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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45화 (145/328)

145화

황급하게 들고 있던 물잔을 식탁 위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우선 얼굴부터 가렸다. 거울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가는데 그런 내 뒤에서 박재민이 외쳐 온다.

"해신 씨, 까치집도 잘생겼는데요. 왜 그러세요."

"머리만 내리고 올게요. 잠시만요!"

문을 닫고 수도꼭지를 들어 올렸다. 허겁지겁 세팅하니 말끔하기보단 물벼락 맞은 강아지 꼴이 된다.

…답이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뜬 것보단 이게 낫겠지. 엊그제부터 여러모로 물과는 자주 씨름하는 것 같다. 대충 수건을 목에 건 뒤 마른침을 삼켰다. 멤버들은 모두 한밤중인 상태여서 큰일이었다. 갑자기 내 역할이 막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 나오셨네요. 사실 원래는 몰래 들어와서 멤버들을 깨우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요. 맏형즈의 신해신 씨가 먼저 깨어계셔서 포맷을 살짝 변경해 보겠습니다. 해신 씨, 지금부터 미션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한 시간은 단 1시간, 모든 멤버분들을 깨워서 여행에 갈 준비를 끝내 주세요. 물품은 모두 저희가 준비해 놨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건 개인 생활용품과 의류뿐입니다. 해신 씨가 성공하면 다음 장소에서 보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리 어렵진 않죠? 자, 스타트!"

"…예? 지금요?"

"가만히 계실 틈이 없으실 텐데요.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형, 무슨 일이야. 밖이 소란스러운데… 어?"

허둥지둥 누구부터 깨워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가장 안쪽 방에서 이유준이 나타난다. 한쪽 눈을 비비고 있었는데, 귀마개를 뺐는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그것도 이내 보이는 광경에 두 눈을 부릅 뜬 게 목격됐다.

……유준아, 그렇게 됐다. 3초간의 시선을 끝으로 이유준이 다시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말릴 틈도 없었다.

[…나, 옷만 갈아입을게!]

쟤가 소리치는 걸 다 보네. 문채민은 이유준이 눈치껏 깨워 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둘의 방 앞에 서서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유준아, 리얼 여행기 '함께 가요, 하이사인!' 글램핑 편이래. 1시간 안에 애들 다 깨워서 짐 챙기라고 하셨어. 각자 생필품만 꾸리면 된다고 했는데, 정리 끝나면 채민이 깨워서 말해 줘. 정원이한테는 내가 가 볼게."

[어! 일단 알겠어. 채민아, 채민아. 얼른 일어나.]

문안에서 정신없는 이유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멋쩍게 미소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자 나를 따라오는 카메라였다. 일부는 저곳에 남아 있었는데, 이유준의 노력이 무색하도록 곧 들어갈 것 같았다. 저런, 미안하다. 막아 주기에는 여기도 급해서 말이야.

"정원아, 얼른 일어나 봐. 큰일 났어."

"……해신아, 왜 그래. 누구세요……?"

룸메이트인 이정원을 흔들어 깨웠다. 원래라면 나와 비슷하게 일찍 일어났을 애였는데, 오늘은 쇼케이스와 병행한 스케줄로 인해 깊게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비몽사몽 눈을 뜬 이정원이 내 뒤의 인파를 보고 진지해진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 것도 놀라웠는데, 상황 파악을 끝낸 듯하다. 역시 눈치는 빠르다니까.

"리얼리티래. '함께 가요, 하이사인!' 글램핑 편이라는데 1시간 안에 각자 물품 챙겨서 모두 모이라고 하셨어. 이거 미션이야."

"…지금 누구누구 일어났어?"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고개부터 숙인 이정원이었다. 이불을 걷고는 바로 몸을 일으키니 붙박이장에서 가방을 꺼내 짐을 챙기는 게 노련한 손길이다. 차림새만 보면 아침이었지만 또렷해 보이는 행동은 방금 깬 자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유준이가 일어나서 채민이 깨우고 있어. 입구 쪽 방 3인방은 지금 가 보려고."

"…그럼 짐을 챙길 때가 아니네."

"어, 일단 애들부터 다 깨우고 각자 정리한 후 모이라고 하자."

