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28화 (128/328)

128화

[키워드룸 오픈!]

[키워드룸]

능력치 분배 시스템입니다. 새로운 항목에서 당신의 재능을 펼쳐 보세요.

[첫번째 워딩: 몽환]

[키워드룸 - full gauge 100%]

몽환: 34%

키워드룸? 새로운 항목의 창이 떠올랐다. 일반 스탯과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여기에는 처음 보는 숫자와 단어가 정열되어 있었다.

몽환이란 생소한 항목에 곰곰이 머리를 굴려 봤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의 인트로에 눈이 커졌다.

아무래도 첫 번째 키워드룸의 '몽환'이란 단어는 우리 데뷔곡인 'Night(한밤의 동화)'와 연관성 있는 이야기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소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단 뜻이지? 옆에 있는 숫자는 커질수록 해당 컨셉에 대한 소화력이 강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기존 스탯을 제외하고도 이런 식의 버프를 줄 줄은 예상 못 했는데.

가끔 느낀 점이었지만, 얘는 내게 무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버그 투척하는 걸 봐선 한편이라고 보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건 또 어떤 식으로 올려야 하는 걸까. 워딩이 열렸다고 해서 전부는 아닌 것 같고. 하여간에 더럽게 복잡한 루틴이다.

[키워드룸의 게이지는 연습을 통해 상승됩니다. 퍼센티지는 능동적으로 올라가며, 전적으로 플레이어님의 노력하에 달려 있습니다.]

내 목표가 정해진 순간으로 데뷔 직전까지 별다른 미션이 없다면 저것에 치중해 연습해 볼 생각이었다.

"혜성아, 태오야. 이제 나도 같이하자."

"어? 쥐 다 풀렸어?"

"…어."

"형도 참 특이해."

너희만 할까. 각오를 다진 뒤 연습하던 애들에게 합류했다. 한껏 땀을 흘리던 둘이 여길 돌아보며 몸을 멈추는데 플레이어의 음악을 끈 권혜성이 장난을 친다.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1절 끝부분 정원이 형 파트야."

"혹시 거기부터 디테일 좀 같이 잡을 수 있을까."

"물론이지. 태오 형, 마지막 턴 돌고 초반에 한 번 더 하자. 해신이 형도 맞춰 보게."

"그러든가."

덤덤한 척했지만, 셔츠의 앞판이 흠뻑 젖은 강태오였다. 지쳤을 법도 한데, 권혜성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까짓것, 이 악물면 못 해낼 게 없다고 다짐했다. 데뷔 쇼케이스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날이었다.

* * *

"두피 아파."

"그러게, 내가 아침에 머리 감지 말랬지."

"깜빡했어. 머리에 물 묻히고 생각났는데."

"우리 중에 명이가 제일 밝은 머리 하지?"

"그럴걸? 형들은 다 금방 끝나잖아."

그로부터 한참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우리는 사전에 설명 들었던 숍에 와 있었다. 평소처럼 데뷔 준비로 정신 없는 하루였지만 이건 생소한 광경이다.

윤명은 탈색하는 과정에서 머리가 아픈지 사정없이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튀어나온 입술에서 애 같은 성미가 엿보인다. 나머지 멤버들 중 시간이 비는 애들은 그런 윤명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스타일링이 깊게 들어가는 건 센터인 얘가 가장 심한가 보다. 쉽게 보기 힘든 컬러인 연한 분홍빛을 입힌다고 했으니 말이다.

"명아, 너 머리색 대박 밝아."

"혜성아, 넌 고개 돌리지 마. 기구에서 빠져나가잖아."

그 옆자리에는 단골손님처럼 묶이는 권혜성이 앉아 있었다. 색을 빼고 있는 윤명과 달리 캡에 둘둘 말려 기계장치를 달고 있는 꼴이다.

"형, 그러다 실장님한테 혼나."

"에이, 재미없어."

"혜성아, 조금만 참아 봐. 네가 제일 기대했잖아. 스트레이트 한다고 신났으면서."

윤명 쪽이 염색이었다면 여긴 특유의 곱슬머리를 편다고 했다.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서 익숙해진 게, 이번 컨셉에선 색다른 느낌을 볼 것 같았다.

"미남의 길은 멀고도 험하군. 이제 나도 찰랑찰랑인 건가. 태오 형 뺨칠 준비 중."

"…너 진심이야?"

"아니, 물론 농담이지."

권혜성의 말에 문채민과 이유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옆에 있던 나도 한마디 덧붙여 줬는데 소파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강태오만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한다.

잽싸게 정정하는 것을 보면 본인이 생각해도 웃겼나 본데. 권혜성이 못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그림체가 워낙 달라야 말이다.

편다고 해도 생머리를 한 권혜성일 텐데, 괜히 희망을 부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피해 버리니까 눈치챘는지 여길 향해 말을 걸어온다.

"해신이 형, 저 표정, 나 뭔지 알아! 형 지금 완전 나 헛소리한다고 생각했지!"

"…아니야."

"뭐가 아니야. 나도 농담한 거였는데. 아, 완전 진심인 사람 됐잖아."

"아니라니까."

"형, 안 그런 척하면서 태오 형 얼굴 엄청 편애해."

"…푸흡!"

혼잣말을 중얼거린 권혜성과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를 내뿜는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등을 돌려보니 종이컵을 들고 있던 강태오가 기침을 했다. 입과 턱 주변으론 물이 흥건한 게, 마시던 차를 뱉은 모양이다. 쟨 또 왜 저래. 진짜 이상한 애들이다.

