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만 바라봤다.
“예상 데이터보다 빨리 반응이 와서 신기했습니다. 오차 범위는 있겠지만, 그래도 1, 2주는 더 걸릴 줄 알았거든요.”
“네?”
“1위 달성 말입니다.”
“아, 네…….”
한지헌의 호출을 받고 온 회사였다. 나 혼자만 불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이게 무슨 스케줄 관련 건이야……. 제대로 낚인 상황이었다.
“개인 프라이버시 정도는 지켜 줄 의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대충 확인은 해 둬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예에… 근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서도경이 나를 바라봤다. 뱀 앞의 쥐가 이런 기분일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시선을 피하게 된다.
퇴로라도 확보해 놓고 싶었는데 문 앞에는 한지헌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거 원 진퇴양난이다.
“제이온 레코드, 최중학.”
“……?”
“이쪽은 아닌 것 같고, 그럼 인클루?”
“네?”
그 이름이 왜 그쪽 입에서 나와. 이 타이밍에서 나오면 안 될 그룹명이 불렸다. 이러다가 금방 들키는 거 아니야?
“흐음, 여기도 좀 애매하네요. 그렇다면 지원겸이나 공태서 쪽이겠군요.”
…바로 들켰다! 저도 모르게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그제야 아차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여간에 사람 다루는 데는 일가견 있는 듯하다.
“역시 거기였나 보네요.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봐도 되는 거겠죠.”
뭐라고 답해 줘야 하는 걸까. 말을 고르기도 전에 먼저 몸을 일으킨 서도경이 서류철을 챙겨 들었다.
“신해신 씨 답변은 잘 들었습니다. 겁주려고 한 건 아닌데 대충 확인은 해 둬야 할 것 같아서요. 수상한 건 아닌 것 같으니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예? 어, 하하…….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요.”
“위험한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할게요.”
본인 말만 하면 전부인가. 내 주변엔 죄다 저런 인간밖에 없는 듯하다. 아니야, 사회생활 하자.
그나저나 이거 다 들킨 거 같지? 지원겸과 내 커넥션 말이다. 데뷔 이후 통 만날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우리 대표, 보통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넋을 놓고 있는 날 두고 서도경이 문으로 다가갔다. 갈 거면 얼른 가 버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친 기분이었다.
“조언 하나 드리겠습니다. 최중학 씨는 제이온 레코드 대표입니다. 소속사는 아는 것 같은데 이쪽은 모르셨나 보네요. 외워 두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 말을 끝으로 서도경과 한지헌이 미팅 룸을 나섰다. 완전히 사라진 둘을 보고 나서야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저 인간, 날 떠본 거였구나.”
이건 엔터와 관련이 있는 건지 아니면 기타 소수에 엮인 문제인지 확인한 거였다. 둘 다 반응이 애매모호하니 마지막으로 우릴 언급해 준 당사자, 지원겸을 꺼낸 것이다. 그래도 이건 방임해 주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었다.
“일 잘하는 건 둘째 치고, 기 빨리는 화법이야.”
그 둘과 교대하듯이 오병은이 들어왔다. 그것도 이내 너덜너덜한 나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신 씨, 다음 스케줄 갑시ㄷ… 음?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저희도 가요.”
상사가 장난 아니라서요. 모르는 게 약인 부분이었다.
* * *
“…형,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팬 사인회를 가기 위한 밴 안에서 몸을 돌린 윤명이 내게 질문한다.
“어? 아니. 그건 왜?”
“아까부터 묘하게 날 자주 보는 것 같길래…….”
과연 야생동물 같은 촉을 지닌 윤명이었다. 원래도 소소한 기척을 잘 느끼긴 했는데, 근래 들어선 더 날카로운 느낌이다. 내 착각인가.
서도경도 상대하고 왔는데, 얘 정도야. 적당히 웃어넘기자며 장단을 맞춰 줬다.
“별것 아니야. 그냥 활동 끝나면 그 머리 색도 안녕이겠다 싶어서.”
“아…….”
“어? 윤명! 나 이거 먹어도 돼?”
“아니, 안 돼. 내놔.”
“에이~ 과자 하나로 치사하다!”
그것도 잠시, 옆자리에 앉아 있던 권혜성과 시비가 붙으며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덩치도 산만 한 녀석들이 손바닥만 한 과자 한 봉지로 잘들 논다 싶었다.
사실 나는 아까 전부터 윤명의 상태 창을 보는 중이었다. 당사자 바로 위에 뜨는 시스템이라서 본인을 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윤명]
나이: 19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A+
끼: C+
맞아, 얘도 천재였지. 유어돌 때부터 괴물 같다고 생각한 능력치였다. 역시 1위는 거저 가진 게 아니라 이건가. 게다가 운수 대통이기까지 하고. 아차,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확률 성장 트리]
미개화: ???? ???(??)
