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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54화 (154/328)

154화

숙소에 돌아온 이후였다. 울고불고 난리 친 탓에 퉁퉁 불은 권혜성을 쳐다봤다. 얘는 안 그런 척하면서 눈물이 많단 말이야.

“부끄러우니까 그만 좀 봐~!”

“그만 보기엔 너무 재밌는 광경이어서.”

“지금 상황에선 형이 이상한 거야! 어떻게 혼자 멀쩡할 수가 있어.”

“나라도 정신 차리고 있어야 소감을 발표하지.”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권혜성의 대꾸에 주변을 둘러봤다. 옆에는 윤명과 문채민이 함께 앉아 있었다. 솔직히 얘네도 썩 멀쩡한 꼴들은 아니었다.

“형들은 치사하게 먼저 도망갔네.”

“그러게. 정원이 형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체면을 차릴 줄 아는 녀석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자기 방으로 피신해 있던 상태였다. 이정원과 강태오 그리고 이유준이다. 안 그럴 줄 알았던 애들이 그러니까 더 참신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애 셋 달래기 담당은 내가 맡게 됐지. 대충 잠잠해진 것 같은데 이만 일어날까.

“씻고 얼굴 안 붓게 관리하고, 일찍들 자. 오늘 고생했다.”

“…응, 형, 오늘 고마웠어.”

방에는 이정원이 들어가 있어서 노선을 돌려 보기로 했다. 비어 있는 화장실을 확인하곤 짐을 챙겨서 들어갔다. 내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시스템 돋보기(중급 영역 제한) - 영구 아이템] → 장착 중 (현재 상태: Off)

분명 저걸 켜 보라고 했지. Bug(2)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알려 줬다. 부속 이벤트라니, 하나가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시작임을 말해 온다. 이렇게 된 이상 해 봐야지, 저당금까지 커진 마당에 뒤로 물러설 순 없었다.

“시스템 돋보기, 켜 줘.”

[시스템 돋보기(중급 영역 제한) - 영구 아이템] → 장착 중 (현재 상태: On)

[이벤트 발생]

‘데뷔는 성대하게’ - 부속 이벤트

첫 번째 활동 종료까지 대중 호감도 60% 이상을 달성하세요.

실패 시: 잔고 ‘0’원 + 파산

[호감도] (활동 기준 100%에서 시작)

현재: 87%

…대중 호감도? 이건 또 뭐야? 방금 하나 간신히 해치우고 온 길이었다. 그런데 한숨 돌리려고 하자마자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활동 기준 100%라는 걸 보면 데뷔했을 당시부터 카운트가 되고 있었나 보다. 회사가 괜찮은 덕이었을까 여태까진 적당히 버틴 모양이다.

쉽게 생각하자면 그냥 사고 치지 말란 뜻 같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하여간에 저걸 해내면 묶여 있는 Bug(2)를 해결해 줄 것 같았다. 거기에 이벤트가 달려 있었으니 일부 저당금도 돌려받을 수 있을 듯하다.

까라면 까야지. 머리를 긁적이다가 샤워 부스의 물을 틀었다. 휴식기에 들어가면 다음 앨범부터 파악해 봐야겠다.

* * *

이건 또 뭐야. 기다리고 있을 멤버를 떠올리며 서둘러 씻고 나온 상태였다.

“…형, 나 씻는다.”

“어어, 어? 그래. 씻어.”

스쳐 지나가는 인물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나. 뺨을 비틀어 꼬집었는데 아픈 걸 보니 진짜다. 닫힌 문을 확인하곤 등을 돌려 들어간 사람을 떠올렸다.

……분명 그거였지? 시스템 미친놈아! 당장 나와!

“윤명, 얘도…….”

[확률 성장 트리]

미개화: ???? ???(??)

이게 있었어? 너무 오랜만에 보는 확률 성장 트리였다. 유어돌에서 권혜성과 이유준이 개화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둘을 제외하고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문제이기도 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건데.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서 있으니 소파에 앉아 있던 문채민이 여길 돌아본다.

