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무사히 끝을 보인 기자 쇼케이스다. 서바이벌이 끝난 이후 누군가의 앞에서 무대를 보이긴 처음이었다. 긴장도 잠시 그동안의 과정이 스쳐 지나가며 잘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이 집중된 하이사인의 데뷔입니다. 지금의 멤버로 데뷔하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물어보겠습니다. 또한 데뷔 후의 포부가 궁금하다고도 질문해 주셨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하이사인의 리더 해신입니다. 우선 모두 정이 든 멤버들인 만큼 기쁘다는 감정이 가장 컸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어서 함께라면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의 질문에 대답한 이후 이정원을 돌아봤다. 사전에 언질 들은 대로라면 다음 타자는 이정원 바로 쟤였다.
"안녕하세요. 질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이사인의 정원입니다. 멤버들과 이야기했던 가장 큰 목표는 아낌없이 사랑을 주신 팬분들께 멋진 무대로 보답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선배 아티스트님들의 뒤를 이어 좋은 퍼포먼스로 대중분께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시로 받은 질문지를 통해 달달 외우고 또 외운 답변이었다. 어색하진 않았는지 여길 돌아본 권혜성이 씨익 미소 짓는다.
"네,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드려 보겠습니다. 하이사인 여러분께선 오늘 쇼케이스에 대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MC에 말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였다. 대표는 리더인 내가 도맡았던 구간으로, 시선 처리를 하며 또박또박 제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정면 아래 쪽엔 프롬프터도 준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능숙한 언변을 위해 함께 연습했던 일화가 있었다. 미션으로 받은 충격을 가라앉히기 위해 죽자 사자 외운 사실이 서글펐다.
"우선 오늘 하이사인 데뷔 쇼케이스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작함에 있어 기자님들께서 귀한 걸음을 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멈추지 않고 달려나가 많은 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그런 그룹이 되겠습니다. 첫 번째 싱글 앨범 'dreamlike'를 통한 저희만의 무대도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인사드려 보겠습니다. 얘들아, 하나, 둘."
"Star sign on stage!"
"이상으로 하이사인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시그널 송이 흘러나오며 셔터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몸을 돌리곤 그에 맞춰 인사했다. 1단계는 어떻게 끝낸 것 같은데, 장내 정리를 위해 대기실로 들어가던 무렵이었다.
미션을 확인하려고 상태 창을 보니 이 구간은 해당 사항이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무대 퀄리티]
현재: 0%
변하지 않은 퍼센티지가 눈에 띄었다. 이 미션은 전적으로 뒤에 있을 쇼케이스에만 해당하는 것 같았다. 분주하게 땀을 닦고 조명에 녹아내린 메이크업을 고쳤다.
"해신이 형, 말 잘하더라."
"그래? 어젯밤에 정원이랑 같이 외운 보람이 있네."
"아, 그랬어? 어쩐지 둘 다 모니터 쪽으론 눈도 안 돌리는 게 신기하다 싶었지."
머리 위로 뒷짐을 진 권혜성이 시시덕거렸다. 얌전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쾌활한 이미지로 눈도장을 찍은 인물이다. 분위기가 굳을라치면 능청을 떨어 환기하곤 했다. 오늘 쇼케이스에선 안 그런 척 지대한 공신을 차지했던 게 기억난다.
"그나저나 오늘은 그거 안 하네?"
"뭐가."
"왜, 형 있잖아. 긴장 푸는 의식, 유어돌 때 맨날 해서 오늘도 할 줄 알았더니."
"……."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진짜 못 봤네."
"그치, 유준이 형! 은근히 재밌었는데. 대기실에서라도 한판 보여 줄 줄 알았는데, 아쉬워~ 다음에는 꼭 보여 줘, 형."
취소하겠다. 이유준과 합심하여 나를 놀리는 게 공신은 무슨, 피곤만 불러들인다. 저건 분명 그때 그 얘기겠지. 스타 코인 스탯 해금을 열며 쇼를 한 것 말이다. 애써 그러려니 넘기려고 노력했다.
"…뭐, 다음에 상황 봐서."
