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27화 (127/328)

127화

연습과 임의 녹음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찰나였다. 한지헌에게 호출 명령이 떨어져서 원래 일정보다 30분 정도 앞당겨진 외출이었다.

녹음 일정과 겹쳐서 가야 하기는 했던 회사였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알지 못했다. 의문도 잠시, 밴을 끌고 온 두 매니저에 의해 메이터스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기서 오늘 나올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조수석에 앉은 박재민이 알려 준 부분이었다.

"…자체 콘텐츠요?"

"네, 오늘은 그것 때문에 모이라고 하시는 걸 거예요. 그렇죠, 오 팀장님?"

"얼핏 듣기는 했는데, 데뷔 준비와 프로모션 그리고 마케팅은 거의 동시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출처는 디콘이라 확실할 겁니다."

"디콘이 뭐예요?"

"아, 거기는 별도로 소개 못 받으셨나 보네요. 디지털 콘텐츠 영상 편집 부서인데, 팬 마케팅 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번 미팅에서 주 팀장님이 은경 씨 데려갔다고 했지, 재민 씨?"

"네, 대표님과의 미팅 자리에 이은경 씨가 같이 계셨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때 본 이은경 씨가 팬 마케팅 팀에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는 거기서 잘 알 거예요. 가끔 동시 미팅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저희도 무슨 게임이나 오락 같은 걸 할 수 있겠단 소리네요."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 쥔 채 활발하게 말을 잇는 권혜성이었다. 그것도 이내 고개를 돌려 윤명과 문채민을 돌아봤다.

"야, 명아, 채민아. 자체 콘텐츠래. 우리 게임도 할 수 있겠네. 너희 그런 거 잘해? 난 자신 있는데."

"혜성이 형, 자체 콘텐츠라고 해서 컴퓨터 게임 같은 게 아니잖아. 그리고 초반에는 리얼리티 개념일 가능성이 더 클걸."

"어, 뭐야. 그런 거였어?"

"난 잘 몰라."

"에이, 도움이 안 되네."

"너나 나나 비슷하지 않나."

"그런가?"

"…형들, 혹시 우리 밴 자리 이대로 계속 고정이야?"

윤명과 권혜성 사이에 낀 문채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십 대 삼인방을 중간에 앉혀 피해 간 성인들이다. 앞좌석을 바라보다 얽히고 싶지 않아 창문으로 고개를 틀었다. 옆에선 웃음을 참는지 이유준이 큭큭거리기 바빠 보인다.

"채민아, 막내란 다 그런 거야."

"일단 난 계속 여기에 앉을 거야."

"유준이 형, 치사해. 태오 형은 그렇게 안 봤는데."

"여러분, 사옥에 도착했으니 한 실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곳으로 이동해 주세요."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더 일찍 왔죠?"

"…안녕하세요."

평소처럼 미팅 룸에 입실하던 과정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서 있는 인물에 몸을 멈췄다. 서도경? 우린 한지헌의 호출에 불려 나온 참이었는데, 영문을 알 수 없어 인사하니 너도 나도 말을 걸기 바빠 보인다.

"어? 대표님, 안녕하세요!"

"오늘 한 실장님께서 부르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3차 미팅이었나요?"

"아닙니다. 미팅까진 아니고, 가벼운 추가 전달 사항이 있어서요. 거창한 건 아니니 부담 갖진 마세요."

평소처럼 러프한 차림새의 서도경이었다. 날이 더워지기는 했는지 얇은 셔츠 차림이었는데, 그마저도 소매를 걷어붙인 널널한 품이었다.

단상 위 발표대에 기대서 손에 들린 서류를 보는데 무슨 화보의 한 장면 같았다. 이쯤 되면 본인이 데뷔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물론 아이돌을 하기에는 나이가 적지 않겠지만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고우림 같은 배우 혹은 모델이겠지. 이정원과는 눈짓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게 애들을 먼저 앉힌 뒤 우리도 마저 착석했다.

"이제 다들 앉으셨죠? 그럼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혹시 오늘은 더 들어오시는 분이 없으신가요."

"네, 원래 한 실장님이 맡아 주셔야 했는데, 급한 조율 건이 생겨서 현장에 나갔습니다."