"그래, 태오는 걱정이 안 되는데. 혜성이랑 명이 그 둘은 어떡할래."

"일단 거기도 깨워야지."

"그럼 해신아, 내가 둘 쪽 맡을게. 좀 험하게 깨우는 게 빨리 일어날 것 같아서."

"…그럴 것 같긴 한데."

강태오, 쇼케이스 때부터 근래 내 모든 수모를 지켜본 애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1:1 독대는 조금 민망한데. 차라리 권혜성과 윤명의 방에 가는 게 나을 듯하다.

그래서 의견을 제시하려고 하니 결연한 표정의 이정원이 카메라 부대를 이끌고 먼저 이동해 버렸다. 말릴 틈도 없이 사라져선, 어쩔 수 없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차라리 얼른 깨우고 나와 버리자.

"정원아, 내가 태오 깨우고 바로 너랑 합류할게. 애들한테 설명 좀 해 주고 있을래."

"어, 알았어. 이쪽이 먼저 일어나면 나도 바로 갈게."

강태오의 방문 앞에 도착했다. 그 소란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조용한 곳이다. 강태오, 예민하게 생겨서 적응력만큼은 끝내주는걸.

어쩌면 이틀간의 쉼 없는 사건들에 놀라서 피로를 느낀 걸 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짐짓 미안해지기도 한다. 일단은 어쩔 수 없으니까 각자 마주 본 문을 향해 노크한 뒤 소리쳤다.

"태오야, 강태오! 해신이 형인데, 나 지금 들어간다!"

"권혜성, 윤명! 일어나!"

망설이던 나도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나와 함께 방 안 풍경을 찍고 있는 카메라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메이터스가 일하는 걸 봐선, 개인 프라이버시 정도는 챙겨 줄 것 같았다. 방 내부만큼은 편집으로 커트 칠 것이 분명했다. 찍고 있는 건 적당한 구실용이겠지.

어둠에 잠겨 있는 강태오의 방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형체에 다가갔다. 몸을 흔드니 이불 무더기 속에서 강태오의 얼굴이 나타난다. 미간을 찡그린 걸 확인했는데 아침부터 참 잘생긴 애였다.

"…윽, 뭐야. 권혜성, 윤명, 얼른 나가."

아무래도 강태오는 이미 여러 가지 사건을 겪은 듯하다. 주된 원인은 맞은편 방의 십 대 두 명으로 보인다.

"태오야, 나야."

"…형? 형이 왜 여기 있어."

내 목소리가 들리자 간신히 눈을 뜬 강태오였다. 대충 걸친 민소매로 인해, 들어 올린 팔이 맨살이다. 이마 위로 손을 얹었는데 이것마저 화보 같아서 감탄했다. …잠깐, 이럴 때가 아닌데.

"카메라 왔어. 여행 리얼리티래. 1시간 안에 애들 깨워서 짐 챙겨 갖고 모이라는데, 넌 네가 알아서 잘할 수 있지? 씻고 가방 챙겨서 거실로 나와 있어."

"…뭐?"

"나도 놀랐는데 일단 미션이라니까 얼른 해야지. 난 정원이랑 애들한테 가 볼게. 미안하다."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기댄 강태오였다. 어이없다는 듯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을 카메라가 진득히 줌인 하는 걸 목격했다.

나는 서둘러 이정원이 가 있는 권혜성과 윤명의 방으로 이동했다. 깨우는 담당인 우리 둘은 씻을 겨를조차 없었다.

"둘 다 얼른 일어나지 그래? 난 좋게 말했다?"

"며, 명아! 정원이 형이 깨우러 왔다! 얼른 일어나!"

"…뭐야, 혜성이 너, 시끄러워……."

여긴 벌써 해결됐나 보네. 열린 문안으로 팔짱을 낀 채 둘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정원이었다. 권혜성은 화들짝 놀라 윤명부터 흔들어 깨웠다. 버릇처럼 팔을 뻗으려던 윤명이 이정원의 목소리에 부스스 일어난다. 얘네에겐 친절한 것보다 엄한 게 잘 통하는 듯하다. 나도 방법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다들 정신 차렸어? 혜성아, 명이 좀 네가 챙겨라."

