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30화 (130/328)

130화

'네. 서면 공개 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말씀드리면 팬분들도 좋아하실 것 같고, 라이브에 의미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쇼케이스 날은 많이 바쁠 테니까 정식 인사는 길지 못할 것 같은데, 차라리 이번 기회에 첫 공식이라는 뉘앙스로 자리를 만들어서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게 형, 난 좋은 아이디어 같아.'

한지헌이 서도경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오간 눈빛이었다.

'괜찮네요. 한 실장님은 어때요? 기존에 그냥 공지하기로 한 방식이 딱딱하긴 했죠. 팬들의 니즈, 비즈니스를 떠나서 이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거니까요. 잘 캐치 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마치 아이돌이 아니라 직장인이 된 듯한 기분인데. 괜찮은 보고서를 제출한 기분이랄까나. 물론 상여금이나 포상금 따윈 없었다. 웃기지만, 그냥 말 잘 꺼낸 사람 1일 뿐이다.

'저도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식 공표가 그리 많이 남진 않았지만, 준비에 품이 많이 들 사안은 아니네요. 정식 라이브로 출격하기엔 좋은 아이디어라고 봤습니다. 매니지먼트실과 협업하여 장소를 꾸미고 주문 제작에 들어가면 될 것 같군요. 대표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아티스트 여러분 의견 반영하여 바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

'그럼 한 실장님, 날짜와 시간, 정확한 기획만 꾸려지면 스케줄 짜서 서류 올려 주세요. 시간이 촉박하다면 동시에 해도 좋아요. 세부 사항은 주 팀장님, 안 팀장님께 설명드리고요. 필요한 게 있다면 내 측에서 지원하겠다고 전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한지헌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린 서도경이 우리를 한 번 돌아봤다. 실행력이 장난 없는데, 다시 봐도 적으로 두면 안 될 사람 같았다.

그때의 회상하에 주변을 돌아보니 여긴 메이터스 사옥 내에 있는 미팅 룸 중 한 곳이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준비를 끝낸 것 같은 게, 깔끔하고 아무것도 없던 회의실에서 어딘가 생소한 장소로 변모해 있었다.

[HISIGN FIRST K - LIVE]

[! fanclub open !]

파티 용품 사이로 제작 가랜드가 걸려 있었다. 남색 배경에 흰 글씨로 꾸민 글귀였는데, 축하의 의미인지 긴 리본이 매달려 있다.

투명한 풍선들과 새하얀 테이블보를 비롯하여 세팅된 조명 아래 협업 스태프들이 몇이나 상황을 둘러보고 있었다.

"잠시만요, 케이크 올라갑니다."

"와! 이거 제작 케이크지. 형들, 나 이거 처음 봤어! 이런 건 언제 준비하신 걸까. 우리 얘기 꺼낸 지 얼마 안 됐잖아. 엄청 빠르시네."

"혜성아, 그 두 분이잖아."

"아아, 그렇지. 유준이 형도 알아챘구나."

"뭐, 나름. 그래도 기쁘지. 제안은 했지만, 이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스태프 두 명의 설명하에 테이블 위로 올라간 케이크였다. 2단이었는데 그새 주문을 맡겼는지 우리의 첫 라이브와 팬덤을 축하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솔직히 의견을 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모든 걸 세팅해 놨을 줄은 몰랐다. 정말 무서운 회사야…….

"라이브 세팅 완료됐고, 하이사인 여러분 스포 확인만 끝나면 스탠바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스태프의 말을 끝으로 김윤하를 비롯한 몇 명이 다가왔다. 우리의 차림새를 체크하기 위함이다. 색상을 변경한 건 나와 윤명 그리고 이정원 셋뿐이었는데.

그나마 어두운 색의 우리 둘은 모자를 눌러씀으로 차단이 가능해 캡을 착용했다. 스트레이트로 머리를 편 권혜성은 고데기를 이용하여 임시 복구를 해 놓은 상태다. 기껏 펴 놓고 다시 곱슬거리게 만들어 기운이 없던 애였으나 그것도 얼마 안 가 금방 회복한 듯했다.

사실 쟤 성격으론 시무룩한 척했을 정황이 크지만 말이다. 이런 것까진 알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곧 하려는 거 같은데, 귀 확인했어?"

유일하게 차분하던 강태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정확한 단어를 내뱉진 않았으나 피어싱을 점검하라는 이야기였다. 분명 이런저런 촬영으로 인해 자주 교체했던 일화가 있었다. 일상을 보내거나 연습 혹은 이동할 일이 생기면 스포 방지를 이유로 투명 실리콘을 끼고 있던 나다.