“형, 뭐 해? 무슨 문제 있어?”

“어? 아니야. 나 졸려서 먼저 들어가 볼게.”

서둘러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정원은 잠들었는지 불이 꺼진 곳이었다. 방문을 닫고 난 뒤에야 현실감이 밀려든다.

“쟤도 있었어? 그럼 왜 예전엔 안 보였던 건데? 혹시…….”

[시스템 돋보기(중급 영역 제한) - 영구 아이템] → 장착 중 (현재 상태: On)

“이거였구나.”

아이템 창 위로 켜져 있던 시스템 돋보기를 확인했다. 업그레이드되기 전의 것을 끼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원인을 찾자면 저것뿐이잖아. 윤명의 확률 성장 트리는 그 둘의 것과 다르단 뜻인가? 좀처럼 알 수 없는 사실들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쟤는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건데. 이유준과 권혜성은 각자의 사정이 해결됨과 동시에 확률 성장 트리가 개화했다. 그렇단 건 윤명에게도 무언의 제한이 걸려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다.

같은 팀이 된 이상 방치하기도 애매한 문제였다. 아무래도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윤명은 뭘 어떻게 해 줘야 할까.

* * *

“난 정시니까 괜찮을 거야…….”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위안 삼기를 한참이었다. 하지만 어떡해. 애들 콘텐츠가 쏟아진다고 하는데! 하이사인이 세상에 나온 이후론 신나는 매일이었다. 같은 해신이 픽이던 은비와는 끝내주는 덕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 볼 방송은 기다리고 있던 댄싱 마피아였다. 애들끼리 지지고 볶는 장면을 볼 줄이야. 설레는 마음으로 와이튜브에 들어갔다.

[하이사인 여러분, 진짜 마피아 아니고요. 댄싱 마피아입니다.]

- 저기요 왜 저희 애들만 썸네일이 이렇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ㅋ신해신 ㅋㅋㅋㄱㅋㄱㅋㅋ 존나 살벌해 ㅋㅋㅋㅋㅋ

- 아 ㅅㅂ 깜짝이야! 댄마 정주행하다가 썸네일 보고 놀랐잖아!!

- 뒤에 혜성이 존나 간사의 기질이 보이는데 ㅋㄱㅋㄱㅋㄱㅋㅋㅋ

“…제목이 왜 저래?”

썸네일 위로 심각한 표정의 해신이가 나타났다. 그 뒤에는 두 손을 모은 채 웃고 있는 혜성이도 있었다. 어딘지 묘한 분위기가 맴도는데 붉게 강조된 글씨체가 살벌한 기운을 흘린다. 이거 하하호호 하는 프로그램 아니었나?

정원: 내가 사기꾼을 멤버로 두고 있었네. 내가 무고죄로 다 넣어 버릴 거야. (살벌한 눈빛)

유준: …진짜 다들 양심 없다. (피해자)

태오: 무슨 천사들이 저런 말을 해. (질색하는 얼굴)

혜성: 우와! 타락 천사다! 타락 천사!

채민: 형들은 자신만만해 보이는데, 과연 어떨까요? (다큐 톤)

명: 채민이 넌 플래그 좀 세우지 마…….

[음모와 음해가 판을 치는 하이사인의 댄싱 마피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얘들아 이거 예능이야!!!

- 이가든 눈빛 봨ㅋㅋㅋㅋㅋㅋ 누가 봐도 존나 진심이잖아 ㅋㅋㅋㅋㅋ

- 댄싱마피아에서 무고죄 드립치는 애 첨봤음;; 정원아;; ㅋㅋㅋㅋㅋㄱㅋㅋㅋ

- 내 귀에만 다 잡아(쳐)넣을 수 있냐고 들렸냐 ㅋㅋㅋㅋㄱㅋㄱㅋ

“오…….”

시작부터 개판인걸. 예고편부터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해신: 저희 하이사인이 댄싱 마피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멤버들: 와아아아!

