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어?"
"형!"
"해신이 형, 축하해.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 역시 형은 못 이기겠다니까."
"해신아, 축하해."
"해신이 형, 짱~ 오늘 무대 장난 없었어요."
옆에 있던 우정환이 팔을 뻗어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곤 시원하게 떨어지며 말했다. 아쉽다는 인상은 전혀 없는 듯한 얼굴로 도리어 알고 있었다는 듯이 후련하게 외쳐 온다.
그를 기점으로 남아 있던 연습생들이 달려오는데 머리를 헤집고 어깨를 흔들며 많은 이의 축하를 받는 중이었다.
…진짜? 나라고? 진짜로?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바보같이 서 있었다. 그런 내 등 뒤에서 손이 하나 다가왔다. 가볍게 밀며 앞으로 나가기를 권유하는데 얼핏 돌아보니, 그건 김찬규다.
"해신이 형, 얼른 가 보세요."
"…김찬규 연습생."
"감사했고, 즐거웠습니다. 형은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신해신, 힘내라. 정말 축하해."
"해신이 형, 굿 럭!"
그 뒤로는 이민석과 우정환도 말을 이었다. 전부 내가 생각했던 7위의 후보들이잖아. 놀라서 뛰고 있는 심장을 누르며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단상 위에는 앉아 있던 권혜성이 흥분한 채 일어나 있다. 교복 재킷은 세게 움켜쥐어서 구김이 간 상태에 이유준은 졌다는 듯이 이마를 만지며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하하, 진짜인가.
"축하드립니다, 신해신 연습생, 그럼 소감 한번 들어 볼게요."
"아, 네……. 안녕하세요. 신해신입니다. 우선 정말 너무도 과분한 자리여서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감사드린다는 말로 모든 걸 표현할 수 없어 너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사실 지금도 제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여기 있는 저를 만든 건 팬분들의 사랑과 응원 그리고 지지였습니다……."
입을 열 때마다 맞은편의 연습생 친구들이 박수를 보냈다. 고마운 마음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릴 당기며 환하게 웃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이 크다. 내가 아니라면 다른 한 명이 꿈을 이룰 수도 있었는데… 우선은 현재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차분하게 멘트를 이어 나갔다.
"많은 걸 알려 주신 저희 멘토님들 그리고 대표님 또 제작진분들과… 너무 착한 저희 연습생 친구들. 제가 부족한 형, 부족한 동생이라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 어설프고 미숙한 사람이라 제 마음이 전달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소감이 너무 길어져서 죄송한데 유준아, 혜성아, 항상 투닥거리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우리였지만 너희 덕분에 너무도 소중한 추억이 많았어. 모자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줘서 정말 고마워."
아직 끝나지 않은 소감임에도 주변에선 환호와 같은 비명이 터졌다. 뭐지? 정체를 알 수 없어 뒤를 돌아보니 사이드 스크린 너머로 눈물 콧물을 갱신 중인 권혜성이 비쳐 온다.
…쟤 왜 저래? 일단 가장 중요한 한마디가 남아 있었다. 고우림에게 눈짓을 보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건 할머니와 주형이, 스페인에 계신 두 분 덕분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처음으로 고백해 봅니다. …그때 안아 주셔서, 그리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신해신, 이 이름 세 글자 아래 떳떳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동적인 소감이었습니다. 이상으로 최종 데뷔 멤버 7인이 모두 정해졌습니다. 신해신 연습생은 자리에 앉아 주세요."
고우림의 안내를 받아 의자에 앉았다. 비틀비틀 이동하면서도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짜야? 내가 데뷔를 한다고?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권혜성과 이유준이 말을 건다. 한 명은 눈물로 엉망이 되어 무슨 말인지 해독조차 할 수 없었다. 이유준은 어딘가 상기된 얼굴로 울진 않았지만,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걸 알아봤다. 너네 정말….
"해시니 혀어엉……."
"혜성아, 너 얼굴이 그게 뭐야. 다 찍히고 있을 텐데, 울지 마."
"눈물이 안 멈춰여어… 나 진짜 안 우는데……."
"말에 신빙성이 없잖아."
"형, 저는……."
"유준이 넌 네 이름 호명될 때도 안 울더니, 나 때문에 울어 주는 거야?"
"…아니요. 저 안 울 거예요. 이렇게 좋은 날인데 참을게요."
"형, 축하드려요.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채민아. 고마워. 그리고 너도 축하해."
"해신아."
"아, 정원아."
앉아 있던 애들은 질기다면 질긴 인연의 연습생들이다. 너무도 익숙한 태도에 적응이 된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 멀리 앉아 있던 강태오와 윤명과도 눈짓으로나마 안부를 주고받는데.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고우림이 새로운 멘트를 하고 있다.
"이렇게 파이널의 모든 막을 내린… 것 같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7인의 데뷔 멤버가 활동하게 될 자랑스러운 그룹 이름을 발표해 보겠습니다."
"많은 분의 사랑과 응원 속에서 달려온 수개월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바로, 당신의 아이돌이 될 그룹 이름을 공개합니다!"
[ HISIGN / 하이사인 ]
"높게 떠오른 7개의 별 그리고 그들이 이어져 만든 단 하나의 별자리, 높다는 뜻의 'high'와 황도 12궁의 별자리를 뜻하는 'star sign'의 합성어. 하이사인(HISIGN)입니다!"
"와아!"
