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50화 (150/328)

150화

"난 해신이 형이 안 떨고 편하게 있는 게 너무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까 형 왜 이렇게 얼굴색이 좋지."

"이젠 얼굴색으로도 수상하다고 할 기세네."

아무래도 이유준 쟨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듯했다. 눈치도 눈치인데 관찰하는 모양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권혜성과는 눈짓을 통해 누구부터 죽여야 할지 간을 보고 있었다. 넌 방금 그 멘트로 지목 1순위에 급부상했어. 미안하지만 이만 죽어 줘야겠다.

"근데 해신이라고 하기엔 타이밍 너무 잘 맞추지 않았어? 마피아면 바로 티 났을 텐데."

"하긴, 형 성격이 있지. 분명 버벅거렸을걸."

고마워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빠져나갔으니 그만이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과반수의 멤버가 이정원을 골랐다. 나 역시도 기가 센 애 하나를 미리 처리하는 게 좋아 보인다.

[정원은 마피아가 아닙니다.]

"나 아니라고 했지. 너희 다 두고 봐."

"…죄송합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이제는 마피아들의 차례로, 고개를 숙인 멤버들을 지켜보며 입 모양으로 대화했다.

'누구부터 죽여?'

'무조건 이유준. 위험하니까 먼저 끝내 버려.'

'롸져 댓.'

[유준은 마피아가 아닙니다.]

"헉, 대박! 유준이 형이 죽었네? 형, 마피아 아니었어?"

"나도 유준이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다들 양심 없다."

나와 권혜성의 지목하에 탈락한 이유준이 끌려 나갔다. 이정원과 마찬가지로 천사 날개와 머리띠까지 얹고 누가 마피아였는지 설명을 듣는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음에도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두고 보자.'였다. …난 잘못 없어. 뒷통수가 뜨거웠지만 피한 뒤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갔다.

"아, 유준이 형이랑 정원이 형이 아니면 태오 형인가?"

"나도 아니라니까. 문채민, 몇 번 말해. 정원이 형에 이어서 이유준 쟤도 시민이었잖아. 이쯤 되면 채민이 네가 마피아 아니야?"

"그럼 명이 형?"

"…얘가 말하는 사람들 다 피해자 같은데, 마피아는 보고 있으면 문채민부터 죽여 봐."

"죄명은 혼란 가중죄로 하자."

일단 접수 완료. 윤명의 요청 사항에 권혜성과는 눈으로 대화했다. 분란을 주는 걸로는 1등 공신이었으나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우리 쪽으로 타깃이 넘어오면 위험하다.

귀에선 다시 한번 미친 중독성의 노래가 흘러나오니, 이것도 나름 적응됐는지 그럭저럭 버티는 과정이었다. 엑스맨들이 등장해 줘서 넘어갈 수도 있었던 걸로 이를 꽉 깨물고 춤을 췄다.

이번 탈락자는 두 명이니까, 여기만 통과하면 우리의 승리다. 벌칙 싫어, 안 받을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집중하길 한참이었다. 그런데 아까는 무사히 넘긴 구간에서 손이 꼬여 버렸다. 나쁜 마음 먹은 지 3분 만에 실수를 한 것이다.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였구나.

"…해신이 형, 손 봤지."

"어? 나 못 봤는데. 해신이 형이 왜."

이런, 하필이면 윤명이 전부 목격한 모양이었다. 권혜성은 편을 들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얼굴이었다. 그저 망했다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끔 감았다.

"손 꼬이면서 넘어가는 박자 밀렸어. 이제 보니까 형이구나?"

"어쩐지 저 형, 엄청 조용하다 싶었는데."

"나 아니야. 아까 잘했잖아. 누가 실수하는지 지켜보려다가 틀린 거야."

"얼굴 엄청 당황했는데."

"어, 지금 태오 형, 1초 먼저 돌았다!"

"아니야. 뭐야, 권혜성 너 왜 그래."

권혜성이 다른 사람을 지목하여 포커스를 넘기려고 시도했다. 정황상 강태오가 틀렸을 확률은 없어 보이는데, 쟤가 박박 우기니 당황한 기색이다.

아니라며 해명하곤 사방을 돌아보다가 누구도 감싸 주지 못할 실수를 해 버렸다. 그건 바로 메인 파트에서 반 바퀴를 먼저 돌아 버린 것이었다. 권혜성, 나이스 어시스트! 쟤가 날 구했다.

"와, 이건 못 물린다. 태오 형이네."

"내가 태오 형이라고 했잖아."

"그럼 저 둘인가?"

그렇게 끝이 난 두 번째 단계 속에서 조마조마하게 문채민과 윤명의 선택을 기다렸다. 지금 내가 버티기만 하면 마피아의 승리인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권혜성과는 열심히 작당을 모의하는 중이었다. 제발 강태오를 골라. 쟤한테 미안한 건 뒤로 넘겼다.

"근데 해신이 형이라고 하기엔 처음 타이밍 너무 잘 맞추지 않았어? 그리고 사소한 실수였으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태오 형은 감싸 주기도 힘들다."

"하긴, 대놓고 먼저 돌았지."

