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62화 (161/328)

162화

그렇게 활동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본격적인 여론 장악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콘텐츠 오픈의 시작은 고우림과 함께한 챌린지 영상이었다.

[하이사인 X 고우림 배우님 Pandora 챌린지!]

#하이사인 #유어돌_대표님 #대표님과_함께하는_Pandora

- …?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임?????

- 고우림 당신이 여기서 왜 나와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ㅋㅋㅋ 와 추억 돋아 미쳤다

- 나만 또 유어돌 생각나고 막 아련하고 그래??? ㅠㅜㅠ 우리 애들 와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프로가 돼서 대표님 모시고 챌린지 영상 찍었어 ㅠㅜㅠㅜㅠㅠ

- 나 서사에 미친 인간이라 이런 거 보면 눈물이 좔좔 난다……

- 연생 시절 생각나는데 그때보다 훨씬 늘지 않았냐

- 센터 신해신 쩐다… 얘 악마한테 영혼 팔았다는 썰 기억남 진짜 성장 속도 개무서워;;

당신의 아이돌에서 대표를 맡았던 배우였던 터라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멤버들의 모습에서 연습생이던 과거가 보인다며 다시 한번 그때의 감정을 곱씹는 듯했다.

진짜 이 영상의 효과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근래 좋은 성적을 거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고우림이었다. 그 덕분에 대중에게도 입소문이 나면서 챌린지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졌다.

- 나 아이돌 노래 잘 안 듣는데, 이거 꽤 중독성 있네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ㅋㅋ

- 고우림 춤 잘 추는 걸? 애들이 가르쳐줬나 봐 귀엽네 ㅋㅋ

- 우리 엄마 이 영상보고서 대각선 방향에 있는 쟤 누구냐고 물어봄 문채민이지?? 똘똘하게 생겼다고 마음에 든대 ㅁㅊ 이게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ㅋㅋ

- 너두? 야 나두 … ㅋㅋㅋㅋㅋㅋㅋ 난 남동생이 물어보더라 ㅅㅂ 얘가 케이팝은 관심 없어도 드라마광이거든 ㅋㅋㅋㅋ 근데 고우림 챌린지 영상보고 강태오 잘생겼다고 찾아보던데 지 워너비 와꾸래 사이버 형님 삼겠대 미친놈 아니야 ㅋㅋㅋㄱㅋㄱㅋㄱㅋㅋ

- 사이버 형님ㅋㄱㅋㄱㅋㅋㅋㅋ ㅋㅋㄱㅋㄱㄲㅋ

흐름을 탄 상황에서 그동안 찍어 뒀던 콘텐츠들이 풀려 나갔다. 이건 코어 팬덤을 위한 선물이자 단결력을 강하게 만들 장치였다. 온갖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쉽게 접하지 못할 백스테이지 영상까지 매일같이 쏟아 내고 또 쏟아 낸 나날이었다.

“오늘도 새벽 연습이 있긴 한데 괜찮아요. 하이눈들 봐야죠. 정원이는 지금 뭐 하냐고요? 정원아! 팬분들이 너 찾으시는데?”

“나 찾았어? 안녕, 하이눈. 이제 연습 가려고 옷 갈아입었어요.”

- 이정원 여며!!!!!!!!

- 민소매 쏘 핫

- 나만 지금 핸드폰에 코 박고 보고 있냐;;

- 아니 깔 것 같은 해신이는 꽁꽁 싸매고 춤추는데 여밀 것 같은 정원이는 훌렁훌렁하고 다니냐곸ㅋㅋㅋㅋㅋㅋ

- 해신아 넌 좀 까자 눈 둘 곳이 너무 많다

- ㅅㅂ 눈 둘 곳이 너무 많대 ㅋㅋㅋㅋㅋㅋㅋㅋ ㅠ

- 우리 애는 저 얼굴에 조신한 게 포인트거든요

스케줄이 비는 중간중간에는 소통까지 이어 가며 활동의 정점을 찍은 매일이었다. 물량 공세가 이어지니 팬들의 반응도 식을 줄을 몰랐다.

