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44화 (144/328)

144화

모두 잠든 새벽이 되어서야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숙면을 취하고 있었는데, 괜히 걱정하거나 일이 커질 걸 방지하자면 아무도 모르게 움직여야 한다.

다른 선배 가수들과 좀 껄쩍지근한 디레스트의 김준환은 둘째 치니, 가장 먼저 살펴볼 건 스턴즈의 조승화였다. 확실하다곤 할 순 없지만, 적의만큼은 뚜렷해 보였으니까 핸드폰을 들어 엔터사와 그룹에 대해 찾아봤다. 푸시를 받은 게 사실이었는지 기사가 제법 많이 보인다.

[데뷔 '스턴즈' 초대형 신인 예고]

[디레스트와 포인즈의 형제 그룹 막내 '스턴즈'의 화려한 출격]

[MXP의 대형 신인 루키 '스턴즈' 데뷔 임박]

우리와 같은 7인조로, 디레스트의 파워풀한 퍼포먼스와 포인즈 같은 독특한 세계관이 매력적인 그룹이라고 적힌 기사를 발견했다. 음, 이건 전형적인 언론 플레이 방식이다.

디레스트나 그 후배 그룹인 포인즈의 팬들이 열받을 만하네. 순한 성정을 자랑하던 멤버 하나와 리더의 이름을 익혀 놓고, 까칠하게 굴던 조승화의 사진을 살펴봤다.

진짜 얘 이름을 어디서 들었더라. 한 가지 확실한 건 좋은 이야기로 접하게 된 인물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하도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는 업계라 적당히 흘려들은 모양인데, 분명 선배들이 말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머리로는 꾸준히 더듬어 가며 손을 움직이니 역시 걱정스러운 분위기의 글 하나가 발견된다. 어제 작성된 걸로 보이는데 댓글에서 꽤 난투를 벌인 흔적이 있었다. 아, 머리 아파. 이제 시작이구나.

────────────────────────

제목 : ㅅㅌㅈ랑 ㅎㅇㅅㅇ 둘 중

────────────────────────

어디가 더 취향임?

솔까 다들 비교하지 말자곤 하지만 궁금했잖아

분탕러 아니고 걍 호기심

상대방쪽 까지는 말고 그냥 선호하는 쪽만 이야기해줘

괜히 지능형 안티 이지랄 듣기 싫으니까 난 어디인지 말 안함

────────────────────────

- ㅅㅂ 이게 분탕질이거든

└ 먹금하면 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제 쇼케한 애들 왜 머리채 잡냐고

└ 넌 어디쪽인지 보인다

- 근데 간지러운곳 긁어준 기분이네 안그래도 ㅈㄴ 궁금했음 난 닥후

└ 응 그래봤자 서바빨

└ 응 그 서바도 아무나 못하거든 너네 멤 하나 서류 짤렸다는 ㅉㄽ 돌았잖아

└ ㅋㅋㅋㅋ 그 개소리 믿는 애들이 있었구나 ㅋㅋㅋㅋㅋ

└ 와 팝콘각이다

- 잔칫집에 폭탄 떨구기 있어? 쓰니 너 ㅎㅇㄴ아니지 ㅎㅇㄴ이 이럴 리 없다

└ 지능형 안티거나 까빠일 수도 있지 이판 뭐 하루 이틀 이러냐

└ ㅎ… 존나 할말하않임 애들 데뷔 쇼케까지 얼마나 조심했는데

- 사격해 얜 우리 편 아니다

└ 지나가던 턴즈온 머리채잡혀서 딥빡임 같이 사격하자

└ 이런 동맹 가능한 거임?

└ ㄴㄴ 같은 팀인척 할뿐이지 이제 언플 존나 쏟아질텐데

- 대가리 아프네 ㅠ 일단 난 전자임

└ 대가리 아프다더니 곧바로 ㅅㅌㅈ 옹호하는 거 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닌 척 하면서 ㅌㅈㅇ인거 투리구슬 잼