"나도 처음엔 잘했거든. 권혜성, 너 왜 이렇게 형 감싸 줘?"

"어? 아니야. 저 형이 이제 와서 생사람 잡네!"

먼저 죽은 천사 두 명은 권혜성의 수법에 넘어간 문채민과 말이 없는 윤명을 보며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러게 누가 먼저 죽으랬나. 길길이 날뛰는 권혜성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문채민이 강태오를 향해 손을 뻗는다. 윤명은 결정지었다는 듯이 나를 택했지만 나와 권혜성의 표까지 이어지니 이번 탈락자는 강태오가 확정이었다.

[태오는 마피아가 아닙니다.]

[마피아 팀의 승리로, 마피아는 자신의 정체를 밝혀 주세요.]

"아자! 이겼다!"

"아, 이런 막중한 포지션 너무 무서워……."

"…배신자들."

"와, 해신이 형, 진짜 잘했다. 혜성이 형은 전혀 생각도 못 했어."

"채민아, 너 촉 무슨 일인데. 지켜보던 나랑 유준이는 포기했잖아."

"문채민, 쟤랑 게임 못 하겠어."

"아니야, 나 게임 잘해."

신이 난 듯 브이자를 그리는 권혜성과 완전히 녹초가 되어 주저앉은 나였다. 다른 멤버들은 혀를 내두르며 문채민의 대활약을 타박했고, 강태오 쟤는 나에게 배신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데 나부터 살고 봐야지.

"혜성아, 혹시 태오 처음에 지적했던 거……."

"그때 저 형 안 틀렸는데? 좀 흔드니까 바로 실수하더라. 쉽다, 쉬워~"

"권혜성 너……."

윤명의 질문에 냅다 대답하는 권혜성과 그런 애를 보며 어이없단 표정을 지은 강태오였다. 일단 우리 둘의 승리로, 지대한 공헌을 한 문채민을 제외하곤 힘들게 한 이유준과 윤명을 벌칙 대상으로 선정했다. 20초 연속 애교 발사를 하는데 대리 수치는 우리가 느끼며 그렇게 막을 내린 녹화였다.

* * *

[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크가 귀엽다고요? 음, 매니지먼트실에서 저 몰래 주문해 놓은 것 같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태오 얘 당황했네."

"그러게, 그래도 제법 잘하고 있지 않아?"

강태오가 케이앱을 하고 있는 미팅 룸 옆의 방이었다. 멤버들과는 모여 앉아 홀로 고군분투하는 애를 지켜봤다. 어제 자정부터 멤버들의 축하 SNS가 올라갔다. 그러게 누가 숨기랬나. 왜 늦게 말했냐면서 선물을 투척한 우리를 떨리는 눈으로 살핀 게 기억난다.

진짜 더럽게 힘들었는데. 쉬는 시간이 되면 박재민을 대동하고 조금씩 쪼개져서 쇼핑 타운에 다녀왔다. 마지막 순서였던 문채민과 이정원은 모든 스케줄이 끝나고 나서야 간신히 물건을 사 올 수 있었다.

다소 급하게 구한 거니 이번엔 그냥 만족하라는 말을 끝으로 강태오는 회사에 가 봐야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라이브나 잘하라며 손을 흔들어 줬던 아침이다.

[멤버들한테 선물 어떤 거 받았냐고요? 아, 이것도 되게 놀란 게, 제가 말을 안 해 줬거든요. 그런데 전부 준비했더라고요. 매니저님한테 들은 건데 어제 하루 종일 저 때문에 뛰어다녔대요. 분명 스케줄이 있었는데 언제 간 건지…….]

- 헐 ㅁㅊ ㅋㅋㅋㅋ 어제 애들 목격담 뜬 거 이건가보네

- 스케줄 있을 때라 구라라고 넘겼는데 진짜였나봐 미친

- 내가 말했잖아!!! 봤다니까!!!!! N쇼핑타운에서 윤명이랑 이유준 봤다니까!!!!!

- 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 아니 생일 늦게 말해줘서 헐레벌떡 구하러 간거였냐고 왤케 귀여움 ㅜ

"너희, 목격담 떴었어?"

"나도 아직 확인 못 했어."

"아, 유준이 형, 그러고 보니까 우리 결제할 때 누가 쳐다보긴 했어. 말해 주는 거 깜빡했다……."

사람이 없을 무렵에 간 나와 권혜성과 달리 이유준네는 조금 혼잡할 시간대였다. 그래서 걸린 것 같은데, 무사히 마무리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우선 정원이 형은 안무 연습할 때 입으라고 트레이닝복 사 줬습니다. 해신이 형은 저희 유어돌 3차 미션 때 떠올리고 모자를 줬더라고요. 유준이는 향수, 혜성이는 팔찌입니다. 명이는 지갑이었고, 채민이가 후드 티였어요. 다들 신경 써 줘서 너무 고맙죠. 물론 하이눈들도 고마워요.]

"뭐야, 다들 허겁지겁 샀다더니 물건 고르는 센스들이 있네?"

"쇼핑 타운이 가까이 있던 게 천운이었어."