- 요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 착즙할 시간도 없이 새로운 거 퍼먹는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배 터져서 죽을 거 같다 엄마 나 행복해

- ㄹㅣ얼 배부름 이 행복이 끝날까 봐 존나 떨고 있는 중이야

- 더 줘

- 하 케이팝 존나 달다~ 존나 달아~~

- 얘들아 떠먹여 줄 때 감사합니다하고 열일하자

- 질 수 없다 당장 스밍 돌려

고우림 챌린지가 효과를 보인 탓이었을까, 다른 그룹에서도 콜라보 요청이 들어왔다. 선의를 베풀던 선배 그룹들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견제하던 녀석들까지 달려들어서 난처할 정도였다.

“으악, 이거 어렵네요~”

“원이가 버벅이는 거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메인 댄서! 힘 좀 내 봐!”

“하하, 아닙니다. 선배님, 굉장히 잘하시는걸요. 저는 더 오래 걸렸어요.”

사회생활 하자, 사회생활. 친절한 미소를 그리며 선배 아이돌과 합을 맞췄다.

“와우, 해신이 형, 표정 짱.”

“…리더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권혜성, 윤명 너흰 조용히 있어. 나를 본 19살 둘이 서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희도 할 거 있잖아. 어서 준비해라.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고 우리도 얘네 곡을 해 줘야만 했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쟤네가 노리는 건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나 현재 우리는 상승세를 그리고 있었다. 서바이벌 그룹이라는 화제성에 뒤이어 두 타이틀 연속으로 공중파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보인 거다.

거기에 지원겸이나 고우림 같은 지원군을 붙여 가며 대중들에 눈에 띄었다. 이 정도면 걸어 다니는 광고판으로 보였겠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렇게 되면 우리도 쟤네 팬덤에게 곡을 알릴 기회가 만들어졌다. 신인상을 받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이사인을 인식시켜야 했다.

- 헐 우리 애들 판도라 챌린지했네?

- 원이 춤선이 진짜 미친 것 같아 강약조절 하면서 저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고?? ㅠㅠㅠㅠ

- 이번엔 신해신이랑 이정원이 같이 했구나 원이랑 대현이 그림체 맞춰준 건가 ㅋㅋㅋㅋ

- 그림체 맞춰줬대 기여웤ㅋㅋㅋㅋㅋㅋ

- 내 새끼 잘한다

처음엔 본진 그룹에 대한 이야기만 넘쳐 나겠지. 하지만 그것도 몇 번 반복하면 노래에 집중하기 마련이었다. 취향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잘 맞는 사람들에겐 스트리밍으로 이어질 기회란 소리다.

- 판도라 챌린지 찾아보는데 노래 중독성 쩐다 귓가에서 계속 맴돌음

- 너두? 야 나두 ㅋㅋㅋㅋㅋ 요즘 계속 듣고 있음 하 애들아 미안해 ㅜㅠㅜ

- 이정원 춤선이 대현이랑 꽤 비슷하지 않음? 느낌은 미묘한데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라 찾게 되네

- 우~아~우 예스 판도라~ 매일 ezr 중인 나

- 원이 챌린지 보다가 판도라에 중독된 썰 풉니다…

- 나 날티상 러버라 신해신까지 겸덕할 것 같음 미친 원이보다 더 씨게 생겨서 오타쿠 가슴 뻐렁차게 만드네 ㅜ

그렇게 암투 같은 일상을 보내다가 결전의 날을 맞이했다. 디레스트와 인클루가 컴백한 주간의 첫 음악 방송 녹화 날이었다.

생방송을 기다리던 중간 타임, 디레스트의 대기실에 찾아갔다. 연차가 있던 탓이었을까, 후배 그룹들이 몰려와 있는 장소였다.

일부러 득시글할 때를 노렸지. 사람이 많아서 정신없을 때 빠르게 끝내고 튀기로 했다.

“Star sign on stage. 안녕하세요, 하이사인입니다!”

“반가워요. CD도 고맙고요. 잘 들어 볼게요. 오늘 힘내세요.”

사인 CD만 건네준 뒤 다음 차례에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근 소파에 앉아 있던 김환준이 굳이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요. 저랑 도민이랑은 구면이죠? 요즘 활동하는 거 잘 보고 있었어요.”

“아, ㄴ…….”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신곡도 너무 잘 듣고 있습니다. 특히 김환준 선배님, 저번에 쇼플레이에서 제대로 인사 못 드려서 죄송했었습니다.”

…이유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고르는 사이에 치고 나선 녀석이었다. 특유의 느긋한 미소를 지은 채 홀로 김환준을 상대했다. 이건 적당히 예의는 차리되, 칼같이 선을 긋는 행동이었다.

