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아 어떡해, 쌤 저 심장 터질 것 같아요."
"아직 10분 남았잖아요."
저녁 시간에 가까워진 연구소 내부였다. 야간 작업 전 잠깐의 텀을 두고 나온 휴게실로, 파이널 이후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하여 퇴근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피곤함에 지쳐 있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기운이 남아도는 듯하다. 그 이유는 눈 앞에 보이는 광경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대망의 타이틀 티저가 공개되는 날이었다. 옆에 있던 입사 동기가 호들갑을 떨었는데 점점 공개되는 해신이와 하이사인 멤버들의 정보였다.
정말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겠지. 핸드폰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열려 있는 입구 사이로 다른 동료 한 명이 나타났다.
피로에 찌든 얼굴로 종이컵을 들고 이동하던 중에 우리 둘의 모습을 보곤 고개를 기울이며 질문해 온다.
"어, 최 선생님이랑 한 선생님? 여기서 두 분 뭐 하세요?"
"쉿!"
"한다은 선생님은 왜 그래요?"
"오늘 우리 애들 티저 나오는 날이에요. 조용, 조용."
"아, 맞다. 한 선생님, 케이팝 좋아하셨지. 얘네가 저번에 그 서바이벌 나왔다던 친구들이에요?"
옆에 있던 한다은이 손가락을 들어 입에 붙였다. 시계를 보니 5분 정도 남아 있다. 간략하게 설명을 해 줄까 싶어 가까이 다가온 동료를 바라봤다.
"네, 하이사인이라고 7인조 보이 그룹인데, 데뷔까지 멀지 않았거든요. 오늘은 타이틀곡 메인 티저 공개 날이에요."
"흐음, 한 선생님은 케이팝 광인이란 거 유명하니까. 그런데 최 선생님도 좋아했어요? 어쩐지 요즘 둘이 잘 어울린다 했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
나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미소 짓는 동료였다. 처음에는 지적 호기심에 의해 발을 담근 판이었는데… 낮게 웃고는 그렇다고 공감하며 끄덕였다. 자세히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도 긴 일대기다.
"네. 이 그룹 친구들 다 좋아해요. 게다가 여기서 한 명은 좀 오래전부터 지켜봤거든요."
"와~ 신기하네요. 최정윤 선생님이 케이팝을? 이쪽 장르에 관심 안 가지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재밌으면 좋은 거죠, 뭐."
옆에 바짝 붙어 앉은 두 명을 보곤 핸드폰을 터치했다. 정각이 되자마자 새로 고침 하여 올라온 링크를 확인했다. 그에 한다은은 숨까지 들이마시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반대편의 동료는 호기심이 생겼는지 신기하다는 기색이다.
"어, 떴다! 최 쌤, 클릭!"
"네, 네."
"오,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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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IGN @HISIGN_Official · 5초 전
[HISIGN(하이사인)]
'Night(한밤의 동화)' MV TEASER #1
[링크]
(와이튜브)Ytube.ooooooooo
(케이라이브)Klivetv.oooooooo
HISIGN(하이사인) - 'Night(한밤의 동화)'
00. 00 | 7:11 PM (KST)
#하이사인 #HISIGN #Night_한밤의_동화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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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모션에선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의문이 들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영상이 재생된다. 이건 작은 오두막으로 보이는 광경이다.
하늘하늘한 셔츠의 뒷모습이 비치며 누군가 나타났다. 분홍색인 머리를 보면 윤명이라고 추측된다. 천천히 벽을 향해 걸어가는데, 낡은 책상 위엔 무언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옛것으로 느껴지는 서양틱한 지도와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 같은 종이 뭉치다. 그중 하나는 7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저건 뭐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시선 아래에는 고장 난 오르골이 놓여 있는 게, 턱을 숙인 윤명의 얼굴이 슬쩍 비쳐 온다.