절대 안 보여 줄 거야. 헛소리를 들은 것처럼 시선을 떨구니 금방 윤명에게 말을 거는 권혜성이었다.
"그나저나 명아, 이따 네가 센터로 앉아서 케이라이브 할 건데. 할 수 있겠어?"
"음, 옆에 형들이 앉아 있으면 괜찮을지도."
이마에 키친타월을 붙인 윤명이 대답했다. 오늘도 맹한 얼굴을 선보이는데 어째 걱정되는 것 같다. 그 뒤에 있던 강태오는 그걸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평소에도 19살 두 명의 보모를 하곤 했으니 잘 알 것이다.
그 와중에 핸드폰을 확인한 문채민이 이유준과 이야기 나눴다. 땀이 덜 나는 체질인지 가장 먼저 정돈이 끝난 애들이다. 올라간 기자 사진을 모니터링하며 모두를 체크해 줬는데 일단 분업만큼은 잘되는 그룹인 듯했다.
"유준이 형 사진 잘 나왔다. 이거 표정이 좋은데?"
"그러게. 아, 여기서 돌 때 내가 명이 가리는구나. 보폭을 더 줄여야겠다."
"그것도 괜찮지. 해신이 형도 잘 나왔어. 뭔가 묘한 분위기네."
"그래?"
"우와! 진짜네? 형, 뭐야 뭐야~ 맨날 수줍어하더니, 순 내숭쟁이."
"왜 이래."
"하하, 해신이 형 표정 봐. 혜성아, 너 보고 식겁하는데?"
"너무해, 내가 그렇게 징그러워?"
"응, 징그러워."
"명이 너도 너무해!"
얘네 데리고 1군 할 수 있을까……? 아니지, 일단 능력치만큼은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애들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가장 짐은 나일 테니까. 오늘도 사건 사고만 전력으로 회피하자고 다짐했다.
* * *
"언니, 트렌드도 전부 올라감."
"총공? 빨리 했네."
#밤하늘의_하이사인과_첫_번째_재회
#하이사인과_함께_보내는_이_밤_Night
공연장 앞에 서서 입장을 준비하던 과정이었다. 함께 있는 건 하이사인의 데뷔를 기다리며 새로 사귄 홈마 김희진이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고자 마음을 먹게 되니, 같은 그룹의 지인들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해신이를 최애로 잡았다지만 딱히 개인 팬을 미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된 게 바로 얘였다. '플라워 가든(Flower Garden)'이라는 이정원의 홈을 운영 중인 사람이다. 같은 동네에 거주 중이어서 급속도로 친해진 케이스이기도 했다.
메이터스에서 대놓고 촬영까지 허가해 준 쇼케이스였는데 깔끔하게 공지해 줘서 놀랐던 일이 떠오른다. 이 응모 하나만을 바라보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스치는 기억에 더욱 결연해진 심정이었다.
옆에 있던 김희진이 액정을 보여 주며 총공 성공을 알려 왔다. 실시간 트렌드에는 해시태그를 제외하고도 애들에 관련된 단어가 잔뜩 나열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흩어졌던 지인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럼 이제 됐다. 그거 말고 다른 문제는 없지?"
"어그로 좀 있긴 한데, 규모는 크지 않고, 일단 좋은 반응이 더 많아."
"그럼 입장만 하면 되는 거네?"
"응. 아, 근데 애들 진짜 예뻤지. 뮤비 또 보고 싶어."
스태프의 진두지휘하에 줄을 서 있었지만 모두 흥분에 들떠 있었다. 바로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음원과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6시 오픈 시간에 맞춰 릴리즈된 앨범이다. 'dreamlike' 그 뜻답게 비현실적이면서도 멤버들의 매력이 잘 녹아 있는 곡이었다.
싱글인 탓에 두 곡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든 투자를 한곳에 몰아넣듯이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했다. 타 돌을 파던 티친 중 한 명은 개인 연락을 통해 직접 이야기까지 전해 줬다.
- '언니 얘네 음원 미친 듯 아련청순남돌 존맛.'
'뮤비도 예쁘지?'