"해신이 형,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권혜성, 너 시끄럽다니까… 그리고 졸려……."

이정원의 뒤로 다가가며 권혜성에게 말을 걸었다. 날 보고 놀라기에 뒤에 있는 카메라 군단을 가리키며 설명해 줬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까치집을 한 권혜성이 펄쩍 뛰어오른다. 여전히 맹한 얼굴의 윤명만 넋을 놓고 앉아 있었는데, 여기도 가방부터 찾는 걸 보니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상황을 마무리하며 이정원을 돌아보곤 됐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 쪽은?"

"거기도 끝났어. 걔가 자기 할 일은 잘하잖아. 제일 완벽하게 해 놓을걸?"

"다행이네. 해신아, 먼저 일어나서 고생했어."

"그럴 것까진 없었고, 그냥 운이 좋았지, 뭐. 그럼 우리도 준비하러 가 볼까? 슬슬 씻고 짐 챙기자."

적당히 촬영 중인 상황을 의식하며 이정원과 함께 방으로 움직였다. 멤버들 깨우기가 완료됐으니 해야 할 일들을 할 계획이었다. 페널티니 뭐니 아직 마음을 놓지도 못했는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일정이란 게 뭔지 알게 됐다.

…서도경, 그 인간 도대체 정체가 뭐야? 소심하게나마 불만을 적립했다. 벌써부터 다사다난한 하루가 예상된다.

* * *

"……."

"……."

멈춰 있는 밴 안, 침묵 속에서 이마를 되짚었다. 이른 아침부터 난리를 피운 하루로, 촉박하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서두르니 시간 내에 준비할 수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일단 이게 어디야.

챙겨 든 가방을 메고 시키는 대로 이동한 참이다. 어쩔 수 없다며 헛웃음 짓는 이유준과 넋이 나간 권혜성 사이에서 상황을 파악했다.

"혹시 저희 어디로 가나요? 그리고 글램핑이라니, 인사도 아직 제대로 못 드렸는데 괜찮을까요?"

카메라가 돌고 있는 이상 리더인 몫은 제대로 해야 한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며 조심스러운 어조로 질문했다. 다른 애들도 귀를 기울이는데, 다들 아직까진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이제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그럼 대표인 한 분은 여기 있는 미션 카드를 읽어 주세요."

"어, 저요?"

문을 닫기 전 우리에게 카드 한 장을 건넨 제작진이었다. 입구에 있던 윤명이 멍한 얼굴로 받아 든다. 열어 보란 권혜성의 아우성에 봉투를 꺼내 글을 읽었는데, 느릿한 말투였지만 들리는 내용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함께 가요, 하이사인!' 그 첫 번째: 글램핑 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경기도에 위치한 글램핑장으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납니다. 그간 쉴 새 없이 달려온 하이사인 여러분을 위한 스페셜 기프트이기도 합니다. 마음껏 놀고 먹고 휴식을 취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아 주세요."

놀고 먹고는 무슨, 콘텐츠잖아. 게다가 꼭두새벽에 들어와서 숙소를 뒤집어 놓은 건 선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모두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굳이 입 밖으론 꺼내지 않는다. 예능인데 예능으로 받아들여야지.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글램핑이요?"

"와, 와아. 좋아요~! 근데 아직 잠이 덜 깨서 현실인지 모르겠어요."

"이거 현실 맞아."

"그래, 채민아, 고맙다."

"그리고 가면 혜성이 형이 제일 잘 놀 거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너 아까부터 팩트가 날카롭다?"

중간 좌석의 문채민과 권혜성이 흐름을 이끌었다. 한 명은 원래도 활기찬 애였고, 나머지 한 명은 막내로서 의무를 다하는 중이었다. 잘한다, 우리 막내.

다큐 같은 형들 사이에서 예능스러운 무드를 만들어 낸다. 이런 건 전적으로 얘네가 할 일이지. 미안하다, 채민아.

대처 방안을 떠올리려고 골머리를 썩이니 눈만 깜빡이던 윤명이 마저 말을 잇는다.

텀이 너무 길지 않나……? 저건 단순하게 말이 느린 수준이 아니었다. 윤명, 쟨 또 정신 빼고 있었던 듯한데 아, 벌써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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