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아, 그럼 저 질문 좀 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이유준 씨."
그 와중에 이유준은 어색하지도 않았는지 담담한 기색이다. 궁금한 건 절대로 참지 않는 성격답다.
"로드 매니저님과 스케줄 매니저님 이렇게 두 분이 저희 전담 매니저님이신 건가요?"
"아, 이동할 때 동행해 주시는 건 우선 두 분이십니다. 저분들을 제외하고도 한 분이 더 계시는데… 성하 씨?"
"안녕하세요~ 하이사인 전담 매니징 팀에서 마지막으로 브로커 매니저를 맡고 있는 김성하라고 합니다. 단어가 좀 수상해 보이죠? 그런 거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되신답니다."
"브로커 매니저는 하이사인 여러분의 방송 및 출연 프로그램, 기타 기획과 관련하여 관계자들과의 조력을 주력 삼는 직급입니다. 급한 일이 아닌 이상 동행은 박 매니저님, 오 팀장님 두 분과 함께하실 것 같습니다. 보다시피, 성하 씨는 좀 장난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마주칠 일은 적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는 앞과 달리 젊어 보이는 남자다. 깔끔하기보단 화려한 느낌이었는데, 성격은 짓궂은 편인 듯했다. 그걸 떠나, 한지헌 앞에서 저럴 정도라니. 간도 참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에이, 한 실장님 걱정이라니, 너무하시네요. 전 거의 매니징 팀에 있을 예정이랍니다.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참, 나이는 서른다섯입니다."
어린 게 아니었구나. 여기는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어 보인다. 젊어 보여서 신기했는데, 그냥 대다수가 동안인 것 같다. 엔터 쪽에서 일해서 그런가, 모두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까 아무나 데려온 회사는 아니라고 들었었지. 나름 엄선한 인재들일 텐데 그에 따른 경력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해신이 형, 그럼 우리 매니저님만 세 분인 거지."
"어, 내 생각보다 전담 스태프분들이 많으시네."
문채민이 몸을 기울여 속삭여 오니, 이 어른스러운 애도 당황했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일 처리를 떠나서 개성으론 확실한 인물들인데 아직 소개받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회사인지 알 수가 없다.
눈만 깜빡이던 와중 강태오와도 시선이 마주쳤다. 미미하게 찡그려진 미간에선 저번과 같은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너도 나와 같은 생각 중이니.
"그럼 남은 두 분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긴 마케팅 팀 총괄로 계신 주세라 팀장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마케팅 팀 총괄 팀장으로 있는 주세라라고 합니다. 아티스트 여러분의 홍보를 전담하여 영광입니다. 팬 마케팅을 비롯하여 경영 마케팅, 디지털 콘텐츠와 기획 및 제작까지 전체 관리를 일임하고 있으니, 문제가 있으시면 언제든 절 찾아 주세요. 나이는 올해 서른여섯입니다. 편하게 주 팀장이라고 불러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때마침 셔츠 차림의 여성이 등장했다. 길게 푼 머리에 깔끔한 인상으로, 당당한 어조에서 프로페셔널한 기운이 느껴진다. 미리 정한 것처럼 군더더기 없는 멘트를 뱉은 후 뒤로 물러나곤 마지막 인물에게 손짓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하이사인 여러분들의 음악적 활동에 힘을 실어 주실 A&R 팀의 윤재희 팀장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마지막으로 소개드리네요. 하이사인 여러분의 전담 A&R 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윤재희라고 합니다. 38살이고, 국내 활동은 처음이라 미숙한 점이 많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딘지 유한 기운의 남자로 국내 활동이 처음이라니 해외파인 듯하다. 한국어 발음도 좀 어색한 것 같고? 말은 잘했지만, 어감에서 티가 난다. 염색모로 보이는 붉은기 도는 갈색 머리가 눈에 띄는 인물이다.
음악 관련된 단어가 나와서였는지, 이정원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데뷔 앨범에 대한 내용은 저 남자와 함께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소개한 기분이다. 사실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유추해야 할 지경이었다.
"자, 이상으로 하이사인 전담 팀에 대한 소개는 끝내 보겠습니다. 사실 아티스트 케어 팀 내의 코디네이트 담당자분도 오셨어야 했는데, 의상 수급 문제로 급한 미팅이 잡혀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김윤하 팀장님과는 추후 간략하게 다시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우선 팀장님들? 그리고 재민 씨, 성하 씨 업무 복귀 해 주세요. 그리고 윤 팀장님은 미팅 시간에 맞춰 제2 미팅 룸에서 뵙겠습니다."
"네."
"그럼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하이사인 파이팅~"
"저와 박 매니저는 일정이 끝나자마자 차량 이동 진행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인사를 하며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정신이 쏙 빠질 것 같아 휩쓸리듯 눈짓하니, 슬쩍 미소 지은 김성하를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스태프 진은 저희 메이터스에서도 자랑하는 인재들입니다. 아직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죠. 제가 너무 자랑해 버렸나요?"
아니, 능력자들이라면 대환영입니다. 뭐가 됐든 이벤트를 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계산적인 것 같아도 저게 열린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신경 써 주시는 것 같아서 좋은걸요. 이렇게까지 환대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저희야말로 감사드리죠. 일단 아침부터 움직이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간략한 소개는 끝났으니 약간의 쉬는 시간을 갖고 본격적인 미팅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타 임원진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아티스트 여러분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최적의 환경을 꾸리기 위해 A&R 팀과 단독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장소는 제2 미팅 룸으로, 잠시 쉬고 계시면 되시겠습니다. 제가 있으면 휴식에 있어 불편하시겠죠? 20분 뒤에 다시 찾아뵙는 걸로 할 테니 편히 계세요.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이따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다급하게 일어나서 인사하는 권혜성과 그런 뒤로 한지헌이 문을 닫았다. 시야가 차단됨과 동시에 엎어지듯 몸을 누였는데 어젯밤의 일로 줄곧 긴장하고 있던 탓에 지쳐있었다.