손을 들어 귓볼을 만지니 평소와 달리 말랑한 감촉이 느껴진다. 시시콜콜한 잡담과 은근한 긴장감 속에서 세팅이 끝난 윤명이 돌아왔다.

"스탠바이 1분 전입니다. 시작 멘트는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정원 씨와 해신 씨가 해 주세요. 그럼 30초 전, 20초 전."

"헉, 들어간다……!"

"혜성아, 쉿."

"들어갑니다!"

세워 놓은 카메라에 맞춰 신호가 떨어졌다. 옆에 앉은 이정원과는 눈빛을 주고받은 뒤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나, 둘."

"Star sign on stage! 안녕하세요, 하이사인입니다."

예전부터 정해져 있던 인사법을 말했다. 원래라면 내 단독 카운트와 동시에 이정원이 뒤로 빠져야 했지만, 리더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 미리 바꿔 둔 방법이었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화면 아래에는 댓글이 지나간다.

- 얘들아 ㅠㅠㅜㅠㅜㅠㅠㅠㅠㅠㅠ

- 으악 애들이다 짱이사인 ㅠㅠㅠㅠㅜㅠㅜㅠㅜㅠㅜㅠㅠ

- ㅜㅜㅠㅠㅠㅠㅠㅠㅠ 너무 보고 싶었어

- i missed u hi hisign :)

- 갓이사인 짱이사인 기다렸어!!!

- 울 엄마 사위 리스트 여기 다떳네 ㅎㅎ

- 얘들아(존나많음) 케이팝 긴장해라 뽀이들 나왔다

- 기강 잡아 ㅠㅜㅠㅜㅠㅜㅠㅜㅠㅠㅠㅠㅠㅠ 존나 기다렸어 ㅠㅜㅠㅜㅠㅜㅠㅠ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저희 첫 케이라이브에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다들 제가 올린 티윗 보고 와 주신 거죠?"

느릿하게 미소를 지은 이정원이 서두를 열었다. 멤버스 SNS의 첫 타자를 자처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얘는 흐름을 이끄는 데 아주 특화되어 있는 듯했다.

물론 리더는 나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가끔은 얘도 불안하단 말이야.

- 정원아 ㅠㅠㅜㅠㅠㅠㅠ 이가든 당연하지!!

- 명창가든 당신을 기다렸다

- 이가든 이 시대 참된 사랑꾼

- 이정원 당신 팬이 아내가 될 수 있겠단 생각 해본 적 있습니까? 가능하니 조심해라

"그럼 우선 가장 맏형인 저희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해신입니다. 오늘 진행은 저와 정원이가 할 것 같아요.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거든요."

"안녕하세요, 정원입니다. 여러분, 잘 지내셨죠? 많이 그리웠어요."

- 해신아 ㅠㅜㅠㅜㅠㅜㅠㅠ 정원아 ㅠㅠㅜㅠㅜㅠㅠㅠㅠㅠㅠ

- 애들 성은 다 빼고 활동하는건가? 너무 좋아 ㅠㅠㅠㅠ

- 엄마 해신이가 날 보고 싶었대 내가 그리워ㅆ대

- 나 지금 떨리냐…?

- 보고 싶었어!!! 맏형 라인 동갑즈 ㅠㅠㅠㅠㅜㅠㅠㅠ

- 공주(공포의주둥이)냥이 이정원 맹수고냥 신해신 얼굴합 완벽

- 공포의주둥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천재냐고 ㅋㅋㅋㅋ

- 형아들이 냥냥즈네???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냥냥즈 너무 기엽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 창이었다. 이유준과 강태오를 바라보니 양측의 둘이 입을 열었다. 먼저는 이유준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해 보인다.

"유준이에요. 날이 더운데,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요?"

- 응 이유준 유죄

- 완전 잘 먹고 있었어 ㅠㅠㅠㅠㅠㅠㅠ 유준이 넌 잘 먹었어?? 살 빠진 거 같아 ㅠㅠㅠㅠ

- 첫 인사부터 얼굴 공격 시전하는 이너준 유죄

- 바얼배분이 바얼배분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만장일치 유죄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핸드폰 너무 꽉 쥐어서 땀난다;;

쟤는 특유의 묘한 분위기로 인기를 끌던 연습생이기도 했다. 하긴, 부대끼며 같이 지낸 나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성격이다. 이유준이 다음 타자인 강태오를 향해 손짓했다.