번쩍이는 조명과 함께 떠오른 문구였다. 밤하늘의 별처럼 흰빛의 글씨가 빛나고 있는 게 사방에서 모든 이목이 집중됐다.
하이사인? 시즌 2는 담당한 적이 없어 기억나지 않았지만, 별에 관련된 이름을 사용하는 건 알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선별된 그룹 이름을 입안에서 몇 번이고 굴려 본다.
저게 앞으로 나와 함께 가야 할 호칭이란 거지. 기묘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최종 7인의 멤버는 하이사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대중분들께 인사드릴 예정입니다. 그동안의 여정에 있어 정말 많은 응원을 보내 주셔서 감사드렸습니다. 저희는 연습생 여러분들의 밝은 미래를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호 외치며,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 꿈을 꾸는 당신, 지금 바로 도약하십시오. 이상 대표 고우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입을 연 고우림이 클로징 멘트를 땄다. 마지막 문구를 끝으로 하늘에선 꽃가루가 흩날려 내린다. 좌석에 앉아 있던 애들도 몸을 일으키는데, 몇 블록 떨어진 연습생들에게 가기 위함이었다. 이번만큼은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멀리 있던 애들도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눈물을 보이는 관객들이 사방에서 소리쳐 온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은 쉼 없이 박수를 쳐 주는 상황이다. 모두와는 아쉬움에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애들을 안아 주고 다독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엉겨 붙어 있는 광경으로 정신도 없고 땀이 났지만, 지금만큼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품에 안긴 연습생들이 내 어깨에 고개를 박는다. 몇 명이나 거쳐 가며 축축해진 것 같은 교복이다. …얘들아, 여태까지 잘 참았어. 목덜미를 적시는 눈물을 느끼며 프로그램의 끝을 맞이했다. 정말 길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 *
정신없이 내려온 백스테이지, 아직도 감정의 파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인근에는 연습생들이 붙어 있는 상황으로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애써 웃으며 서로의 등을 토닥거렸다. 스테이지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관객들이 남은 상태였다.
"흑, 흑… 형… 저 어떡해요… 눈물이… 안 멈춰요……."
"야, 네가 그러니까 나도 울 것 같잖아!"
"민형아, 물 마셔라. 그만 울어."
"아, 다 그러니까 나도 괜히 울컥해~!"
상대 팀이고 우리 팀이고 상관없이 모두 모인 장소였다. 몇 명은 탈수라도 올 것처럼 울고 있다. 그에 애써 분위기를 돌리려는 우정환이다. 괜히 오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다. 그걸 눈치챈 문채민이 고개를 돌렸다. 제 친구의 기분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이다.
누가 뭐라 해도 8위로 탈락한 연습생이니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가장 힘들 사람 중 하나였다. 차마 미안함에 저길 쳐다볼 수가 없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자 등 뒤에서 엉겨 붙는 체온이 느껴진다.
"형, 그럴 필요 없어. 난 정말 여기서 엄청난 걸 받아 간 것 같거든. 팬분들의 사랑도 느꼈고, 수많은 경험치도 쌓았는데. 무엇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알았잖아?"
"…정환아."
"멋지게 활동하는 거야. 약속? 그리고 우리 채민이 잘 부탁해."
"…뭐라는 거야."
"에이, 채민이는 내가 없으면 무뚝뚝할 거 아냐. 안 그래도 재미없는데, 너 노잼이라고 사람들이 뭐라 하면 어떡해."
"…우정환, 너… 아니다. 야."
"오, 네가 먼저 웬일이야?"
한숨을 내쉰 문채민이 시선을 튼 채 우정환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그걸 본 우정환이 똑같이 주먹을 마주 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가는 감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다른 걸 떠나 여기까지 온 이상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 데뷔라는 거 정말 하는구나.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
"음, 좀 더 있다 올 걸 그랬나요?"
"어우, 다들 얼굴이 왜 그래요? 내가 알던 사람들이 아닌데?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승준 씨, 여기 붕어 동지들이 많이 있었네요."
"…부끄러우니까 제발 그만하세요."
"와핫, 얘들아, 웃으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미안하다. 너희 얼굴이……."
갑작스러운 멘토들의 급습에 본경연 전 방문과 달리 7인이 모여 있다. 가장 앞서 있던 서계현은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 뒤를 따른 민나연은 나중에 올 걸 그랬다며 성격답게 군다.
장난치는 원겸과 할 말을 잃은 공태서도 함께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은 백승준과 그런 그를 놀리는 베이스 그리고 애들을 보며 웃음을 참는 적시까지.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할 수도 있는 조합이다.
"멘토님들……!"
"쌔앰~~~~"
"저희 너무 감동이었어요……!"
"어, 어우! 붙지 마……."
"다들 얼굴 정리부터 하세요. 이따 나갈 때 다 목격될 텐데. 사진 찍히고 싶어서 그런 거면 안 말릴게요."
단호한 척했지만, 실상은 남들을 챙겨 주고 있는 민나연이었다. 조언에 가까운 발언에 모두가 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하여간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음, 뭐예요? 내가 마지막인가? 멘토님들, 안 그러신 척하셨으면서 엄청 빠르시네요."
"어? 고 대표님 오셨어요?"
"하하, 그 호칭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죠? 이거 영 아쉬운걸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처음엔 부담스러워하셨잖아요. 그리고 아쉬우면 제가 계속 그렇게 불러 드릴까요?"
"오프 더 레코드였잖아요. 원겸 씨도 참 솔직해. 그리고 그건 거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