[기다렸어요. 하이사인!]

드넓은 스튜디오 안, 7명의 장신이 나타났다. 애들이다! 리더인 해신이가 진행하려고 했는지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양옆에는 정원이와 혜성이도 서 있었는데 좌우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극단적인 광경이었다.

정원: 와 정말, 나와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성: 맞아요! 정말 기다렸어요! 댄싱 마피아! 뽑아만 주십시오! 시민? 모범 시민이 되어 바로 마피아를 검거하겠습니다! 마피아? 바로 시민을 죽이겠습니다!

해신: …혜성이가 원래 의욕이 넘쳐 나서요. 이해 좀 부탁드릴게요.

[오늘도 식은땀을 흘리는 리더 해신]

[멤버들이 좀처럼 도와주지 않는다.]

채민: 저 형이 마피아 하면 바로 들킬 것 같은데?

[막내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고]

명: 저런 애들이 제일 먼저 죽던데.

해신: 얘들아, 이거 게임이거든. 제발 살살 가자.

[과연 어떨까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마피아는 누가 될까요?]

주저앉아서 허리를 숙인 상태로 긴 막대가 나타났다. 끝에는 손가락 모형이 달려 있었는데 모두의 등 뒤에서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멤버들의 얼굴이 스치는데 각자 반응이 달라서 어이없었다. 해신아, 너…….

해신: (제발제발제발제발)

[러브 앤 피스단의 첫째다운 평화주의자]

혜성: (저 뽑아 주세요! 저 뽑아 주세요!)

[그런 형 옆에서 스릴을 즐기는 혜성]

- 난 저 둘이 유어돌 초반에 친해졌다는 게 제일 웃김 ㅋㅋㅋㅋㅋㅋㅋ

- 비교 체험 극과 극

- 아니 ㅅㅂ 저러면서 썸네일은 왜 그 모양이냐고 ㅋㅋㅋㅋㅋㅋ

- 누가 봐도 최고로 즐기고 있는 사람인데요

온몸으로 마피아를 거부하는 해신이와 온몸으로 마피아이길 원하는 혜성이가 함께 잡혀 나왔다. 아무래도 제작진은 그런 둘을 재밌게 본 모양이다.

해신: (!)

혜성: (아자!)

[오늘의 마피아]

해신 / 혜성

정원: 뭐야. 선택 완료된 거야?

유준: 이거 흥미진진한걸.

손가락의 선택을 받은 둘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멤버들을 두고 눈빛을 주고받는다.

해신: (아아…….)

혜성: (형이랑 같이 한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 BGM 존나 찰떡

- 아 스바 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

- 혜성이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 개웃기넼ㅋㅋㅋㅋㅋ

혜성이에겐 꼬리가 달린 것 같은 CG가 나왔다. 그런 뒤로 체념한 얼굴의 해신이가 비쳤다. 모든 선택이 완료됨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멤버들이었다. 좌우를 돌아보는 유준이와 정원이의 시선이 매섭게 느껴진다.

정원: 누굴까. (가늘게 뜬 눈)

유준: 그러게? 음, 몇 명이 좀 수상한 것 같은데?

[눈치 100단+눈치 100단. 도합 200단.]

혜성: 아자!

명: 혜성이 쟤 벌써 수상하다.

해신: (으악!)

혜성이의 텐션이 높아짐에 따라 유준이의 레이더가 저쪽을 향했다. 그에 헤드셋을 들고 있던 해신이만 표정이 굳는다. 쟤, 저래서 안 들킬 수 있을까? 응, 무리다.

명: 음, 난 태오 형도 좀 이상한데?

태오: 뭐, 갑자기 난 왜?

명: 그냥 너무 조용해서 말 좀 하라고 짚어 본 거야.

[형의 분량을 생각해 주는 착한 동생 명]

태오: (할 말을 잃은 태오)

명: (그와 상관없다는 듯이 여유로운 명)

[오늘도 사이가 좋은 하이사인 멤버들]

명이의 말장난에 포커스가 집중되어서 들키진 않은 것 같았다. 모두가 헤드셋을 끼고 난 뒤에야 대형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온다.

