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48화 (148/328)

148화

"윤명, 쟤 뭐야?"

"유준이 형, 잘 좀 해 봐!"

"미안한데, 난 평균이거든. 명아, 너 혹시 운동 잘하니?"

"뭐, 못한다는 소린 못 들은 것 같아."

첫 대결은 바로 이유준과 윤명이었다. 제대로 마주친 적이 드문 무리라 모두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이유준은 안 그러는 척, 지구력이 좀 모자란 편이다. 춤은 곧잘 추곤 했으나 그것과 이건 다른 일이었다.

예상외의 구간이 하나 있었다면 탁구채를 쥔 윤명의 폼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손에서 공을 굴리는 게, 시작부터 프로의 냄새가 났다.

…쟤 혹시 탁구 선수 준비했나? 어이가 없어서 살펴보니 이유준이 체념한 것처럼 미소 지었다.

"아, 윤명 선수, 나이스 드라이브."

"유준이 형, 상대 잘못 만난 것 같은데."

"…채민아, 나도 알아."

"앗, 윤명 선수, 백핸드도 할 줄 압니다. 이거, 이유준 선수 완전 막다른 길이에요!"

"…조용히 해, 혜성아."

제작진도 여기를 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돌 그룹의 어설픈 경기를 예상했을 텐데, 둘 중 하나가 지나치게 능숙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간신히 받아치는 이유준을 뒤로하고 날아다니다시피 득점하는 윤명이었다.

팔짱을 낀 이정원이 윤명을 응시하는데, 대결에서 이긴다면 윤명과 붙게 되는 건 이정원 바로 쟤였다.

"이거 난처한걸."

"정원이 네가 약한 모습을 다 보이네."

"해신이 넌 거의 포기한 것 같다?"

"…어, 그냥 수긍하려고."

10점 내기의 1세트 게임으로 3점을 채 넘기지 못한 이유준의 패널이 보인다. 저게 내 미래처럼 느껴지는 건 오버일까.

"세트 스코어 3 : 10! 윤명 선수 승리."

"아, 이거 안 되겠네. 내가 졌어, 명아."

"어, 벌써 끝이야? 이제 몸 좀 풀리나 싶었는데."

"나 진짜 상처받는다."

터덜터덜 걸어 들어온 이유준이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상처받는다는 말과는 달리 제법 재밌었단 표정이다. 아까부터 움직임에서 묘한 친근감이 느껴지는데. …이유준, 너 운동 못하는구나.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평소처럼 음습하게 웃어 보인다. 또 저 구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해신이 형, 왜?"

"아니, 그냥 동질감이 좀 느껴져서."

"다음은 바로, 저 권혜성 선수와 이정원 선수의 대결이 되겠습니다."

"형들, 그럼 심판은 내가 봐 줄게."

"오케이, 정원이 형, 더… 아니다……."

"왜, 마저 말해 봐. 덤벼 보라고?"

"아, 아닙니다."

권혜성이 이정원의 날카로운 기색에 시선을 피했다. 탁구채를 휘휘 젓고 있는 행동으로 거기서부터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이정원은 엄청난 팔심의 소유자였다. 왠지 여긴 운동 잘하는 애들끼리 하는 대결 같았다.

"조금 난처하긴 한데… 나도 탁구는 영 서투르거든."

"진짜? 와, 내가 이길 가능성도 있겠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그렇게 문채민의 진행 속에서 시작된 게임이었다. 권혜성은 많이 해 봤다는 듯이 능숙한 자세를 취한다. 이정원도 어색하단 말과 달리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권혜성은 댄서다 보니 잘할 것 같기는 했지.

하지만 희한하게 의외의 애들에게서 큰 재능을 목격했다. 앞의 윤명도 그렇고, 지금 경기를 펼치는 이정원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제법 유한 분위기인데 어딘가 만능 스포츠맨의 기운이 감돈다. 적응력이 엄청나다고밖에 볼 수 없는 랠리였다.

