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22화 (122/328)

122화

"자, 그럼 간략한 전달 사항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내일 모레 오후 12시 정각 하이사인 출격 오피셜 기사가 나갈 예정입니다. 현재 목표로 삼고 있는 데뷔 예정일은 7월 초중순으로, 프로모션 준비에 돌입해야 할 시기입니다. 데뷔곡이 확정 남과 동시에 바로 전체 진행에 들어갑니다. 넉넉하다곤 볼 수 없는 스케줄이죠."

"왠지 실감 나지 않네."

"…데뷔."

그리고 1위와 초동 40만장, 가장 먼저 해내야 하는 조건들이었다.

모두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정적으로 물든 공간 속에서 마른침을 삼키니 한지헌이 이야기한다.

"오늘 숙소에서 해 주셔야 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하이사인을 이끌 리더를 뽑는 것입니다. 그룹 전체를 통솔하고, 멤버들을 조율하여 이끌어 줄 분을 정해 주세요. 엔터 쪽에선 개입하기 힘든 문제라고 판단했기에, 전적으로 아티스트 여러분의 의견을 수용하고자 제의드렸습니다."

"와, 뭔가 확 와닿는다."

"…나도, 그런데 후보군은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

윤명의 말에 권혜성과 이유준이 주변을 돌아봤다. 대다수의 눈길이 쏠리는 게 이쪽 방향인 것 같다. 이제야 저 눈빛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게 주변을 돌아보니 이정원과 강태오가 양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리더라, 평소 같았으면 기피했을 부분이다. 3차 미션에서도 반쯤 떠맡으며 진행했던 일이 존재했지. 일단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 물러선 기질이 강했는데, 앞으로의 행보를 떠올리면 더는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이젠 나 혼자 잘해서 될 일이 아니니까. 그룹은 곧 단체 활동이이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들이었다.

통제가 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좋아, 이건 내가 해야겠어. 사건 사고 회피라면 다른 애들보다 내 주특기였다. 애들이 연관될 것 같으면 빠르게 빼내자. 이정원이 여기에 지원할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내가 차지해 볼 속셈이다. 스스로 이런 일을 자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진짜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해신이 형, 오늘 좀 이상한 것 같은데."

"그러게, 진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분위기를 보아하니, 어느 정도 좁혀져 있는 것 같네요. 그럼 하이사인의 대표자인 리더 선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 조만간 공식 오피셜 SNS 계정이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먼저 알려 드리는 사실이니 대략적인 파악용으로 체크해 주세요."

"오피셜이라고 하면, 티위터나 아웃스타그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공식 계정은 그룹 오피셜과 팬 마케팅용 2개가 만들어집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자면 데뷔곡 확정 이후, 오피셜 기사 출격, 공식 계정 설립 이후 프로모션 준비 이렇게 들어갑니다. 프로모션은 준비가 완료되는 즉시 선오픈될 예정입니다. 마케팅 팀과 협업하여 기획과 장소 섭외 및 콘택트 관련된 부분은 완료해 놨습니다. 현재 상황으로는 촬영과 제작만 들어가면 바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랜 시간 미팅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주차장에 오 팀장님과 박 매니저님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차량으로 이동 부탁드리겠습니다. 차후에 2차 미팅 관련 건으로 다시 한번 연락드리겠습니다."

가볍게 인사해 주는 한지헌이다. 마중이라도 나와 주려는 건지 움직이는 우리의 뒤를 따라 걸었다. 늦은 오후였던 탓에 활기를 띠고 있는 사옥으로 걸으면서 보이는 반투명한 창 내부로 바빠 보이는 직원들이 목격됐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건물 내 직원 수가 제법 되는 듯하다. 중소이긴 했지만, 뒤에는 엔필름이 버티고 선 소속사였으니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적지 않은 듯하다.

이걸 눈치챈 건 나만이 아닌 것 같은 게 근처에 서 있던 문채민과 강태오도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부담으로 어깨가 무거웠지만, 마음가짐은 굳건해졌다.

