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악, 혜성이다!"
"한 선생님?"
"아, 한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예요."
크게 뜬 눈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은 한다은이었다. 권혜성의 모티브는 바이킹인 것 같았는데 놀이 기구를 구경하곤 그대로 펜스에 기대 버린다.
거대한 배에 불이 들어오자 씨익 미소 짓는 권혜성이었다. 서서히 움직이는 바이킹을 배경으로 오두막에 있던 스노우볼이 등장했다.
투명한 원구 안에는 배 모형이 들어가 있었는데, 먼지가 쌓여 불투명한 형체 위로 다시 한번 권혜성이 나타났다. 놀이 기구를 따라 고개를 까딱거리던 움직임에 이내 화면이 까맣게 암전된다.
마지막으로 보게 된 건 막내인 문채민의 티저였다. 여기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아무런 배경이 없어 보였다. 그저 중간에 홀로 서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것도 얼마 안 가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채민의 걸음에 따라 흰 빛무리가 흩어지곤 주변으로는 인트로가 흘러나온다. 서서히 이동하니 멤버들의 상징인 놀이 기구를 지나 걸어간 풍경이었다.
오두막에선 처음에 발견한 지도를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이 구간은 파악 되지 않아 궁금하던 무렵, 낡은 종이 위의 투박한 폰트가 눈에 띄었다.
[Parade time]
그제서야 모든 광경의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문채민은 놀이동산의 퍼레이드를 모티브로 삼은 게 분명했다. 빛무리를 이끌고 발걸음을 이동하던 문채민이 카메라를 향해 돌아섰다. 마지막은 모두와 동일한 검은 화면이었다.
'Night 한밤의 동화'
07. 11 RELEASE
"미쳤다."
"이 친구들 영상미가 좋네요. 궁금해지게 만들었어요."
"그쵸, 선생님도 같이 케이팝 하실래요?"
"저요?"
어느덧 직장 동료를 붙잡은 채 케이팝의 즐거움에 대해 피력하고 있는 한다은이었다. 물론 나는 조용히 핸드폰 위의 하이사인 공식 계정만을 바라봤다.
글귀뿐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쿵쿵 빠르게 뛰는 맥박을 느끼며 지금의 기분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 * *
타이틀에 대한 티저가 전부 공개된 이후였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반응이 뜨겁단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연습을 위해 사옥을 찾아가면 꽤 만족스럽단 얼굴의 서도경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인건지 모르겠지만, 일 처리가 무섭도록 깔끔한 대표였다.
그렇게 얼마 안 돼서 하이라이트 메들리도 지나갔다. 싱글 앨범인 탓에 두 곡밖에 안 됐음에도, 철저하게 모든 단계를 거쳐 간 계획이었다.
이러면 나야 좋을 일이지. 일단 한쪽에서 터질 문제는 미연에 방지된 듯하다. 난 저 시스템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사람이었으니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정말 데뷔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오늘도 자처하여 방문한 새벽 연습실. 이제 쇼케이스까지 단 이틀뿐인 날이었다. 흐르는 땀을 훔쳐 냈는데, 나를 제외하고도 멤버 전원이 나온 곳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선 지친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제 칼로 박자가 잘 맞는다! 근데, 너무 힘들어."
거센 숨을 몰아쉬고 있는 댄서 둘로, 대자로 뻗은 권혜성과 무릎을 짚은 채 헐떡이는 강태오가 보였다.
"너희 둘은 댄브 신경 쓰느라 더 움직였으니까. 지칠 만하지."
"그래도 고생했어. 덕분에 신경 쓰이던 곳 잘 잡힌 것 같아."
"아, 맞다. 명이 형, 그 인털루드에서 대형 옮길 때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어디?"
새벽 3시가 다 되었음에도 활기를 띠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걸음 뒤로 빠져나가 모두를 지켜보며 상태 창을 체크했다.
[키워드룸 - full gauge 100%]
몽환: 99.9%
오랜 연습으로 공을 들여 간신히 끌어올린 키워드룸이었다. 0.01%라… 한두 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이게 얼마나 큰 효과를 보일지는 몰랐다. 그래도 기왕이면 더 높은 퍼센티지를 얻고 싶었다.
뭐든 좋은 건 얻고 보기 마련이라고, 쟤가 이렇게 나오니 나도 이판사판이었다. 어……? 그때, 작은 알림음과 함께 키워드룸의 숫자가 변화했다.
[키워드룸 - full gauge 100%]
몽환: 100%
남아 있던 0.01%가 깔끔하게 채워진 순간이었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내겐 좋은 일이었다. 그나저나 너무 순탄한 것 같은데. 하도 많이 데서 그런가, 이젠 뭐든 의심스럽다.
[키워드룸 첫 번째 키워드 '몽환'의 full gauge를 달성하셨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 달성 보상으로 두 번째 키워드가 오픈됩니다.]
[두번째 워딩: 감성]
[키워드룸 - full gauge 100%]
몽환: 100%
감성: 0%
참나, 이렇게 돌아가는 거였어? 하나를 채우기가 무섭게 새로 열린 시스템이다. 쇼케이스까진 단 이틀 남은 상황이었는데 진즉 주든가.
기쁜 것도 잠시 다시 하나를 올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무슨 줄줄이 소시지도 아니고, 몇 개가 있는지도 모를 시스템에 이마를 쳤다. 일단 저건 무리다. 하나를 클리어 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A-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5,17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21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 진행 중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비공개)Bug(1)'
'(호칭 비공개)Bug(2)'
마침 소지 코인도 5천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스킬 뽑기는 막혀서 할 수 없었지만, 아직 프리미엄 상점도 남아 있었다.