흐드러지는 조명에 맞춰서 더욱 연해 보이는 핑크빛으로 긴 속눈썹을 팔랑거리더니 손을 뻗어 오르골을 건드렸다.
…회전목마? 놀이 기구의 형상을 띤 오르골이 움직이며 맑은 음을 내곤 빙글빙글 돈다.
그렇게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본 윤명이었다. 이번에는 등을 돌려 닫혀 있던 오두막의 문을 바라봤다.
한 발짝, 다시 한 발짝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밖으로 이동하는 윤명으로, 베이스에는 계속해서 동화 같은 멜로디가 깔리고 있었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장소는 숲속 한가운데로 보이는데, 주변은 온통 새까만 밤이다.
주변이 파악되지 않아서 의아해졌을 때쯤, 바람이 불며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렇게 다시 한번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윤명이 입을 열어 속삭였다.
[날 깨우는 melody]
카메라의 시점이 이동하여 등 뒤에서 보이는 그림으로 전환됐다. 손을 뻗기가 무섭게 환히 밝혀지는 풍경이었다.
놀이동산이네. 어둠에 가려져 판단하지 못한 장소였는데, 눈앞에는 불이 켜진 회전목마가 등장했다. 혹시 아까 그 지도가……?
어쩐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더니 놀이동산의 놀이 기구들을 표시한 일러스트 같았다. 오르골이 멈추고는 처음 듣는 인트로가 흘러나왔는데 짧게 클라이막스만 편집한 음원에서 본능적으로 타이틀곡임을 감지했다.
몸을 돌린 윤명이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배경으로 살짝 웃는다. 그러곤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우리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해 왔다.
[Wish the night]
'Night 한밤의 동화'
07. 11 RELEASE
"…아."
검게 물든 화면과 함께 익숙한 로고와 타이포가 올라갔다. 해신이는 보지도 못한 티저였지만, 벅차는 가슴을 잠재울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를 틀어막고 숨을 몰아쉬니 옆에선 이미 난리가 난 듯했다.
"미친."
"우와, 이런 거였구나. 신기하네요. 잠깐 들린 음악은 좋은데요? 음, 참 묘한 분위기예요. 진짜 동화 같기도 하고? 어… 선생님들, 이거 하나 더 뜬 것 같은데요? 아까 본 거랑 다른 거 아닌가?"
"네?"
"대박."
나와 한다은을 뒤로한 채, 핸드폰을 본 동료가 말했다. 손으로는 뭔가를 가리키고 있으니 거기에 보이는 건 방금 새로 뜬 게시물이었다. 혹시 #1이 이걸 뜻하는 거였나? 아무런 말조차 없었던 메이터스로, 이제야 아까의 의문이 해결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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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IGN @HISIGN_Official · 2분 전
[HISIGN(하이사인)]
'Night (한밤의 동화)' MV TEASER #2
[링크]
(와이튜브)Ytube.ooooooooo
(케이라이브)Klivetv.oooooooo
HISIGN(하이사인) - 'Night (한밤의 동화)'
00. 00 | 7:11 PM (KST)
#하이사인 #HISIGN #Night_한밤의_동화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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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뭐야, 그게 전부가 아니었나 봐요. 이건 아까랑 다른 사람 같은데요?"
놀란 마음에 눈만 깜빡이자 멘트를 읽은 동료가 알려 준다. 한다은은 조용히 손을 뻗어 영상을 클릭하고 있었다. 동료의 가설이 맞았는지 이번엔 이정원이 메인으로 등장한다. 윤명과는 달리 외부에서 시작하는 티저였다.
어둠 속에 홀로 있던 이정원의 눈가에 음영이 아른거렸다. 낮게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리자 환한 빛이 주변을 밝혀 왔다.
여긴 회전 컵이었구나. 흥얼거리는 이정원을 시작으로 그 전의 오두막이 스쳐 지나갔다. 윤명이 발견한 오르골과는 다른 위치에 있던 물건이었는데 저건 먼지 쌓인 찻잔이었다.