[명이의 안무로 시작되는 Night(한밤의 동화)]

혜성: 으하하! 뭐야~ 누구야~ 마피아 얼른 나와~!

채민: 혜성이 형, 오늘 유달리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뭔가 수상해?

명: 아니야, 쟤 원래 말 많아.

혜성: …윤명, 너 진짜 너무하다?

[혜성 전담 스나이퍼 명(적중률: 99%)]

정원: 쓰읍, 다들 잘하는걸? (살벌)

유준: 아직 초반이잖아. (느긋한 웃음)

[정원과 유준의 레이더는 24시간 풀 가동 중]

[※진짜 마피아 아니고 댄싱 마피아입니다.※]

- ;; 역시 기존세즈

- 하이사인에서 으른과 기존세를 맡았습니다.

음악이 흐름과 동시에 멤버들이 웃고 떠드는 게 포착됐다. 지금 상황이 재밌었는지 서로를 감시하면서도 낄낄거리기 바쁘다. 가장 활발하게 말하는 건 마피아이기도 한 혜성이였다. 평소 성격 때문에 타깃 삼아지진 않을 것 같다.

명: 태오 형, 너무 조용하다?

태오: …윤명, 넌 아까부터 되게 집요하네. 끈질겨.

명: (형아 분량 생각해 주는 착한 동생2)

태오: (그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 형)

- 앜ㅋㅋㅋㄱㄲㅋㄱㅋ난 저 둘이 붙은 게 너무 좋아

- 뭐든 뚫은 창과 뭐든 뚫리는 방패의 싸움

- 저기요 뒤가 이상하잖아요

- 강태오 뭐든 막는 게 아니고 다 뚫리는 방패야?? ㅋㅋㅋㅋ

이를 악물고 춤을 추는 태오의 뒤로 찾고 있던 인물이 등장했다. 해신아, 너… 아까부터 혼자만 말이 없었다. 멤버들 사이로 이동하면서 숙인 고개가 떨리는 걸 포착했다.

왜 그런 거지? 들리는 BGM은 잘 알고 있는 타이틀곡이다. 마피아들이 듣고 있는 노래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었다.

[마피아들은 무슨 노래를 듣고 있을까요?]

“…푸흡!”

해신이가 단독 컷으로 비치며 배경 음악이 전환됐다. 별생각 없이 지켜보고 있던 나는 마시던 물을 뿜어 냈다.

“쿨럭, 쿨럭, 켁, 저게 뭐야!”

[마피아가 듣고 있는 노래]

캔디스 – 체리LOVE

~ 한눈에 쿵! 체릿빛 두 뺨에! 널 보는 난! 심장이 콩닥콩닥! ~

해신: (진도 5.0의 동공 지진)

혜성: (앙다문 이) (웃음 꾹) (나는… 프로다!)

- 미친 놈들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ㅋㅋ

- 신해신 존나 티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고통받는 리더롤ㅋㅋㄱㄲㅋ

- 캔디스가 여길 왜 나와 ㅜㅠㅜㅠㅜㅠㅠㅠㅠ 시발 나 웃다가 코먹음ㅋㅋㄱㅋ

- 권혜성ㅋㄱㅋㄱㅋㄱㅋㅋ 안무는 나이트인데 왜 표정은 깜찍발랄하냐고 동기화 됐어ㅋㅋㅋㅋ노래 따라가는 얼굴봨 미친 프로야 인정 할게ㅋㅋㅋㅋㄲ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

전혀 다른 템포의 말랑말랑한 가사가 이어졌다. 통통 튀는 비트와 함께 귀여운 걸 그룹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너무하지 않냐. 공통점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상큼한 댄스곡이다.

사방 천지로 흔들리는 해신이의 동공이 클로즈업된다. 해신아, 너 눈 빠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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