“굳이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오며 가며 자주 인사해요. 우리도 차차 친해져야죠.”

“네, 저희야 영광이죠.”

분명 둘 다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인데, 왜 이렇게 스파크가 튀는 것 같냐. 적당히 마무리 지어 볼까 싶은 상황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며 다른 아이돌 그룹이 나타났다.

“안녕하세… 어?”

“그, 저희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럼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때다! 꾸벅 허리를 숙인 뒤에 애들을 밀며 방 밖으로 나갔다. 영문을 몰라 하는 다른 그룹에게는 눈짓으로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쪽 덕분에 살았어…….

오며 가며 인사는 개뿔, 다시는 안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속 구린 거 다 알고 있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야.

“오~ 유준이 형~ 아까 뭔가 카리스마 짱이었어.”

“그래?”

“‘네, 그럼 저희야 영광이죠.’ 크~! 여유 대박! 분명 멘트는 예의 있었는데,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지?”

보통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거지, 뭐……. 보는 눈이 많으니 말은 위치에 맞게 내뱉었다. 하지만 태도론 어디 가서 지지 않을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선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를 확인했다. 활동에 접어든 지 3주 차. 과연 이제 막 나온 인클루와 디레스트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 무조건 지금 이겨야 한다. 조금 있으면 화력이 붙을 텐데, 경력이 있는 6년 차 그룹은 우리에게 버거운 적이었다. 무조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팬들이 완전히 집결하기 전에 털자.

“형, 우리 성적 잘 유지하고 있어! 반응도 좋은데?”

“…팬분들 엄청 좋아하시던데, 우리 소통 많이 한다고. 다들 좋아하니까 나도 기쁘다.”

문채민과 윤명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재민에게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1위 후보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과 인클루, 디레스트 3파전이에요!”

작전이 먹혔다! 오늘 출연한 음악 방송은 1위 후보가 3팀인 프로그램이었다. 두 군데는 저기라고 생각했지만, 나머지 한 자리를 차지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이눈이 많이 힘들었겠어. 우리가 강행군을 미는 만큼 거기도 바쁜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이게 이번 활동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1위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겠지. 각종 방송 점수와 콘텐츠 그리고 대중적인 화제성을 전부 긁어모은 한 주였다. 딱 한 번만이라도 이기면 그걸로 따라올 시선이 있을 것이다.

“이겨야지.”

이정원, 혹시 너 내 속마음 읽었냐. 팔짱을 낀 채로 고민하는 내 옆에 털썩 앉은 이정원이었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디레스트의 무대가 나오고 있었다.

- 그 손에 쥔 방아쇠를 당겨

Try attacking me

- 이건 추격전, 불을 지펴, 너를 이끌어

시동 걸어 쫓고 쫓기는 Hit down

…더럽게 잘하네. 랩 포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건 다 소화하는 인간 같았다. 저럴 거면 춤이라도 못 추든가. 끼랑 재능까지 다 갖춘 사람인 듯하다. 천상 아이돌이었군.

불분명한 성격만 제외하자면 사람들이 따를 법한 인재였다. 그래서 리더를 시킨 건가. 거기에 다른 멤버들도 상당한 실력자여서 방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저기만 그런 거면 또 몰라. 연달아 나온 아는 얼굴에 이마를 짚었다.

“멘토님들 오랜만에 뵙네.”

“유준이, 넌 공태서 멘토님이랑 연락 좀 했어? 번호 있다며.”

“흐음. 있긴 한데 내 쪽에선 안 썼고…….”

“…뭐?”

이정원의 물음에 이유준이 나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주제를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얘들아! 무대 보자! 멘토님 나오신다!”

- 홀렸다고 해도 좋아

내 세계는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

순식간에 빠져들어

- 저 달이 너를 비출 때 new moon

내 심장 너머 아득히 now or never

저게 그 지원겸이 죽어라 준비하던 무대구나. 몽환적인 멜로디를 따라서 지원겸이 싸비를 불렀다. 풍성한 얼터너티브 R&B 장르가 인클루 특유의 음악성과 결합하여 높은 퀄리티의 타이틀을 만들어 냈다.