전부터 미묘하게 부담스러운 구석이 있는 대표였다. 떨떠름하게 바라보다 서도경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준을 목격했는데 어디서 봤나 싶었더니 저 인간, 우리 팀 멤버들 중 둘을 빼다박았다.

이유준과 이정원, 마치 얘네 둘을 합치면 저런 느낌이 날 것 같다. 거기에 좀 더 완급 조절이 되는 경력자라고 해야 하나. 여러모로 능숙한 타입이다. 최종 보스를 마주한 기분 같았는데 그렇게 반갑지는 않단 소리이기도 했다.

"전 원래 현장파거든요. 서두는 여기까지로 하고 본론부터 들어가죠."

"네."

"그럼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오시는 길에 박 매니저님과 오 팀장님께서 이야기해 주셨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자체 콘텐츠 관련 건으로 말씀드립니다. 원래라면 하이사인 여러분도 정식 미팅에 참여하셨어야 했는데,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실무진 회의를 통해 최종 결론만 도출해 놨습니다."

"저희는 이번 자체 콘텐츠를 외부에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팬들의 니즈는 자연스러운 일상 쪽이 강하겠다는 의견도 나와, 그건 비하인드 스토리 쪽에서 풀기로 결정했습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둘 다 한다는 거겠네요."

"외부요?"

"네, 본격적인 데뷔 준비가 끝난 이후, 시간을 내 1박 2일로 외부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대략적인 소스는 여행기? 그 정도로만 설명드리겠습니다. 일상 쪽은 비하인드 스토리로 분리해서 중간중간 촬영을 해 볼 예정입니다. 급하게 호출드린 이유도 이거였죠. 음, 오늘도 괜찮겠네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지. 근래 느낀 점이지만, 저 사람의 화법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의미심장한 서도경에, 윤명이 입을 열었다.

"…아, 혹시 오늘, 녹음실에서 촬영하나요. 비하인드 스토리요."

"네, 맞습니다. 눈치가 좋으시네요."

윤명 쟨, 야생동물 같다고 했더니 진짜 이런 쪽 감이 좋은 모양이다. 나나 이유준도 애매하게 지켜본 걸 가장 먼저 알아낸 인물이었다. 옆에 있던 권혜성은 놀랐다는 듯이 제 머리를 매만졌는데 누가 봐도 편한 복장이라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 옷으로 괜찮은 건가. 평범한 반팔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차림이었다. 이것도 한지헌의 호출에 대비하여 급하게 바꾼 복장이었지.

별도로 챙겨 온 트레이닝복이 가방에 담겨 있긴 했지만, 청바지가 별로라고 트레이닝복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태연할 수 있는 건 오늘도 빛나는 얼굴의 강태오 정도겠지. 쟤는 누더기를 입어도 살아남을 애였으니까 말이다. 댄스 말고 외모를 올려야 하나.

"저,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이따가 있을 정규 녹음 말씀하시는 거죠? 거기서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건가요?"

"문채민 씨 말 그대로입니다. 리얼리티를 위해선 이쪽이 나을 것 같아서요. 저는 하이사인 여러분도 생각해야 하지만, 소비자들도 동시에 체크해야 하거든요. 자연스러운 세팅 정도는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그럼, 바로 들어가 보실까요?"

이게 오늘 목적의 전부였는지, 기댄 등을 펴고 선 서도경이었다. 언제 공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멀쩡한 얼굴로 인사하고 싶었는데 망한 것 같았다. 이상한 회사를 만나 매일이 스펙터클했다.

* * *

아주 늦은 새벽, 창밖으로 보이는 배경은 깜깜하다. 고요한 사방에 나와 강태오 그리고 권혜성 이렇게 셋만이 연습실에 남아 안무를 정비했다.

녹음 과정이 끝나갈 때쯤, 뒤늦게 도착한 한지헌이 눈도장을 찍었다. 급한 일은 잘 해결됐는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내부에 있을 때보단 차려입은 복장으로, 비즈니스맨 수트가 꽤 큰 자리에 다녀왔음을 알려 주는 듯했다. 이렇게 보니까 방송국에서 목격했던 그날과 똑같네. 알아채지 못한 게 신기한 수준이다.