"쿨럭, 쿨럭, 큽……."

"강태오, 넌 뭐 잘못 마셨어?"

"유준이 형, 이럴 땐 휴지부터 줘야지. 형, 여기 이걸로 닦아."

문채민이 건네준 휴지에 급하게 입부터 틀어막은 강태오였다. 의아하단 눈으로 쳐다보자 갑작스레 시선을 튼 인물이었다. 아, 쟤 권혜성 헛소리 듣고 저러는 건가. 고개를 내젓다가 다른 곳을 돌아봤다. 때마침 숍 스태프에 의해 내 이름이 호명되고 있었다.

"신해신 님,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네."

하나둘씩 불려 가는 사람들의 뒤를 이어 안내받은 자리다. 거울 옆에는 선정된 스타일링에 대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날카로운 이미지를 중화하기 위함이었는지 푹 덮인 앞머리가 보인다.

탈색약을 챙겨 든 디자이너를 보고 정면을 응시했다. 벽에 붙은 예시 사진은 검은 머리가 아닌 어두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 * *

머리를 한 것도 벌써 이틀 전의 일로, 그날 완료한 스타일링에 맞춰 프로필을 촬영했다. 재킷 사진보단 심플한 느낌의 스케줄이다.

전원 디테일이 다른 흰 와이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는데 염색을 하기 전에도 촬영이 잦았던 터라 어디에 쓸 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그리 복잡한 일정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금방 끝낸 듯하다.

그렇게 다시 무한 연습과 프로모션 준비의 반복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사옥 내 연습실로, 오늘도 잡힌 안무 트레이닝을 위해 모두 모여 연습하던 찰나였다.

몇 시간가량 디테일을 맞춰 지친 몸에 주저앉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저 앞에선 쉬지 않는 댄서 둘이 목격된다. 마치 그날 새벽 같은걸.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가운데에는 센터 윤명이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초반에는 보컬 쪽에 힘을 주는 것 같던 애였지. 후반부에 들어와선 안무 쪽까지 같이 체크하고 있는 듯했다. 몸이 3개라도 부족한 일정에 어깨를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

"나 잠깐 물 좀 떠 올게."

"응, 다녀와."

고된 연습에 텅 비어 버린 텀블러를 주워 들었다. 복도 중간에 있는 정수기에 가기 위함으로 가볍게 말을 남기고 혼자 밖으로 나섰다. 지금이지……? 아까부터 보고 있던 상태 창을 체크했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5,01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21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 진행 중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비공개)Bug(1)'

'(호칭 비공개)Bug(2)'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밤샘 연습을 거듭하며 모은 코인이었다. 신경 쓰이는 구석이 있었는데, 이젠 그 부분을 충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댄스 스탯, 초반엔 강세로 보여서 올리지 않은 항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될 줄 몰랐기에 뒷일을 생각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지. 최종 목표가 에베레스트 끝자락에 걸려 있는데, 그에 맞춰 최소 수준으로는 올려 놔야 했다.

버그만 아니었어도 진즉 올렸을 텐데, 시스템 저건 진짜 도움이 안 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제재로 5배는 되는 조건이 생겼다.

화내 봤자 의미도 없을 것 같아 할 수 있는 방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오늘 연습을 기점으로 목표한 금액을 달성했다. 알림 창을 확인한 뒤로는 호시탐탐 스탯 해금만 노리고 있던 하루였다.

CCTV가 있을 테니까,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며 생각했다. 스타 코인 스탯 해금, 댄스 스탯 올려 줘.

['스타 코인 스탯 해금' 댄스에 5,000 코인을 지불합니다.]

[현재 코인]

15 코인

[댄스 스탯 해금 방법]

스탯 난이도 이상의 안무를 50번 추세요.

[변화 가능 스탯]

댄스 : B+ → A-

저번에 이어 스탯 난이도 이상의 안무를 추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카운트를 봐선 20회 정도 늘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어차피 연습은 계속 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너무 스탯에 의지하는가 싶었는데, 그룹인 이상 혼자만 동떨어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한번 새벽 복습을 강행하기로 했다. 더불어 저것도 올려야겠지.

[키워드룸 - full gauge 100%]

몽환: 59%

키워드룸. 새롭게 오픈된 일종의 버프 장치다. 정확히 돌아가는 사이클은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올라가 있는 숫자가 보이곤 했다.

당장의 나로선 저걸 소화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돌은 어떤 컨셉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걸 연계하자면 좋은 시너지를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을 친 코인을 다시 모으며, 댄스 스탯을 업그레이드하고, 키워드룸도 올려 보자.

"일단 1위와 초동, 그다음에는 또 뭐려나."

지나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파악해 둔 정보를 체크했다. 다른 정식 아이돌 그룹들에 비하면 우리의 계약이 긴 편은 아니었다. 처음엔 프로젝트성 팀치고 장기라고 느꼈으나 1군을 목표로 삼으려니 짧게만 느껴졌다.

서바이벌의 여파로 인지도는 있겠지만, 연예계의 변수가 얼마나 다양한지 잘 알고 있다. 올라갈 일이 존재한다면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지.

열받아도 시키는 대로 한 단계씩 밟아가는 게 지름길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는 것이 그만 제법 시간을 끌어 버린 듯하다.

"…어떻게든 성공한다."

한적한 복도를 지나며 누구도 듣지 못할 다짐을 했다. 이젠 나도 어엿한 아이돌이니 말이다.

…파산이 걸렸다는 점만 빼면 말이야. 참 내가 생각해도 다사다난한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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