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53화 (153/328)

153화

그거다. 오프너로 열었던 미션의 마지막 보상. 하지만 실패하면서 얻지 못한 일화가 있었다. 내용도 설명해 주지 않아서 별게 아니었던 것처럼 넘겼다.

상태 창 옆으로 작은 버튼과 함께 원판의 모형이 나타났다. 마치 스폐셜 스킬을 뽑을 때와 같은 룰렛 형태였다.

- [×1.5] 당첨

- (1) 20억 4,167만 2,486원에 [×1.5]가 적용됩니다.

[보상 6 - !HIT! 어드밴티지 찬스]

- [저당 금액]

(1) 30억 6,250만 8,729원

(2) 4,235만 1,074원

“……!”

…뭐야, 지금 이 상황. 묶여 있던 저당금이 불어났다? 그것도 무려 10억이었다. 저건 살면서 절대 볼 수 없을 숫자이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놀라니까 사고가 멈춰버린다.

“진짜야? 갑자기 왜 이래?”

…영 못 미더운데. 그동안 뺏으면 뺏었지, 더 주진 않은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버튼 몇 번만으로 손 떨리는 금액이 만들어졌다.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서 넋이 나간 상태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했다.

파산 따위를 내걸며 협박하길래 못된 놈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그게 아니었나? 물론 아직 온전한 내 돈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의 희망처럼 느껴지는 보상이었다.

내가 30억을 벌 일이 세상 어디에 있겠어.

“시스템, 너… 이러고 또 뒤통수 치려는 건 아니지?”

당한 게 많아서 그랬을까,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저놈이 멀쩡하던 나를 의심병 말기 환자로 만들었다. 눈길은 거두지 않은 상태에서 이어지는 장면들을 읽어 내렸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A

보컬: A

댄스: A-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저세상 귀염둥이(D)’ - Off

‘가위바위보의 신(B)’ - On

‘폼生폼死(B)’ - On

[현재 코인]

3,335 코인

[블랙 쿠폰]

0매

[저당 금액]

(1) 30억 6,250만 8,729원

(2) 4,235만 1,074원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 - 제거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공개)당위 손실’ - 제거

‘(호칭 비공개)Bug(2)’

[플레이어님의 진전을 축하드리며, 보상은 이상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드밴티지 어쩌고가 진짜라고?”

이벤트가 클리어됐을 때의 멘트를 보자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야금야금 빼앗기기만 했는데 한 번에 원금액 이상의 큰 보수가 생겼다. 고생했다고 동정받은 건가. 그래, 이런 건 흔쾌히 받아 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괴롭힐 거면 돈 내고 괴롭혀. 마지막 멘트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나저나 슬슬 원래의 시간이 돌아와야 하는데. 변하지 않은 주변 광경에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알림!]

- 부속 이벤트가 숨어 있었습니다. 시스템 돋보기(중급 영역 제한)를 통해 Bug(2)의 해결 방법을 찾으세요.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시스템 돋보기라면 쓸 일이 없던 그걸 말하는 듯했다. 풀리지 않은 Bug(2)는 거기와 연관이 되어 있던 모양이다.

진짜 더럽게 복잡하네. 그리고 또 부속 이벤트는 뭔데! 서둘러 아이템 창을 확인해 봤다. 얌전히 끼고 있는 돋보기잖아. 근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ㄱ…….

[시스템 돋보기(중급 영역 제한) - 영구 아이템] → 장착 중 (현재 상태: Off)

이런, 중급부턴 켜는 버튼이 따로 있었냐. 알림을 줄 정성이 있으면 그냥 사전에 얘기해.

* * *

앵콜곡을 하고 대기실로 돌아가는데, 퇴근 준비 중인 가수들이 눈에 띄었다. 순수하게 축하해 주는 사람들도 보이고 미묘한 견제의 기운을 풍기는 그룹도 있었다. 음, 역시 1위를 하고 난 뒤는 다르다 이건가? 얽히지 말자며 서둘러 발을 옮겼다.

어, 쟤네는? 한적한 곳으로 들어서던 찰나, 복도 한가운데에서 익숙한 무리와 마주쳤다. 스턴즈 놈들이다.

조용히 지나갈까 싶었는데 어째 쏟아지는 눈빛이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당한 것도 있는데 소소하게 갚아 줘 볼까. 예전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아, 예.”

마침 인원도 딱 좋네. 제정신 박힌 리더와 다른 한 명을 제외하고 싸가지 바가지 일부만 남아 있는 광경이었다. 걔네한텐 억하심정은 없으니까. 이건 하늘이 내려 주신 타이밍이었다. Let’s 뒤끝 타임.

“퇴근하는 길이신가 봐요. 고생하셨습니다.”

“예, 뭐. 나머지 멤버들 기다리는 중이라서요. 거긴 좀 늦었네요?”