* * *

"아~ 지쳤다. 뭐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뭔가 힘들어."

"혜성이 넌 체력도 좋으면서, 이런 건 영 약하네."

"유준이 형은 안 힘들어? 뭔가 기가 쭉 빨린 기분이야."

"뭐, 장시간 설명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최대한 배려해 준다는 느낌이 강하던데? 팩트만 정리해서 설명해 주시잖아."

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늘어진 권혜성이었다. 그런 애의 옆으로는 이유준이 앉아 있었다. 강태오는 개인 물품부터 정리하려고 했는지 본인의 방에 들어갔다. 손을 씻는 문채민과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이정원까지. 각자 추구하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

이런 애들을 통제할 리더라. 임무가 막중했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 눈을 가늘게 뜨며 턱을 괼 무렵이었다. 등 뒤로 묵직한 체중이 나를 눌러 온다.

"윽, 누구야."

"…난데?"

"명아, 너 무거워."

도착하자마자 강태오와 함께 본인의 방으로 들어간 윤명이었다. 옷은 또 언제 갈아입었는지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새다. 말도 느리고 멍한 얼굴로 행동만큼은 참 재빠른 타입 같았다. 내려오라며 팔을 허우적거리자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았다. 애 같은 건 알고 있었지만, 부디 제 덩치 좀 상기해줬으면 좋겠다.

"형, 오늘 눈빛이 미묘하게 굳건하네……."

느릿하게 고개를 틀어 질문해온다. 어린 애들이 감정 캐치에 빠른 것처럼, 비슷한 맥락의 윤명도 분위기 감지를 잘하는 것 같다. 야생 동물, 역시 그때의 추론이 정답이었구나. 하지만 하나도 안 기뻐.

"그러게, 아까부터 뭔가 좀 다른 것 같아."

"…나 평소랑 똑같아."

"아니야, 아니야, 뭔가 아~주 달라. 그치, 유준이 형!"

"흐음, 그러게. 뭘까."

갑작스럽게 열린 청문회였지만, 이럴 때가 아니란 사실에 손을 내저어 됐다는 시늉을 했다. 조금 떨어진 곳으로 피신한 뒤 나머지 애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지헌이 시켰던 것부터 정하기 위해서다.

"유준아, 넌 누가 리더 했으면 좋겠다고 봐?"

"음, 정말 솔직하게?"

"그럼 솔직하게지. 거짓말이라도 하려고?"

"당사자가 별로 안 반길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었는데."

"그거 나 말하는 거지. 아니, 반길게."

이유준에게 질문했다. 리더를 뽑을 땐 다수결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미리 편을 만들어놓으려는 속셈이었다. 장난을 떠나서 내가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항상 날 갖고 놀았지만, 결론적으로 배려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게 독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먼저 선수 쳐버렸다. 유준아, 나 이번엔 하고 싶다. 그러니까 좀 도와줘.

"……어?"

"그거, 반긴다고."

"…형, 혹시 어디 아파?"

그에 이유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곁에서 듣고 있던 권혜성도 놀란 기색이다. 왜, 뭐, 내가 이렇게 적극적이니까 이상한가.

"아프냐고 할 것까지는 없잖아……."

"뭐야, 다들 왜 이렇게 어수선해."

"정원이 형! 해신이 형, 어디 아픈가 봐!!"

굳어버린 분위기에 옷을 갈아입은 이정원이 나타났다. 편한 반팔 티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에 권혜성이 냅다 소리친다. 혜성이 쟤는 오늘도 입으로 매를 벌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야, 정원아, 그냥 애들이 나 놀리는 거야. 흘려 넘겨."

"…그래? 뭔가 미심쩍긴 한데. 일단 알았어."

눈을 흘겨 주변을 둘러본 이정원이 옆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유준과 권혜성은 이런 내가 어색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윤명만 입을 다문 채 허공을 바라봤는데 일단 언질은 해놨으니 도움은 주겠다고 믿고 싶었다.