- 솔직히 ㅎㅇㅅㅇ 쟤네 엔필름빨 떨어지면 듣보잡이었을 거 아니야. 남사단이 제대로 푸시해준 거 팩트잖아

└ 팩트 이지랄~ 그것도 능력이거든 그리고 엔필름빨은 무슨 소속사도 신생이라 지켜보는 와중에

└ 소속사 빨론 ㅅㅌㅈ 못 이기지 ㅋㅋ 니네가 제일 말 많았잖아 벌써 잊은 거임? ㅋㅋ

└ ㅍㅇㅈ하고 ㄷㄽㅌ 팬들 혈압오르는 소리 들리는디

└ 와 ㅎㅇㄴ들 얌전한 척해서 몰랐는데 존나 쎄네 내가 보기엔 ㅌㅈㅇ이 개털리는 중임

└ 시바 아무 이유 없이 길가다 쳐맞았는데 내가 왜 가만 있어야 함

- 와 불판 오져 ㅋㅋㅋㅋㅋㅋ ㅅㅌㅈ 첨엔 괜찮았는데 ㅎㅇㅅㅇ 데뷔곡 듣고 저기로 기울었음

└ 아니 얘네 둘 다 개성있고 노선 확실한 그룹 아님? 난 둘다 좋은데 왜 이러냐 평화빠순이라 존나 당황스러움 ;;

└ 아 먹금해 양쪽 다 좋을 거 1도 없는 싸움인데 왜 개같이 붙음

└ 솔까 쓰니 양 쪽 팬덤 아닌 것 같음 걍 폭탄 투척하고 지켜보는 타돌팬인듯

└ ㅅㅂ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너네 다 농락당한거야 멍청이들아

────────────────────────

다행인지 불행인지 후반부에 가서는 둘 다 좋을 게 없는 싸움이라며 줄어든 화력이 보였다. 아니지, 줄었다고 보기도 힘든 게, 앞으론 계속 부딪칠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이건 팬들에게도 못 할 짓 같은데, 서도경은 그렇다 치고, MXP에서 어떻게 나올지를 알 수 없다.

대표한테 언질하자니 내가 평범한 소속 가수여서 애매한 입장이기도 했다. 이유준이나 문채민에겐 서칭을 좀 자제하라고 해야 하나. 괜히 찜찜한 감정이 남아 있는 듯하다.

스태프 경력은 서바이벌 촬영 당시에나 가장 잘 먹혀들었지, 아이돌이 된 지금으로선 약간 애매한 감이 있었다. 선배들에게 주워들은 잡지식은 있었으니 그거라도 끼워 맞춰서 해결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스태프? 맞아, 조승화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났다. 아, 그거였구나. 이런, 불똥이 제대로 튀게 생겼다.

'살벌하다…….'

'그러게, 미친 거 아니야? 이건 너무했다.'

'뭐가요?'

'신해신, 너같이 물렁물렁한 애들이 이런 거 제일 잘 알아 둬야 해. 괜히 어디 가서 당하지 말고.'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마 내가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됐을 무렵일 것이다. 운이 좋게도 연출부 전원의 스케줄이 빠진 날이 있었다. 얌전히 집에나 갈까 싶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선배들에게 잡혀 조촐한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밥을 먹다 말고 핸드폰을 본 희태 선배가 혀를 내두르는데 의아함을 풍기니 설명해 준 게 떠오른다.

'아이돌 갑질 논란 터졌어. 이런 일 방송계에선 흔하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폭로 글 보니 얜 좀 심하다.'

'폭로 글이요?'

'어, 엔터사 현장 스태프인데 퇴사하고선 올렸나 봐. 근데 내용이 너무 살벌해. 데뷔 초 때부터 은근히 그랬다네.'

'뭘 어떻게 했길래 담당 스태프가 폭로 글을 올려요?'

'반말은 그냥 기본값이고, 막말에,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는데? 아주 쥐 잡듯이 잡았나 봐. 근무 시간 외 연장은 쉬운 거래, 와~ 이유 없이 대기만 10시간 한 적도 있다네.'

'제일 대박은 이거 아니야? 물병 던진 거.'

'네? 물병을 던져요?'

'어, 관자놀이에 맞아서 멍들었대. 사진도 올렸어. 뭐, 팬들이야 증거 내놓으라고 난리겠지만, 그게 더 일을 키운 것 같은 게, 진짜 녹취록 풀었거든.'

'자기 생존 문제라고, 출근하면 녹음 따고 있었단다. 와, 이 정도면 좀 큰 게 아닌데.'