여긴 자급자족한다고 했었지? 나 같아도 저런 곡이 나오면 외부엔 안 맡기려고 했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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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와 오늘 1위 후보 피터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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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사인 vs 인클루 vs 디레스트

3파전 대박임

시청률 장난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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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지금 티위터 불판 오져

- 강 건너 불구경이냐 클러스트들 대가리 빠개진다 ㅜ

- 하이사인 쟤네 ㅈㄴ 불쌍하다… 나 같으면 걍 1위 포기했을 듯

- 헐 아직 모르나 보네? 쟤네 요즘 버즈량 미쳐ㅆ어 스밍 사이트 들어가봐라 자리 지키고 있던데;;

- 맞아 물량 공세 장난 아니었지 ㅋㅋㅋㅋㅋ 고우림 챌린지? 거기서부터 이 간 거 느낌 ㅋㅋㅋㅋ

- 인떤남자들과 디떤남자들 싸움만 볼 줄 알았더니 하떤남자들 독기품고 덤벼서 개꿀잼이야

- 머리 좀 쓴 듯 아직 클러스터랑 워닝 얘네 제대로 화력 못 보일 때잖아 집주인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터네 ㅋㅋㅋㅋㅋ

- 빈집털이도 존나 힘든거야

- 헐 대박 미친 그럼 유어돌 선생님이랑 제자도 붙는 거야? 삼파전 맞네 맞아…

- 요즘 음방 1위 이 정도로 예민함?? 솔직히 지금 라인업이면 져도 큰 타격 없지 않나?

- 리얼개예민함; 그래서 방점이랑 글로벌 크면 극대노하잖아;;

- 아 ㅆㅂ 글로벌은 그러려니 하는데 방점 제도는 노답인 거 맞지

- 글로벌 나오면 우리 애들이 난리다 ㅜ 선배님들은 해투 돌기라도 했지 저희 애들은 아직 와기거든여~~~~

- 이번에 인클루랑 디레스트는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하이사인이 유리한 거 아니냐? 까놓고 봐도 팩트잖아 ㅋ

- 무슨 개소리야 ㅋㅋㅋㅋㅋ 얘네도 벌써 3주차야 지금까지 화력 끌어 올린 거 애들 실력임 그리고 생각보다 방점 관련 활동은 적었음 거의 자컨 위주였고

- ㅁㅈ 음판이나 음원 성적 보고 그런 말 해 솔직히 나머지 둘 활동할 때랑 엇비슷할 정도론 나왔음

- 응~ 고우림빨~

- 에휴 고우림 볼 사람은 고우림만 보고 관심 껐다~ 잘하니까 유입된 거지 정병들 또 기어나오네

- 하이사인도 하이사인인데 난 인클루랑 디레스트가 존나 궁금하닼ㅋㅋㅋㅋ 뒷계 장난 없던데 ㅋㅋㅋㅋㅋ

- 거기 지금 개살벌함 내가 보고 왔다;; 머리채만 안 잡았지 이미 뺨 한 대씩 쳤어

지켜보는 팬들 역시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연차가 있는 선배 그룹 사이에 홀로 끼게 된 입장이다. 조금만 못해도 실력으로 까일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럼 이제 1위 후보인 하이사인의 무대 감상하시겠습니다. 뮤직~ 스타트!’

MC의 소개와 함께 하이사인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스포트라이트 형식의 조명이 어두운 세트장으로 쏟아졌다.

그에 맞춰 신해신이 고개를 드는데 첫 번째 타이틀보다 훨씬 노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라이브를 이어 가는 실력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 1, 2, 3 카드를 뒤집어

손안에 쥔 건

바로 네 destiny

└ 뭐야;; 얘네 호흡 개 안정적이야 미친 거 아님????

└ 신해신 오졌다 오늘 무대 찢었다 걍 산독기 독기야임

└ ㅅㅂ그게머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헤메코 컨셉 착붙 왜 센터 세웠는지 무대 볼 때마다 알겠어

쉴 새 없이 변하는 동선 속에서 표정 연기까지 놓치지 않는다. 윤명과 강태오의 더블링이 이어지고 중첩된 화음 사이에서 이정원의 고음이 쏟아졌다. 등 뒤로는 종탑의 영상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게 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상자를 열어 (아니, 열지 마)

이건 널 (날) 깨우는 signal (signal)

- Choose one over the other

Woo- ah- woo-

Yes, pandora

└ 이정원 쟨 최소 폐 4개 있을 듯;

└ ㅁㅊ 난 아가미설도 들었는데 ㅋㅋㄱㅋㄱㅋㄱㅋ

└ 강태오 이번 컨셉 착붙인 것 봐 줘 ㅠㅠㅜㅠ 진짜 ㄹㅈㄷ ㅠㅜㅠ

└ 아 아가명 피지컬보고 토할 것 같다… 춤멤 옆에 있는데도 동작 안 밀리는 게 오짐

그렇게 보컬 파트가 이어진 뒤에는 곡의 고조를 돕는 래퍼들이 등장했다. 안무의 디테일을 챙기면서도 핸드 마이크를 들고 라이브 하는 모습을 보인다.

