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24화 (124/328)

124화

이건 영어인데. 평소와 달리 쉽게 들을 일이 없던 부분이다. 윤재희인가. 문득 해외파라고 추측하던 A&R 팀의 팀장이 떠올랐다. 전화하고 있었는지,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Yes, it's really unfortunate to turn down an offer like this, but for now, I would like to put my effort on this. Thank you for offering me this great opportunity, but I was drawn to this instead. Ah, this has to be secret though. We have some bad apples around here. Yes, if we talk like this we would be kicking down the road in no time.(예, 제안은 아쉽게 됐으나, 당분간은 이쪽에 집중해 보려고 해요. 좋은 기회를 주신 건 감사드리는데, 거기보단 여기가 더 끌렸거든요. 아, 이건 비밀입니다. 상대하기 힘든 분들이 계셔서요. 그렇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피곤해지겠죠.)"

곧 보이는 뒤통수의 머리 색이 달라 그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붉은기 도는 갈색이 아니라, 어두운 회색빛의 채도가 낮은 염색모다. 저런 머리를 하고서도 화려한 느낌이 안 들어서 신기한데. 차분한 말투에 여유로운 몸놀림이 눈에 띄는 사람 같다. 따듯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얇은 아이보리색 니트를 걸친 복장으로 실내 온도가 조절되고 있다지만, 특이한 차림새인 건 확실했다. 엔터테인먼트라서 그런가, 어째 스타일들이 남다른 것 같다. 뭐, 나야 스태프 일을 할 때도 시커멓게 하고 다녔지만 말이다.

"Ha ha, because you are lacking what's needed on the field, they pull enough strings to have the right number of staff for this job. Not gonna lie, I spent some hard hours picking up what's needed. From another point of view, this is a way to begin again, I had to do it right.(하하, 실무 쪽 경험이 적은 만큼, 인력 배치에 힘써 주신 것 다 아시잖아요. 안 그래도 급하게 연수받는다고 고생 좀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작인데, 잘해 봐야죠.)"

"If things are going south, head to Director Han and say your grievances. He is quite a professional you see. Because he is surrounded by brilliant junior staff, he is handling this with charm. I am quite blessed in its way. Hmm? You want Director Han to be sent there? No can do. I become meaningless as a person without this man. Even if our boss asked me about it, I would say no.(정 안 되겠으면 한 실장님 붙잡고 한탄 좀 하면 됩니다. 워낙 프로페셔널해서요. 부하 직원 잘 둔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제가 이런 운은 좀 좋은 편이잖아요. 음? 한 실장님이라도 보내 달라고요? 안 됩니다. 제가 이분이 없으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서요. 사무장님 부탁이라도 그건 좀 힘들겠네요.)"

그나저나 뭐라고 하는 거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긴 통화에 학창 시절부터 겪어 온 영어 울렁증이 다시 도진 것 같다. 외국인과는 스피킹 못 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냥 지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5층에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를 확인하곤 버튼을 눌러 기다렸다.

"You sensed a joy within my voice? I can't hide anything in front of the general manager. There have been funny folks down there. Considering what had been achieved since this point, it is quite impressive… we shall see it.(제 목소리가 즐겁게 들리셨나요? 역시 사무장님 귀는 못 속인다니까요. 사실 재밌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았어요.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봐선 만족스럽습니다만… 일단은 좀 더 두고 보려고 합니다.)"

"If I had decided to stand down so easily, I wouldn't have headed to this country at all. Don't worry. I have prepared other ways to sway it. You know me as a person. Ain't that right sir? …Please, too much whip can hurt the mule.(쉽게 물러설 예정이었으면 한국행을 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다른 방법도 준비해 놨거든요. 제 성격 아시잖아요? 너무 질색하시니 상처받네요…….)"

"I would pray that it gets to be okay in no time. Everything is my fault? I would presume that is the case for now. They would give me some gaze, wouldn't they? I would delay my flight to my state until some of its members decide to cool down for a bit.(빠른 시일 내에 안정화되기를 기원할게요. 전부 제 탓이라고요? 일단은 그런 걸로 쳐 두겠습니다. 가면 눈총이 장난 없겠어요. 몇 명의 분노가 사그라들 때까진 미국행은 보류해 두겠습니다.)"