그와 동시에 짧은 인트로가 흘러나오니, 불이 켜진 회전 컵 안에 앉아 있는 이정원이 나타난다.
'Night 한밤의 동화'
07. 11 RELEASE
"이거, 전체 티저가 아니라 개인 티저였나 봐요. 최 쌤, 얼른 다시 공계 가 봐요. 플모 날짜 띄워 준 거 보면 오늘 다 올리는 것 같아요!"
"네? 네."
다급한 한다은의 말에 다시 한번 하이사인 계정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영상이 끝날 무렵 새로 올라온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해신? SNS 인터페이스는 영상이 아래로 짧게 보이는 구조였다. 곧바로 거기서 익숙하다 못해 그리운 얼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손을 들어 해당 링크를 클릭하니 지켜보던 동료가 날 보며 신기해하는 게 느껴진다.
"최 선생님은 이 친구 좋아하시나 봐요?"
"네. 전부 응원하지만, 유달리 마음 가는 멤버라서요."
"쉿."
등을 보이고 있던 신해신이었다. 솔로 포토에서 본 적 있는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을 멈춰 선 신해신이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에 나타난 건 커다란 관람차다. 그와 동시에 불이 켜진 놀이 기구가 서서히 돌아가고, 홀린 듯이 움직이는 신해신을 뒤로한 채 오두막 속 장면이 오버랩된다.
저건 협탁 위에 올라가 있던 관람차 모양의 장난감이었다. 바람이 불며 움직이면서 예의 그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다시 바뀐 시점은 탑승을 한 이후로 보인다.
창문을 내다본 신해신이 투명한 유리에 머리를 기댔다. 새까만 풍경을 지켜보곤 쓰게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그것도 얼마 안 돼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놀이 기구를 발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해신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
"와, 장난 없다."
흥미로워 보이는 동료를 옆에 두고 그렇게 우리는 다음 영상을 찾아봤다. 네 번째 담당은 이유준이다.
"이거 명이 빼곤 전부 나이순으로 공개하나 본데요?"
"그래요? 전 이 친구들 잘 몰라서……."
"첫 번째 영상에 있던 멤버가 프로그램 1위였거든요. 방금 여기 이 사람은 최정윤 선생님이 응원하던 친구고요. 순서 보니까 나이가 많은 순으로 오픈한 것 같아요."
이제 보니 멤버들은 모두 다른 놀이 기구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회전목마의 윤명, 회전 컵의 이정원, 관람차의 신해신 그리고 이유준은 회전 그네였다.
커다란 나무 아래로 수십 개의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이유준이 발을 움직이자 걸음에 맞춰 불빛이 들어온다.
작게 웃는 이유준의 얼굴을 뒤로하고 오두막에 안에 있던 소품이 잡혀 나왔다. 회전 그네와 동일하게 십자 모양 아래로 의자가 달린 나뭇조각이다.
고개를 들어 서서히 돌아가는 놀이 기구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어떤 패턴인지 이해가 된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다음 영상을 찾아 게시물을 누르는 것의 반복이었다. 당장의 상황에 한다은과 직장 동료도 완전히 빠져 있는 얼굴이다.
몇 분 간격으로 생성된 링크를 타고 해당 대상자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이유준과 동갑인 강태오가 그 주인공으로 보인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강태오의 발이 클로즈업되는 시작이었다.
워커를 신은 투박한 걸음이 레일 위를 걷고 있었다. 지면에 붙은 구간으로, 그를 따라 전체 화면이 잡혀 나온다.
한 번에 불이 들어오며 강태오가 등지고 있던 배경을 알게 됐다. 여긴 레일 열차구나. 오두막에 있던 모티브는 책상 위에 올라가 있던 액자 속의 그림이었다.
물감으로 그려진 기차를 뒤로하곤 다시 실물 놀이 기구가 나타난다. 옆에 있던 강태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른 파트로 추정되는 음원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