"으악, 정원이 형, 공 엄청 튀어 올라! 힘 조절 좀 해!"

"덤벼 보라며, 그래서 전력으로 덤비는 중인데……!"

탁! 저게 탁구공에서 날 수 있는 소리인가? 내가 알던 그 게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과도하게 튀어 오르는 공이 매섭기까지 하다. 간신히 받아친 권혜성이 공을 날리는데 순간 이정원의 눈이 빛나며 크게 팔을 내저었다.

"아, 이런."

"오, 홈런. 장외다, 장외."

그래도 이 분야를 조금 더 잘하는 건 권혜성인 모양이었다. 포물선을 그리다 못해 저 멀리 날아가는 공을 구경하는데, 힘이 어찌나 좋은 건지 속력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강태오가 질색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이게 무슨 탁구야."

"태오야, 다 들린다."

"세트 스코어 7 : 10 혜성이 형의 승리야. 그럼 다음은 나랑 태오 형인가?"

권혜성과 바통 터치한 문채민이 앞으로 나왔다. 강태오도 몸을 일으키며 걸어 나가는 게 얼굴에는 심란한 기운이 맴돈다. 막내와의 대결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하다. 쟤도 사람이 참 물러. 같이 지내니까 더 잘 드러난 사실이었다.

"형, 잘 부탁해."

"그래, 일단은 대결이니까 열심히 하겠는데."

"막내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거지?"

"…너도 참, 성격 특이하다."

"나도 일단 살아야지."

"이유준, 너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

"내가 뭘?"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강태오를 휘어잡은 문채민이었다. 느긋하게 웃어 보이는데 왠지 이유준이 오버랩된다. 강태오도 그걸 느낀 듯 잠시 발을 뒤로 물렸다. 자라나는 새싹이 자신의 천적과 비슷한 향기를 내서 당황한 얼굴이었다.

즐겁게 관람하던 권혜성이 시작을 알린다. 가만, 저기서 이기는 애가 내 상대란 뜻이잖아? 갑자기 그 누구도 응원하고 싶지 않아졌다. 입을 다문 채 관전하니, 나름 박빙의 승부를 보이는 둘이었다.

"오, 여기가 제일 엇비슷하네? 태오 형도 팔심이 좋고, 채민이는 탁구 좀 쳐 봤나 봐?"

"나, 일단 고등학생이거든. 애들이랑 이런 건 자주 하지."

"태오 형, 포즈가 좀 어색한데. 저긴 몇 번 안 해 봤나 보다."

"그래? 신기하네."

타고난 감각과 좋은 피지컬로 잘 받아치긴 했으나 어설픈 구석이 보이는 강태오였다. 숙소가 중요하긴 했는지 제 나름의 최선을 다해 보인다. 그래도 오락의 끝판왕, 현직 고등학생을 이기긴 힘든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실점을 하며 이번 게임도 완료됐다.

"스코어 10 : 8 문채민 승리."

"형, 서툰 것치곤 잘한다. 꽤 버티던데?"

"접할 일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재밌었다."

악수를 하고 사라지는 강태오 뒤로 지옥에 끌려가는 듯한 기분인 내가 등장했다. 표정부터 체념한 기색이 만연했는데, 그게 웃겼는지 문채민이 미소 짓는다. 될 대로 돼라. 사실 전부 포기한 상태였다.

"이건 너무 결과가 뻔한 거 아니야?"

"해신이 형, 좀 웃어 봐."

"채민이, 쟤 여유롭네."

"해신아, 그래도 부전승으로 올라가서 다행이다."

다 조용히 해. 탁구채를 밥주걱 들듯 쥐고 있으니 사방에서 조언을 비롯한 잔소리가 쏟아진다. 아까 윤명이 어떻게 들었더라. 머리를 긁적이자 문채민이 다가와 직접 그립까지 알려 줬다.

