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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18화 (118/328)

118화

자동으로 권혜성과 윤명은 현관문 앞의 방을 쓰게 됐다. 강태오, 저 둘을 피했다고 생각 중일 텐데, 먼저 짐을 풀러 들어간 애가 떠오른다. 복도 하나를 끼고 가까이 붙은 장소로 그 방의 주인들을 생각하면 호락호락한 일상은 아닐 것 같았다. 저런, 힘내라. 내 몫의 불행이 아니었기에 넘길 수 있는 일이다. 독방이면 그 정도는 감수하자.

"그럼 일단 짐부터 정리하자. 그리고 각자 쉬다가 저녁 챙겨 먹으면 되겠다."

"응~ 그럼 이따 만나."

"넌, 얼른 와."

"치사하게, 같이 좀 가자~"

"유준이 형, 벽에 붙은 침대 형이 써. 거기가 창가랑 멀더라."

"그래."

다른 애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와 이정원도 방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문이 닫히고서 얘와 한 방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잘 지낼 수 있겠지? 떨떠름하게 웃으며 방을 둘러봤다. 두개의 싱글 베드가 놓인 공간으로 중간 크기의 창문이 있었는데 해가 잘 들어서 환한 곳이다. 붙박이로 보이는 옷장이 있어 칸을 나눠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해신이, 넌 어느 침대 쓸래. 난 상관없는데."

"나도 딱히 가리진 않아서, 어차피 커튼도 있고."

"음, 그럼 네가 벽 쪽 쓸래? 내가 창가 쓸게. 사실 나 화분 키우는 게 취미라서 시간이 되면 몇 개 갖다 놓고 싶은데."

"화분?"

"응, 네가 싫다면 안 할 거야."

"아니야. 난 상관없어. 좋은 취미가 있었네."

"그런가? 그냥 어릴 때부터 키워 버릇한거야. 허락해 줘서 고마워."

이정원 취미가 식물 키우기라니. 거침없는 성정과 달리 온화한 걸 즐긴다. 하여간에 변칙적인 애라니까. 신기함을 숨기며 짐을 푸니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시간이다. 사실 진짜는 시작하지도 않은 구간이었다. 분명 집에 있는데, 왜 집에 가고 싶은 거지.

* * *

"…방 위치,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왜 저 둘이 내 방 앞에 와 있는 건데."

"형들은 화장실 옆으로 간다고 했고, 나는 잠귀 밝아서 안쪽으로 갔으니까? 운명인 거지. 받아들여."

"너, 네 일 아니라고."

"왜? 혜성이랑 명이 조합 재밌던데. 독방 써서 심심할 거 생각하면 괜찮지 않아?"

"…이유준, 살면서 삐딱하단 소리 많이 들었지."

"잘 아네. 나한테 관심 있었나 봐?"

"말을 말자. 그 둘보다 네가 더 힘든 것 같아."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보낸 이후로 거실에 나오자마자 본 광경이 저거다. 소파 위에 앉아 있던 강태오가 피곤해 보이는데 그 옆에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유준이 서 있었다.

저 둘, 3차 미션 때 말을 놓은 사이였지. 동갑이라고 친해진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강태오가 당하는 입장이었던 듯하다. 어쩐지 과거의 나와 오버랩되어 보이는 것 같아. 저런 건 끼는 게 아니어서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어? 해신이 형, 정리 다 했어?"

…망했어. 서둘러 지나간다는 게 그만 눈에 띈 모양이다. 음, 강태오 꼴은 나기 싫은데. 눈을 내리깔며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응, 둘이 대화 마저 해. 난 이만 가 볼게."

"쉬러 가는 거면 여기 앉아. 자리 많아."

"어?"

"쉬려던 거면, 여기 앉아도 된다고. 그, 형… 이랑 나도 적응해야지."

강태오가 옆으로 이동하며 말을 걸었다. 대화 사이에 간극이 있었지만 이건 날 붙잡는 행동이다. 강태오 너, 혼자 상대하면 되지, 왜 나까지 끌어들여. 이상한 대치가 이어질 무렵이었다.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도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 * *

피곤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내일을 위해 일찍 잠들기로 한 상황이다. 고요한 밤, 옆의 침대에는 이정원이 누워 있었는데, 쟤랑 같이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다.

나랑 상극인 성격으로 피하던 전적이 잦은 애였다. 이렇게 룸메이트까지 되어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정원은 진즉 잠들었는지, 조용히 숨소리만 내뱉고 있다.

나도 자야 하는데. 뒤척거리던 몸을 정면으로 돌려 누웠다. 이런저런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다. 회사 방문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데뷔 준비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진짜 아이돌이 되기는 하는구나. 도전한 입장에서도 확신이 안 들었던 걸 끝내 해낸 자신이다. 장하다, 신해신.

이런저런 요행을 써서 올 수 있었단 걸 알고 있었지만 말이야. 온전히 나만의 능력이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요행 하니까 떠오른 건데, 시스템,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여전히 눈앞에는 상태 창이 보인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많이 있었는데 뭔가 공허하게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상함을 감지해 상점과 스탯 해금, 스킬 트리를 불러왔으나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다. 분명 시스템 정비 이후에 다시 찾아온다고 예고했지.

오기는 하는 거야? 사실 이게 없으면 스트레스는 덜 받을 일이다. 그런데도 공백이 길어지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아무래도 내가 여기에 적응을 하긴 했던 듯하다.