여기 이곳은 수고했다며 인사를 하는 한지헌에게 물어봐서 얻은 공간이었다. 별도의 보안 키를 건네 주고선,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게 몇 시간 전의 일이다.

픽업은 박재민이 도와줄 거라며 뒷일까지 신경 써줬다. 제안하지 않았음에도 강태오와 권혜성이 쫓아 붙는 게 누가 댄서 아니랄까 봐 퍽 반가웠던 듯하다.

오늘은 안무보다 보컬 쪽으로 정비하고 싶다며 빠진 삼인방을 떠올렸다. 여기에 남아 있지 않을 뿐, 거기도 내내 연습을 할 계획 같았다.

부족한 부분을 다듬고, 권혜성이나 강태오에게 디테일을 교정받던 시간들이었다. 잠깐 한숨을 돌리려는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강태오가 입을 연다.

"안무 습득 폭이 좀 널뛰는 스타일인가 보네."

"어?"

"전부터 느낀 건데, 틀렸으면 됐고."

"맞아, 해신이 형. 유어돌 때부터 알아본 건데, 성장세는 빠르지만 신기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그래?"

안무 습득 폭이 널뛴다는 건 일회성 아이템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성장세가 빠른 건 시스템 같다.

…얘네, 촉이 좋잖아. 쓸데없이 날카로운 질문에 모르는 척 딴청을 부리는 중이다. 이런 건 말해 봤자 믿어 줄 만한 일도 아니었으니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인 법이었다. 알면 다쳐.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봐줘."

"내가 봐주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

"태오 형도 재밌는 캐릭터란 말이야~"

"권혜성, 넌 진짜 이해할 수 없다."

민소매를 입은 강태오의 팔뚝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권혜성이었다. 바보처럼 굴어도 똑똑한 애인데, 저건 그냥 놀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느물느물 붙어 오자 질색하는 표정의 강태오가 상체를 물렸다.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는지, 수건을 들어 땀을 훔치곤, 다시 한번 원래 자리에서 안무를 정비한다.

"에이, 부끄러워하기는. 나도 슬슬 가 볼까나."

"안 쉬고 바로 가는 거야?"

그런 강태오를 따라 몸을 일으킨 권혜성이었다. 발걸음을 옮기기 전 웃으며 기지개를 켠다.

"형은 힘들면 좀 더 쉬다가 오고~!"

"아니야, 나도 지금 갈……."

어쩔 수 없이 연습에 합류하려던 찰나, 굽힌 다리를 펴고 있는데 귓가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깜짝 놀라 표정을 굳히니 권혜성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띠링-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하필 와도 지금 오냐.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부터 무마해야 할 것 같았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타이밍이 참 구린 시스템이다.

"…혜성아, 나 다리 쥐 났어. 그러니까 먼저 해."

"형, 진짜 운동 좀 해."

"일단 알겠으니까 먼저 가 있어. 풀리면 갈게."

"이상한 형이야~ 알았어."

영문을 알 수 없단 얼굴로 몸을 돌려 사라진 권혜성이었다. 이내 저 멀리 떨어진 강태오와 합류하더니 내 쪽을 가리키곤 뭐라고 설명한다.

강태오의 얼굴도 미묘하단 기색을 띠는데, 창피고 뭐고 간에 이게 내 최선이었다. 혹시 내 팔자에 망신살이라도 끼어 있는 걸까, 휴식기에 들어가면 사주를 보러 가기로 계획했다.

[미션]

'데뷔를 향해서'

데뷔를 준비하며 최소 기여 시간을 채우세요.(안무: 100시간)

보상: 키워드룸 오픈 + 500 코인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4,23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21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 진행 중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비공개)Bug(1)'

'(호칭 비공개)Bug(2)'

미션이 있었다고? 이건 시스템 정비가 끝난 이후로 처음 듣는 설명이었다.

메인 이벤트 항목은 생존했지만, 이쪽은 없어졌다고 생각했지. 남아 있는 건 스탯 해금과 박스 상점이 전부라고 봤는데.

오늘도 사전 고지는 없었던 것에 반해 얼렁뚱땅 성공한 것 같았다. 한지헌에게 부탁해 야간 연습실을 개방한 건 잘한 일인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