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오늘은 공중파 음악 방송인 쇼플레이를 촬영하러 온 날이었다. 생방송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대기실 안,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며칠 전 원겸에겐 큰 도움을 받았다. 개인 라이브를 하던 도중에 실수한 척 우리의 음악을 틀어 준 것이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하이사인이 언급됐다.
~ wish the night 이 밤 달빛에 비쳐 오는 ~
- 아, 잘못 눌렀다. 미안해요, 클러스터. 들려 주려던 건 이건데…….
└ 방금 하떤남자들 아님?
└ 미친아 지원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
└ 뭐야 뭐야 요즘 핫한 애들 노래잖아 멘토였던 거 티 내는 거 봐 ㅜ 존나 귀여움
└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 지금까지 언급 1도 없어서 몰랐음; 의외다;;
└ 음 겸아 우리 좃목은 하지 말자 나 그거 별로 안 좋아함
└ 친목질 극지뢰;;
- 쉿, 조용. 뭐야? 채팅창 왜 다 다른 남자 얘기인데요. 내 얘기만 해. 나 질투한다?
└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리얼 지원겸을 위한 속담임
└ 아니; 평소에 겸이 네가 듣는 노래랑 다르잖아 궁금하다고 ㅠㅠ
└ ㅊㅁ 아닌가? 걍 리얼 실수인듯
└ 하여간에 성격 엄청 급해 ㅜㅠ 가온이한테 버튼 살살 누르라고 잔소리 들었으면서 천천히 좀 해
└ 근데 좀 궁금하기도?? 애들이랑 연락하고 있었나??? 나름 선생님롤이었잖아 ㅋㅋㅋ
- 에이~ 다들 너무 궁금해한다. 흐음, 그럼 잠깐만 얘기할게요. 선생님으로서 애들 데뷔한 거 보니까 엄청 뿌듯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잘해. 노래도 내가 취향이 좀 바뀌었나? 밤에 조용히 듣고 있으면 막 감수성이 생겨요. 추천곡으로 띄울게요. 어때, 괜찮죠?
└ ㅅㅂ 그거 새벽 감성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개 위험해 ㅋㅋㅋㅋ
└ 하긴 원겸이 너 유어돌에 진심이었지 ㅋㅋㅋㅋㅋㄱㅋㅋ
└ 겸아 태서도 애들 얘기해?? ㅠㅠㅠㅠㅠㅜㅠ
- 태서요? 당연하죠. 우리 둘 모이면 자주 얘기하는데? 그런데 통 보기가 힘들어요. 아~ 활동이 겹쳐야 뭐 응원해 주든가, 말든가 하지. 얘들아, 보고 있어? 멘토님이 보고 싶다. 연락 좀 해라. 아! 맞다. 내가 연락처를 안 줬네? 하하!
└ 지원겸 이 또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알면 얼른 컴백해줘 ㅜ 제이온 존나 일 못한다 진짜
└ 근데 찐친은 아닌가 봐 그랬으면 데뷔했을 때 아웃스타 스토리에 올려줬겟지 지원겸 입 꾹 다물고 있었잖아
└ ㅁㅊ아 이거 지금 약스포인가? 곧 나온다는???
└ 지떤 남자 베베 꼬인 성격 보면 가능성 있음;;;;
└ 난 좃목 별로인데~~~
└ 그냥 좀 좋게 보자 ㅜ 그렇게 살면 안 힘드냐
└ 이걸 좃목이라고 본 인간이 존나 꼬인거임 ㅋ
└ 리얼 그 가수에 그 팬 ㅋㅋㅋ
길진 않았지만 확실한 효과는 보인 정도였다. 욕먹을 부분이야 멘토와 연습생 사이로 만난 인연이란 게 어느 정도 커버는 쳐 주는 듯하다.
역시 인클루를 선택한 건 잘한 일이었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괜찮은 아군이었다. 뒤통수만 안 맞으면 되겠지.
좋은 흐름을 타고 있던 찰나, 지원겸의 어시스트를 받으며 상승세에 속도가 붙었다. 방금 전달받은 사항이 그 증거였다.
“오늘 여러분이 1위 후보라고 전달받았습니다.”
“…진짜요?”
“대박!”
어쩌면 이벤트 성공도 가능하지 않을까. 놀라워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앞날을 유추해 봤다. 약간의 뒷공작이 있기는 했지만, 서바이벌을 통해 만들어진 인기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초동 조건은 진작에 채워진 상태였지. 그렇다면 남은 건 공중파 1위뿐이었다.
다른 애들의 세팅을 구경하며 순서를 기다리길 한참이었다. 이유준이 나를 본 뒤 문 쪽을 향해 눈짓하고 있었다. 쟨 또 왜 저래?