너무 놀라서 밥 먹던 수저를 떨어트린 게 기억난다. 쨍그랑거리는 소리에 희태 선배가 제 핸드폰을 돌려줬다. 게시 글의 제목은 법적 문제 때문일까 스펠링으로 가려 놨다. 하지만 베스트 댓글을 확인하니 정답이 나타난다. 네티즌 수사대를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본문 제일 앞머리만 따서 읽어봐라 ㅋㅋㅋㅋ 진짜 개노답이다]

[엠 엑 스 피 스 턴 즈 조 승 화 갑 질 이렇게 나오네 이건 걍 빼박아니냐]

[ㅌㅈㅇ 너네 이거 구라나 우연이라고 하지 마 12글자가 맞는 우연이 어디있어]

[녹취록 상대방 음성은 효과 좀 넣었는데 그거 슬로우 걸고 노이즈 빼서 배경에 깔린 소리 잘 들어봐 물병 떨어지는 소리 뒤로 누가 '승화야' 함]

[ㅁㅊ 소름]

거기서 얘의 이름을 봤었다. 직접 듣기보단 텍스트로 발견해 이제 기억이 난 것 같은데, 맞아, 이런 애가 있었지.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뒤론 관심을 안 가지려고 애썼다. 내가 1년 차가 안 됐을 무렵이라면 24살이었으니까, 스턴즈는 막 3년 차 언저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3년 차가 어떻게 이런 객기를 부렸지? 혹시 뒤에 뭔가 있나? 하긴 데뷔 4개월 차던 지금에서도 시비를 걸었다. 한 성깔 하는 것 같았는데 푸시를 받는 3년 차라면 그렇게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데뷔 초 때부터 은근히 까탈스럽다고 그랬으니까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일 수도 있었다. 언젠가 터질 사건임은 확실해 보이는데, 이건 세이브해 둬야겠다. 저기서 큰 싸움을 걸어올 때에 적진을 한 방에 전멸시킬 기폭제였다. 나 같은 평화주의자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다니, 진짜 여러모로 살벌한 판이다.

방법은 찾았으나 어째 속이 영 불편한 기분이었다. 입안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난 그룹과 팬 그리고 수많은 이를 지켜야 하는 리더였다. 애써 풀어지려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얘네를 건드는 건 참지 않기도 했다.

* * *

어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던 탓일까, 일찍부터 깨어 있었다. 페널티의 고통도 의식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었는지 꿈에서도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깨기 일보 직전에는 나름 기분 좋은 광경도 봤지. 의식의 흐름이라고, 무대에 서 공연을 하며 팬들을 지켜본 장면이었다.

이제는 정식 활동을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데뷔까지 한 마당에 정신 차리자며 거실로 나갔다.

근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당황스러움에 눈만 깜빡거렸다.

평소처럼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따르던 과정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관문 인근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야."

다들 자고 있을 텐데? 놀란 마음에 문 앞까지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저 밖에선 뭔가 부산스러운 기운이 감지된다. 다른 애들을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현관문의 도어 록 버튼이 눌리며 소리가 났다.

띠, 띠, 띠, 띠, 띠, 띠… 공포 영화의 클라이막스라도 본 것처럼 한참을 굳어 있었다. 이내 곧 문이 활짝 열리며 아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오 팀장님이랑 박 매니저님? 벌써 오셨어요?"

가장 앞에 서 있던 건 매니저인 오병은과 박재민이었다. 저 둘이라면 숙소의 패스워드를 알고 있으니 전부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그나저나 아침이라고 했지, 새벽이라곤 안 했잖아, 이 사람들아. 물잔을 든 채로 가만히 멈춰 있었다.

"어? 해신 씨,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이런, 문제가 발생했네요. 정 감독님, 이거 어쩌죠?"

정 감독님? 그건 또 누구야. 호기심이 가시기도 전에 뒤에 있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리 많은 인원수는 아니었지만, 여기선 처음으로 맞이한 인파들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데, 아직도 꿈속인가 싶을 정도의 갑작스러운 시추에이션이다.

"이렇게 된 이상 바로 시작합니다!"

"…네?"

……저건 카메라? 그 뒤엔 조명인데. 아, 마이크다. 잠깐 사이에 사람들을 스캔한 눈이었다. 전직 스태프다운 정보로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저 구성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걸로, 한 대가 아닌 카메라에, 각자 쪼개져 움직이는 행동이 마치…….

"하이사인 리얼 여행기. '함께 가요, 하이사인! 첫 번째: 글램핑 편'의 시작을 열게 됐습니다."

"……!"

서도경, 외부로 나가서 찍는다는 게 이런 거였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