"모르겠다. 일단 자야지."

피식 웃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불 속에 있던 두 손을 꺼내 가지런히 포개 놓은 상태로 지그시 눈을 감고는 의식이 넘어가기를 기다리던 찰나였다.

[띠링-]

['랜덤! 스타★코인 아이돌' 업데이트 패치 완료.]

[플레이어 '신해신' 님 반갑습니다.]

…뭐야. 감았던 눈이 번쩍 떠졌다.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알림음 때문이다. 신경쓰긴 했지만, 막상 온 걸 확인하니 심란한 기분이다. 괜히 고민했네. 너, 그냥 다시 들어가.

[패치 완료 ver. 상태 창을 띄웁니다.]

[상태 창 오픈]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2,02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21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깜깜하던 시야 안으로 번쩍하고 빛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상태 창이 떠오른다. 뭔가 많이 길어진 것 같은데… 이전과 다른 점들이 속속 발견됐다.

우선 저당 금액의 변화가 커 보인다. 1억을 돌려받으며 줄어든 숫자 밑에 사전에 들었던 예금과 적금의 잔고가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같이 보여 주는 거였구나.

포기가 빠른 나 때문이었는지 적극적으로 물량 공세 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얘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뒤로 넘겨 두고 다음으로는 제거한 이벤트와 버그 창이 생성됐다. 아무래도 이번 상태 창은 소실된 걸 함께 기재해 주는 것 같았다.

방금 알게 된 점인데, 기존 스탯 창에 있던 이벤트 항목이 사라져 있다. 그 전에는 정보 밑에 따로 붙어 있던 내용이었다. 더는 이벤트가 없다는 소리인가. 저게 없으면 내 업적 보상은 사라지는 거다.

최종 목표까진 성공할 자신이 없으니 단계별 이벤트를 클리어 해서 저당금 일부를 돌려받을 계획이었다.

이러면 내 계획이 죄다 무너지잖아. 허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니 이제부터 뭐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진 시점이다.

그냥 메인 미션인 1군을 성공하란 건가? 그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1군은 어떻게 하는 건데. 그 전에는 지표 삼아서 프로그램이라도 나가라고 알려 줬으면서, 안 그래도 불친절하던 시스템이 업데이트 패치 되며 더 불친절해져서 돌아왔다.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댄 순간이다. 다시 한번 들리는 알림음에 눈을 돌렸다.

[!Bug 발생!]

[!Bug 발생!]

[!Bug 발생!]

[!업데이트 패치 완료 이후 Bug가 발생했습니다!] - (1)

[!업데이트 패치 완료 이후 Bug가 발생했습니다!] - (2)

[!시스템 난이도 업그레이드!]

[Bug] (1) - 호칭 비공개

스폐셜 스킬 트리 잠금 → 사용 불가능

[Bug] (2) - 호칭 비공개

스타 코인 스탯 해금 지불 코인 변동: 1,000코인 -> 5,000코인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2,02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21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비공개)Bug(1)'

'(호칭 비공개)Bug(2)'

…이런, 너도 다시 들어가. 저건 그렇게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오랜만의 방문이면 선물을 줘도 모자랄 걸, 오자마자 버그부터 투척하기 있나.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다.

코인 캐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수개월을 괴로워했는데. 이번엔 스킬 트리에 스탯 해금까지 난제가 생겼다.

스폐셜 스킬 트리는 그냥 아예 못 쓴다는 소리로 보인다. 저걸로 득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빠져나갈 구석을 차단당한 셈이었다.

일단 일회성 아이템으로 어떻게 메꿔 볼 수 있겠다 쳤다. 아, 근데 스타 코인 스탯 해금 건드는 건 선 넘었어. 얘는 잠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5,000코인? 내가 숫자 하나를 잘못 봤나 싶어 다시 읽어 본 구간이다. 1,000코인도 간신히 채웠는데 이제는 그 다섯 배를 내라고 말한다. 허, 그냥 다 됐으니까 내 돈 돌려줘. 진짜 양아치는 저 자식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 짓던 무렵, 알림음과 함께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만반의 준비라도 한 모양이었다. 진짜 이런 건 필요 없어…….

[메인 미션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메인 미션]

1군 아이돌이 되어 보자

[성공 시]

저당 금액 반환

메인 미션 소멸

[실패 시]

잔고 '0원'

파산

다른 건 기존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가장 하단에 추가된 문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파산? 내가 아는 그 파산?! 다급하게 핸드폰을 들어 검색했다. 툭, 쥐고 있던 핸드폰이 이불 위로 떨어졌는데 환하게 빛을 발하며 나타난 사전적 설명이 날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파산(破産)]

재산을 모두 잃고 망함.

지금 저건 단순히 로또 당첨금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데뷔에 성공해서 활동하며 사는 걸로는 어림없다는 뜻이다.

"미친 거 아니야?"

자신도 모르게 상욕을 읊조린 게 이렇게 되면 버그는 난제라고도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1군을 하지 못하면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돈을 얼마나 벌든 시스템이 시키는 것을 해내야 했다. 아주 나락으로 보내는구나. 저당보다 더한 끝이 있었을 줄이야. 시스템 너, 당장 이리 와. 여태까지 해탈하며 참고 산 게 무의미했다. 맨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을 했는데 내가 거칠어지면 전부 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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