저것도 여전하네. 확률 성장 트리 말이다. 이유준이나 권혜성은 개인사라도 알 수 있었는데, 이쪽은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없었다.
“으악, 쏟아졌다!”
“내 과자…….”
“아, 형들! 과자 가루!”
으음, 천재 윤명……? 그래,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내 초코팡… 한 입도 못 먹었는데. 권혜성 너, 1,500원 내놔.”
힘든 일은 전혀 없어 보이는걸. 쏟아진 과자로 밴 안이 온통 난리였다. 으, 단내. 코를 막기가 무섭게 본인 몫을 빼앗긴 윤명이 입술을 내밀었다. 저거 순 덩치만 컸지, 완전 애다.
“저 쪼그만 게 1,500원이나 해? 너 부자야?”
“응, 부자 맞으니까 얼른 1,500원 내놔.”
“형! 누르지 좀 마. 다 으스러져!”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하여간에 원인을 찾는 것부터 참 난제인 인물이었다.
* * *
“…….”
“왜 그래? 너, 설마 과자 때문에 삐진 건 아니지?”
밴에서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창밖으로 대기하고 있는 팬들을 지켜보는데 윤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흘낏 살펴보니 짐을 한곳에 몰아 놓곤 내릴 준비를 한다.
“…아니야.”
“에이, 딱 봐도 삐졌구만. 미안하다니까~ 그래! 큰마음 먹었다! 내가 이따가 똑같은 것 6개 사 줄게! 나 9천 원 쓴다?”
“삐진 건 아니지만 사 준다고 하면…….”
“우우~ 짠돌이.”
“얘들아, 이제 슬슬 준비하자.”
열린 문 너머로 팬들의 외침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아악! 채민아!”
“해신아! 해신아! 안녕!”
“유준아! 여기 좀 봐 줘!”
이것도 몇 번 해 봤다고 나름 적응된 것 같았다. 오병은과 가드들의 안내하에 고개를 숙이며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조금 뒤처진 윤명이 눈에 띈다. 음, 정신없어 보일 때 알아볼까? 속도를 늦춰 가며 녀석의 옆으로 다가갔다.
“혹시, 명이 너 무슨 일 있어?”
“으응… 별건 아니고.”
“야, 윤명! 진짜 과자 때문인 건 아니지? 미안하다니까!”
“…그것 때문인 거 아니야. 권혜성, 같이 가.”
권혜성의 부름에 윤명이 멀어졌다. …방금 피한 거 맞지? 저렇게 대답을 흘릴 애가 아닌데. 확률 성장 트리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 본 찰나였다. 뭔가 반응이 애매모호하니 찜찜한 기운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의아함에 연신 고개만 갸웃거리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정원이 다가왔다.
“해신아, 혹시 너도 봤어? 명이 새벽에 혼자 거실 나와 있던 거.”
…잠을 못 잤다고? 나는 어젯밤에 숙면해서 모르던 사실이었다. 맨날 설치다가 오랜만에 잘 잔 거였는데. 타이밍 한번 더럽게 안 맞는다.
“으, 응, 잠을 좀 못 자는 것 같긴 했지……?”
“그래도 네가 눈치챘다니 다행이다. 한번 명이 좀 눈여겨봐 줄래?”
“어… 그래, 내가 한번 확인해 볼게. 고맙다.”
미안한데, 나도 지금 처음 알았어. 떨떠름하게 긍정하자 내 어깨를 툭 친 이정원이 다시 속도를 높여 멀어졌다.
권혜성이랑 티격태격하는 게 평소와 똑같아서 몰랐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실마리를 잡은 듯하다.
그렇게 모두와 함께 팬 사인회장으로 입장했다. 먼저 와 있던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정해진 자리로 착석했다.
저 멀리서부터 연신 셔터음이 터져 나온다. 그에 맞춰 손을 흔들고 입 모양으로 의사 표현 하며 안부를 전했다. 제법 낯이 익은 사람들도 보이는걸. 자세히 관찰하다가 유어돌 때부터 응원해준 홈마를 발견했다.
찰칵- 찰칵-
‘안녕하세요. 밥은 먹었어요?’
찰칵- 차차차차차차차찰칵-
저기도 여전하구나. 수저질하는 행동을 하니 셔터음과 플래시로 화답해 주는 사람이었다.
“아, 해신아! 그, 우선 이거랑 이거랑…….”
“하하, 안녕하세요. 우리 인사부터 할까요? 신해신이에요. 음, 제가 연상일 것 같은데.”
내 앞에 앉은 팬이 주섬주섬 챙겨 온 물건들을 전해 줬다.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걸었는데 그에 대뜸 넋을 놓아 버린다.