“형, 뭐 한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대기실 밖, 조금은 한적한 곳까지 이동했다. 팔짱을 낀 이유준이 목소리를 죽여 가며 질문해 온다. 미소를 띤 얼굴은 평소와 같았으나, 묘하게 떠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 다 알아챘구나.
“인클루 선배님들.”
쟤의 입에서 지원겸네 그룹이 나왔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시선은 막을 수 없었다. 귀신같은 녀석…….
“형이 멘토님 만나고 싶다고 했잖아. 그때도 뭔가 이유는 있겠거니 싶었는데, 도대체 뭘 한 거야?”
“뭐래~ 우연이야, 우연. 만나고 싶어 했던 건 왜, 그 너도 공태서 멘토님 연락처 받아 갔잖아. 나도 비슷한 의미로 연락처 받고 싶었거든. 인사드릴 겸 먼저 찾아간 거지.”
“…진짜 그게 전부라고?”
적당히 변명을 덧붙였지만 미심쩍단 눈빛을 거두지 않는 이유준이었다. 하긴, 나였어도 이런 말에 넘어가진 않는다. 그럼 아예 직구를 던져 볼까.
“너 혹시 멘토님 라이브 때문에 그러는 거야?”
“어. 알고 있네? 실수라곤 하지만 우리가 언급됐잖아.”
“그건 우연이라니까? 그리고 내가 부탁한다고 해서 그런 걸 들어주시겠어?”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부탁했더니 들어줬다. 물론 위험한 제안도 곁들였지만 말이다.
“프로그램 통해서 데뷔했으니까 축하한다는 의미로 한번 얘기해 주신 거겠지. 시작도 실수였고.”
진실이 전혀 없는 멘트였다. 축하한다는 의미로 얘기해 준 것은 아니며, 시작도 실수가 아닌 꾸며 낸 거였다. 미안하다, 이유준. 이런 거 알려 줘서 뭐 하나 싶은 마음에 거짓말만 술술 늘어놓았다.
“흐~음, 그런가.”
여전히 믿는 뉘앙스는 아니었지만, 내가 우기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는 상태구나.
이젠 쟤를 거쳐서 연락할 필요도 없으니까. 다음부턴 좀 더 철저하게 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수롭지 않다는 양 이동하니 눈길은 거두지 않으면서도 얌전히 따라와 준다. 다 우리 좋자고 하는 일인데 그냥 좀 넘어가자.
* * *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A-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2,33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21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 진행 중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비공개)Bug(1)’
‘(호칭 비공개)Bug(2)’
[키워드룸 - full gauge 100%]
몽환: 100%
감성: 57%
음, 나쁘진 않아. 바쁜 스케줄이 이어지며 등한시했던 스탯 창이었다. 틈이 나는 대로 연습실에 방문했으나 이전과 같은 속도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저게 어디야.
키워드룸 역시 연습했더니 자동으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100% 채우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휴식기를 노리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긴장된 탓일까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모든 무대를 끝내고 전 출연진이 나와 있는 상태였다. 최종 1위 발표만을 앞둔 채 MC 옆에 서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애들은 바짝 굳어서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정원은 멀쩡한 것 같기도 한걸. 어? 아니었다. 움켜쥔 주먹이 잘게 떨리는 걸 목격했다.
“생방송 쇼플레이, 이번 8월 1주 차 쇼플레이 차트 1위 발표만을 앞두고 있는데요? 그럼 지금 바로 그 결과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3개의 후보군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올라온 게 믿기지 않은 수준이었다. 수를 쓴 것을 떠나서 노력했다는 건 진실이었으니까. 막무가내로 도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젠 1위 후보로 거론된 무렵이었다.
“쇼플레이 차트 1위의 주인공은……! 하이사인! 축하드립니다!”
펑! 꽃가루가 터져 나왔다. 숨을 들이쉬기 무섭게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진다. 해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불리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만 울고 있는 멤버들을 발견했다. 권혜성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윤명은 붉게 달아오른 눈가로 연신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다.
문채민은 주저앉다시피 몸을 숙였는데 이유준이 위로해준다. 강태오는 참고 있는 것 같았지만 울컥한 심경은 가리지 못한 듯하다.
소감을 말해 달라는 MC의 질문에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래, 나라도 제대로 말해야지. 백지장처럼 하얀 머릿속에서 해야 할 말들을 골라냈다.
“어, 우선…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 예측하지 못해서 너무 얼떨떨한데요. 메이터스 식구분들, 항상 옆에서 도와주시는 저희 오 팀장님, 박 매니저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 방송을 지켜보고 계실 한 실장님 그리고 서 대표님께도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무엇보다… 하이눈! 여러분 덕분에 저희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에 보답하여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멤버들이 너무 감정에 벅차오른 것 같아서, 우선 제가 대표로 얘기했는데. 말할래……? 아, 못 하겠다고 하네요.”