"이제 본격적이란 느낌이 나네."
"그러게. 그나저나 A&R 팀과 미팅이라면 바로 데뷔 관련된 이야기 들어가겠지."
"와~ 데뷔요? 그럼 저희 데뷔곡도 받는 거예요?"
"…진행 상황을 봐선 수급까지 끝낸 느낌이던데."
"수급?"
"여기 속도가 엄청 빠르잖아, 뭐라고 해야 하지. 힘든 일 전혀 안 시키겠단 뉘앙스? 뭔가 알아서 착착 해 주시는 것 같네. 이 정도면 후보군 곡 수급도 끝나 있을 것 같아. 윤재희 팀장님이 디렉터 역할까지 하시는 건가. 프로듀서는 따로 있는 거고? 아니면 총괄……?"
"난 총괄 쪽으로 보는데."
"태오, 너도? 나도 같은 의견이야."
그래서 그게 다 무슨 소리야. 다른 애들은 소속사 경험이 있어서 그랬는지 어느 정도 이야기가 통하는 듯했다. …문제는 나지. 데뷔를 하는 것도 좋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반가웠다. 그런데 곡 수급? 디렉터? A&R 팀? 그게 뭔 지 잘 모른다. 내가 알아들은 건 경호나 매니저 같은 단순 용어뿐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1군을 하라니, 어지간히도 못된 시스템이다.
"형, 표정이 묘하네."
"유준아, 귀 좀."
"나?"
모르면 손해를 보는 건 나였으니, 그래서 물어보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바보같이 구는 것도 얘네 앞에서나 가능할테니까. 다른 사람들까지 있는 미팅에선 이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알고 지낸 사이가 있는데 이유준에게 부탁하려고 했다. 음, 조금 부끄럽지만 몸을 기울여 오는 이유준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자세히 설명 좀 해 줘."
"큽."
그리고 그와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웃는 것보단 정말로 재밌단 기운인데, 그래, 웃어라. 이젠 상처도 안 받는다. 이런 거에 상처받다가는 정말 파산하고 말 것이다. …절대 안 돼.
"…지금 다들 잊은 거 같은데, 난 소속사 경험이 제로거든. 알아듣는 척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뭐야, 뭐야. 해신이 형이랑 유준이 형 둘만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유준이 형, 나도 알려 줘!"
하여간에 권혜성 쟤는 도움이 안 된다.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으나 내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생긴 찰나였다. 곧 들이닥칠 사태에 그냥 얼굴에는 철판을 깔았다. 부디 이유준이 조금만 돌려서 밝혀 주길 바랬다. 아, 내 인권이 또….
"안 알려 줄 거야. 비밀이거든."
"엑, 너무해."
"…?"
"왜? 비밀 아니었어? 난 알려 주기 싫은데."
"어… 그래."
쟤가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삐딱하게 굴길래 오늘도 한껏 놀릴 줄 알았더니. 어깨를 으쓱하곤 느긋하게 행동하는 게 권혜성의 땡깡을 칼처럼 차단한다.
이러면 나야 고맙긴 하지만… 그 사이론 다른 애들이 저마다의 추측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 * *
"그러니까 A&R 팀이란 게 앨범이라든지 프로젝트의 전반을 맡고 있는 부서라고? 아까 윤 팀장님, 그분이 우리 그룹 데뷔 프로젝트의 총괄 담당자일 가능성이 크고?"
"응, 확실한 건 나도 들어 봐야 알 것 같은데. 대충 흐름 봐선 그러지 않을까 싶어."
"그럼 곡 수급은 후보군 노래를 체킹 해서 최종 결론을 짓는 전초전인 거지?"
"맞아, 큰 틀만 설명했는데 잘 이해했네? 이거 말고 또 궁금한 거 있었어?"
"아니. 일단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고마워."
한지헌에게 받은 쉬는 시간으로 나는 지금 이유준과 복도 구석에 서 있었다. 미팅에 들어가기 전 모르는 부분에 대해 알아두기 위함이었다. 민망함 따윈 느낄 겨를도 없는 게 흐름을 파악하려면 이 정도는 해 둬야 한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날 앞에 두고 팔짱을 낀 이유준이 벽에 기댔다.
"돌아가는 걸 봐선, 큰 문제는 없이 진행될 것 같은데… 아마 빠르게 흐를 거야."
"네가 봐도 그렇지?"
"응, 데뷔까지 길어야 두 달 내외일 것 같은데. 형 생각은 어때?"
"나도 같아. 프로그램 끝나고 휴식을 준 이유가 이것 때문이란 기분이 드네."
이유준의 말에 공감하며 끄덕거렸다. 여기에 대해서는 포괄적이나마 예측하고 있었다. 앞의 시즌은 모르겠지만 3 때 걸 그룹이 프로그램 종료 1달 반 만에 데뷔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입장에선 빠르다고 여겼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평균적인 기간이라고 말했다. 잠깐 쉬었던 휴식을 더해 보면 2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 우리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현재 상황으로는 메인 미션을 떠나 이벤트부터 해치워야 하니까 말이다. 음악 프로그램 1위를 달성하려면 뭐가 됐든 데뷔부터 해야 했다. 게다가 초동 40만장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 구간임은 확실하다.
"형들, 미팅 시간 다 됐어."
"우리도 이동하자. 한 층 아래라고 했지?"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방문이 열리며 애들이 걸어 나왔다. 손에는 각자 짐이 들려 있었는데, 우리 것도 함께 챙겨 준 모양이다.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합류하며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데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온 권혜성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