"맞아. 브랜드 숍들이 있어서 한숨 돌렸지. 채민아, 명아, 너흰 용돈 다 썼겠다?"

"그건 혜성이 형도 마찬가지 아니야? 다들 생일은 미리 좀 말해 놔. 내가 18살이란 걸 자꾸 잊는 모양인데 지금 용돈 바닥났거든. 이번 달은 더 없지?"

"…난 아직 돈 있어."

잠깐의 타이밍을 재다가 박재민의 신호하에 옆방에 들어갔다. 케이크의 불을 막 끈 상태에서 우릴 본 강태오가 놀랐다는 표정을 짓는다.

"해피 버스 데이 투 태오 형!"

"다음부턴 제발 미리 좀 말해."

"하이눈들, 안녕하세요~"

"…뭐야, 다 왜 여기 있어."

"왜긴 왜야. 멤버 생일 축하해 주러 왔지"

- 헉 얘들아!!!

- 아 ㅜㅠㅜㅠㅜㅠㅜㅠ 축하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ㅠㅜㅠㅜㅠㅠ

- 장성한 사내들의 우정이 이렇게 귀여울 일이냐

- ㅋㅋㅋㄱㅋㄱㅋㅋ 그 와중에 혜성이 혼자 꼬깔모자에 선글라스 낀 거 뭐냐고 누가 보면 자기가 생일인 줄 ㅋㅋㅋㅋㅋㅋㅋㄱㅋ

- 아가명 ㅋㅋㅋㅋㅋ 혜성이랑 커플 선글라스냐고 ㅋㅋㅋㅋ 무표정으로 걸어오는 거 개웃기네 ㅋㄱㅋㅋ

떠오르는 댓글들에 당황한 강태오를 뒤로하고 멤버들이 자리 잡는다. 다음 스케줄까진 시간이 있는 터라 전원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당사자는 저기 19살 둘이 담당했는데 그럭저럭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생일 축하한다, 강태오. 하지만 숙소에서 얘기 좀 하자.

* * *

"형, 이게 뭐야?"

모든 스케줄이 완료된 이후 뒤늦게 귀가한 숙소였다. 이건 어제 아침 한지헌에게 호출받은 이후로 줄곧 계획해 놓은 일정이었다. 모두 모인 멤버들 틈바구니에서 준비한 종이를 돌렸다. 내 것까지 총 7장, 같은 질문지에 오른쪽 답변 칸만 공란인 상태였다.

[개인 프로필(상세하게 기재)]

이름(한자/영문):

생년월일(양력 음력 상관없이 챙기던 것):

혈액형:

연락처: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알레르기 유무:

기타 하고 싶은 말:

"이번 사태를 겪고 깨달았어. 일단 우린 서로를 너무 몰라. 아니, 그걸 떠나서 다들 왜 이렇게 신비주의인데. 태오 너, 생일 정도는 말해 주면 안 될까? 직접 말하기 민망하면 편지라도 써서 알려 줘."

"해신이 형, 편지가 더 민망한 것 같은데."

"…이게 무슨 헛소리들이야."

"아, 근데 이건 나도 해신이 형 말에 공감해. 저기 용돈으로 살고 있는 18살은 형들 생일이 오면 타격이 크거든. 나 지금 게임 현질할 돈도 다 뺀 거 알아? 한동안 강제 금지야.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말 좀 해 줘."

종이를 받아 든 문채민이 항의하듯이 읊어 왔다. 권혜성도 지갑 사정이 비슷한 것 같은데, 쟨 뭐가 됐든 신났단 얼굴이다. 윤명은 생각을 모르겠지만 태도를 봐선 여유 있는 듯했다. 이유준은 재밌다며 내 장단에 맞춰 주기 바빴다. 솔선수범하여 개인 정보를 기재하니 투덜거리면서도 따라 써 주는 애들이다.

"나도 찬성이야. 솔직히 우리가 편하게 지내긴 했지만 이런 건 좀 안트긴 했지. 단체 대화 방도 만들어 놓고 말 하는 애들만 하지 않나. 예를 들면 혜성이나, 혜성이나, 혜성이."

"옳소! 정원이 형, 역시 뭘 아네. 다 맨날 읽기만 하고 답도 안 해!"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데 실물 옆에 두고 왜 대화 방을 써."

"됐으니까 얼른 받아 적어. 생일 정도야 올라간 프로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양력 음력 다루는 게 다르잖아."

"형, 근데 한자 이름은 왜 써야 해?"

"민증에 있었으니까."

"양식을 거기서 보고 가져온 거야?"

"난 하고 싶은 말 칸이 있다는 게 제일 웃긴데. 여기에 뭐라고 적어야 해, 형?"

"없으면 공란으로 비워. 본가 지역도 쓰라고 하려다가 프라이버시 침해일 것 같아서 참았어. 그러니까 이만 수긍하자."

내가 괜히 리더를 자원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 정보 탈취니 뭐니 해도 두 번 다시 이런 황당한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멤버들의 정보는 모두 취합해서 머릿속에 넣어 둘 예정이다. 그러게 먼저 좀 밝혀 주지 그랬어. 하여간에 손이 많이 가는 애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