연달아 나오는 댄스 브레이크에선 권혜성의 주도하에 동선 변경이 이루어졌다. 착용하고 있던 실버 액세서리들이 조명에 반사되며 빛을 발산했다.

- It's time for bed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어

- Oh. sorry

I don't know

It's a lie

전부 알았어

- 처음은 두렵겠지

앞을 향해 걸어 보면 알 수 있어

└ 래퍼 둘 합보고 대가리 치는 중이다 채민이 카메라 무빙 따라서 시선 움직이는 거 미쳤네 ㅠㅠ

└ 이유준은 목소리부터가 사기잖아 ㅋㅋㅋㅋㅋ 저기에 딕션이랑 박자 쪼개는 스킬까지 있으니까 미친놈인거지

└ 혜성이 성량 진짜 많이 좋아졌어 유어돌때보다 호흡도 훨씬 안정적이야 ㅠㅜ 아이고 내새끼 ㅜㅠㅠ

- pandora 어서 그 상자를 열어

헐떡이는 신해신을 중점으로 은박 종이 가루가 터져 나온다.

└ ㅅㅂ 엔딩 장면 극락 오타쿠 가슴 무한 웅장 사건

└ 1위? 가보자고~~~ 연차 그런 건 모르겠고, 얘들아 너네가 무대 찢었다!!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카메라를 보고 웃는 멤버들을 끝으로 엔딩이 난 무대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까지 중에서도 최고로 좋은 합을 보인 무대였다는 점이었다.

해당 방송이 스크린으로 송출됐을 때 팬들의 반응은 끓어오르고 있었다.

* * *

무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주변을 살피며 멀리 보이는 대형 전광판을 확인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지원겸이 말을 걸었다. 입 모양으로 말하는 탓에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야, 신해신.’

‘……?’

‘전화, 전화!’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 뒤 전화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이따 전화하라고? 대충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타이밍 좋게 MC들이 등장했다.

“생방송 뮤직 워너비! 오늘의 1위는 누구일까요?”

무대 위에 올라간 이후론 결과 발표만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1위 후보로 보이는 그룹들과 올라가는 숫자만을 바라봤다.

“생방송 중 진행된 실시간 투표를 합친 결과 뮤직 워너비의 주인공은… 하이사인! 축하합니다!”

펑! 꽃가루가 쏟아짐과 동시에 우리를 비춘 화면이 확대되었다. 진짜 쟤네를 이겼어?

이정원과 이유준의 독기 어린 출사표 아래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한 작전이었다.

놀란 마음에 마이크를 움켜쥐고 객석만 바라보길 한참. 말문이 막힌 나를 본 이정원이 먼저 소감을 발표했다.

“안녕하세요. 정원입니다. 어, 우선 이렇게 1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거짓말쟁이. 죽자 사자 뛰어든 걸 옆에서 봤는데. 그래도 노력한 건 맞았으니까.

그렇게 나머지 가수들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러다가 그만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박수 치는 지원겸을 목격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요. 머리를 긁적거리곤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야, 축하해. 꼭 연락해라.’

앵콜 무대를 위한 인트로가 나오자 내 등을 툭 때린 지원겸이 무대를 내려갔다. 옆에는 공태서도 함께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준다.

“하이눈, 고마워요~! 최고!”

“오늘의 1위 공약! 와일드 버전 Pandora~!”

그때 대뜸 소리를 지른 문채민이 내게 달려들었다. 옆에 있던 권혜성도 합류해선 내가 입고 있던 재킷을 뺏어 들었다. 우리 이런 공약이 있었어?

처음 듣는 이야기에 강태오를 바라보니, 포기했다는 듯이 본인의 재킷을 벗고 있는 애였다. 셔츠의 소매까지 걷어붙인 뒤에야 본인 파트를 이어 부른다.

“어, 어?”