마이크를 다른 멤버들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내젓기 바쁘다. 이럴 때는 참 제 나이들 같단 말이야.
“부모님 그리고 가족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이눈, 너무 고마워요. 사랑해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가는 그런 하이사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C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나머지 출연진이 무대에서 내려갔다. 우리를 향해 축하한다는 말을 던져 주는데, 그에 고맙다며 인사하기 바빴다.
꽃가루가 쏟아지며 무대 위로는 이번 타이틀이 흘러나왔다. 얘들아, 앵콜 해야지. 오열하는 권혜성을 다독인 뒤 주저앉은 문채민을 일으켜 세웠다. 원래 리더가 이렇게 바쁜 자리던가?
“감사합니다! 하이눈, 열심히 하겠습니다!”
“끕… 하이눈… 흑, 고마워요!”
“고마워요. 진짜 사랑해요!”
갑작스러운 1위였던 탓에 제대로 된 공약조차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목이 멘 목소리의 이정원이 노래를 부르고, 고개를 들지 못한 강태오가 대형을 이동했다. 윤명은 참았던 울음이 터졌는지 줄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유준은 멀쩡한가? 음, 쟤 상태가 제일 별로인 것 같네……. 여태까지 참고 있기라도 했나 보다. 본인 파트가 나왔음에도 마이크를 쥔 채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준이었다.
“F, For you to shining…”
“중요한 건 보이지 않아 비밀을 알려 줄게 You look happy I will tell you 이제야 안 나의 깨달음”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선 이유준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알고 있던 파트를 함께 불러 줬다.
다시 원래의 동선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이유준이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축축해지는 걸 보아하니 눈물이라도 쏟고 있는 모양이었다.
본인 덩치는 생각도 안 하고, 아주 무거워 죽겠어.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지는 와중에 다른 멤버들이 주변을 지나가며 춤을 췄다.
그렇게 앵콜 무대의 막을 내리는데 한 번 본 적 있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흐르며 째깍이는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이벤트 발생]
‘데뷔는 성대하게’
데뷔가 확정된 당신,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 달성+초동 40만 장에 성공하세요.
실패 시: 잔고 ‘0’원 + 파산
[Clear!]
[이벤트 ‘데뷔는 성대하게’를 성공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신해신’ 님께는 업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1 - 이벤트 ‘데뷔는 성대하게’가 제거됩니다.]
[보상 2 - 업적 코인 1,000 코인 지급됩니다.]
[보상 3 - 플레이어 ‘신해신’ 님의 ‘Bug(1)’이 제거됩니다.]
- 호칭 비공개 Bug(1)이 호칭 공개로 전환됩니다.
- [Bug] 당위 손실: ‘당연한 것을 받지 못했다.’: 스폐셜 스킬 트리 잠금 → 사용 불가능 [제거]
…어, 뭐야? Bug가 왜 하나만 풀렸지? 여기는 저번과 다른 것 같았다. 게다가 당위 손실이라니, 호칭을 알게 된 것까지는 좋은데 말이야.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당연한 것을 받지 못했다는 게 도대체 뭘 뜻하는 걸까. 제대로 좀 설명해 봐.
[보상 4 - 일부 저당 금액의 페이백 시스템이 오픈됩니다. - (1) 저당 금액 페이백 오픈]
- 플레이어 ‘신해신’ 님의 A 통장으로 1억이 반환되었습니다.
- A 통장 입금 완료. 페이백 시스템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저당 금액]
(1) 20억 4,167만 2,486원
(2) 4,235만 1,074원
그래, 이것도 나와야지. 묶여 있던 저당금 중 1억이 돌아왔다. 애초에 이걸 노리고 이벤트를 한 것도 있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진행은 된다고 할 수 있다. 저번엔 마지막으로 보여 준 보상이었지? 그럼 이게 끝인가?
그때, 새로운 보상이 떠올랐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보상 5 – 아이템 ‘운명 디펜서’가 주어집니다.]
[(구매 불가)운명 디펜서 – 일회성 아이템]
버프: 단 한 번, 운명을 바꿔 드립니다. (지시어: 대상자 ‘이름’ + 타깃 ‘이름’)
운명 디펜서……? 확실히 박스 상점에선 본 적 없는 아이템이었다. 구매 불가라고 적힌 걸 보면 큰 효과를 바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운명을 바꾸다니, 조금은 살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간 유용하게 사용할 것 같았다.
대충 마무리된 건가 싶었는데 또 다른 창이 나타났다. 아직도 뭐가 더 있어? 분명 저건 본 적 있는 낯익은 보상이었다.
[보상 6 - !HIT! 어드밴티지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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