좋아. 내일쯤 확실한 버프의 아이템을 찾아내야겠어. 작은 다짐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뒤로는 연습하자는 권혜성의 부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
"형, 얼굴이 하얀데……?"
"그래?"
"어, 해신아. 너 혹시 긴장한 거야?"
"뭐, 비슷한 기분인 것 같기는 해."
달달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내리눌렀다. 소파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니 이정원과 이유준이 말을 건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직전에 겪은 일들로 머리가 아팠는데 우린 지금 먼저 있을 기자 쇼케이스를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태오 형도 좀 멀건 것 같은데."
"난 아니야."
"음, 진짜네? 형들 너무 유약한 거 아냐?"
"태오 형도 해신이 형이랑 둘 다 똑같아~"
"채민이, 네가 과하게 덤덤하다곤 생각 안 해? 그리고 권혜성, 넌 얌전히 앉아 있어. 정신 사나워."
저 멀리서 투닥거리는 애들을 발견했다. 강태오를 필두로 그를 둘러싼 십 대 삼인방이다. 쟤는 완전 보모 포지션을 맡게 됐구나.
짠한 것도 잠시, 내 담당은 이씨 둘인 걸 깨닫고 침묵했다. 차라리 보모가 나을 수도…….
"얘들아,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혹시 찾으면 금방 온다고 얘기 좀 해 줘."
"어, 그래."
"다녀와."
이정원과 이유준의 인사를 받으며 문 밖으로 나섰다. 작은 공연장은 아니었지만, 첫 공개인 만큼 분주해 보이는 환경이다.
길게 늘어선 복도를 걸으면 바빠 보이는 스태프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적당히 몸을 숨기며 본무대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곳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여기쯤이면 괜찮겠지? 그게 진짜인지 다시 봐야겠어.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면서 시스템 창을 체크했다. 내가 지금 이러는 건 바로 어젯밤에 발견했던 아이템 때문이었다.
일정을 앞에 두고 일찌감치 누운 저녁, 이정원이 잠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프리미엄 상점을 불러 냈다. 쇼케이스의 관례는 2부인지라, 비슷한 효력을 지닌 아이템 두 개를 찾아내기로 한 찰나였다.
이럴 거면 계속 사게 해 달라니까. 한 번 구매하면 다시 하는 건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급한 마음에 스크롤을 내리다가 신기한 상품을 발견한 게 화근이다. 목적한 것과는 다르지만 눈길이 가는 아이템명이었다.
[(프리미엄)미션 오프너 - 영구 아이템]
버프: 시스템 미션을 사전에 공개해 줍니다.
미션을 먼저 알려 준다니, 지금까지 이걸 몰라 고생한 게 적지 않았다. 심지어 2차 미션에선 페널티까지 받으며 좌절했다.
세상일은 모르는 게 약이라곤 했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페널티를 보고서 심하지 않으면 적당히 합리화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계획한 버프용 아이템보다 미션 오프너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A-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67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21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 진행 중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비공개)Bug(1)'
'(호칭 비공개)Bug(2)'
'코인, 전부 털렸네.'
시스템과 관련이 있어서였을까, 역대 최고 금액을 호가했다. 무려 4,500코인이나 받아 먹은 상점이었다.
혀가 절로 내둘러지는 바가지였지만 괜찮은 물건을 건졌단 생각에 안도하던 찰나였다. 이게 아니면 방법이 없는 미션 관련 항목이라고 좋아했었지.
내가 왜 그랬을까. 쇼케이스는 기존 실력을 통해 선보이자며 다짐하곤, 조용히 아이템 창을 불러 미션 오프너를 클릭했다.
어둠 속에서 번쩍하고 흰빛을 발산하는데 그저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길 한참이었다.
['(프리미엄)미션 오프너'를 장착합니다.]
[미션]
'데뷔는 성대하게' - 부속 미션 그 첫 번째
라이브 + 안무 퀄리티 98% 달성
성공 시 - 보상: 500 코인 + 블랙 쿠폰 1매 + !HIT! 어드밴티지 찬스
실패 시 - 페널티: 축적 피로도 오픈(대미지 크리티컬 1단계 - 내용 비공개)
[무대 퀄리티]
현재: 0%
아주 그냥 죽여라. 아무래도 이건 괜히 열어 본 것 같았다. 보상은 그렇다 치겠는데, 페널티도 함께 알려 줄 줄은 몰랐다. 차라리 저당 금액에서 백만 원 가져가라며 한탄한 밤이었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될 예정인데. 쓸데없이 영어로 써 놔서 지레 겁만 먹게 만든다. 무엇보다 당장 활동기에 들어가는데 아프게 하겠다고?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시스템이 날 환자로 만들려고 들었다.
게다가 미션까지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죽자 사자 연습했다지만 퀄리티 98%라니, 당장 톱급 아이돌이 와도 당황할 만한 이야기로 보였다.
거기다 보상에는 처음 보는 상품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HIT? 어드밴티지 찬스는 또 뭐지? 설명해 주지 않아서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도 알 수 없는 능력이었다.
그렇게 어제 그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확신하곤 머리를 되짚었다. 마음 같아선 시스템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은데, 그래 봤자 해결되는 것도 없을테니니 체념하기로 했다. 방법은 오직 하나.
"98%인지 뭔지, 달성하고 만다."
하여간에 사람 성격 개조하는 데 있어선 특화된 시스템 같았다. 아프기 싫어서라도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