자신은 이만 됐으니까 넘어가라는 제스처였는데 그 모습에 긴장한 강태오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도 사복 차림으로 얼굴이 다 한 패션이었다.

검은색 반팔 티에 청바지를 걸치고 있는 게 구성은 심플한데 뭔가 남다른 포스가 느껴진다. 역시 손을 들기가 무섭게 잘생겼다는 댓글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 보는 눈은 모두 같은 것 같다고, 이제는 경쟁자가 아니라 마음이 편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태오입니다. 아직은 성을 떼고 부르는 게 조금 부끄럽네요. 모두 보고 싶었어요."

- 미친 그냥 말이 안나오네

- 저 옷이 원래 저런 거였나? 그냥 반팔티인데 왜 핫가이가

- 어우 후끈하다

- 나 지금 강태오 뒤로 뉴욕 시티가 보이는 거 같아

- 이 팀 비주얼 완벽

- 하이사인? 전원 비주얼 멤 그룹 인정합니다

- 무슨 단짠도 아니고 유한 얼굴 맹수상 유한 얼굴 맹수상 번갈아 나오니까 정신을 못차리겠네;;

- 얼굴 맛집 성격 맛집 서사 맛집 실력 짱 짱이사인~~~ 여러분 많관부!!!

- 이런 애들이 내 새끼라고? 케이팝 파길 잘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러분,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안녕하세요. 혜성이에요! 모두 잘 지내셨죠? 저녁은 먹었어요?"

오늘도 밝은 분위기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애다. 출석 체크 하는 게 아니라니까, 저번부터 행동반경이 훤히 보이는 권혜성이었다.

- 혜성!!!!!! 기다렸다 우리 땐스강쥐!!!!!!

- 혜너자이저 나오자마자 엉아들 오냐오냐 표정 지어주는 거 봐 귀여워 ㅜㅜ ㅋㅋㅋㅋㅋ

- 저기요 아니 아직 찐 막내 안나왔잖아요 ㄱㅋㄲ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혜성이 이름만 부르면 손 번쩍 드는 건 여전하네 귀여워 ㅠㅠㅜ

"명아, 네 차례야."

"응. 안녕하세요. 윤명입니다. 아, 맞다……. 명입니다. 활동명도 명이가 됐어요."

- 오늘도 묭한 명이 ㅠㅜㅠㅜㅠㅜㅠ 귀여워 사랑스러워 말랑맬렁해 ㅠㅠㅠㅠㅠ

- 묭한 명이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찰떡이다

- 우리 찹쌀떡 ㅜㅠㅠㅜㅠㅠ 찹명떡 잘 지냈어??? 더 하얘졌네??? 아이고 윤갓기

- 저 얼굴 아래로 장신즈라는게 너무 발린다 여러분 속으면 안됩니다. 윤명은 일어난 순간이 더 오집니다

- 혜성이랑 동갑이어서 둘이 반말하는 거 너무 신기하고 귀엽다 ㅠㅠㅠㅠ 막내즈같아 ㅠㅠㅠㅠ

- 저기 찐막내 안나왔다니까요 채민아 너 얼른 나와라 ㅋㅋㅋㅋㅋㅋㅋ

"음, 그럼 마지막으로 채민이, 소개해 볼까?"

"네."

내 시선을 눈치챈 얘가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다. 앞에서 난리를 피운 것에 반해 차분한 행동으로 제 나이 또래답게 미색의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하이사인의 막내, 채민입니다. 날이 많이 더워졌는데, 다들 잘 지내셨나요?"

- 네네… 잘 지냈어요. 아주 좋아요. 그, 채민이는 잘 지냈어요?

- 왠지 모르겠지만 존댓말을 해야 할 것 같다

- 나 지금 학생회에 불려온 학생1 된 기분임

- 선도부가 아니고? 이런 벌점이라면 좋아

- 챔니니 ㅠㅠㅠㅠㅠㅠ 찐 막내 나왔다 얘들아!!!

- 잊혀지지 않는다 문챔니 교육자 집안의 막둥이라는 것

- 아니 ㅋㅋㅋㅋㅋ 형아들이 오두방정 떨어놨는데 여기서 얌전하니까 기분 이상하잖아

- 뭔가 구도가 상상된다 ㅋㅋㅋㅋㅋ 19즈 사이에 껴서 같이 십대로 묶였지만 영혼은 성인즈에 가 있는 막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막내X 맏내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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