“아, 미친 존나 설렌ㄷ… 미안해!”
“크흡, 괜찮아요. 이건 그냥 쓰면 되는 거예요? 어때요. 저 잘 어울려요?”
“어어… 진짜 너무 잘 어울려. 해신아, 나중에 꼭 무대에도 쓰고 나와 줘!”
테이블 위에 놓인 소품을 들여다봤다. 처음 써 보는 투명한 플라스틱 고글이었다. 아이돌 판에서는 꽤 흔한 아이템이라고들 했는데, 희한하게 나는 무대에서조차 쓸 일이 없었다. 얼굴에 걸치곤 몸을 기울여 주니 팬이 입을 틀어막는다.
“네, 잊지 않고 꼭 무대에서도 보여 드릴게요.”
“헉……! 응! 진짜 고마워!”
“고맙긴요. 제가 더 고맙죠. 그럼 사인해 볼까요? 혹시 메모지 가져온 건 있어요?”
“물론이지! 여기 안에 붙어 있어!”
앨범을 펼치자 까만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포스트잇이 나타났다.
Q. 해신이는 어떤 동물이 제일 마음에 들어?
1. 검정 고양이
2. 표범
3. 늑대
4. 기타 ( )
…취향이 참 일관된 분이네. 원하는 게 너무 잘 보여서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손을 들어 3번으로 가는 척하니까 그에 맞춰 한탄하는 듯한 신음이 이어진다. 눈썹까지 팔자를 그리며 풀이 죽은 게 어지간히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아…….”
“음, 이건 농담이고.”
방향을 틀어 1번에 동그라미 쳐 주니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저, 고양이 좋아해요. 팬분들이 제일 처음에 붙여 준 별명이잖아요.”
“해신아……! 나 너무 감동이야!”
“이만 이동하실게요.”
울먹거리는 팬을 앞에 두고 이동해 달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손을 슬쩍 흔들어 줬지만 뭔가 아쉽단 느낌이 든다. 에라, 모르겠다……. 민망해도 일단 해 보자.
브이자를 그린 양손을 들어서 머리 위로 뒤집어 올렸다. 대충 이런 거로 기억하는데.
“잘 가요~”
일명 혼신의 고양이 귀 포즈였다. 일단 난 최선을 다했어.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니 양옆의 권혜성과 문채민이 여길 바라본다. 그만 쳐다보고 할 일들 해라.
“역시 우리 형, 해신이 형 짱이죠?”
“응? 응……! 진짜 짱이야…….”
권혜성, 팬분에게 공감받으려고 하지 마.
“저 여기 메모지에 있는 가장 존경하는 멤버 형, 해신이 형으로 바꿀게요.”
“푸핫! 그럼 채민이 너, 이제 유준이는 존경하지 않는 거야?”
“으음, 아니요. 존경은 하는데 다른 의미론 순위가 바뀌었어요.”
문채민, 너도 그만해.
“안녕하세요. 우리 초면이죠?”
“헉,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냥 활짝 웃으며 다음 팬을 맞이하려고 노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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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이는 강경 고양이파임 오늘 팬싸가 팩트다
보이냐고 직접해준 저 깜찍한 고양이 귀 ㅠ
포잇도 봐줘 고.양.이에 동그라미 쳐진 거 보이지??
채민이랑 혜성이가 같이 공감해줘서
너무 행복했잖아 역시 빠순이가 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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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잇과 맹수도 많거든여 ㅜ
- 나도 지금 초식계인 척하는 육식계로 보임 …시발 내가 이렇게까지 착즙을 해야 하냐
- 챔니랑 혜성이 얘기는 뭔데 나도 알려줘 ㅠㅠ
- 다 큰 남자한테 고양이라니 모에화 지리네 ㅋㅋㅋ
- 아니 내가 뭐 다른 사람 반려묘 사진 가져와서 인용을 했냐 뭘 했냐
- 맞아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 ㅎㅎ 그래도 우리는 양심 있어 아기냥이라곤 안하잖아
- ㅋㄱㅋㄱㅋㄱㅋ 아 시발 전투력 상승했다가 푸시식함 ㅋㅋㅋㅋㄱㅋㅋㅋ 양심 넘치는 팬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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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이사인 팬싸 시간은 칼처럼 재는데
애들이 좀 더 잡으면서 얘기해줌
특히 명이랑 정원이가 제일 많이 그런 듯
가드들이 애들 말이면 대충 들어주더라
둘 다 마이페이스라서 그런가? ㅋㅋ
일단 꼰대들이 아니라서 마음에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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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팬싸 개꿀이었단 거 진짜냐 대혜자네
- 근데 그거 이용해서 진상부리는 사람 좀 있었음 정체오져가지고 후반부에 원래대로 규율 빡세게 잡았잖아
- ㅎ 줘도 못 먹는 거 실화? 그럴 거면 날 보내줘 최고로 즐길 수 있는데 ㅜ
- 혜자라고 하기엔 팬싸컷이 존나 높잖아 내가 지금 할부가 얼만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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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5가 실물 쩔었다
내가 팬싸에 간 건지 루브르에 간 건지
걍 아무말도 못하고 아아… ㅇㅈㄹ만 하다가 넘어감;
외모만 완벽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 눈길을 끄는 듯
괜히 2위가 아니었어 스타성 쩌는 내 새끼 ㅠㅜㅠ
근데 다음이 이너준이어서 또 같은 짓 반복했다? ㅎ
오늘 다이어리 쓰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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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ㅋㅋㅋ 강태오 실물 본 사람들 후기 다 똑같앜ㅋㄱ 근데 다 다른 사람이란 게 킬포
- 공통점 하나 더 있잖아 아무 말도 못하니까 알아서 싸인하고 말 걸어줬단 거 ㅋㅋㅋㅋ
- 강태오 다음이 이유준??? 그리고 그 앞의 나? 미친 오진다 배치 일부러 노린 건가??