- '미친 거 아니야? 개변태 엔터 인정했잖아 내 탐라도 난리났어. 애네 왜 이렇게 예뻐? 우리가 좋아하는 거 너무 잘 알아서 뭐시기한데 더 흔들리더라. 약점 잡힌 기분이야.'
'못해서 화나는 것 보단 잘해서 미묘한 게 나아. 겸사겸사 너도 여기로 넘어오지?'
- '아 씁, 안 사요~ …라고 하고 싶은데 좀 흔들린다.'
'왜 우리 애들 얼마나 잘하는데. 대혜자 엔터 메이터스와 전원 센터 그룹 하이사인 드셔보세요.'
- '시발… 부러움에 눈물만 줄줄 나네요. 일단 의리로 노는 계정에서 총공해줌. 스밍도 돌릴테니까 나중에 하이X라오 사. 아니면 우리 애들 행사 용병 해주는 것도 좋고.'
'알았어. 고마워.'
이전에 파던 그룹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이었다. 얘도 걔네가 흩어지며 다른 그룹을 잡고 있었다. 지인의 흔들린다는 멘트에, 아까 본 영상들을 떠올랐다.
티저를 통해 놀이 기구와 별을 컨셉으로 잡았단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대다수의 포맷은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했지. 일 잘하는 변태 엔터 메이터스를 얕본 듯하다.
현실 같지 않은 기묘한 풍경의 배경이었다. 오두막도 그랬지만 밤하늘이 투영된 배경과 바닥에 비쳐 오는 물가가 신비했다. 그 속에서 하얗게 빛이 나는 건 하이사인의 멤버 7인이었다.
편안한 듯 난이도가 높은 퍼포먼스와 탄탄하면서 듣기 좋은 멜로디의 보컬이 완벽한 합을 자랑했다. 밤이라는 모티브를 삼은 것치곤 딥하지 않은 구성이 좋았는데, 오히려 초여름의 산뜻함처럼 가볍게 흥얼거릴만한 음원이었다.
대기 줄이 입장을 시작하고 그에 맞춰 핸드폰을 세팅했다. 스밍단이 공지해 준 것처럼 리스트를 돌리고 있을 예정이다. 무선 이어폰을 연결한 채 무한정 배터리를 소비하던 과정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세트장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웠다.
"미친, 자리 개꿀. 아싸, 오늘 촬영 대박 나겠다."
"첫 음방, 죽어도 가야지."
"나도 같이 가. 사녹이랑 공방은 촬영 못 하니까 팬 사인회도 가자."
"당연한 거 아니야?"
가방에서 렌즈와 바디를 꺼내 장착하던 김희진이었다. 나 역시도 짐을 내려놓으며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장 상황에 맞춰 대략적인 설정을 끝내고 나니 그제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란색과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는 무대였는데 대형 전광판 위에는 남색의 하늘이 띄워져 있었다. 작은 별이 총총 떠 있었던 곳에 흰빛의 하이사인의 로고가 나타난다.
"어어! 시작한다!"
"얘들아!"
어두워진 장내 안에선 스크린이 변화하고 있었다. 로고가 사라지며 또렷하게 밤하늘로 물드는 광경이었다. 이내 영상 위로 애들이 나타났는데, 지금까지 본 메인 의상과 흡사한 계열의 차림을 하고 있다.
뮤비와 동일한 세트장이었지만 조금 더 캐주얼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속에선 얼기설기 짜인 그물 니트에 민소매를 입은 해신이가 웃고 있었다.
돌았네, 새하얀 면바지에 맨발이란 걸 확인한 무렵, 바닥에는 얕은 물줄기가 깔려 있단 걸 알게 됐다. 걸음을 움직이면 물방울이 튀어오르며 별에게 둘러싸여 이동한 7인의 멤버였다.
단체 컷이 줌아웃되면서 멤버 전원의 이름이 떠올랐는데 그 뒤로는 잔잔한 내레이션이 흘러 나왔다.
[하이사인, 높게 떠오른 7개의 별. 그리고 그들이 만나 이루어진 단 하나의 별자리.]
[하이사인과 함께하는 동화 같은 여름밤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