"Well directors of all the boards… I can hide from them like before, but what I've been worried about is members of the field. Please call me back when they have been relaxed a bit. I would pay for international tele fees, you can deduct form there.(임원진분들이야 뭐… 평소처럼 피하면 되는데, 실무 팀이 걱정되네요. 화가 풀리면 불러 주세요. 그리고 국제 통화비는 제가 부담하니까 이걸로 차감 좀 해 주시고요.)"

"I don't consider myself rich. I am an ordinary citizen. Revenues like before had long been cut off for good. I need to feed myself with whatever it is left with me. You are saying I deserved these because I had kicked the wrapped lucky charm to the ground? I can't say anything about that. I have lost. That's correct. But please, pray for my new beginning. Yes, Yes, haha and yes that too.(저 부자 아닙니다. 평범한 소시민이에요. 예전 같은 수입은 사라진 사람이라서요. 벌어 둔 걸로 먹고살아야죠. 행운을 걷어차고 나갔으니 감안하라고요? 역시 말로는 못 이기겠어요. 제가 졌어요. 맞는 말입니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에 대해 응원해 주세요. 예, 예. 하하, 거기도요.)"

"Ah, it's already… Yes, I know it's hard around these times. Thank you for your call.(아, 벌써 시간이… 그래요. 한참 바쁠 시기인데 연락해 줘서 고마웠어요.)"

중간에 들리는 단어 몇 개가 귀를 사로잡는 게 디렉터, 매니저, 아무래도 일 관련된 전화인 듯하다. 일단 나는 외국이라면 나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내 지식으론 전부를 알아듣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지. 어느 팀의 팀원인지조차 예측할 수 없는 게 애초에 소개받은 스태프 진도 전부 팀장급들이었다. 하긴, 나랑 무슨 상관이야.

타이밍에 맞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대로 발을 옮겨 탑승하는데 닫히는 문틈으로 이동하는 실루엣을 목격했다. 마지막에 여길 돌아보던 것 같기도 했는데, 그냥 우연이겠지 싶어 관심을 끈 무렵이다. 더 이상 지체하기도 애매하니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라 서둘러 움직였다.

* * *

"신해신 씨, 오셨나요?"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실무진분들과 대표님께선 곧 올라오신다고 하십니다. 아직 여유 시간이 있으니 걱정 마세요."

급하게 들어온 제1 미팅 룸이다. 익숙한 자리에 앉으니, 먼저 와 있었던 한지헌이 인사한다. 오늘도 느긋하고 칼 같은 태도에 주변을 둘러보니, 애들을 제외하곤 비어 있는 게 확인됐다.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서류를 훑어봤는데 사전 세팅은 끝났는지,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형, 왔어? 우리가 좀 빨리 도착했대. 그래서 이제 올라오신대."

"그래?"

어쩐지 시간적으로 널널해 보인다 싶었지, 과연 정식 미팅보다 이르게 와 있었나 보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이 전부 이해된다.

"응, 윤재희 팀장님이랑 주세라 팀장님도 참석하신다고 하셨는데, 대표님은 처음 뵙는 자리라 좀 긴장되네."

옆자리에 있던 문채민이 사전 설명을 해 줬다. 자세는 정면을 유지한 게 굳어 있었는데 얘는 아직 18살이었다. 무던하게 굴었지만 이런 자리가 낯설 나이라고 생각됐다. 공감한다는 뜻으로 의자를 빼서 착석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온 건가……. 한지헌이 문을 열어 주자 나타난 건 윤재희와 A&R 팀의 팀원들이었다. 그럼 대표는? 놀란 마음에 권혜성을 바라보니 영문을 모르겠단 제스처를 취한다.

"저희가 더 먼저 왔나 보네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안녕하세요."

탭과 파일들을 고쳐 안은 이상훈과 심평화가 뒤따라 들어왔다. 문을 닫은 건 조은송이다. 윤재희는 한지헌과 함께 단상 쪽 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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