한 명만 입을 열어 대답해 주는데 그것도 썩 좋은 태도는 아니었다. 저기, 짝다리는 좀 풀어주면 안 되겠니? 조승화는 조용히 눈만 치켜뜬 채 불량한 태도로 여길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튼 얘네 회사도 썩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시한폭탄들을 관리자 하나 없이 방치해놨으니 말이다.

“네, 앵콜 완곡 하고 내려왔더니 늦어졌습니다.”

너희는 먼저 내려가서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말의 뜻을 알았는지 상대방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러게, 누가 먼저 시비 걸랬나. 되로 주면 말로 받는다고 했다. 다 업보다, 이 자식들아.

그때, 뒤에 서 있던 조승화가 입을 열었다. 미묘하게 빈정거리는 얼굴이 무슨 말을 할지 예측된다. 이젠 패턴을 알기 때문에 놀랄 것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참 투명한 인간이었다.

아직 물병 빌런이 되기 전이라 그런 건가? 물론 그땐 나도 피할 예정이었다. 이 나이 먹고 물리적인 싸움에는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허, 아아~ 인클루 선배님들께서도 곡 추천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선배님들이 프로그램 멘토셨으니까 든든하시겠네요~”

음, 우리가 서바이벌빨이란 소리군. 뭐, 거기서 얻은 인지도는 무시할 순 없었다. 정답이란 뜻이다.

“예, 감사드리죠. 만나 뵌 지도 오래됐는데 신경 써 주셔서요.”

지원겸하곤 얼마 전에 만났지만 그건 굳이 밝힐 필요가 없고.

“저도 스턴즈 선배님들 노래 잘 들었습니다. 디레스트 선배님들 라디오에 출연했었는데 스턴즈 선배님들 노래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번 활동도 응원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너희만 하겠냐? 이 뜻이었다. 선배 그룹빨로 홍보하는 건 그쪽이 원조잖아.

스턴즈의 멤버 일부는 내 멘트에 놀란 것 같았다. 저번에 얌전히 당해 주니까 바보로 알았나 보다. 싸우기 싫어서 사린 거지, 못 싸운다곤 안 했는데.

나름 스태프 일을 하며 방송계 밑바닥을 굴렀던 사람이었다. 인성에 하자 난 놈들은 많이 봤다는 의미였다.

“아, 저희가 선배님들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때도 꼭 ‘CD’ 들고 찾아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러니까, 다음엔 예의 차려. 사람이 기껏 전달해주면 턱짓하지 말고. 마무리로 고개까지 꾸벅 숙였다. 조승화의 옆을 스치는 순간엔 눈인사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등 뒤가 조용한 걸 느꼈다. ……맞아. 애들이 있었지. 스턴즈를 보고 잠깐 스팀이 돌았던 모양이다. 얘네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부딪쳐 버렸다.

이런, 난처한데. 애들한텐 참아 달라고 해 놓고 혼자 날뛴 꼴이 되었다. 사과해야겠다 싶어서 몸을 트니 놀란 표정의 멤버들이 보인다.

“해신이 형, 짱!”

“…어?”

권혜성이 달려와선 내 어깨에 매달렸다. 저번에 참아 줘서 고맙단 뜻으로 머리를 몇 번 헤집었다.

“으악! 형, 내 머리~! 그나저나 체증이 다 내려가네. 나 형 눈빛 그런 거 처음 봤어. 카리스마 대~박.”

조용히 경청하다가 애들을 둘러보자 이정원이 다가왔다. 눈치는 빠르지만 노빠꾸라며 뭐라고 했던 게 민망하다.

“그때, 갚아 준다고 했던 게 이거야?”

“…음, 그 정돈 아니고. 그냥 인사한 거야.”

“참 나, 나보다 더하네.”

“저번엔 미안했어.”

“아니야. 현실적으로 봤을 땐 네가 맞았지, 거기 보는 눈이 좀 많았던 게 아니잖아. 오늘은 중간부턴 눈 돌아간 것 같았지만 말이야.”

대기실로 향하는 내내 신기하단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이유준 쟤가 최고였다. 부담스러워.

“그만 좀 봐.”

“형, 다시 보인다?”

“그럴 것도 없어…….”

“어? 이제 내가 아는 형이다.”

다음부턴 얘네 없는 곳에서 해야지.

“아, 맞다. 너희 먼저 들어가 있어. 나 잠깐 할 일이 있어서.”

“그래.”

대기실을 앞에 두고 멤버들을 먼저 들여보냈다. 문이 닫히고 난 뒤에야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냈다.