- 못 간 사람 눈 감아. 저요.
* * *
“으아~! 오늘 스케줄도 끝이다~!”
“권혜성, 아저씨 같아.”
제 머리를 벅벅 긁은 권혜성이 좌석에 기대 누웠다. 완전히 퍼져선 헤실헤실 웃는데 겉만 보면 바보가 따로 없는 광경이었다.
“혜성아, 숙소 근처에 왔어. 제대로 앉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창문에 쳐진 커튼을 반쯤 열어 본 이정원이 말했다. 음, 쫓아왔나? 아니면 대기였나?
“오늘은 몇 명이야?”
“일단 보이는 건 대여섯 명 안팎.”
“이제 곧 늘어날 거야. 아까 택시 따라붙는 거 봤어. 지금쯤이면 숙소로 온 것도 눈치챘겠지.”
팔짱을 낀 채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강태오였다. 둘 다였군. 쯧, 낮게 혀를 차니 이유준과 문채민도 걱정스럽단 표정을 짓는다.
“맞아, 팬 사인회장에서도 봤는데. 갓길에 서 있던 택시들 말하는 거지.”
“중간에 팀장님이 따돌리셨어.”
“오늘도 지하로 빠질까요?”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단지 내로 들어가자 보이는 인형들은 일명 사생이라 불리는 스토커였다. 여긴 팬으로 보면 안 되는 영역이라고 알고 있었다.
서바이벌 때는 천천히 상승했던 탓일까 크게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하이사인으로 데뷔한 이후에는 내게도 붙은 존재였다.
한 명, 한 명이 집단을 좋아하기보단 악성 개인 팬 성향이 강했다. 그런 사람들이 친해지면서 무리가 형성되어 더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소속사 케어가 든든한 편이라 별 탈 없는 나날을 보내긴 했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아이돌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난 뒤에는 오병은이 현관까지 함께 올라가 줬다. 문이 닫힌 뒤에야 긴장이 쭉 풀렸다.
“내가 제일 먼저 씻어도 되는 거지?”
“어! 그럼 정원이 형 다음은 나!”
“난 나중에 씻을게. 그럼 좀 쉬어 볼…….”
몸을 돌리려고 하던 찰나 굳은 안색의 윤명을 목격했다. 어? 그러고 보니까 숙소 인근에 온 이후 윤명이 말하는 걸 보지 못했다. 혹시…….
“명아, 잠깐 시간 좀 돼?”
“…나? 응.”
“그럼, 형 방으로 가자.”
내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은 뒤, 윤명과 함께 가장 안쪽에 자리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잠을 좀 설치는 것 같길래.”
“으음.”
“말하기 힘든 문제야? 내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으로 불러 줄게.”
목소리를 낮추고 조곤조곤 설명하는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는 윤명이었다. 사차원이라서 그런 걸까, 묘하게 속을 알기 힘든 인물이었다.
“괜찮아. 다 티 났구나.”
“…어, 그러니까.”
아니, 사실 나도 오늘 알았어. 그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인자한 미소를 지어 줬다.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하냐. 함부로 찔러보기도 난감해서 머리만 벅벅 털어 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피식 웃은 윤명이 입을 열었다.
“…그래, 형한테는 얘기해 줘야지. 명색의 리더인데.”
“어?”
“형, 나, 사생한테 연락처 들켰어…….”
“…뭐?”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폭탄이 떨어졌다. 윤명, 넌 왜 그걸 이제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