윤명은 세팅되어 있던 제 머리를 탈탈 털어 러프하게 넘기고 있었다. 넥타이를 풀어 헤친 채로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 태연해서 당황스러운 지경이었다. 이, 일단 하자.

나도 손을 들어 스프레이로 굳은 머리를 헤집곤 대형에 맞춰 이동했다. 그에 따른 팬들의 환호성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하이눈! 고마워요!”

객석을 향해 크게 외친 뒤에야 내 몫의 파트를 들어갈 수 있었다. 뭐가 됐든 열심히 했고, 좋은 결과를 받았으니까. 이 순간만큼은 활짝 웃어도 될 것 같다.

* * *

- 한 방 먹었네.

“전화하라던 이유가 이거였어요?”

- 어. 나도 한번 투덜거려 보자. 아~ 신해신한테 당했어.

숙소에 돌아온 이후였다. 지원겸의 볼멘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흘러나왔다.

“저도 1위 할 줄 몰랐는데요.”

- 머리 쓴 건 사실이잖아! 우림이 형이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너 도대체 뭘 한 거야?

“예? 회사에서 한 건데 저는 모르죠.”

그거 내가 한 거 아니야. 이건 우리 팀의 이씨 둘과 서도경의 합동 작전이었다. 뭐만 하면 다 내가 했대. 조금은 억울한 심경으로 지원겸의 불만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부턴 우리를 제외한 그쪽 둘네 싸움이잖아. 하이사인은 활동기 막바지이기도 했고, 모든 화제성을 한 주에 몰아넣은 탓에 그 자리를 지키기 힘든 상황이 됐다.

본인도 잘 알고 있으면서 능청 떠는 게 분명하다.

- 그래도 디레스트 걔네한테 질 바에야 너희가 마음 편하다.

“멘토님, 거기 진짜 싫어하시네요?”

- 어, 마주쳐서 표정 관리 한다고 죽는 줄 알았잖아. 나 미간 찡그려질 것 같으면 너희 돌아봤다? 희한하게 너만 보면 웃겨서 말이야. 고마워. 덕분에 인성 논란은 피했어.

“그거 칭찬 맞아요? 혹시 이게 용건이면 끊어도 될까요.”

- 에이, 성격도 급해. 아니 뭐 축하한다고 얘기도 할 겸, 우림이 형까지 끌어들인 게 기가 막혀서 한탄도 할 겸 연락했지~ 사실 이것 말고 본론은 따로 있어.

“본론이요?”

- …어, 곧 MXP에서 건들 거야. 디레스트한테서 첫 주 1위를 뺏은 건 팩트잖아. 스턴즈 내보내기 전에라도 어떻게든 후려치려고 하겠지. 쉽게 말하자면 이미지 깎기 같은 거?

그거 지금 악성 루머나 스캔들을 말하는 건가. 진지해진 목소리에 바짝 굳었다.

“멘토님은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리고 왜…….”

우릴 도와주는 거야? 얼마 전까진 컴백 소식도 알리지 않은 채 제 나름의 선은 지킨 지원겸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 건은 진심으로 도움이 되는 소리였다.

저기도 원하는 게 있어서 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한숨을 내쉰 지원겸이 말을 잇는다.

- 아~ 장난스럽게 넘기려고 했는데. 일단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우리가 먼저 겪어 본 일들이니까? 그리고 왜 도와줬냐고 하는 거엔, 쯧, 그냥 그때가 떠올라서 그런 거라고 하자! 지금이야 그럭저럭 넘긴다 치지만 진짜 빡셌거든. 아아~ 참 고생했지.

“…….”

아무래도 자기네가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한 번만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의도야 어찌 됐든 도움을 받은 건 맞으니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려는데 먼저 선수 쳐선 전화를 끊어 버린다.

- 아무 의미 없이 선행 베푸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부턴 나도 너한테 뜯어낼 만큼 뜯어낼 거다? 으~ 나 이런 분위기 질색하는 건 알지? 끊는다!

“네? 멘토ㄴ……!”

뚜- 뚜- 뚜-

[지 말만 하는 인간]

통화 종료

허무한 기분으로 종료된 화면을 바라봤다. 하여간에 저장명과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 * *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정말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알려 준 건 참 고마운데…….

[현 서바이벌 그룹 멤버 한 명의 소속사 특혜를 폭로합니다.]

이 정도 규모라고는 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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