어지간히도 안쓰러웠나 본데. 대결 상대인 얘까지 날 도와준다. …근데 왜 더 처참한 기분이지. 어설프게 휘둘러 보니 권혜성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난 뒤끝이 길어서 이것도 적립해 놓기로 다짐했다.

"형, 상체랑 하체가 따로 놀아!"

"…안 해 봤다니까. 이거 기권은 안 되는 거야?"

"해신이 형, 그래도 분량은 뽑아야지. 채민아, 형 너무 망가진다 싶으면 일찍 끝내 줘."

"알았어, 유준이 형."

"…저기, 내 취급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이제는 한숨을 숨기지 않았다. 푹푹 내쉬니 동병상련의 감정인 강태오가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본다. 쟤보단 내 입장이 백배는 더 난감한 게, 어쩐지 이게 방송되면 이상한 이미지가 생길 것 같았다. 휴가 생기면 탁구부터 배운다. 오늘도 지키지는 못할 다짐을 해 버렸다.

* * *

"…수고했다, 채민아."

"큽, 웃으면, 미안한데, 형도 고생했어."

"아니야. 그냥 편하게 웃어……."

고개를 돌려 넘어간 점수를 봤다. '2 : 10' …아, 망신살이다. 그나마 저 2점도 뒤에 가서 적응하며 따낸 포인트였는데, 나름대로 춤 좀 춰 봤다고 하니 익혀진 것 같다. 하지만 문채민을 이기기엔 모자란 시간이었다.

포기했을 무렵에 마지막 점수를 따며 게임이 끝났다. 난 분명 다른 운동은 괜찮게 하는 편이었다. 하필이면 처음 해 보는 종목이라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었다. 언젠가는 만회하겠다며 발을 물렸다. 그런 내 뒤로 나머지 경기들이 진행된다.

이젠 어느 정도 잘하는 애들만 남아 있어서 탈락자 무리와 모여 멤버들을 지켜봤다. 권혜성과 윤명의 대결에선 윤명이 승기를 가져갔다. 전자도 훌륭한 스포츠맨이었지만, 후자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입술을 댓 발 내민 권혜성이 윤명을 향해 투덜거렸다. 평소에는 반응 속도도 느리면서 이럴 때만 잽싸냐는 게 그 의견이다. 어쩌다 보니 결승전은 문채민과 윤명이 붙게 됐다. 문채민도 앞선 경기를 관전하며 자신의 운명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제법 초탈한 모습으로 나와 대결을 펼치는데 수준급의 실력과 잽싼 몸짓이었지만, 급이 다른 윤명의 드라이브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맹하던 얼굴로 상대방에게서 점수를 뺏는 윤명이다. 마지막 게임까지 끝이 나며, 탁구 경기의 등수가 정해졌다.

[탁구 결과표]

1등 - 윤명

2등 - 문채민

3등 - 권혜성

4등 - 신해신

5등 - 이정원

6등 - 강태오

7등 - 이유준

"우와, 해신이 형. 저건 진짜 부전승으로 얻은 자리다."

"그러게. 내가 해신이보다 밑이란 건 좀 억울한데?"

"정원이 형, 그건 내가 제일 클걸. 해신이 형이 7등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2등이던 채민이랑 제법 비등비등하게 붙었는데 6등이네."

"이게 룰이거든. 다들 이만 수긍하자."

어쩐지 조금은 뻔뻔해진 나다. 부전승으로 인해 대진표에선 4등에 자리할 수 있었다. 처참한 랠리를 보였음에도 중간을 차지하자 이정원이 웃으며 장난을 친다. 강태오와 이유준도 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억울한 텐데도 그냥 넘겨 주는 구석이 강하다. 내 성격을 알아서 그런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럼 최종 결과에 맞춰 1등인 윤명 씨부터 같은 텐트를 사용하고 싶은 멤버를 호명해 주세요."

우리를 지켜보던 제작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설명했다. 모두의 시선이 윤명에게 쏠리고 다시 느긋해진 태도의 애가 입을 열었다.

