생은 쟁쟁한 애들이 많다. 일단 난 아닐 테니까 제쳐 두고, 이민석? 우정환? 아니면 김찬규려나. 굳이 이 셋이 아니라도 선호도가 높은 애들은 더 있었다. 3위였던 박승경이나 10위의 김재원도 확률이 존재한다.
상황을 파악하다가 고우림의 뒤에 있는 단상을 목격했다. 기존에 불린 연습생들이 앉아 있었는데, 개중 두 명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이유준, 권혜성……. 부담스러워.
권혜성은 의자에서 튕겨져 나올 것처럼 앞을 향해 숙이고 있었다. 이유준은 바른 자세였지만 찡그려진 미간에서 큰 걱정이 함께 보인다.
아니, 쟤네 데뷔 확정된 애들 맞아? 당황스러워서 허허 실실 웃었더니 저쪽에서 더 이상한 반응을 한다. 이거, 안 불리면 큰일 나겠는데? 그전에 일단 불릴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각종 기행과 운을 빌어 올라간 자리가 8위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 요행이지.
간절함이 다르단 건 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불순한 의도로 출연한 건 맞았지만, 다양한 일을 겪으며 나도 적지 않은 걸 받은 기분이다.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미덕 중 하나라니까.
저 애들은 아직 모르고 있을 속마음이었다. 얘들아, 웃어, 스마일. 조용히 손을 들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걸 본 둘의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진다.
"그럼, 이제 대망의 마지막 7위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요."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7위 그리고 8위의 후보군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남현욱 아저씨, 그만 잔인합시다. 7위는 그렇다 치고 8위가 속이 많이 쓰릴 일이었다. 방송 측에선 이게 좋은 연출일 걸 알아 불만도 오래 갖고 있진 못했다.
머쓱하게 웃으며 연습생들의 어깨를 토닥이니 그에 몇 명은 엉겨 붙듯 안겨 온다. 우리 좀 떨어지자. 내가 먼저 한 행동이었지만, 이렇게 치대니 어색한 편이다. 다 큰 사내 애들이 이럴 때만 다섯 살처럼 군다.
"혀엉……."
"해신이 형~~~"
"왜 그래. 너희 아직 안끝났잖아."
"그래도, 형이 이러니까 눈물 나잖아요…!"
"마지막 데뷔조 7위 그리고 8위의 후보군을 공개합니다. 스크린 오픈!"
모두의 집중 속에서 아까와 같은 2분할의 화면이 나타난다. 번쩍하고 빛을 발하는 바람에 살풋 찡그리고 만 얼굴이다.
…어? 뭐지? 스크린 위로는 우정환이 서 있었다. 놀랐다는 듯이 자신을 가리키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그나저나 쟤는 그렇다 치고 남은 하나가 문제다.
바로 바보 같은 표정의 내 얼굴이었다. 내가……? 나도 후보라고? 너무 놀라서 숨쉬는 법도 잊고 있었다. 정신을 못차리니 옆에 서 있던 우정환이 내 어깨를 꽉 끌어 안고 떨어진다. 당황스러움에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최종 7위 그리고 8위 후보는 개인 신해신 연습생과 트레픽 우정환 연습생입니다."
"개인 신해신 연습생은 엄청난 성장세의 실력파 연습생으로 강한 지지를 받은 분입니다. 특유의 분위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다정하며 모두를 챙길 줄 아는 따듯한 마음씨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인망이 두텁고, 주변 연습생들에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멈추지 않는 노력파의 성실한 면모를 보여 주셨습니다."
"트레픽 우정환 연습생은 위트 넘치는 분위기와 솔직담백한 캐릭터가 많은 팬분의 응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진지할 땐 진지하며, 상황을 이끄는 타고난 리더십이 우정환 연습생의 매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올라운더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선보여 줬습니다."
아무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뭐라고 웅웅 울리기는 하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우정환이 말을 걸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음에도 얼굴만큼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여유롭다고 해야 할지, 여러모로 참 대담한 성격이다.
"형, 왜 그렇게 굳어 있어."
"넌 괜찮아?"
"괜찮다니? 나 완전 지금 심장 난리 났는데? 이거 꺼내서 보여 줄 수도 없고… 손이라도 올려 볼래?"
"아니, 거절할게."
심호흡을 하며 박수 칠 준비를 했다. 내가 왜 떨고 있지? 어차피 7위는 우정환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꽤 여기에 몰입하고 있었나 보다. 정신 차려, 신해신. 작게 웃으며 스크린 아래의 단상을 바라봤다. 혜성아, 유준아, 앞으로도 응원할게. 전해지진 않을 작은 안부였다.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 대망의 마지막 멤버 7위를 발표해 보겠습니다. 기나긴 여정의 끝에서 7위를 차지하신 연습생은 바로 이분입니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다시 한번 스크린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2분할이 아닌 통으로 나온 컷이었다. 흐린 시야 너머로 찡그리듯 바라보니 거기엔 연습생 한 명이 서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신해신 연습생!"
그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