그 사람한테도 고맙다는 말은 해 두자. 무엇보다 아까의 날카로운 태도는 이 사람을 흉내 낸 것이기도 했다. 당할 때면 할 말이 없단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장수말벌]

지원겸이다. 스턴즈를 상대할 때의 말투는 유어돌에서의 지원겸을 참고한 거였다. 트레이닝받을 때 힘들었지. 말 몇 마디로 사람 잡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쓸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역시 뭐든 기억해 두기 마련이다.

받는 이: [장수말벌]

멘토님, 저희 1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됐겠지? 길게 쓸 것도 없어 보였다. 언급해 줘서 고맙단 건 메신저처럼 증거가 남는 곳에선 하지 않는 게 좋다. 슬슬 들어가 볼까.

반대쪽 주머니에 넣어 둔 녹음기도 꺼내 들었다. 아까 대화는 잘 저장됐겠지. 이걸 생각해서 평소의 어조를 유지했었다.

멘탈이 약한 거랑 사회생활은 별개의 구간이었다. 살아남으려면 약아야 하는 법. 건든 것도 저기가 먼저 건드렸어. 난 정당방위다.

지이잉-

“이 사람, 의외로 한가한가 보네.”

비활동기라지만 답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었다.

지이잉- 지이잉-

“…전화였구나.”

마치 내가 무시할 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진동이 끈질기게 느껴지는데 이러면 못 본 척할 수도 없었다.

“네네, 받았습니다.”

- 여어~ 신해신. 목소리가 떨떠름하다?

“아뇨, 멘토님. 하하… 하…. 그럴 리가요.”

- 허, 연기 진짜 못하네. 넌 뭐 찍을 생각 하지 마라.

그래서 뭐 보태 준 거 있냐. 별 트집을 다 잡는다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 아니, 뭔가 문자로 보내면 씹힐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내가 케이앱에서까지 언급해 줬는데, 그럴 리는 없었겠지?

귀신같은 인간. 한 번 도와준 것 가지고 엄청 생색낸다.

“…그럴 리가요.”

- 어째 텀이 긴 것 같은데? 뭐, 이건 둘째 치고 그래, 좋아! 1위 하니까 어때? 스턴즈 놈들은 좀 봤고? 아~ 지금쯤 MXP 이 자식들 뭐 씹은 표정일 텐데 그걸 못 봐서 아쉽네. 김환준 그 새끼가 기껏 잔대가리 쓴 거 내가 뒤집어엎은 기분이야. 이거 엄청 뿌듯해. (…원겸이 형 왜 저래?) (쟤 이상한 거 하루 이틀이냐. 끼지 마. 피곤해진다.)

지금 멤버들이랑 같이 있는데 저 난리를 피우고 있는 거야? 입단속은 시켰겠지……. 저기도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자세히 말씀드리긴 상황이 좀 그런데요. 나중에 알려 드려도 될까요?”

- 흐~음, 너 엄청 꼼꼼하구나? 하긴 이 정돈 돼야 한편 먹을 만하지. 응원한다고 구라 치고 방송국에 가 볼 걸 그랬어. 아직 그건 오버인가?

댁이 지나치게 무방비한 거야. 여태까지 별 탈 없었던 게 천운이었다. 아, 아니다. MXP랑 개같이 싸우면서 버텼겠군. 방어 스탯은 낮은데 공격 스탯은 무한인 인간 같았다. 이런 딜러의 현신 같으니.

“멘토님, 혹시 안 바쁘세요?”

- 나? 안 바빠. (…저 형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 이틀 밤은 우리만 새웠나 봐.)

진짜 가관이네. 사람들 사이로 지원겸 혼자 낄낄거리기 바쁘다. 이틀을 안 자고서 저런 텐션이 가능하다고? 내가 괴물에게 SOS 신청을 한 모양이다.

“그, 바빠 보이시는데… 저도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쪽은 한가해도 여긴 바빠. 그러니까 그만 끊고 싶었다.

- 너 되게 거짓말 잘하는 듯 못한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아, 형! 누구랑 통화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적당히 해!) 아~ 알았어. 알았어. 하여간에 잔소리들은……. 그래, 다음에 또 연락하자. 1위 축하한다.

“네. 감사합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

- 안 하면 내가 먼저 걸 거야. 그러니까 눈치껏 전화해. 안녕.

“ㄴ…….”

뚜- 뚜- 뚜-

[장수말벌]

통화 종료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

까맣게 점멸된 화면 위로 내 얼굴이 비쳤다. 다 죽은 눈으로 입을 벌린 멍청한 표정이었다. 지원겸, 원래 이렇게 경박했던가. 내가 편해지기라도 했는지 날이 갈수록 가벼워진다.

*연락처 편집*

[장수말벌]

[지 말만 하는 인간]

[저장하시겠습니까?]

Yes / No

[지 말만 하는 인간]

[저장이 완료되었습니다.]

“같은 지씨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원겸, 지 말만 하는 인간. 어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작명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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