* * *

도심에서 멀진 않을 텐데, 별이 꽤 있네. 지금은 1시도 넘긴 새벽녘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하는 중이었다. 제작진도 인근에 잡아 놓은 숙소로 이동했고, 매니징 팀만 멀지 않은 밴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듯했다. 설치해 놓은 셀프 캠과 덩그러니 둘만 함께 있는 상황인데 다들 잠들었는지 고요하기 그지없다.

내일 스케줄 생각하면 나도 자긴 해야 할 텐데 말이야. 아직 옆구리를 차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조금 늦게 잔다며 빠져나온 상태였다.

게임이 끝나고 윤명부터 차례대로 한 명씩 멤버들을 선정해 나갔다. 윤명은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강태오를 선택했고, 큰 덩치 둘이 부대껴 자야 한다는 생각에 구겨진 표정의 강태오가 끌려 나갔다.

2위인 문채민은 이정원을 불렀는데, 숙소 룸메이트인 이유준과 비슷해 보인다는 게 원인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방식이 참 이상한 애들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지! 난 예고한 것처럼 해신이 형~'

'…아아.'

'형, 살아남아.'

'그래 볼게.'

3위였던 권혜성에게 이름이 불리며 걸어 나간 나도 있었다. 3개의 무리로 갈린 상태에서 호명이 되지 않은 이유준이 우리 방을 택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3인으로 뭉친 텐트가 나왔다.

'그럼 혜성이네가 해신이랑 유준이로 3명이니까, 나랑 채민이가 명이랑 태오네 쪽 합류하는 거지?'

'어, 뭔가 나 2등이었는데 왜 손해 보는 기분이지. 정원이 형, 여기 무진장 좁을 것 같지 않아?'

'어째 그러긴 하다. 그래도 다들 잠꼬대는 딱히 없잖아. 명이 쟤도 깨우는 것만 조심하면 되니까.'

'얘들아, 가장 난감한 건 나거든. 예민한 유준이랑 발 날아다니는 혜성이 데리고 자야 하는 사람이 있단 걸 잊지 말아 줄래.'

그렇게 허심탄회한 내 말 속에서 무사히 바비큐와 저녁 식사까지 마무리 지었다. 리얼 여행기라곤 했지만, 자체 콘텐츠고, 내일도 이런저런 스케줄이 있는 탓에 큰 무리 없이 일찍 파한 촬영이다.

내일도 오랜 시간 녹화는 안 하고, 짧은 에피소드들만 정리하여 서울로 복귀한다고 말했다. 슬슬 나도 자 볼까 싶어서 텐트로 향하려는데 어렴풋이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누군가가 나타난다.

"뭐야, 왜 나왔어."

"자다 깼는데, 형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도 너, 용하게 잠들긴 했다?"

"오늘 다사다난했잖아."

옆의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이유준이다. 데뷔 막바지 준비 이후론 쇼케이스다 방송 스케줄이다 하며 독대하기 힘든 멤버이기도 했다. 이렇게 된 거 좀 더 있다 들어갈까 싶다.

"크게 얘기할 건 없고, 너도 별이나 볼래? 여기 공기도 꽤 좋아. 물론 날벌레도 많지만 말이야. 아, 안 먹게 조심해라."

"전부터 느낀 건데, 형 진짜 무드 없다."

"무드가 밥 먹여 주나."

"이런 거 보면 형이 정원이 형보다 삭막한 것 같아."

"그거 지금 걔랑 나 1타 2피로 욕한 거지. 정원이한테 다 말할 거야."

"하하, 좀 봐줘."

카메라도 있는 탓에 크게 얘기라고 할 건 없었다. 이러고 있으면 콘텐츠 팀에서 적당히 예쁜 음악 깔고 잘 다듬어 주겠지. 사실 얘랑은 그런 말을 하기도 민망했다. 도대체 이유준이랑 둘이서 뭘 해야 하는데. 머쓱하게 머리를 털다 내일부터 있을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무대에 대한 피드백도 주고받고 제법 긴 시간을 잘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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