"그나저나 채민이랑 태오는? 아직 안 나온 건가?"

"어, 그래도 곧 올 거야. 모두 모이면 리더부터 정할 거지?"

"그래야겠지. 혹시 누구 지원하는 사람 있으려나."

끝과 끝에 위치한 방문을 돌아본 이정원이다. 후보군이라도 좁히려고 하는 듯 천천히 서두를 꺼내온다.

"…해신이 형 말고는 없을걸?"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존재감을 떨친 윤명이다. 어느새 다가와선 등 뒤에서 말을 거는데 덩치도 큰 게 조용히 움직이긴 잘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해신이 너, 지원할 거야?"

"어, 가능하면 내가 해보고 싶어서. 투표로 뽑으면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네가?"

"정원이 형, 이상하지! 해신이 형, 진짜 이상하잖아! 그렇지! 유준이 형!"

"어, …형이 열심히 하긴 해도, 이런 걸 자처할 성격이 아닌데. 진짜 뭐 숨기는 거 있어?"

"아니라니까. 그냥 데뷔하니까 성격 좀 고치고 적극적으로 나서보려는 것뿐이야."

하여간에 도움이 안 된다. 아까 전 셋에 이어 이정원까지 의심 어린 눈길로 여길 쳐다보고 있었다. 두루뭉술하게 둘러대니 옷을 갈아 입은 강태오가 나타난다. 복잡한 사태를 목도하고는, 여기 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뭐야, 리더 정한다더니 왜 이래."

"나왔네. 태오 너도 얼른 앉아."

"그럼 일단 유준이 쟤는 물러선 것 같고, 혜성이도 딱히 생각은 없는 거지? 명이는…"

"명이 이런 거 할 타입이 아니잖아."

"응, 나 리더 같은 거 못해."

"그럼 채민이는? 나랑 정원이가 있어서 안 하려고 들려나."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리더라면 일단 그런데.

"채민이, 너도 나왔구나. 그럼 이제 다 모인 거지?"

옷을 갈아입은 문채민까지 합류한 거실이었다. 각자 추구하는 자세로 앉아 편한 분위기 속에서 서두를 꺼내니 평소 같았으면 시작은 이정원이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말을 했다. 다른 곳으로 셀 것 같은 이야기들은 중재시켰는데 나도 잘 할 수 있단 걸 피력한 거다.

이정원에게 눈짓하며 의사를 표현했다. 괜찮아 보이지, 그러니까 날 뽑아. 간곡한 눈빛에 의아하단 기색이 가득한 이유준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정원도 마냥 신기해한다. 왜지, 내 취급이 너무한 것 같은데.

"어, 그럼 일단 지원하는 사람은 해신이뿐인 거야? 난 아무도 안 나설 줄 알고, 내가 해야 하나 싶었지."

"난 형들이 있는데, 물러서야지."

"나도 패스~"

"…나도."

"유준이 너도 아니었지."

"일단 그렇긴 한데."

"태오 넌?"

"나도 시키지 않는다면 딱히 상관없어."

주변을 관전하며 앉아 있던 강태오였다. 내가 대뜸 질문해오자 눈썹을 찡그리더니 이내 곧 동의해온다. 권혜성의 어깨를 툭치며 묻는 게 내가 조금 어색해 보이는 것 같았다. 턱을 들어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소곤거리는 게 들린다. 나 다 듣고 있어. 그러니까 그만 의심해줄래.

"나도 딱히 상관은 없는데,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물러설게."

어찌 됐든 칼같은 성향의 이정원이었다. 여러모로 시원시원해서 편하게 진행됐다. 대충 봐선 쟤가 해도 잘할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저돌적인 부분을 떠올리면, 차라리 내가 막는 게 나아 보인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차지하려고 마음먹긴 했으나, 강요는 해선 안 될 일이다. 초장부터 팀워크를 깰 생각은 없었으니까. 누구 파산 할 일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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